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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1. 문제와 방법에 관하여 2. 역설의 도시, 합스부르크 빈 빈 생활의 이중성 ‘하느님의 도구’로서의 합스부르크 왕가 슬라브 민족주의를 낳은 칠리 사태 프란츠 요제프 황제 빈 부르주아의 특징 노동 계급의 생활 조건 아들러와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 뤼거와 기독사회당 쇠네러와 게르만 민족주의 정당 헤르츨과 시온주의 합스부르크 사회의 이중성을 보여 준 레들 사건 빈의 불안에 대한 슈니츨러의 문예적 진단 빈에서의 자살 3. 카를 크라우스와 빈의 마지막 나날 어린 시절과 가족 『횃불』과 논쟁 매춘, 성, 그리고 여성성 바이닝거의 『성과 성격』 바이닝거에 대한 달라고의 견해 이성에 대한 환상의 우위 ‘정신분석학이라는 정신질환’ 언론에 대한 비판 ‘젊은 빈’과 탐미주의 삶과 작품의 일치를 보여 준 알텐베르크 호프만슈탈과 라인하르트 오펜바흐와 오페레타 네스트로이와 시의 극장 언어, 사실, 가치 4. 사회 비판과 예술 표현의 한계 로스와 장식과의 투쟁 쇤베르크의 화성 이론과 작곡의 논리 호프만슈탈과 말할 수 있는 것 로베르트 무질, 철학적인 소설가 5. 언어, 윤리, 그리고 표상 마우트너의 언어비판 표상 감각적 용법으로서의 표상 공적 용법으로서의 표상 칸트와 이성의 한계 칸트 비판자로서의 쇼펜하우어 키르케고르와 간접적 의사소통 톨스토이와 인생의 의미 6. 다시 생각해 본 『논리철학논고』 비트겐슈타인 가문과 비트겐슈타인 해커의 「쇠렌 키르케고르와 내재성의 철학」 비트겐슈타인의 언어 모델 이론과 러셀의『수학 원리』 윤리적 저술로서의『논고』 피커에게 보낸 서신과『논고』의 의미 논쟁으로서의 철학 침묵 7. 인간 비트겐슈타인과 그의 후기 철학 톨스토이적인 삶 철학에 대한 비트겐슈타인의 태도 러셀과 무어, 그리고 철학의 혁명 비트겐슈타인과 빈학파 간접적 의사소통을 통한 가르침 삶의 형식 행동으로서의 언어 『논고』와 『탐구』의 연속성 8. 직업주의와 문화: 현대 사조의 자살 1918년 이후의 오스트리아와 유럽 비트겐슈타인의 몰역사주의 빈학파와 사회의 재구성 문화의 할거주의 파울 힌데미트와 실용음악 바우하우스의 데카르트적인 형식주의 ‘직업적인 철학’에 대한 비트겐슈타인의 비판 비트겐슈타인과 철학의 미래 9. 후기: 소외의 언어 오늘날의 카카니아 사회 현대적인 초강대국에서 개인과 사회 역사의 철폐와 그 귀결 정체상의 외양과 정치적 현실의 괴리 의사소통과 유령 언어게임들 혁명의 의미 주석 참고문헌 옮긴이의 글: 빈의 역사와 문화 속에서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논하다 찾아보기 |
Allan Jan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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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비트겐슈타인에게 지독한 바보라는 인상을 심어 주었다. 그는 도저히 우리를 가르칠 수 없다며 대놓고 비난했으며 가끔은 자기가 이해시키려 애쓰고 있는 요점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일깨워 줄 수 없어 절망했다. (…) 지금 회고해 보건대, 결국 비트겐슈타인과 케임브리지 학생들 상호 간의 몰이해가 진짜였던 것은 아닌지, 그리고 그 몰이해가 비트겐슈타인 자신이 확신했던 것처럼 실제로도 그렇게 전면적이고도 철저한 것은 아니었는지 진지하게 의문을 제기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이 책에서 논의할 이야기가 실제로 어떤 타당성을 가진다면, 그 타당성이 내포하게 될 한 가지 사실은, 영어권 청자들은 비트겐슈타인에게 접근할 때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선입관들로 인해 결국 그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을 거의 다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당시에 우리는 그를 분열된 인간, 즉 전무후무할 정도의 독창적인 기법을 지닌 천재적인 영어권 철학자로서, 우연찮게 극단적인 도덕적 개인주의와 평등주의에 몸소 천착하게 된 사람 정도로 생각하였다.
