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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두기
서문 1부 고구려의 첫 도읍 졸본의 위치 『고려도경』?『삼국사기』의 고구려 건국 연대와 첫 도읍 졸본 1. 서론 2. 『고려도경』?『삼국사기』를 통한 고구려 건국 연대 비정 3. 『고려도경』?『삼국사기』의 고구려 정체성과 첫 도읍 졸본 4. 두 문헌에 나타난 고구려 초기의 위치 및 강역 5. 결론 고구려 첫 도읍 위치 비정에 관한 검토 1. 서론 2. 고려시대의 고구려 첫 도읍 위치 비정 3. 조선시대의 고구려 첫 도읍 위치 비정 4. 근대 이후의 고구려 첫 도읍 위치 비정 5. 결론 고려시대 한사군 인식에 대한 검토 1. 서론 2. 『삼국사기』를 통한 한사군 인식의 전제들 3. 현토군 인식 4. 낙랑군과 낙랑국 인식 5. 결론 2부 고구려 평양의 위치에 대한 새로운 고증 고구려 평양 위치 왜곡과 그 극복 방안 1. 서론 2. 『삼국사기』의 평양 위치 인식 오류 형성 배경 재검토 3. 평양 위치 인식 오류로 인한 한국고대사 전반의 왜곡 문제 4. 결론: 평양 위치 왜곡 극복 방안 요양 영수사벽화묘의 고구려 관련성에 관한 두 편의 논문 1. 해설 2. 자료 번역 1: 요양 발견의 벽화고분 3. 자료 번역 2: 요양 태자하 부근의 벽화 고분 4. 역자후기 『수경주』를 통한 고구려 평양의 위치 검토 1. 서론 2. 『수경주』권14 「패수」 관련 기록의 원천적 오류 3. 『수경주』를 인용한 후대 학자들의 패수 및 평양 관련 서술의 오류 4. 『수경주』를 통한 고구려 평양의 위치 검토 5. 결론 3부 조선 즉 위만조선의 위치 문제 조선 즉 위만조선과 창해군의 위치에 관한 연구 1. 서론 2. 예(濊)와 조선의 위치 3. 창해군의 설치와 그 위치 4. 결론 결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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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개의 연구자들은 자신들의 입맛에 따라 해당 부분을 인용하고, 자신의 견해와 다른 기록은 짧은 기간에 외국인의 시각에서 본 것이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렇지만 서긍이 『고려도경』을 1년 동안 집필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 기간 동안 서긍이 기록한 하나하나의 사실들은 고려 체류기간 동안 그가 보고 들은 것과 당시 송(宋)에 알려진 고려에 대한 정보를 총망라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려도경』은 서긍 개인의 기록이라고 하기보다는 12세기 초 송(宋)의 고려에 대한 인식이 총체적으로 반영된 것이다. 『고려도경』을 인용하는데 더 신중해야하는 이유이다. _48~49쪽
기자가 현재의 평양 일대에서 조선이란 나라를 문명국으로 교화시키고, 뒤에 한(漢)의 무제가 그곳에 낙랑군을 세웠으며, 한사군 중의 현토군은 압록강 중류 일대에 있었는데 그곳에서 고구려가 건국되었으니, 고구려의 첫 도읍은 압록강 중류 이북 일대에 비정된다는 논리가 조선시대에 나타난 것이다. 그러므로 고구려 첫 도읍으로 환인현 일대를 비정하는 논리는 사대사관(事大史觀)에서 비롯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_82쪽 427년에 장수왕이 천도한 고구려 평양의 위치를 현재의 대동강 일대에 잘못 위치시킴으로 인하여, 한국고대사의 서술은 전반적으로 크게 왜곡될 수밖에 없었다. _176쪽 분명히 『수경주』의 원문 전체에는 평양이란 지명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지리서에서는 고대의 어느 곳인지 잘 알지 못하던 지명을 탐색하여, 현재의 어느 지명에 비정(比定)하는 작업을 한다. 이런 작업을 통해, 독자들은 고대의 지리를 현재와 연관시켜 이해하는 것이다. 『수경주』의 전체에서도 그런 서술이 이루어졌다. _262쪽 우리사회에서 잘못 서술된 역사를 바로잡는다는 것은 단지 역사 영역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역사를 바로잡으면, 그 잘못된 역사에 기생하며 유지가 가능했던 지배의 문제도 역시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_365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