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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제1장 진인각(陳寅恪)의 도성론 보정(補正): ‘궁성편북론(宮城偏北論)’과 ‘북문관건론(北門關鍵論)’을 중심으로 서론 Ⅰ. 북위 낙양성과 수당 장안성에 대한 도성구조론 1. ‘궁북시남(宮北市南)’구조의 호족적(胡族的) ‘실행성론(實行性論)’에 대한 진인각의 비판 2. ‘궁북시남(宮北市南)’구조에 대한 진인각의 견해 Ⅱ. 궁성의 편북화(偏北化)와 금원의 기능 1. 북위 평성의 편북구조의 기원 2. 북위 평성에서의 ‘성(城)?원(苑)’체계 출현 3. 수당 장안성 현무문과 금원의 기능 4. 당 낙양성 현무문과 금원의 기능 결론 제2장 북위 낙양사회와 호한체제: 도성구획과 주민분포를 중심으로 서론 Ⅰ. 도성구획 1. 성곽구조와 호한체제 2. 방장제의 포치(布置)와 호한체제 Ⅱ. 주민분포 1. ‘사민이거(四民異居)’책의 배경 2. 주민분포의 실제 결론 제3장 당 장안성 삼원고(三苑考): 전한 상림원(上林苑)의 기능과 비교하여 서론 Ⅰ. 성(城)?원(苑) 분리에서 성(城)?원(苑) 통합체계로 1. 성(城)?원(苑) 분리시대의 원유(苑?): 상림원형(上林苑型) 2. ‘성원(城苑)’체계의 계보: 삼원형(三苑型) Ⅱ. 원(苑) 기능의 변화 1. 상림원형 원의 기능 2. ‘성원’체계하 원의 기능 결론 … 177 제4장 유목국가와 성곽: 방장제(坊墻制)의 출현과 그 배경 서론 Ⅰ. ‘무성곽(無城郭)’의 의미와 유목민족의 성(城) Ⅱ. 남흉노(南匈奴)의 성 1. 남흉노 철불부(鐵弗部)의 대래성(代來城) 2. 혁련하(赫連夏)의 통만성(統萬城) Ⅲ. 선비(鮮卑)의 성 1. 선비제부(鮮卑諸部)의 각축시대(角逐時代)와 성락성(盛樂城) 2. 북위(北魏) 평성시대(平城時代)의 주민배치와 방장제(坊墻制) 결론 제5장 ‘이’제(‘里’制)와 ‘방’제(‘坊’制): 그 구조와 기능의 이동(異同)에 대한 시탐 문제제기 Ⅰ. ‘방(坊)’의 출현과 그 용어적 의미 Ⅱ. 방(坊)의 형태: ‘방(坊)’제에서의 방장(坊墻) Ⅲ. 방장제(坊墻制)의 출현?빈번한 축성(築成) 및 대성(大城)축조운동 Ⅳ. 이(里)와 방(坊)의 병립과 그 이동(異同) Ⅴ. 방장(坊墻)의 장점: 인민관리의 경제성 결론 제6장 오호(五胡) 혁련하국(赫連夏國)의 도성 통만성(統萬城)의 선지(選址)와 그 구조: 일(一) 호족(胡族)국가의 도성경영방식 서론 Ⅰ. 혁련하국의 시말과 국제정세 Ⅱ. 통만성의 지리환경과 선지과정 Ⅲ. 통만성의 구조와 경영방식 결론 제7장 동위-북제시대 업도(업都)체제와 도성구조: 입지와 용도, 그 구조적 특징 문제제기 Ⅰ. 업(?)으로의 천도문제 Ⅱ. 양도체제하(兩都體制下)의 진양(晉陽)과 업도(?都) 1. 양도체제 성립의 배경 2. 양도체제하의 진양 Ⅲ. 신도(新都) 업도(?都)의 건설과정과 그 지향 Ⅳ. 업도(?都)의 외곽성과 방(坊) Ⅴ. ‘용병처’로서의 업도 북성(北城) 결론 제8장 당대 육호주(六胡州) 주성(州城)의 건치(建置)와 그 운용: ‘항호(降戶)’안치(安置)와 역사(役使)의 일 유형 서론 Ⅰ. 돌궐항호(突厥降戶) 처리와 육호주의 연혁 1. 돌궐항호 안치과정에서의 육주(六州)와 육호주 2. 기미주(羈?州)와 육호주 Ⅱ. 육호주 주성의 건치와 방제의 실시 Ⅲ. 양마(養馬)와 소그드인 Ⅳ. 기마병원(騎馬兵源)의 확보와 육호주 결론 제9장 수당 장안성의 시장풍경: 호한문화의 교류와 통합의 현장 서론 Ⅰ. 계획도시 장안성의 주민배치 Ⅱ. 장안성의 시장구조와 그 관리 Ⅲ. 시장의 봉쇄·개방 양존적 구조와 문화통합기능 Ⅳ. 상인문화로 본 호한문화(胡漢文化) 교류·통합의 현장 결론 제10장 대당제국 장안성의 도성구조와 그 계보: 계승(繼承)과 창신(創新) 문제제기 Ⅰ. 초대형 계획도성의 출현 Ⅱ. 수당 장안성의 방장제 1. 방장제 창신인가? 계승인가? 2. ‘창신’의 내용과 그 유래 3. 