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서문 : 포르노를 말한다_김종갑 | 포토 프롤로그
1부_‘몸’과 포르노 1장 포르노그래피의 자연사: 진화·신경학적 접근_장대익 포르노 ‘현상’ | 연애 본능의 진화 | 포르노와 연애 본능 | 포르노의 신경학: 거울뉴런과 모방 | 나오며: 밈의 탄생과 포르노의 진화 2장 미래의 포르노는 어떤 미래를 만드는가?: 포르노 테크놀로지와 미래 사회_김운하 지하철 야동남 사건이 보여 주는 미래 사회의 징후 | 포르노는 테크놀로지다 | 자율화된 기술사회는 더 이상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 매트릭스 포르노 시대가 오는가 | 우리를 매혹하는 성인용 디즈니랜드: 자아분열적인 데카르트 주체의 부활 | 미래의 이브, 로봇과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 | 결론: 인간은 무엇이 되어 가고 있는가? 3장 실재를 향한 열정으로서 포르노_김종갑 포르노의 매혹 | 실재에의 열정 | 포르노 중독 사례와 분석 | 탈맥락화로서 포르노 | 존재를 향한 열망으로서 포르노 | 결론 4장 법은 포르노를 어떻게 판단하는가?_서윤호 들어가며: 포르노에 대한 법적 논의의 문제 | 음란물 관련 법률들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가? | 성표현과 관련된 다양한 용어들은 얼마나 명확한가? | 구체적인 법적용에서의 음란물의 판단기준은 어떤가? | 다른 나라의 음란물 판단기준은 어떤가? | 음란물 규제에 대한 다양한 입장의 차이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 | 결어: 형법적 규제의 한계와 포르노 허용 문제 2부_‘여성’과 포르노 5장 ‘여성의 몸’과 불가능한 주이상스_김석 포르노는 실제 성의 재현인가 | 생물학적 관점의 한계 | 포르노의 본질: ‘여성의 몸’에 대한 주이상스 | ‘여성의 몸’의 세 형상 | 성의 시뮬라시옹: 성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6장 여자도 포르노를 할 수 있을까?: 관능과 쾌락과 욕망의 관점에서 본 포르노_이은정 여자와 포르노 | 포르노의 실제: ‘나는 쾌락한다’ | 성적 쾌락, 관능적 쾌락 | 관능의 몸에서 욕망으로 | 여자의 몸은 남자의 몸보다 더 관능적이다 | 포르노의 환상은 남자의 전희를 위해 존재한다 | 나가는 말 7장 남성 성자유주의를 넘어 : 페미니스트는 포르노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_이명호 성보수주의와 남성 성자유주의를 넘어 | 포르노 정의와 규제 | 남성적 쾌락 장르로서의 주류 이성애 포르노 | 포르노적 환상기제: 남근적 어머니에 대한 공포와 초월의 환상 | 성적 평등의 요구와 욕망에 대한 책임 3부_좌담 : 포르노, 못다 한 이야기 지금 왜 포르노가 문제인가? | 21세기 포르노 환경을 보는 여러 관점들 | 포르노를 보는 남녀 간의 성차가 존재하는가? | 포르노와 법적 규제의 문제들 | 포르노와 공동선의 윤리 문제 | 아직도 다루지 못한 이야기들 참고문헌 | 찾아보기 |
KIM, SEOK
김석의 다른 상품
김종갑의 다른 상품
잔가지
장대익의 다른 상품
|
포르노는 현대사회의 맥락과 떼어 놓고 성적 욕망으로만 단일하게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복합적인 현상이다. 포르노는 성적 욕망이 과학기술 및 사회의 변동과 더불어서 진화한다는 사실을 가장 첨예하게 극적으로 보여 주는 공간이다. 젠더 차이, 인간관계, 스마트폰, 시각테크놀로지, 자본주의, 후기산업사회, 정보사회, 위험사회 등이 한꺼번에 어우러져서 포르노토피아의 지형을 변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학제적으로 구성된 연구진은 복합적 현상으로서 포르노를 다루기 위해서 많은 토론과 고민을 해야 했다.--- p.11
