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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박준수의 글
1. 아프지 않은 이들에게 2. 경성, 서울, 동대문 3. 납작해진, 전설 4. 통곡의 벽 5. 떠나고 싶은 이들 6. 번트, 서글픈 풍경화 7. 떠날 곳이 없는 이들 8. 치고 달리기 9. 밀리오레 10. 밀어내기 11. 야(野).생(生).화(花). 12. 끝내기 13. 불 꺼진 조명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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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동대문야구장이라는 이름과 함께 세 가지 ‘냄새’를 떠올린다. 지린내. 알콜내. 땀내. 여름이든 가을이든, 혹은 낮이든 밤이든 동대문야구장의 풍경은 한결같았다. 한 구석의 호젓한 자리에서는 어김없이 지린내가 풍겼고, 그곳을 피해 옮기다보면 언제나 ‘난닝구’ 바람에 소주냄새를 풍기는 아저씨가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그 어느 구석쯤에 신문지를 깔고 엉덩이를 붙이고 있다 보면 빼곡히 들어차 끼어 앉은 사람들 틈으로 비집고 불어오는 바람은 시큼한 땀 냄새를 품고 있었고, 이럴 줄 알면서 왜 또 여길 왔을까 후회하는 마음에 짜증이 오르기도 했었다. ---p. 29
동대문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야구장과, 시장이 공존하는 곳이었다. 우뚝 솟은 웅장한 야구장을 중심으로, 그것을 둘러싼 청계천을 따라 전태일이 피와 땀과 눈물과, 독한 불길에 새까맣게 그을려버린 살까지 묻은 피복상가가 있었고, 헌책방이 있었고, ‘만물시장’이라고도 불리고 ‘벼룩시장’이라고도 불리던 황학동의 난장판이 있었고, 또 비싸지 않은 옷과 책과 잡동사니를 찾아 기웃거리는 길손들을 잡기 위해 무언가를 굽고 끓이고 얼리고 뒤섞는 구멍가게와 노점상들이 있었다. 물론 이승만 독재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하던 정치깡패 이정재의 본거지였던 시절 거칠고 야비한 전설의 무대가 되기도 했고, 청계천 건너 남대문 시장과 팽팽한 경쟁관계를 이어가며 아동복과 전자제품과 보세물건들이 세대교체를 해 온 야사(野史)들의 현장이기도 했다.---p. 118 불 꺼진 조명탑은 늘 처연한 감상에 젖게 만든다. 경기가 끝나고 관중들도 모두 집으로 돌아간 늦은 시간, 초저녁부터 밀려들던 어둠을 야구장 담장 밖으로 밀어내던 조명탑에서마저 불이 내려지고, 그래서 푸릇한 밤하늘 속으로 순진하게 큰 덩치의 구조물이 다소곳이 고개를 숙인 윤곽만이 어른거릴 때, 바로 이삼십 분 전까지도 하얗게 불타오르던 격정과 함성과 탄성과 눈물들이 순식간에 몇 해 전의 아득한 시간 속으로 밀려났다가 돌아오는 듯 새록새록 되새겨지곤 하기 때문이다. ---p.1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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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운동장의 삶과 강요된 죽음
1925∼2008 우리나라 최초의 야구팀이 처음 공놀이를 했던 서울 동쪽의 넓은 들판 ‘성동원두(城東原頭)’, 그 터에1925년 경성운동장이 개장됐다. 그리고 그곳은 서울운동장으로, 그리고 동대문운동장으로 변해가며, 고교야구의 메카, 프로야구 출범의 시작점이 되었다. 1980년대 고교야구대회가 열리는 날이면 관중석은 만원사례를 이룰 정도로 높은 인기를 구가하기도 했던, 한때 학생야구의 메카였던 그곳. 그곳엔 변변치 않은 오락거리로 삶의 노곤함을 달래던 보통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 그리고 상념들이 같이 존재했다. 그래서 어떤이는 그곳을 감히 ‘문화유산’이라고도 칭하는데, 결코 과장된 단어가 아니다. 1925년부터 철거가 완료된 2008년까지 그 오랜 시간 사람들과 같이 웃고, 떠들고, 화내고, 슬퍼했던 추억들이 고스란히 묻어있던 ‘의미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2006년 동대문운동장은 시설을 전면적으로 철거·재개발하는 것이 결정되었고, 2007년부터 철거 작업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역사의 한 조각은 사라지기 시작했고, 2008년 그 존재는 기억 속에만 남아있는 아련한 장소가 되었다. 과거를 기억하고, 역사를 사진과 기록으로 남기는 일은 그 당시를 설명하는, 당대를 살았던 사람들뿐 아니라 그곳의 가치를 알아야 할 후대의 사람들에게조차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단순히 어떤 한 사람의 추억 속에나 남아있을 법한 그때 야구의 기억을 넘어서 ‘당대 역사’의 살아있는 현장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동대문운동장’. 