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펴내며: 평범한 연인으로서의 우리
봄 입춘 20 우수 26 경칩 31 춘분 40 청명 46 곡우 51 여름 입하 64 소만 70 망종 74 하지 81 소서 91 대서 98 가을 입추 106 처서 112 백로 118 추분 124 한로 133 상강 138 겨울 입동 150 소설 162 대설 180 동지 193 소한 205 대한 214 마치며: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 |
李墨乭, 김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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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억들은 내게 그런 시간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무척 행복한 기분이 들고, 한편으로는 힘들고 고된 시기를 어떻게든 버텨낼 수 있는 힘이 되곤 한다. 또 떠올릴수록 더 아름다워지는, 그런 추억이 하나쯤 있다는 것으로도 ‘내 인생은 꽤 가치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을 나는 감사히 지나 보내며 생각했었다. 죽지 않고 살아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 p.80 우리는 데면데면한 얼굴로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그리고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아이스크림만 퍼먹었는데, 못내 웃음을 참지 못한 연이가 크게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어떤 감정은 말하는 것보다 더 나은 표현 방법이 있는 모양이다. 예컨대, ‘엄마는 외계인’이라든지. --- p.102 소중한 사람의 우울함은 대개 절망적으로 다가온다. 그 우울함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곁에 있으면서도 이렇다 할 도움이 되지 못하는, 소중한 사람의 마음 하나 달래주지 못하는 스스로가 미워지곤 한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사람의 마음은 자기 자신 이외의 누구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지니의 요술램프로도. --- p.146 불 꺼진 방 안에서 서럽게 울었다. 살면서 그토록 서럽게 울어본 적도 없었다. 그때서야 나는 이 아득한 도시 가운데서 철저하게 혼자 놓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저 내내 혼자였을 때는 알 수 없었던 고독이었다. 함께 있음으로써 느낄 수 있는 행복만이 그런 종류의 고독을 체감케 한다. 단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사람이라면 잃어버리는 고통 역시 가질 수 없었던 것이다. --- p.158 나는 너무 아파서 사랑한 사실을 후회해야 했다. 사실은 그토록 소중했던 사랑을 마주하고도 매 순간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내가 죽도록 미웠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과 이미 저질러버린 이야기들을 하나씩 돌이켜보며 눈물지었다. 바닥에 떨어진 눈물은 하나둘 고여 웅덩이를 만들었고, 내게는 그대로 그 눈물에 빠져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밖에 남지 않았다. --- p.159 나는 사랑하기 때문에 기대하고 좌절한다. 주체할 수 없이 설레고 답답해한다. 흥분하고 축 가라앉는다. 황홀해지고 우울해진다. 밀어내고 도로 껴안는다. 꼴도 보기 싫었다가 한없이 그리워한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 싸우고 처음 보는 사람처럼 화해한다. 한때는 콱 죽어버리고 싶었지만 요새는 영원히 살고 싶다. 좀처럼 이해되지 않지만 이해할 필요가 없다는 것쯤은 이해하고 있다. 당신이 찾던 답과 다르다면 좀 미안하지만, 그래도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결국 사람은 태어나 죽을 때까지 어떤 사랑을 향해 살아갈 뿐이다. 그래서 그 사이의 과정을 삶이라 부르는 모양이다. 사람과 사랑, 딱 그 중간쯤 되는 발음으로. --- p.2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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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마’의 저자 이묵돌의 신간
처음 그의 원고를 읽었을 땐 어딘가 부족한 구석이 있어 보였고 두 번째로 원고를 읽었을 땐 조금 짠했고 세 번째로 원고를 읽었을 땐 나를 보는 것 같았다. 누군가와 사랑이라는 것을 하기엔 부족한 사람인 듯한 모습이 꼭 그랬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나는 사랑하기 때문에 기대하고 좌절한다. 주체할 수 없이 설레고 답답해한다. 흥분하고 축 가라앉는다. 황홀해지고 우울해진다. 밀어내고 도로 껴안는다. 꼴도 보기 싫었다가 한없이 그리워한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 싸우고 처음 보는 사람처럼 화해한다. 한때는 콱 죽어버리고 싶었지만 요새는 영원히 살고 싶다.” - 본문 발췌 작가 이묵돌은 사랑 앞에서 솔직한 사람이다. 글 역시 다르지 않다. 남녀 간의 감정을 다룬 사랑 에세이라고 해서 어떠한 포장지를 씌우지도 않았다. 가공되지 않은 날 것의 사랑이 있다면 이런 감정들이 아닐까 싶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땐 조금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꾸준한 대화를 통해 확신했다. 그는 정말 이상한 사람이다. 연애사를 들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만난 지 얼마 안 된 동갑내기와의 동거, 그리고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들까지 술술 꺼냈다. 그는 정말 어딘가 이상하다 싶은데, 솔직해서 좋다. 그의 글도 마찬가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