앞서 살펴보았듯이, 자연은 남성이 여성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섹스 파트너를 추구하게끔 심리기제를 진화시켰다. 성적 다양성을 더 강하게 추구하는 이런 남성의 욕망은 성적 판타지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측면에서도 여성과는 다른 방식을 택했다. 진화심리학자 도널드 시먼스의 연구에 따르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섹스 파트너와의 성적 접촉을 상상해 봤는가?”라는 설문에 대해 청년들의 32%가 “1000명 이상”을 답했지만, 그와 비슷한 답변을 한 젊은 여성의 비율은 8% 정도에 그쳤다. 심지어 성적인 공상 중에 파트너를 교체하는 비율도 남성이 여성에 비해 훨씬 더 높았다. 즉, 남성이 여성에 비해 성적 판타지 측면에서 포르노적 상상력을 훨씬 더 많이 발휘한다는 것이다. 반면 여성은 남성에 비해 포르노보다는 로맨스 소설처럼 친밀도가 높은 대상과의 접촉을 상대적으로 더 선호했다. 이런 결과는 포르노 시장의 소비자가 거의 남성인 반면, 로맨스 문학의 소비자는 거의 여성이라는 사실과 정확히 일치한다.--- p.49 자기 방 안에서 홀로 인터넷에 접속하여 포르노 사이트들을 떠도는 누군가를 생각해 보자. 그/그녀에게는 섹스 파트너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런 사항들이 아니다. 중요한 건 현대의 포르노 테크놀로지가 제공하는 일방향 혹은 상호작용하는 쌍방향의, 또는 이런저런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다양한 모든 장르들의 성적인 것들과 접속하고 연결함으로써 실제 인간과 이루어지는 관계들에서는 감각할 수 없는 다른 종류의 쾌락들을 생산하고 향유하는 것이다. 극단적으로는 1차적인 향유―실제 세계의 향유―보다 2차적인 향유를 더 선호할 수도 있다.--- pp.84-85 우리나라의 음란물 관련 법률들에서 성표현과 관련한 용어들은 ‘저속’, ‘선정’, ‘외설’, ‘음란’ 등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많이 쓰고 있는 ‘포르노그래피’라는 개념은 우리나라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법률용어는 아니다. ‘음란’ 등의 성표현물의 개념 및 분류를명확하게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성표현물의 종류에 따른 용어의 구분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pp.129-130 그렇다면 정말 여자의 사랑은 그 타고난 습성에서 포르노를 외면하는 것일까? 여자와 포르노는 함께할 수 없는 것일까? 여자의 사랑이 단지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라면, 또한 성적이기도 하다면, 그럼에도 여자의 사랑은 남자의 사랑보다 덜 성적이라고 말해야 할까? 그 둘의 다름이 포르노와 로맨스라는 매우 다른 두 문화를 만들어 내었을까? 그보다는 오히려 여자한테 딸린 ‘성적 쾌락의 향유권’을 인정하지 않는 우리 사회가 여자의 성을 은폐하였을 뿐 아니라, 여자를 그러한 쾌락에서 결국 멀어지게 하지는 않았는가? 중·고등학생이라는 이른 나이에 벌써 여러 외설물을 통해 그러한 쾌락을 접하고, 그러한 쾌락을 남자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일상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게 되는 대부분 남자와 달리, 우리 사회는 아직도 여자한테 정숙이나 순결을 요구하는 사회이다. 그렇지 않을 때, ‘밝히는 여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씀과 함께, ‘헤픈 여자 = 질 나쁜 여자’라는 꼬리표가 어김없이 따라붙는다. 이러한 사회적 시선과 질타로부터 여자는 자신의 성적 욕망을 감추고 부정함으로써 자신을 지킬 수 있었다. --- pp.186-187 |
|
금기에서 벗어난 당당한 목소리, 포르노를 말한다!
