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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
김숨 저
현대문학 201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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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침이 마를 때
2. 번식 후기
3. 진화와 멸종 사이
4. 루시 이후, K선택
5. 완두콩과 돌연변이 심리학
6. 종 L의 분화
7. 공생이라는 환상
8. 이중생물
9. 증상과 처방
10. 아주 오래된 처방
11. 침 심리학
12. 거울의 목적
13. 의뭉스런 전략
14. 기생머리생파리의 사례
15. 아귀 손질법
16. 침을 모을 때
17. 루시의 출현

저자 소개 1

소설가 김숨은 1974년 울산에서 태어났다. 1997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느림에 대하여」가, 1998년 문학동네신인상에 「중세의 시간」이 각각 당선되어 등단했다. 동리문학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허균문학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장편소설 『백치들』, 『철』, 『나의 아름다운 죄인들』, 『물』, 『노란 개를 버리러』,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 『바느질하는 여자』, 『L의 운동화』, 『한 명』, 『흐르는 편지』, 『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 있는가』,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 『너는 너로 살고 있니』, 소설집 『투견』, 『침대』, 『간과
소설가 김숨은 1974년 울산에서 태어났다. 1997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느림에 대하여」가, 1998년 문학동네신인상에 「중세의 시간」이 각각 당선되어 등단했다. 동리문학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허균문학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장편소설 『백치들』, 『철』, 『나의 아름다운 죄인들』, 『물』, 『노란 개를 버리러』,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 『바느질하는 여자』, 『L의 운동화』, 『한 명』, 『흐르는 편지』, 『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 있는가』,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 『너는 너로 살고 있니』, 소설집 『투견』, 『침대』, 『간과 쓸개』, 『국수』, 『당신의 신』,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 『나는 나무를 만질 수 있을까』, 중편소설 『듣기 시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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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04월 26일
쪽수, 무게, 크기
320쪽 | 432g | 153*224*30mm
ISBN13
9788972756590

책 속으로

깃털, 보푸라기, 부리, 입, 존귀, 욕조…….
오늘 제가 마음속에서 알을 품듯, 가만히 품었던 말들입니다.
새알일 수도, 전등알일 수도, 쌀알일 수도, 팥알일 수도 있는 알 같은 말.

그리고 욕조 물속에서 중얼거린 말.
아파…… 아파…….
어쩌면 저의 마른입을 빌려 그녀가, 그녀들이 중얼거린 말.

오늘 밤 꿈에서 그녀를 만나면, 그녀가 누구든 “당신은 존귀한 존재”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습니다.

감히 ‘존귀함’에 대해 쓰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의 말

김숨의 소설은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았던 존재들과 그들의 표현되지 않았던 심연을 기록한다. 지우고 싶었던 과거와 덮어버리고 싶은 현재를 증명하는 존재들을 조심스럽게 우리 앞에 불러온다. 무능하고 무기력한 아버지, 불임의 어머니, 쓸모와 가치를 상실한 노인, 사회의 일원으로 살기 위해 인간에게 요구되는 최소한의 기준도 충족시키지 못하는 이들이 온전한 개인이기는커녕 가구처럼 그 자리에 붙박인 채 무기물의 생을 견뎌냈음을 여전히 견디고 있음을 반복해서 말한다. 김숨의 소설은 언제나 공감에 앞서 슬픔이 배어 있는 부끄러움을 불러온다. 화석이 된 그들이 바로 우리의 얼굴인 때문이다. 분별할 수 없는 나의 얼굴과 우리의 존재를 그렇게 대면하게 되기 때문이다.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에서 김숨은 분명 유령처럼 살아갔던 대한민국의 수많은 어머니들을 복원한다. 하지만 그 어머니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유포한 희생과 헌신의 이미지로 체현되지도, 전통적 의미에서 우리가 상실한 과거와 같은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김숨의 ‘어머니’는 우리가 그간 ‘훼손될 수 없는 영역’으로 규정했던 것들이 얼마나 심각하게 경제적 가치에 의해 침윤되어 있는지 보여줌으로써 우리를 오늘날의 현실 자체와 대면하게 한다. 전문대를 나와 홈쇼핑 콜센터 상담원을 하고 있는 ‘어머니’가 ‘자신의 아이만은 생존에 유리하도록 진화하기를 바라며, 당당히 브랜드 아파트에서 키우고 싶어’ 윗세대 ‘어머니’를 착취한다. ‘어머니’는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 ‘어머니’를 착취하면서 그렇게 진화를 꿈꿔왔다. 그러나 그 ‘어머니’가 아파트 신축공사로 인해 파헤쳐진 구덩이 속에 들어가 ‘화석인류’임을 스스로 입증하고자 할 때, ‘어머니’의 진화는 인류의 역사에서 있지도 있을 수도 없었음이 판명되고 있다고 말해도 좋다.
- 소영현(문학평론가)