방장제의 실시와 야금제도의 운용 Ⅲ. 궁성의 편북과 성원체계(城苑體系)의 기능 결론 제11장 수당대 낙양의 도성구조와 그 성격: ‘중세적’ 도성구조의 종언 문제제기 Ⅰ. 배도(陪都) 낙양성의 영건과 그 배경 Ⅱ. 낙양성 영건과정에서의 사민(徙民) 1. 수 양제의 ‘천하부상대고수만가(天下富商大賈數萬家)’ 사민 2. 무측천의 ‘관내칠주호수만가(關內七州戶數萬家)’ 사민 Ⅲ. 낙양성의 건설과 그 구조적 특징 1. 낙양성의 건설과정과 그 규격 2. 낙양성의 구조적 특징과 좌우대칭의 문제 Ⅳ. 경제수도로의 지향 1. 궁·황성과 금원의 편서와 조운 2. 운하와 수거 그리고 시장 3. 궁성과 저량(儲糧)·조운창(漕運倉) 결론 참고문헌 中文摘要 찾아보기 |
朴漢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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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무문은 궁성과 곽성의 북문인 동시에 금원의 남문이다. 즉 현무문은 금원의 일부분이고, 금원이 정치사에서 그 승패를 결정짓는 장소였다는 것이 필자의 소견이다.
유목민족이 중원에 진입함에 따라 중국 전통적인 도성구조에 중대한 변혁을 가져다주었다. 즉 금원이 비로소 도성의 구성요소의 하나, 즉 도성의 한 구역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렇게 됨에 따라 궁성이 도성 전체의 중앙에 위치하게 된 것이다. 그래야 수당 장안성도 ‘선왕지법을 따르는[循先王之法]’ 도성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선왕지법’의 구체적인 내용은 사실 불명확한 면이 있지만 중국 고래의 ‘중앙궁전’ 원칙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한다. --- p.54 중국 역대 취락사상 독특한 의미를 지니는 이 방장제는 유목 고유의 것은 아니지만 정복 후 새내에서 처한 대량의 유민(사민)의 존재로 인해 생겨난 것이므로 일종의 ‘노매딕 임팩트(Nomadic Impact)’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방장제는 방이라는 독특한 소성이 출현하여 기존의 한족 고유의 이제와 어울러져 시행되었기 때문에 방이라는 실체는 이미 출현했으나 방이라는 이름으로 인정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실제로 방이 기초행정조직단위의 명칭으로 확립된 것은 수대였고, 이제에서 완전히 분리된 것은 방의 독립된 직책인 방정이 등장한 당대였다고 할 수 있다. 당률에 방정의 직임이 규정되었다. 당대의 방정은 원래 기능인 방 내외의 출입과 방내의 치안에 집중하게 되었던 것이다. 방장제적 통치가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 시기가 당대였다. 장안의 주민은 황제가 설정한 가고제도(街鼓制度)에 의해 그 활동의 시간과 장소가 결정되었다. 방문이 열리는 낮에 자유스럽게 방외 활동이 허용되지만 방문이 닫는 가고가 울리고 나면 모두 방내로 들어와야 한다. 이런 주민들의 생활은 율령에 의해 규정된 대로 그 자유와 통제가 행해졌다. 이런 주민들의 생활은 흡사 가축이 우리에 출입하는 것과 유사하다는 지적도 있다. --- p.305 시장은 시내의 어느 지점보다 많은 사람들을 끌어모은다. 시장은 물론 교역의 장이다. 그러나 여기에 각종 종족,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문화교류의 장으로 이용된다. 수당왕조는 세계제국이고, 따라서 세계 각처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 장안으로 몰려들었다. 