진화심리학에서 페미니즘까지―포르노를 둘러싼 일곱 가지 쟁점!! 2013년 3월, 한 국회의원이 국회 본회의가 열리는 동안 스마트폰으로 여성의 누드 사진을 검색하는 모습이 언론에 포착되어 공개되었다. 공무를 수행해야 할 시간에 개인 유흥을 즐기는 것이 비난받아 마땅한 일임에는 틀림없지만, 그가 주말 골프장 날씨를 알아보거나 내셔널지오그래픽의 다큐멘터리를 감상했어도 그만큼 구설에 오르내렸을까? 이 사건을 정치적 공세의 호기로 삼은 상대 정당은 여성 의원들을 내세워 해당 의원의 윤리특위 위원직 사퇴를 주장했고, 안 그래도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의 개정 및 음란물 규제 강화 등의 조치에 시끄럽던 ‘넷심’은 의원 측의 변명을 패러디하면서 조롱해 댔다. 볼 권리와 자기통제권을 가진 성인이 음란물을 즐긴다는 것의 도덕적 의미, 그것이 공개되었을 때 받게 되는 사회적 시선, 그러한 음란물을 규제하려는 권력과 이에 대한 대중의 반응 등, 이 에피소드는 음란물 혹은 포르노그래피를 둘러싼 몇 가지 맥락 혹은 단면들을 잘 보여 주는 사례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눈여겨볼 만한 지점은 음란물을 보는 우리 사회의 이중성이다. 많은 사람들이 밀실에서 포르노를 즐기면서도 광장에서는 그것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혹은 뿌리 뽑아야 할 악인 것처럼 행동한다. 자신의 가장 은밀한 욕망과 그것을 향유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야 인지상정이겠지만, 유독 한국 사회는 포르노에 관한 한 철저히 가면을 쓰고 있다. 법 규제는 엄격하지만, 영국 잡지 『포커스』가 포르노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로 꼽을 정도로 음지에는 거대한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익명의 인터넷상에서는 신작 포르노에 대한 평가가 활발히 공유되고 포르노 배우가 스타 대접을 받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남성들만의 소규모 ‘카르텔’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포르노는 그저 망측한, 아니 어쩌면 망측한 척해야 마땅한 주제였던 것이다. 여기, 이 불편한 주제를 광장, 그것도 ‘학문적 논의’의 광장으로 끌고 나온 사람들이 있다. 『포르노 이슈: 포르노로 할 수 있는 일곱 가지 이야기』는 ‘포르노를 허하라!’나 ‘욕망해도 괜찮다!’ 정도의 표면적 수사로만 다루어졌던 ‘포르노라는 현상’을 과감하게 끄집어냈다. 건국대학교 몸문화연구소 소속 일곱 명의 저자들은 교수, 연구자, 소설가 등의 사회적 체면을 버리고 포르노로 학술대회까지 열며 한국 사회의 포르노 증상을 적극적으로 탐구해 들어갔다. 일상에서 유통되던 성적인 은어를 스스럼없이 쓰고 성별과 관심사, 전공에 따른 시각 차이와 의견 충돌을 거리낌 없이 즐기며 “야동의 중심에서 야동을 말하는” 것이다. 인간은 왜 남의 성행위를 훔쳐보고 싶어 하는가? 미래의 테크놀로지는 포르노를 어디까지 발전시킬 수 있을까? 포르노의 욕망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왜 여성은 포르노를 불편해하는가 등의 주제로 21세기 ‘포르노토피아’의 면면을 솔직하게 파고들어 본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기껏해야 포르노의 역사나 도덕적 당위성을 묻는 이전의 연구서들과는 확연히 다른, 솔직하면서도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왜 야동을 끊을 수 없을까?_진화심리학의 관점에서 본 포르노 인간은 대체 왜 남의 성행위를 보면서 만족을 얻는 것일까? 우리가(특히 남성이) 야동에 끌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1장 「포르노그래피의 자연사」에서 장대익은 이러한 가장 근본적인 질문으로 책의 서두를 연다. 사실 외계인의 시선에서 본다면 포르노 속 타인의 성행위를 보고 자신이 그 주체가 된 양 만족을 얻는 인간의 행위는 매우 기묘해 보일 것이다. 인간의 포르노 소비는 ‘짝짓기 심리’에서 출발하는데, 이는 번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 진화 과정에 나타난 특별한 장치이다(p.42). 종족 번식이라는 ‘사명감’에 휩싸인 남성은 여성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섹스 파트너를 추구하게끔 ‘마음’을 진화시켰고, 이러한 성적 다양성을 추구하는 남성의 욕망은 성적 판타지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측면에서도 여성과는 다른 방식을 택하도록 설계되었다(남성과 여성이 각각 포르노와 로맨스 소설을 더 선호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최대한 많은 성적 파트너와 접촉해야 번식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남성에게 포르노 속 수많은 대상들과의 성적 결합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인 셈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포르노 시청이 종족 번식의 확률을 직접적으로 높여 주는 것도 아닌데 남성은 왜 포르노에 집착하는 것일까? 