---작품해설 중에서

한때나마 그녀는 여자와 자신이 공생관계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함께 산 지 석 달까지는 그랬다. 서로가 너무 다르지만, 필요에 의해 서로 도우면서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피치 못할 관계. 지의류라던가. 균류와 녹조류가 상리공생적 결합을 하고 있다는 식물이……. 다른 한쪽 없이는 나머지 한쪽도 살아가는 게 불가능할 만큼 밀접하게 결합해, 하나의 식물처럼 보인다는 이중생물. 생물 쪽 상식이라고는 약육강식과 이기적 유전자, 멸종과 진화 정도인 그녀가 지의류라는 식물의 이름까지 기억하고 있는 것은, 이중인격도 아니고 이중생물이라는 말이 재미있어서였다.
“이중생물이라고 아세요?”
“…….”
“둘이자 하나인 결합생물 말이에요.”
“…….”
“밝혀지지 않은 이중생물이 얼마든지 있을지 모른다지 뭐예요.”
“…….”
“너무 꼭 결합해 하나의 생물처럼 보이는 이중, 다중생물 말이에요.”
“인간도 그런지 모르지…….”
“인간이 뭐요?”
“알고 보면 인간도 그 이중…… 생물인지…… 뭔지…….”
“어머니도 참, 무슨 엉뚱한…….”
그녀는 코웃음을 쳤다.
“네 입으로 그러지 않았냐.”
“……?”
“밝혀지지 않은 이중생물이 있을지 모른다고 네 입으로…… 얼마든지…….”
“아무리 그래도 설마 인간이 이중생물이겠어요.”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밝혀지지 않았다 뿐이지…… 어쩌면…….”
여자가 상반신을 일으키더니 등을 구부정히 말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석고상처럼 아무 움직임이 없었다. 뭐야? 혹시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그러나 그녀는 여자가 그저 이중생물이 뭔지 전혀 이해 못하고 엉뚱한 소리를 한 것뿐이라고 이해하고 싶었다. 인간처럼 이기적인 존재가 이중생물이라니…… 말이 되는가? 그녀는 다른 종들은 얼마든지 이중생물이 될 수 있어도, 인간만은 결코 이중생물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십여 분이 흐르도록 여자는 꼼짝하지 않았다. 저대로 잠들기라도 했나 싶었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여자의 눈이 단추가 떨어진 구멍처럼 멍하니 벌어져 있었던 것이다. 종종 여자는 저렇게 심장과 피가 굳은 듯 미동조차 없이 거실 바닥이나 식탁 의자, 소파에 앉아 있고는 했다. 소리 없이, 움직임 없이, 있는 듯 없는 듯, 붙박이 가구처럼 가만히 존재할 뿐인데 그녀는 여자가 몹시 거슬렸다. 그러고 보니 존재하지 않는 듯 존재할 때, 여자의 존재가 그녀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무겁고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차라리 설거지나 걸레질을 할 때, 나물을 무칠 때 여자의 존재감이 덜 느껴졌다. ---pp. 140-142

