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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만리장정萬里長程의 출사표
01 벚꽃눈 흩날리던 날, 중원 ‘삼각코스’로 떠나다 02 과연 공항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 03 아무도 양보하지 않을 거라는 예측 가능성 04 상하이는 1930년대를 그리워하네 05 여행은 로路를 잃어도 도道는 얻는 과정 06 쑤저우의 인간천당 이튼 빌리지 07 바깥 일로 기뻐하지 말고 스스로의 일로 슬퍼하지 말라 08 박물관에서 기려지는 자본가 ★ 길 위에서 본 중국의 오늘Ⅰ 09 중국의 휴대전화 그리고 괴담 10 인민의 친구, 펄 벅의 옛집에 가다 11 프랜차이즈화되는 중국 12 죽어서 신이 된 사나이, 쑨원 13 정화가 계속 서진했더라면 14 지갑 잃고 길 잃고 그러고도 웃음이 나오다니 15 중국 농민들과의 첫 조우 ★ 자전거를 타고 만난 중국의 초상Ⅰ 16 중국 사람들은 약도를 그리지 않는다 17 계절풍보다 탁하고 변덕스러운 중국의 정치 풍향 18 화물차 뒤꽁무니를 따라 달리는 고속도로 무단주행기 19 시市 안에 또 시가 있다고? 20 허난에 퍼지는 붉은 십자가 21 중국 창세신화의 건설현장으로 22 시간을 통일한 공산당과 남수북조南水北調 23 지진은 용이 뱉은 구슬을 청동두꺼비가 받아먹는 것 24 그녀의 오토바이 뒷자리를 타고 가는 밤 25 누들로드 : 312번 국도 ★ 누들로드를 따라 만난 중국의 국수 26 시안까지 3일 레이스에 모든 걸 걸다 27 시골 장례식에서 만난 고양이귀국수 28 삼각코스 한 변 완성, 이제 동쪽으로! 29 호텔 직원 조회에서 만난 중국의 집체문화 30 일보일생一步一生 한 발 한 발의 분투 31 도쿄 본산지에서 인생 앞길을 묻다 32 동굴집, 야오둥에서 들여다본 농부의 일상 33 출입금지 성벽도 열리게 하는 ‘따꺼’ 34 라오바이싱老百姓의 발견 ★ 자전거를 타고 만난 중국의 초상Ⅱ 35 ‘양뗴의 길’에서 농민공을 생각하다 36 카이펑의 유대인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37 꺾이고 휘돌지만 점점 넓어지는 황허… 난, 그런가? 38 신성불가침의 한자? 나라 망해먹을 한자! 39 권력자는 당대를, 시인은 천 년을 사는 구나 40 황당하고도 요상한 베이징 단체관광단 체험 ★ 길 위에서 본 중국의 오늘Ⅱ 41 위안스카이 옛 저택에서 역사의 평가를 마주하다 42 중국의 수능시험, 가오카오高考 보는 날 43 들어나봤나, 개구멍으로 태산 오른 이야기 44 맥도날드 맞먹을 ‘홍샤오빙’ 제국을 꿈꾸다 ★ 중화반점에는 없는 중국의 맛 45 삼각노선의 마지막 꼭짓점을 향하여 46 이곳에선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없다 에필로그 여행의 보이지 않는 수많은 동반자에게 감사를 보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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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의 목적은 중국이라는 과목을 학습한다는 것이었다. 미국에서는 워싱턴 특파원과 유학생으로 각각 3년 6개월과 2년 6개월 모두 6년을 보냈다. 미국에 대해 조금은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전거 횡단은 가시적인 목표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미국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더해줄 수 있었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한 번도 생활해본 적이 없었다. 미리 제목까지 생각해놓은 책 『레드 차이나를 찾아서』를 쓰려면 이전과 이후를 비교할 정도는 돼야 할 텐데, 내가 중국에 대해서 아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나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하지만 중국은 ‘잘 아는 것 같은데도 아는 게 없는’ 그런 나라가 아닐까. 그러면 이번 여행은 중국 입문이어야 한다.--- p.21 「벚꽃눈 흩날리던 날, 중원 ‘삼각코스’로 떠나다」