그것은 ‘거울뉴런’의 활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 거울뉴런은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몸으로 그 행동을 이해하게 만든다. 즉 포르노를 시청하는 사람이 자신이 섹스를 ‘직접’ 하고 있다고 믿게끔 만든다는 말이다. 실제로 포르노 시청과 거울뉴런 작동 사이의 관련을 알아본 실험도 있었다. 포르노를 볼 때 발기된 남성의 겨울뉴런이 그의 발기 강직도와 비례하여 함께 활성화되었다는 실험 결과는, 뇌의 활동 측면에서만 보면 “보는 것은 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가져왔다(p.58). 이처럼 짝짓기 심리와 거울뉴런으로 인한 인간의 포르노 소비는 과학적 인간 진화의 관점에서 포르노를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해 준다. 포르노에는 ‘진짜’가 있다?_‘실재’를 향한 혹은 ‘과장된 몸’을 좇는 열정 물론 인간의 성적 욕망은 종족 보존의 본능 이외의 이유로도 나타난다. 어떤 사람들에게 포르노는 ‘성관계의 끝에 찾아오는 사정’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육체적 한계를 초월해 지속적으로 성적 환희를 지속시킬 수 있는, 어쩌면 이것이 ‘진짜’일지도 모르는 섹스가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인식된다. 3장 「실재를 향한 열정으로서 포르노」에서 김종갑은 가짜와 가상이 판을 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의지할 것을 찾기 위해 ‘더욱더’를 외치며 실재에 강박적으로 집착하게 되고(p.99), 이러한 실재에의 추구는 진짜 성과 섹스를 찾으려는 욕구로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이들은 화면 속 여성의 무엇이 자기에게 만족을 가져다주는지, 만일 그것이 성기라면 성기의 실재는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는다. 그것의 한 극단적 표현이 바로 성기 끝에 소형카메라를 달아 상대 여성의 성기 안쪽을 관찰하는 장면이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섹스를 찾기 위해 포르노를 끊임없이 소비하는 중독의 과정을 거치면서까지 이들이 찾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존재 이전의 성적 근원일지도 모른다. 한편 5장 「‘여성의 몸’과 불가능한 주이상스」에서 김석은 불가능한 쾌락에 도달하려는 절대적인 욕망의 상태(가령 엄청난 크기의 남성 성기가 여성의 만족을 위해 그야말로 ‘끝도 없이’ 움직인다든지 하는)에 이르기 위해 포르노를 탐닉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말한다(157쪽). 그러나 이들은 포르노의 함정에 빠져 있는 측면이 크다. 포르노가 인간의 성을 ‘재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현실적이지 않은 것들로 현실을 대체하면서 온통 자극적인 대상으로 가득한 ‘가짜 현실’을 만들어 사람들을 현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158쪽). 특히 포르노는 ‘여성의 몸’을 과도하게 변질시키는데, 정상적인 범주에서 벗어난 과장된 가슴 크기나 아주 작은 자극에도 몸을 비트는 여성의 몸짓과 신음소리 등이 그 예이다. 이러한 이유로 포르노를 즐기는 사람들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쾌락과 성적 환상을 채우고자 실제 성관계보다 화면 속에 표현된 환상을, 즉 과잉 표현된 여성의 몸과 과잉 섹스를 추구하려 계속해서 포르노를 찾는다. 그러나 이들이 느끼는 과잉은 왜곡을 불러와 자칫 환상 속의 성관계를 꿈꾸는 성범죄로 발현될 수도 있다(p.184). 그렇다면 포르노를 시청하는 여성의 경우는 어떠할까? 포르노가 주로 남성의 시점에서 제작됨을 떠올릴 때 여성도 포르노 속 여성의 몸을 보며 섹스를 관찰하거나 만족감을 얻게 될까? 여성의 환상도 남성의 그것과 다르지 않은 걸까? 여성이 원하는 포르노는 따로 있다!_야동으로부터 소외된 여성들 남성에게 그만의 문화로서 포르노가 있다면, 여성에게는 로맨스가 있다. 무수한 여자와의 (사랑이 없어도 되는) 섹스를 꿈꾸는 남자와 한 남자와의 낭만적 사랑을 꿈꾸는 여성의 성차(性差)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지점이다. 그렇다면 여성은 포르노와 절대 함께할 수 없는 존재일까? 