관처럼 길고 네모나게 판 구덩이 속에 사람이 누워 있었다. 웬 여자가……. 포클레인 삽날 자국이 선명한 구덩이 속에 웬 여자가 들어가 누워 있나 했더니, 여자였다. 두 손을 가슴께에 모으고 두 눈을 꼭 감고 있었지만 시어머니인 여자가 틀림없었다. 백발의 머리카락이 풀어헤쳐져 여자의 얼굴과 목, 가슴을 실뿌리처럼 뒤덮고 있었다. 그러쥔 여자의 두 손은 땅을 뚫고 올라온 알뿌리 같았다.
“치매 걸린 노인넨가 봐.”
“구덩이로 들어가는 걸 내가 봤다니까.”
“어디 사는 할머닌가?”
“구덩이 속에는 왜 들어가시냐고 아무리 물어도 들은 척도 안 하시더라니까.”
사람들이 앞뒤 없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그녀의 귀에 환청처럼 들렸다.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광경 앞에서 그녀는 할 말을 상실한 채 넋 놓고 서 있었다. 여자가 어째서 구덩이 속에 들어가 누워 있는 것인지 헤아릴 정신이 없었다. 도망치듯 그곳을 뜨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301호 여자와 502호 남자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저 젊은 여자가 며느리예요.”
301호 여자가 수군거리는 소리가 그녀에게 들렸다. 일순 정적이 감돌았다. 구덩이를 중심으로 모인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 그녀는 구덩이 속 여자가 자신은 전혀 모르는 여자라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나 마찬가지라고 사람들에게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자신이 아무리 부정해도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으리란 걸 알았다. 여자가 이상한 사람이 된 마당에, 하나마나 한 소리를 해서 자신마저 이상한 사람이 될 수는 없었다.
“잠들었나?”
“꺼내드려야 하는 거 아니야?”
502호 남자가 당장 팔을 걷어붙이고 구덩이 속으로 뛰어들 듯 굴었다.
“구덩이가 꽤 깊은걸.”
“그러게, 할머니가 저길 어떻게 들어가셨대?”
그녀에게는 구덩이가 천 길 낭떠러지처럼 깊어 보였다. 아무리 손을 멀리 뻗어도 닿을 수 없을 만큼 깊은 곳에 여자가 누워 있는 것 같았다.
“어떻게 좀 해봐요.”
301호 여자가 그녀의 어깨를 쳐왔다.
“구경만 하고 서 있을 건가?”
“119라도 불러야 하는 거 아니야.”
뒷걸음질치고 싶은 욕구를 간신히 억누르고 그녀는 구덩이로 바짝 다가섰다. 그녀의 발에 차인 흙뭉치가 구덩이 속 여자의 가슴께로 떨어졌다. 어떤 조치를 취할지, 사람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자신을 주시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구덩이에 대고 모기만 한 소리로 중얼거렸다.
“거기서 뭐하시는 거예요?”
바람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흩뜨리고 지나갔다.
“거기 들어가 누워 계시면 어떻게 해요? 어서 나오세요.”
그녀는 처음으로 여자에게 애원하고 있었다. 여자는 그러나 그녀가 구덩이 속으로 들어와 꺼내주기를 기다리는 듯 꿈쩍하지 않았다.
“어서 나오시라니까요…… 어서요…….”
애원은 점차 흐느낌으로 변해갔다. 어스름이 깔려와 먹종이처럼 구덩이를 덮었다. 여자가 소멸하듯 어스름에 조금씩 집어삼켜지고 있었다.

---pp. 297-300

줄거리

여기 두 여자가 있다. 침이 말라가는 여자(시어머니)와 홈쇼핑 콜센터에서 일회용품처럼 쓰이다 버려진 여자(며느리). 그녀들의 동거는 5년 전, 홈쇼핑 콜센터 전화상담원으로 일하는 며느리를 대신해 아이를 돌보기 위해 시어머니가 며느리의 집으로 들어오면서부터다. 일반적 시선에 의하면 두 여자는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관계로 맺어져 있다. 하지만 소설에서 그와 같은 일반적 속성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그런 속성을 지워버린 원인은 돈이다. 전화상담원으로 일하면서 본래의 감정을 상실하고 기업이 요청하는 감정만을 강요받던 며느리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우울과 수치심, 열등감, 자기모멸에서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한 적대적인 감정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은 시어머니에 대한 분노와 짜증으로 표출된다.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향해 자주 ‘침’ 같다고 말한다. 며느리에게 침은 하등 중요할 것 없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보잘것없고 하찮은 것의 다른 이름이다. ‘뱉어버리는 게’ 바로 침이다.

시어머니의 대응방식은 화석이 되어 자신을 보호하는 것. 인류 최초의 인간이자 여성인 루시, 즉 최초의 어머니로 돌아가는 것이다. 왜 하필 마르는 것이 침인가, 하는 것에 대한 해답이 여기에 있다. 입안의 침이 마르면서 시어머니의 몸 또한 침처럼, 어쩌면 침보다 더 말라간다. 마르면서 점점 인류 최초의 인간이자 여성인 루시를 닮아간다. 급기야는 공사현장 구덩이 속에 들어가 눕는 행위를 함으로써 루시를 모방하기에 이른다. ‘신장이 고작 1미터밖에 안’ 되었던, 침처럼 보잘것없는 존재지만 루시는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이다. 루시가 없었다면 인류는 존재하지 않았다.

종의 번식률을 높이기 위해 가능한 한 많은 자손을 낳는 R전략가인 시어머니와 치열한 종내 경쟁을 뚫기 위해 최소의 자손만 낳는 K전략가인 며느리의 공존은 가능할 것인가. 며느리는 ‘화석인류’로 사는 시어머니로부터 종적 분류를 시도하지만, 실직 후 집 안에서 시어머니와 함께 지낼수록 존재감이 없어지는 쪽은 오히려 자신이다. 시어머니를 향한 모욕이 단지 모욕의 말만은 아닌 것이 며느리의 운명 역시 옆집이나 아랫집 혹은 한 골목에 살고 있는 이웃쯤 되는 ‘화석인류’의 삶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에 깊이 공감할 수밖에 없는 것은 화석이 된 그들이 바로 우리 자신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리뷰 총점 7.8
한줄평 총점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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