이들 호와 한으로 대표되는 다양한 종족의 교류의 장은 여러 곳이겠지만 가장 빈번한 교류가 이뤄지는 곳은 역시 시장이었다. 시장 가운데서도 가장 빈번한 교류의 장은 역시 서민시장이었던 서시였다. 그래서 마지막 장에서는 서시를 중심으로 전개된 문화교류의 현장의 모습을 살펴보려 하였다. 서시에는 실크로드를 타고 온 서역들만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그 밖의 각국에서 온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당 초기 당대인들의 모습을 묘사한 ‘한인은 호인의 모자를, 호인은 한인의 모자를 쓴다’는 글에서 당시 시장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호한문화의 교류 정도를 잘 알 수 있었다. --- p.5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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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성에서의 금원의 존재와 역할
저자는 첫 번째 장에서 낙양성을 예로 들면서 일본의 나바토시 사다(那波利貞)의 ‘호족 실행성’과 중국 진인각(陳寅恪)의 장씨 정권의 영향을 받은 ‘한족 내재적 영향설’이 ‘궁북’에만 신경 썼지 도성에서 금원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서는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또한 저자는 두 사람이 착목하지 않았던 ‘방장제’에 대해 주목하면서 금원과 방장제가 한족 고유의 도성 성격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주장하였다. 유목민족인 선비족이 성곽을 건축하게 된 배경 저자는 유목민족이 본래는 성곽이 필요 없는 이동식 주거관념을 지니고 있었지만 중원으로 진출하면서 전쟁으로 사로잡은 포로와 기술자들을 한곳에 가두어 관리하며 그들을 부려서 이익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성곽이 필요하게 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적대적인 인민에게 포위되지 않도록 강구하면서 ‘궁북원후(宮北苑後)’ 형식으로 궁궐이 도성의 북방으로 이동하게 되었으며, 폐쇄적인 방장제로 적대적 인민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당 장안성 금원의 성격 저자는 당 장안성의 삼원 즉 금원이 전한시대 상림원의 기능을 일부 계승하였지만 황제의 신변을 지키고 군대를 출정시키는 기능을 특별히 추가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기능은 오호십육국의 하서정권에서 비롯되었으며 저자는 이를 성원체계(城苑體系)라고 명명한다. 이러한 기능이 극적으로 표출된 것이 당 태종이 등극하게 된 ‘현무문(玄武門)의 변’이라는 것이다. 방장제의 출현과 그 배경 저자는 수당 장안성에 실시한 방장제의 기원을 북위 전기 수도였던 평성(平城)의 도시구조에서 찾았다. 평성에서부터 도시 일 구역의 명칭으로 등장하는 ‘방’의 기원을 다시 흉노지역에 축조된 성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고 보았다. 즉 흉노지역에 산재했던 선우정과 변경에 두어진 ‘구탈(區脫)’이 그 원초적인 형태였다고 본다. 피사역민 수용처로서의 성들이 선우정을 중심으로 그 주위에 건설되었던 것이다. 