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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제 1 장 _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 1. 신은 존재하는가 | 2. 인생이 목적은 무엇인가 | 3. 도덕적인 것과 신앙적인 것 | 4. 역사 속에서 영원을 | 5. 성령에 관하여 | 6. 안식일 논쟁 | 7. 진리에서 오는 자유 제 2 장 _ 예수와 그 주변 사람들 8. 예수는 누구인가 | 9. 세 가지 시험 | 10. 예수가 보는 인생의 적도 | 11. 역사적인 재판 | 12. 예수는 의사였다 | 13. 베드로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 14. 가룟 유다는 누구인가 제 3 장 _ 신앙적인 문제들 15. 성경은 어떤 책인가 | 16. 구약과 신약 | 17. 믿음은 어떤 성격을 갖는가 | 18. 기적은 가능할 수 있는가 | 19. 기복과 축복의 종교 | 20. 인간 소외의 비극 | 21. 권위 있는 교훈 제 4 장 _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22. 예수의 고뇌 | 23. 물건, 목숨, 영혼 | 24. 만일 예수께서 1억 원을 주셨다면 | 25. 어울리지 않는 계산 | 26. 화요일에 있었던 질문 | 27. 간음한 여인의 경우 | 28. 믿음의 세 선조들 제 5 장 _ 은총의 질서 속에서 29. 이웃에 대한 사랑 | 30. 누가 우리의 이웃인가 | 31. 기도란 어떤 것인가 | 32. 주의 기도 1 | 33. 주의 기도 2 | 34. 주의 기도 3 에필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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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사업을 위해 세속적 수단을 쓰는 것은 확실히 악마의 유혹이며 심지어는 하나님을 시험하며 이용하려는 결과와 같음을 인정했다. 예수는 끝까지 평범선 이하의 착하고 무능한 인간으로 머물기로 했다. 한 점의 수단이나 방편도 없이 당신의 사업에 임하기로 했다. 그는 끝까지 ‘사람의 아들’로 머물기를 원했다. 우리 모두와 꼭같은 사람의 아들이 되기를 바랐다. 그것은 마치 착하고 가냘픈 토끼가 굶주린 이리 떼들, 사자와 호랑이들이 득실거리는 산중으로 그들을 위해 구원의 소식을 갖고 가는 것같이 무모한 짓이었다. 나약함과 어리석음의 극치에 이르는 행동이었다. 그
러나 예수는 그 길밖에 택할 수가 없었다. 인간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이다. 우리를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바치기로 작정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의아들’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사람의 아들’로 출발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세 가지 시험을 이겼기 때문에 악마는 예수를 떠났다. 그리고 하나님의 천사가 예수와 함께 하게 된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버릴 것을버리고, 떠나야 할 것을 떠날 수 있을 때 하나님의 사랑과 도움을 받게 된다.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은 이렇듯 어렵게 예수의 뒤를 따르는 일이다.---p.77 이론은 철학자들의 지혜의 산물이다. 또 이것은 하나의 윤리적 요청이 아니다. 도덕은 이상주의를 택하게 되고 이상주의는 선을 요청하고 있다. 그러나 믿음은 생활이다. 생활은 실천을 동반한 인격의 현실적 결과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내 말에 머물러 행하는 사람이 체험적 진리를 깨닫게 되고 그 진리가 참자유를 준다고 말했다. 지금도 자유를 누리려는 사람은 진리를 찾게 되고 실천적이며, 주체적 진리를 뜻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에게로 가고 있는 것이다.---p.62 기독교가 역사적 종교라는 점은 역사 속에 내재하는 심판 의식을 말한다. 그러나 선에는 선의 결과가 따르고 악에는 그에 해당하는결과가 뒤따른다는 것이 역사의 심판의식이다. 그래서 ‘세계사는 세계 심판이다’라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역사적 일상성 속에서 언제나 그 사실을 체험하고 있다. 그것은 공부를 안 한 학생이 좋은 성적을 가질 수 없듯이 게으른 민족은가난해지며, 폭력과 독재 사회는 반드시 사회적 파괴와 무질서를 만든다는 사실과 통할 정도이다. 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 직전의 일본과 독일에서그 사실을 엄연히 보았다. 독재 사회는 불신을 남기며 언론의 자유가 없으면 유언비어가 성행한다는 사실도 마찬가지이다. 살아 계신 하나님이란 무엇인가. 역사 속에서 선악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이란 뜻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기독교는 역사 종교이며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역사적 심판에 능동적,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을 수없다. 구약의 예언자들이 생명을 걸고 사회악과 역사악을 경고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p.39-40 요사이 우리 교회는 어떻게 되고 있는가. 끝까지 정의만을 따지며 손해를 보려는 그리스도인들은 찾아보기가 어려운 실정이 되었다. 그래서 교단의 분열과 교파의 대립이 2천 년 동안 계속되어 왔다. 교회 안에서도 그렇다.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옳고 그른 것만 따진다면 사랑의 기독교가 유지되며 발전의 가능성이 있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정의의 질서를 무시하거나 사회 공의를 가볍게 여기는 과오를 범해서는 안 된다. 문제는 정의 위에 사랑의 질서를 살려갈 수 있는가 함이며 정의를 살리면서도 완성시킬 수 있는 사랑의 뜻을 실천할 수 있는가 함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된 다는 것은 어려운 것이다. … 빌라도의 법정은 정치나 사회적 모순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의 심중에도 항상 재판은 벌어지고 있다. 돈, 명예, 권세 등이 우리를 유혹하고 있으며 악의 세력이 우리를 죽음으로까지 몰아가려고 한다. 그때에도 우리는 조용히 사랑으로 승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p.89-91 나는 60년대 초반기에 일본에 갔다가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본 중부 지방에 그리 크지는 않으나 오랜 전통을 가진 여자 대학이 있다. 기독교계통의 대학이다. 그 대학을 방문했을 때 우리를 안내해 주던 늙은 학장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 대학은 작은 규모의 학교이기 때문에 별로 보여드릴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지하실의 작은 방은 우리들 몇 교수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의 장소입니다. 지금은 창고로 쓰고 있어 보여 드릴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태평양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동안 우리 일곱 명의 교수는 매일 아침 일찍 등교해서 안으로 문을 잠그고 일본이 빨리 패하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렸던 곳입니다.” 아인슈타인도 미국으로 망명한 뒤 한 말이 있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독일의 대학들도 결국은 히틀러의 탄압 정책에 머리를 숙였는데, 이름 없는 독일의 그리스도인들은 굳건히 자유와 진리를 위해 항쟁하고 있었다는 고백이었다. 바로 예수께서 가르쳤던 진리가 그런 것이다. 어떤 역경이나 시련 속에서도 선과 악의 가치 판단을 명백히 내릴 수 있는 것이 진리이며 그에 따르는 것이 자유인 것이다. ---p.60-6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