그런 의미로 시작된 사진과 기록의 정리는 한 권의 책으로는 부족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난 동대문운동장을 되새길 수 있다면, 아니면 그립거나 기억하고 싶다면, 그렇지 않더라도 그곳의 사진과 글은 감동을 준다. 박준수 사진작가는 2007년 철거를 앞두고 열린 봉황대기 고교야구대회에서 동대문운동장의 마지막 모습을 비롯 그곳의 곳곳을 기록했고, 김은식 작가는 그 시절에 대한 아쉬움을 글로 정리했다. 온전히 빼앗겨버린 동대문운동장의 추억, 그리고 우리 삶의 추억 ‘왜 아무도 아파하지 않는가?’ “동대문운동장은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체육시민연대/문화연대) 철거가 확정된 동대문운동장 한 구석에 쓸쓸히 걸려있던 플랫카드의 문구다. ‘문화유산’이라고 부를 수 있던 동대문운동장은 이젠 80년대 고교야구를 사랑했던 중년들의 기억에나 존재하는 ‘추억 속의 그곳’이 되어버렸다. 이제 그곳엔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이 들어서게 되었고 사거리 이름, 버스 정류장명도 이에 따라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사거리(정류장)로 변경되었다. 인근의 2호선과 4호선, 5호선이 만나는 환승역인 동대문운동장역도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으로 개명되었다. 동대문운동장 기념관이 인근에 설립될 만큼 동대문운동장은 아주 오래전에 존재했던 한 ‘장소’로만 남았다. 역사를 더듬어보면 80년대 이전, 60년대 프로야구가 출범하기도 전인 서울운동장 야구장이었던 그곳.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나라 최초의 야구팀 YMCA야구단이 한성고등보통학교 학생들과 처음 경기를 펼쳤던, 서울 동쪽의 넓은 들판 ‘성동원두(城東原頭)’ 그 자리였던, 꽤 오랜 역사를 지녔던 곳이다. 그 오랜 시간 동안 동대문운동장이 변해가면서, 사람들의 삶도 문화도 변해갔다. 80년대 고교야구대회가 열리는 날이면 관중석은 빈틈없이 꽉 찼고, 각 팀의 결과에 따라 사람들의 희비는 엇갈렸다. 그리고 프로야구가 시작되며 첫 시즌 개막전이 이곳에서 열렸다. MBC청룡이 이 야구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했고, 이후 1985년 OB베어스가 이곳을 홈 구장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이후에는 아마추어 야구 전용구장으로 고교야구 전국대회(청룡기, 봉황대기, 황금사자기, 대통령배)나 대학야구 대회의 개최구장이 되었다. 동대문운동장이 변해가면서 사람들도, 팬들도 같이 웃고 울었던 시간과 공간은 바뀌어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지난 세월과 기억을 같이 새긴 곳이 바로 동대문운동장이었다. 첫 야구장이 개장되고, 고교야구가 인기를 끌고, 프로야구가 출범하는 등 야구의 역사와 같이 발전한 동대문운동장은 그 시간을 함께한 사람들의 역사도 같이 남겼다. 그런데 단순한 야구장이 아닌, 우리 삶도 같이 전해지던 그곳이 어느 날 사라졌다. 2006년 철거, 재개발이 결정되면서 2007년부터 시작된 철거는 2008년 완료되었다. ‘개발’을 이유로 사라져야 했던 동대문운동장과 그 역사는 아쉽기만 하다. 그 시간들을 사진과 글로 옮기는 작업은 그래서 소중하다. 이 책의 글을 집필한 김은식 저자는 첫 페이지에서 동대문운동장의 철거에 대해 이렇게 묻는다. “왜 아무도 아파하지 않는가? …… 그곳에서 던지고, 받고, 치고, 달리고, 울고, 웃고, 붓고, 마시고, 주먹질하고, 엉덩이춤을 추고, 환호하고, 분노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세월과 기억이 그 폭음 속에서 날리던 먼지들과 함께 흩어져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왜 사람들은 아파하지 않을까? 왜 굴삭기 앞을 막아서지 않았고, 왜 헐려나가는 전광판 앞에서 통곡하지 않았고, 왜 마지막 순간에 눈물조차 짓지 않았는가? 그리고 왜 그리워하며 기념하려 하지 않을까?” 이 책은 김은식 작가의 글과, 박준수 사진작가가 잊혀진 동대문운동장을 기억하기 위해, 그리고 그 지난했던 삶을 남기기 위해 2007년부터 작업해온 결과물인 80여 컷의 사진으로 엮어졌다. 박 작가는 사진들을 책으로 엮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2007년 8월, 철거를 앞두고 열린 봉황대기 고교야구대회에서 동대문운동장의 마지막 모습을 기록했다.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동대문운동장은 철거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그곳에는 분명 사람의 이야기와 온기가 있었다. 이제는 상실되어버린 2007년의 기억으로, 2012년의 서울, 나아가 한국의 현재를 반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