--- p.27~28 자기 손으로 목숨을 끊은 오스트리아 저명인사들의 목록은 길고도 유별나다. 통계 열역학의 아버지인 루트비히 볼츠만, 작곡가의 형제로 자신 또한 음악적인 재능이 없지 않았던 오토 말러, 독일어권에서는 그 재능에 필적할 만한 사람이 거의 없던 음유시인 게오르크 트라클, 『성과 성격』이라는 책을 써서 유명한 소송 사건에 휘말렸다가 그로부터 불과 몇 달 후에 베토벤이 죽은 집에서 자살한 오토 바이닝거, 자신이 설계한 황실 오페라 하우스에 쏟아진 비판을 견딜 수 없었던 에두아르트 반 데어 뉠, 이미 앞에서 소개한 바 있는 알프레트 레들, 그리고 더 말할 것도 없이 비트겐슈타인의 형 세 명이 그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 (…) 정체성과 의사소통의 문제는 정치적, 사회적, 개인적, 심지어 국제적 차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빈 사회를 병들게 만들었다. --- p.97~98 로스는 여러 친구와 지인들에게 코코슈카를 소개했는데, 그중에는 크라우스와 알텐베르크, 그리고 예술사학자인 한스 티에츠와 에리카 티에츠도 포함되어 있었으며, 코코슈카는 그들을 모델 삼아 여러 차례 그림을 그렸다. 코코슈카가 이 시기에 그린 그림들은 그의 작품 중 명암이 가장 어두운 것들이었고, 화면의 평면성을 강조하고 있다. 화가는 이 작품들을 자신의 ‘검은’ 그림들이라고 불렀다. (…) 코코슈카는 그들의 얼굴에서 수많은 빈 사람들의 삶이 영적인 진공 상태에 빠져 있음을 분명하게 보았다. 클림트처럼 코코슈카 역시 이런 영적인 요소를 끄집어내고 싶어 했다. --- p.158~159 우리는 전쟁이 터지기 전에 문화와 윤리에 관해 빈에서 벌어진 논쟁의 주요한 원천들이었던 예술과 도덕의 위기, 그리고 더 나아가 가족생활의 위기에 비트겐슈타인이 직접적으로 노출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굳이 증명할 필요까지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증명의 부담은 그와는 반대의 견해를 입증하는 데 있는 셈이다. 즉 그가 성장한 집안 자체가 그러한 문화의 한 구심점이었던 데다, 그러한 논쟁을 촉발한 중요한 긴장 관계들을 그 안에 잔뜩 껴안고 있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때, 만일 비트겐슈타인이 주변에서 그렇게 활발하게 진행되던 논의들이 자신에게 즉각적으로 인지되지 않도록 막고 싶었다면, 그는 오히려 매우 의식적으로 스스로를 고립시켰어야만 했으리라는 것이다. --- p.294~295 이러한 빈적인 맥락에서 볼 때, 『논고』는 20세기 초에 몇십 년간 진행된 빈 식의 사회 비판이 근거를 두고 있던, 이성의 영역과 환상의 영역 간의 차이에 대한 이론적 기반을 제공하려는 시도인 셈이다. (…) 이런 해석에 근거할 때, 『논고』는 예술만이 삶의 의미를 표현할 수 있다는 근거에서 인간 삶의 핵심적인 중요성을 예술에 할당하는 특정한 유형의 언어 신비주의의 한 표현이 된다. 오로지 예술만이 도덕적 진리를 표현할 수 있으며, 오로지 예술가만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가르칠 수 있다. 예술은 사명이다. 1890년대의 탐미주의자들처럼 형식에만 관심을 쏟는 것은 예술을 곡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톨스토이의 『예술이란 무엇인가?』