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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1 존엄한 삶에 대한 확신의 파괴 _혐오표현 *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행위 소수자를 겨냥한 낙인 | ‘그냥 말’은 없다 * 언어로 하는 구타 : 모욕 “난쟁이가 욕심도 많다” | 온라인이라는 숙주 * 증오의 촉진 : 선동 “이주여성이 와서 서민들의 일자리를 뺏는다” | 교묘히 은폐된 편견들 * 열등한 신분의 창조 : 종속 “호남 출신 사람들은 뽑지 말라” | 표현의 권력은 평등하지 않다 | 성적 대상화의 문제 * 묵살과 왜곡의 이중주 : 무시 “그냥 밥하는 아줌마들” | 언어가 있어도 말할 수 없는 이유 | 그들이 원한 것이다? × 어떤 게 혐오표현일까? 2 모욕당하고 배제된 타자들의 이름 되찾기 _대항표현 * 차별과 폭력을 무효화하는 행위 말대꾸의 세 가지 도구 * 객관적 정황의 재현 : 사실성 거짓에 기초한 혐오표현의 논박 | ‘예멘 합동결혼식’의 진실 * 관습의 교란 : 정당성 “오백만 년 전에 하던 소리” | 을들의 반란 * 내면에의 호소 : 진정성 혐오의 신화 | “부모한테 자식은 지겨울 수가 없어요” * 전복, 탈환, 패러디 : 산발적 대항 “남자가 웃어야 집안이 평화롭다” | www.하나님은 동성애자들을 사랑하신다.com | “성 상품화가 왜 나빠요?” * 혐오를 허용하는 사회 : 지속적 대항 개별적 저항의 한계 | 국가 차원의 말대꾸 | “오늘 우리는 ‘혐오의 시대’와 결별을 선언한다” × 좀 더 교묘한 혐오표현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보론 그럼에도 혐오할 자유가 있다고 말한다면 _표현의 자유 * 진리 논증 표현은 우리를 진리로 이끈다 | 진리와 관련이 없는 표현들 | 중립주의의 허점 * 권리 논증 혐오할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 | 누구의 권리인가? * 민주주의 논증 공론장의 선결 조건 | 전쟁터는 수호하지 않는다 * 미끄러운 경사면 논증 금지하는 것은 설득하는 것이 아니다 | 일베의 폭식투쟁을 경찰이 보호할 때 * 역량 논증 사람다운 삶을 위한 무기 | “너 하나 병신 만드는 건 일도 아니다”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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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의 관점은 후에 영국의 철학자 오스틴John Langshaw Austin으로 이어졌고 ‘일상언어학파Ordinary Language School’라는 연구 분야를 탄생시켰다. 일상언어학파에서 주로 연구하는 언어는 추상적인 논리나 명제가 아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실제 언어’다. 앞으로 다룰 혐오표현과 같은 일상언어 자체를 철학적 탐구와 분석의 대상으로 삼아 연구할 수 있는 길이 생긴 것이다.
오스틴의 대표적인 저서, 《말을 가지고 행위하는 법》의 제목은 ‘우리는 언어를 통해 다양한 행위를 하며, 언어는 곧 행위’라는 일상언어학파의 관점을 집약적으로 보여 준다. 언어 또는 표현이란 단순한 소음이나 입술의 움직임을 통해 내뱉어진 말이 아니라, 어떤 의도가 담긴 행위Act라는 것이다. … “불이야!”라는 말, “문이 열려 있구나”라는 말, “바닥이 미끄럽다”라는 말, “쟤, 동성애자래” 같은 말들 역시 단순히 사실을 보고하는 말이 아니다. 이 말들은 모두 무언가를 의도하고 있다. --- p.19~20 오스틴의 견해를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혐오표현을 단순한 진술문이 아니라 수행문으로, 표적 집단에 가해지는 언어적인 폭력행위로 볼 수 있게 된다. 지하철에서 흑인을 가리키면서 “껌둥이다”라고 하거나, 남성 동성애자 커플을 향해 “쟤네 똥꼬충이네”라고 하는 것은 그들이 흑인이거나 동성애자임을 객관적으로 기술하는 진술문이 아니라 그들을 모욕하고 차별하는 수행문이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김치년!”과 같은 표현은 실제 존재하고 있는 일부 여성들을 중립적으로 지칭하는 진술문이 아니다. 여성을 향해 표출된 혐오발화자의 차별적인 언어폭력이다. --- p.22~23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자유주의자들은 더 많은 표현more speech을 통해 혐오표현의 해악을 논박할 수 있다고 낙관한다. 그들은 사상의 시장의 풍부함과 무질서함을 사랑하며, “수천 송이의 꽃이 피게 만들어라. 