여성의 사랑은 남성의 사랑보다 덜 섹슈얼하다고 말해야 하는 걸까? 6장 「여자도 포르노를 할 수 있을까?」에서 이은정은 여성이 포르노를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성적 쾌락을 향유할 자유에 붙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제대로 이해해 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p.188). 사회적 학습의 결과, 대부분의 여성들은 자신의 몸이 주는 기쁨을 누리는 데 익숙하지 않으며 도리어 그것을 죄악시해 왔다. 게다가 포르노는 여자의 관능을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데, ‘사정’이라는 남성의 최종적 쾌락만큼이나 여성에게 중요한 ‘전희’가 포르노에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환희를 느끼는 여성의 얼굴이나 성기에 집중된 쾌락만을 보여 주는 대부분의 포르노에서 여성의 쾌락은 단지 남성의 쾌락을 위해서만 존재할 뿐이다(p.210). 7장 「남성 성자유주의를 넘어」의 이명호 역시 ‘만나서, 흥분하고, 사정하는’ 패턴을 가진 남성 중심의 포르노에 문제를 제기한다. 포르노에서 발기에 실패하는 남성을 본 적이 있는가? 그 성기의 삽입에서 오르가즘을 느끼지 않는 여성을 본 적은 있는가? 포르노에서 남성의 성기는 언제나 발기돼 있고 자신은 언제든 즐길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표현하지만, 섹스를 위한 여성의 준비는 좀처럼 고려되지 않는다. 포르노는 이렇게 남성을 유혹하는 동시에 여성을 외면하고 있다. 만일 여성과 섹스를 물건이나 도구로 보는 시각을 넘어 감성의 충족을 동반하는 존재, 성적 쾌락을 나누는 파트너로 그려 낸다면, 포르노 시장에서의 여성의 소비도 분명 늘어날 것이다(p.250). 포르노의 바깥에서 포르노를 만드는 것들_법 그리고 테크놀로지 이러한 포르노는 성적 욕망이 과학기술 및 사회의 변동과 더불어서 진화한다는 사실을 가장 첨예하고도 극적으로 보여 주는 공간, 곧 그 사회의 가장 적나라한 반영물이다. 4장 「법은 포르노를 어떻게 판단하는가?」에서 서윤호는 법의 관점에서 포르노를 둘러싼 사회적 변화를 살핀다. 사실 동서양의 과거와 현재를 막론하여 포르노의 기준과 정의가 명확했던 사회는 없었다. 예술과 외설의 차이는 언제나 모호했으며, 판단주체의 개인적 심미안에 따라 포르노를 규정하는 기준도 달랐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는 ‘저속’, ‘선정’, ‘외설’, ‘음란’ 등의 용어 규정이 명확하지 못한 탓에 더더욱 혼란이 가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장은 성도덕주의에 입각한 보수주의적 관점,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중시하는 자유주의적 관점, 양자 모두에 권력관계라는 질문을 제기하는 여성주의적 관점 등 다양한 시각들이 맞부딪치는 음란물 규제의 역사와 현실을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 포르노의 향유 방식과 기술적 발전도 포르노의 양상을 변화시킬 중요한 요소이다. 2장 「미래의 포르노는 어떤 미래를 만드는가?」를 통해 김운하는 21세기 정보통신과 로봇기술의 발달로 생기는 첨단 포르노 테크놀로지가 과거의 포르노와는 차별화된 위상을 갖게 될 것이고, 이것은 사회와 인간관계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예측한다. 사이버섹스의 쾌감이 실제처럼 촉각적인 쾌감을 유발할 수 있다면, 또 섹스 로봇이 육체적으로뿐만 아니라 실제 인간처럼 감정적인 소통이 가능해진다면 연애나 사랑, 결혼 같은 인간의 생활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이러한 기술사회의 각종 테크놀로지들이 인간의 자리를 차지한다면 전쟁, 산업현장, 심지어 성의 영역에서조차 기계적인 것들이 인간을 대체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를 일이다(p.75). 시각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내 손안의 아이포르노(i-porno) 시대가 시작되며 다양한 종류의 포르노를 개인의 기호에 따라 원하는 방식으로 골라볼 수 있는 이 시대, 포르노와 인간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포르노라는 화면 속 현실에 도취되어 비판적 사유마저 불가능해지는 시대가 오기 전에, 우리는 포르노가 변화시키는 인간의 삶, 포르노를 변화시키는 인간의 성적 욕망에 대해 좀더 진지하게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보고도 못 본 체했던, 수면 아래 잠겨 있던 포르노라는 실체를 대중 앞에 과감히 세워 대면시킴으로써, 이 책은 그 출발점의 역할을 하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