처럼, 어디까지나 『논고』 역시 그 나름의 방식으로 예술을 위한 예술에 저주를 퍼붓고 있는 것이다. --- p.3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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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비트겐슈타인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영화 [UFO]의 첫머리에 등장하기도 할 정도로 유명한 이 문장은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를 끝맺는 마지막 명제이다. 사람들에게 이 문장은 형이상학적 철학을 배척했던 논리실증주의의 논조를 대표하는 경구로 유명하지만, 비트겐슈타인 자신은 논리실증자로 불리기를 거부했고 스승 러셀이 써준 서문을 읽고는 책을 폐기하려고까지 했다. 비트겐슈타인이 1차 대전 중 생사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썼으며 해석이 분분하여 철학사에서 가장 난해한 작품으로 꼽히기도 하는 『논리철학논고』. 우리는 과연 앞의 경구와 『논리철학논고』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만약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이 비트겐슈타인 자신이 의도했던 바와 다르다면 어떨까? 이 책 『비트겐슈타인과 세기말 빈』은 이러한 의문에서 시작된다. 카를 크라우스가 ‘인류 최후의 날’로 풍자했던 19세기 말의 빈은 신흥 부르주아와 합스부르크 제국의 구질서가 충돌하고,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반유대주의와 시오니즘이 들끓던, 유럽 사회의 계급적, 민족적, 인종적 모순의 집결지이자 모더니즘 탄생기의 꿈의 도시, 천재들의 놀이터였다. 프로이트와 아들러의 정신분석학이 탄생하고, 통계열역학의 아버지 루트비히 볼츠만과 감각경험론의 에른스트 마흐, 쇤베르크의 12음계 작곡과 무조음악, 로베르트 무질의 모더니즘 문학과 일체의 장식을 거부한 아돌프 로스의 모더니즘 건축이 빈에서 탄생했다. 브람스와 말러, 멘델스존과 요하임, 클림트, 부르노 발터가 드나들었다던 비트겐슈타인家는 바로 그 빈의 문화적, 경제적 중심에 있었던 신흥 부르주아의 대표 가문이었다. 저자들은 어떻게 한 도시에 이렇게 거대한 지성과 예술의 소용돌이가 들끓고 있었는지, 이러한 시대적 격랑 속에 던져진 예민한 청년 비트겐슈타인이 동시대의 지성들과 공유했던 문제의식이 무엇이었는지, 그리하여 『논리철학논고』라는 한 천재의 작품 속에 그 시대의 정수가 어떻게 녹아들어갔는지를 세기말 빈의 정치, 사회, 문화, 예술, 과학 등 각 분야의 천재들의 향연 속에서 분과 학문들의 경계를 넘는 탁월한 학제 간 연구를 통해 세밀히 밝혀낸다. 그리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시대적 문제의식을 반영한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이 러셀을 비롯한 영어권 철학계에서 어떻게 오해되었는지를 밝힘으로써, 『논고』에 나타난 논리적 비트겐슈타인과 윤리적 비트겐슈타인의 화해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모순을 더 높은 관점에서 통일하는 거장의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사회, 문화, 역사적 배경을 통해 비트겐슈타인이 가졌던 철학적 문제의식을 보여줌으로써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침묵’으로 끝맺는 『논고』의 난해한 내용을 한 천재 철학자의 윤리적 괴벽이 아니라 시대의 문제의식에 민감하게 반응한 실존적 고뇌의 산물로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를 이해하기 위한 필독서로서, 더욱 개선된 번역으로 만나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