심지어 독을 가진 꽃이라 하더라도”라고 태연하게 말한다. 말은 말로 받아치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인적인 대항표현에는 한계가 있다. 철학자 막심 르푸트르Maxime Lepoutre에 따르면, 혐오표현에 대한 해법으로 개인적인 대항표현을 제시하는 것은 혐오표현의 피해자들에게 ‘맞대응하라’는 부담을 추가로 지우기 때문에 불공정하다. 피해자에게 그저 더 많은 말을 하라고 권유하는 건 또 다른 폭력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 자리에서 응수하는 것은 권력관계로 인해 어려운 경우가 많고,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도 있다. 앞서 닐슨의 연구에서도 살펴보았듯이, 혐오표현의 피해자들이 혐오발화자에게 직접적으로 대응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혐오표현을 경험한 피해자들 대부분은 상황을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할 것으로 여기면서 현실을 수용하고, 일상화된 범죄 피해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대응을 포기하거나 위축된다. 대응할 경우 혐오표현이 물리적 폭력 피해나 위협으로 발전되거나 아웃팅, 실직 등의 구체적 권리 행사의 배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 p.118~119 시민 개개인들에 비해 권위를 가지고 있는 공직자나 정부 기관, 대통령이 혐오의 정치를 직접적으로 비난한 사례는 혐오표현의 피해자들도 존엄하고 동등한 시민이라는 것을 재확인할 수 있게 해 주고, 국가가 그들의 편에 서 있다는 강한 확신을 제공해 준다. 국가 중심 대항표현은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사회에 보낸다. “국가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당신이 그런 말을 들어야 했다는 것에 유감을 표합니다. 불행히도 일부 개인들이 여전히 이런 말을 믿는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국민 전체를 대신하여 우리는 당신 곁에 서서 확신을 줄 것이고, 당신이 이방인이 아니라 그들이 이방인이며, 그들이 말한 것은 공허한 위협으로 그치게 할 것을 보장하겠습니다.” --- p.125~126 진리 논증으로 표현의 자유를 옹호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비판자들은 혐오표현이 대체 진리와 무슨 관련이 있냐고 반문한다. 1장에서 살펴보았듯이, 혐오표현의 주된 기능 중 하나는 피해자를 ‘모욕’하는 것이지, 진리의 발견이 아니다. “5·18은 북한군이 개입해 일으킨 폭동”이라는 표현은 오히려 ‘역사적 진실’을 부정하고 왜곡함으로써 광주민주화운동 피해자 유가족들에게 고통을 준다. 가해자의 의도는 “진리를 발견하거나 사회적 행위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를 모욕하는 것”이며, “대화를 개시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다. --- p.145 미끄러운 경사면 논증이 주장하듯이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는 법안들이 사실상 모호하거나 실효성이 전혀 없을 뿐 아니라 소수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여 역효과를 낸다면, 그런 규제들의 도입을 반대해야 할 상당히 강력한 이유가 있게 된다. 이미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모욕죄 등 정권에 반대하는 의견을 억누르거나 고소·고발을 남용하여 재갈을 물리는 식으로 표현의 자유를 저해하는 법안들을 둘러싸고 논쟁을 거듭해 온 한국 사회에서는 혐오표현 삭제 법안들을 추가하는 것이 아무래도 우려스러울 수밖에 없다. 혐오표현 삭제 법안에서 규제하려는 혐오표현의 기준이 모호하고 그 적용이 자의적일 수밖에 없다면, 이중 잣대를 가지고 소수자에게 불리하게 적용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김치녀”는 내버려 두고 “한남충”만을 혐오표현으로 간주하여 삭제한다든지, “똥꼬충”은 그대로 두고 “개독교”만을 혐오표현으로 규제할 수 있는 것이다. --- p.174~1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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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표현 문제를 철학적 관점에서 고찰해 온 저자의 독보적인 연구 성과가 대중의 언어로 고스란히 담겼다. 