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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사씨남정기

저자 소개 1

金萬重

김만중은 조선후기 『사씨남정기』, 『구운몽』 등을 저술한 문신이자 소설가이다. 1637년(인조 15)에 태어나 1692년(숙종 18)에 사망했다. 부친이 1637년 정축호란 때 순절한 후 어머니 윤씨의 특별한 가정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과거급제 후 대제학까지 지냈으며 서인 계열에 속했다. 숙종 대의 환국정치 속에서 유배와 관계 복귀를 반복하는 삶을 살았다. 주희의 논리를 비판하고 불교용어를 사용하는 등 진보적인 사상을 지녔고, 국문가사 예찬론을 펼치는 등 국문 시가와 소설에 대한 식견도 높았다. 국문소설을 다수 창작했고, 363편에 달하는 시를 남겼다. 김만중의 사상과 문학
김만중은 조선후기 『사씨남정기』, 『구운몽』 등을 저술한 문신이자 소설가이다. 1637년(인조 15)에 태어나 1692년(숙종 18)에 사망했다. 부친이 1637년 정축호란 때 순절한 후 어머니 윤씨의 특별한 가정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과거급제 후 대제학까지 지냈으며 서인 계열에 속했다. 숙종 대의 환국정치 속에서 유배와 관계 복귀를 반복하는 삶을 살았다. 주희의 논리를 비판하고 불교용어를 사용하는 등 진보적인 사상을 지녔고, 국문가사 예찬론을 펼치는 등 국문 시가와 소설에 대한 식견도 높았다. 국문소설을 다수 창작했고, 363편에 달하는 시를 남겼다.

김만중의 사상과 문학은 이전의 여느 문인과는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는 말년에 불운한 유배생활로 일생을 끝마쳤다. 그러나 생애의 전반부와 중반부는 상당한 권력의 비호를 받을 수 있는 득의의 시절을 보낸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총명한 재능을 타고났으며 가학(家學)을 통해 상당한 경지의 학문적 성과도 성취하였다. 그가 종종 주희(朱熹)주2의 논리를 비판했다든지 불교적 용어를 거침없이 사용했다든지 한 것은 위와 같은 배경이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김만중 사상의 진보성은 그의 뛰어난 문학이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의 문학론에도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는 후대의 평가 속에서도, 그가 주장한 ‘국문가사예찬론’은 상당히 주목을 받는 논설이다. 그는 우리말을 버리고 다른 나라의 말을 통해 시문을 짓는다면 이는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 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한문을 ‘타국지언(他國之言)’으로 보고 있는 까닭에 정철(鄭澈)이 지은 「사미인곡」 등의 한글 가사를, 굴원(屈原)주3의 「이소(離騷)?주4에 견주었다. 이러한 발언은 그의 개명적(開明的) 의식의 소산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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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10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165쪽 | 125*188*20mm
ISBN13
9791189604714

책 속으로

명나라 가정(嘉靖) 연간, 금릉 순천부 땅에 유명한 인사가 있었는데, 성은 유(劉)요 이름은 현(炫)이라고 하였다. 그는 개국공신인 유기(劉琦)의 자손이라, 사람됨이 현명하고 문장과 풍채가 일세의 추앙을 받았다.

나이 십오 세 때 시랑 최모의 딸을 아내로 맞아서, 부부의 덕행과 금실이 세인의 칭송을 받았다. 소년 대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이 이부시랑참지정사에 이르매, 명망이 조야에 진동하였다. 그러나 당시 간신이 조정에서 국권을 제멋대로 농간하였으므로, 벼슬을 버리고 물러가려고 기회를 보고 있었다.

유현은 부인 최씨와 금실은 좋았으나 자녀의 소생이 없어서 근심으로 지내다가 늦게서 아들을 낳고 얼마 되지 않아서 부인이 세상을 떠났다. 부인을 잃은 그는 인생의 무상을 느끼고 더욱 벼슬에 뜻이 없어져서 병을 빙자하고 사직한 뒤에 집으로 돌아와서 한가로이 세월을 보냈다. 그 뒤로 국사에는 비록 참여치 않았으나 일세의 명사로서 그의 청덕을 모두 앙망하였다.

그에게 매제가 있었는데 성행이 유순하고 정숙하여 일찍이 선비 두홍(杜洪)의 아내가 되었는데, 초년 고생을 하다가 두홍이 늦게서야 벼슬을 하였다. 유공의 아들 이름은 연수(延壽)라 하였는데 어려서부터 숙성하였고 나이 차차 자람에 따라 얼굴이 관옥 같고 재주가 뛰어났으며, 십 세 때 이미 문장이 놀라웠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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