방장이란 성곽 안에 설치된 또 다른 성으로 빈번한 정복활동과정에서 발생한 대규모의 피사민을 직능별로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통만성을 통해 본 도성경영방식 혁련하(赫連夏)국의 도성 통만성(統萬城)은 유목민족의 축성(築城)이 중원에 끼친 영향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통만성은 창업자 혁련발발이 탁발씨의 북위에게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대적하며, 피정복민을 물자생산에 사역시키는가를 고민하면서 건축한 성으로 전통적인 중국 성과 달리 궁성이 동향하고 있다. 혁련하가 사민조치를 한 후 바로 축성을 행했다는 면에서 당시 성곽의 용도가 피정복민의 수용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당조의 항호(降戶) 안치방법 돌궐 멸망과 더불어 당조로 귀속된 항호집단인 소구드인들의 집단거주지로서 설치되었던 육호주(六胡州)는 양마(養馬)와 예비병력으로서 특수목적에 사역되었지만 양마가 더 우선적인 것이었다. 저자는 이들의 안치와 역사(役使)방식은 도성 장안성에서의 이민족에 대한 그것과 유사한 측면이 있는데 특수한 항호를 방리 안에서 격리 수용되었다는 점에서 방장제가 실시된 도성 및 현성 이상에 소속된 방장내의 주민(항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고 평가하였다. 시장이 수행했던 호한문화의 교류와 통합의 모습 수당 장안성의 시장은 외형적으로 높고 넓은 위장으로 둘러싸여 있고 개·폐점의 시간도 매우 엄격하였다. 그렇지만 호와 한으로 대표되는 다양한 종족이 참여한 물산 교류가 이루어지는 곳은 역시 시장이었다. 시장 가운데서도 가장 빈번한 교류의 장은 역시 서민시장이었던 서시(西市)였다. 수당 장안성의 특징 수당 장안성의 특징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실제 수요보다 훨씬 큰 규모였고, 둘째, 곽내가 모두 장으로 둘러싸인 ‘우리[檻獄]’식 방장제가 전면 실시되었다는 점이다. 셋째, 궁성이 곽내의 북방 중앙으로 밀려짐[偏北]과 동시에 광대한 후원과 접하는 소위 ‘성원체계’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 시대의 원림이 전한대처럼 궁성과 떨어져 있지 않았으며, 유락 내지 생산을 위한 땅으로 사용되지도 않았다고 주장한다. 즉 원림은 목지로서 대규모 군대가 주둔하여 훈련하고 있으며, 내외의 환란이 발생했을 때, 황제의 피란을 위한 공간인 동시에 친정(親征)의 출발점이 되었던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중세도성’의 종언인 동시에 ‘근세적’ 도성의 형태로 이행하는 과도기적인 구조를 가진 수당 낙양성 수당의 낙양성은 특히 경제적 기능을 가진 도성이었다. 그 점은 ‘천하상고(天下商賈)’를 사민시킨 데서부터 보이고 있다. 운하와 조거(漕渠)와 시장 그리고 창고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도성이 바로 낙양성이었다. 즉 낙양성은 운하에서 분기된 수거에 의해 도시 전체가 연결되어 있었다. 저자는 낙양성에서 중요한 기능을 갖는 서원(西苑)이 수거망의 중심에 있었고, 궁성도 자연히 서원에 위치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천험에 의지하는 중세도성에서 물산의 사통팔달에 위지하는 근세적 도성으로 이행함을 의미한다. 다시 정리하자면 이 책에서 저자는 수당 장안성과 낙양성의 구조와 성격 및 배경에 대해 부조리한 언급을 한 나바토시 사다와 진인각의 학설을 비판하고 수당의 장안성과 낙양성이 호한체제적 성격을 지닌다는 것을 11편의 논고를 통해 정밀하게 논증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