이 책은 혐오표현의 해악을 구체적인 한국 사례들로 알기 쉽게 설명하고, 규제 일변도의 해법이 가진 한계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대항표현’은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면서도 혐오표현에 대응할 수 있는 건설적인 대안이다. 혐오표현에 대항하여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모든 시민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 홍성수(숙명여대 교수, 『말이 칼이 될 때』 저자) 이제는 혐오가 침묵할 차례다! 혐오의 시대에 던지는 철학의 치밀한 말대꾸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에서 주디스 버틀러까지, 증오와 차별에 맞서 우리의 존엄을 지켜 줄 철학자들의 말 혐오표현의 해악이 널리 알려지면서 한국 사회는 혐오표현에 대처할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진전은 더디다. 논의는 아직도 금지냐 허용이냐의 이분법에 멈춰 있다. 이에 저자는 혐오표현과 표현의 자유 간 대립이 언어철학과 정치철학적 연구에 기반하고 있음에 주목한다. 그리고 이 문제를 둘러싼 치열한 철학적 담론들을 꼼꼼하게 수집한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에서 주디스 버틀러까지, 수많은 철학자의 응답을 바탕으로 찾아낸 해결책은 ‘대항표현(Counter Speech)’, 일명 ‘말대꾸’다. 혐오표현을 법적 규제로 틀어막는 조치는 차별과 폭력을 즉시 침묵시키지 않고 수면 아래로 잠복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금지하는 것은 설득하는 것이 아니다. 방관과 처벌의 경계에서, 저자는 규제가 아니라 더 많은 대항표현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대항표현의 가능성과 당위를 모색하기 위해, 저자는 혐오표현의 기능과 해악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언어는 곧 행위’라는 비트겐슈타인의 관점에서 비롯된 언어철학적 연구를 토대로 혐오표현이 왜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행위’인지 이야기하되, 단순히 철학 개념만 나열하지 않는다. 개념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며 장애인·여성·성소수자·이주민·난민 등 여러 소수자 집단에 가해지는 혐오표현이 어떤 기제로 모욕과 편견을 선동하는지 분석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대항표현의 속성과 기능들이 어떻게 혐오표현을 효과적으로 무력화시키는지 설명한다. 아울러 혐오표현 피해 당사자·인권운동가·공직자들의 재치 있고, 날카롭고, 호소력 있는 대항표현을 폭넓게 소개한다. 혐오표현이 가정하는 잘못된 전제의 논박, 기존 관습을 뒤흔드는 도발적인 맞받아치기, 유쾌한 패러디, 일상에서 실천하는 개인적 대항표현의 한계를 보완하는 국가 차원의 선언 등 각각의 말대꾸가 갖고 있는 힘을 짚고, 하버마스의 타당성 주장에 기반한 철학적 논의로 뒷받침한다. 특히 국가 중심의 대항표현이야말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혐오표현의 확산을 저지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며, 이를 통해 ‘혐오를 허용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혐오표현의 자유’를 말하는 혐오발화자들의 주장을 근본적으로 흔들 수 있는 논리도 제공한다.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는 5가지 입장의 양가성을 드러내, 대항표현이 표현의 자유를 강화한다는 점을 밝히는 동시에 표현의 자유 옹호론이 혐오표현을 억제하는 원리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혐오표현으로 인해 상처 입은 존엄을 회복하고 증오와 차별에 반격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또 하나의 말대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