격렬한 정치 토론이 오갔고 다시 인민의 품으로 돌아올 것 같았던 런민광장은, 그러나 시위가 무력 진압되면서 광장으로서의 운도 다했다. 각종 문화 편의 시설로 쪼개져 군중이 모일 수 없는 곳이 돼버렸다. 인민의 힘으로 정권을 쟁취한 중국 정부가 이제는 인민이 모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시대가 된 것일까. (…) 지금은 런민광장에서 젊은이들이 데이트를 한다. 상하이에 도착한 첫날, 밤 9시쯤 런민광장의 분수대에는 밀어를 나누는 연인들이 눈에 띄었다. 인민은 없고 개인만이 있었다. 그리고 광장 지하로 들어가자 1930년대의 풍물을 복원한 펑칭가風情街가 긴 통로를 따라 이어졌고 소비자들로 붐볐다. 중국의 미래라고 불리는 상하이는 뜻밖에 1930년대를 그리워한다.--- pp.40-41 「상하이는 1930년대를 그리워하네」 사실 중국에 오기 전 가장 불안했던 것은 농촌 상황이었다. 중국 농민과 관련된 보도가 있다면 대부분 시위와 관련된 것이었다. (…) 서방 언론은 중국 어느 한 곳에서 시위가 일어나면 다른 곳에서도 끓어오르고 있을 것이라고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대해 중국 정부는 서방 언론이 중국의 안정을 흔들기 위해 침소봉대한다고 비판한다. 그럼 솔직히 공개하면 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나쁜 일이 알려지면 사회 분위기를 흐리고 나쁜 일이 더 일어날 수 있다고 대답한다. 이런 사회주의 언론관에 따라 사회 안정을 해칠 수 있는 우칸촌 시위는 중국 내에서는 보도가 통제됐다. (…) 중국 안으로 들어올수록 점점 지금까지 언론보도나 서방작가들이 묘사한 것과는 다른 중국과 중국인을 발견할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갖게 된다.--- pp.126-132 「중국 농민들과의 첫 조우」 내가 본 중국 사람들은 호기심이 많다. 그러나 그 호기심은 뭔가를 적극적으로 해보려는 호기심이 아니다.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신의 삶이 휘청댈 정도로 휘둘리는 일을 많이 겪은 사람들의 호기심이다. 토끼가 귀를 쫑긋대는 것과 같은 행위다. 그런 그들의 눈앞으로 짐을 잔뜩 매단 자전거가 지나간다. 반대로 나는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길가에 앉아 있는 그들의 시선을 끌고 가고 있다는 걸 느낀다. 그들의 눈에서 토끼의 경계심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전적으로 자전거의 힘이다. 자전거는 무력하다.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을 놓게 하는 힘이 있다. 내가 자전거로 여행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전거 여행은 사회과학 특히 문화인류학에서 쓰는 방법론인 참여관찰의 간이 버전 정도의 자격은 있는 것 같다.--- p.219 「시안까지 3일 레이스에 모든 걸 걸다」 지금도 중화인민공화국이듯 중국의 국호가 중국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하지만 중국인들에게 개인과 대별되는 전체로서의 중국이 있어왔다. 그래서 춘추전국시대나 위진남북조, 오호십육국, 오대십국의, 한 번에 수백 년간 계속된 분열기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중국으로 돌아오곤 했다. 중국은 36개국이 있는 유럽 크기의 땅에 서로 철천지원수가 되기에 모자라지 않는 5000년 이상의 역사가 있고, 인종적으로도 남방인과 북방인은 그리스인과 스칸디나비아인만큼 달라 보인다. 그런데 내가 만난 모든 중국인들은 희한하게도 중국이 하나의 전체여야 한다는 사실에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는다. 14억분의 1로 대접받아도 14억 명이 이루는 전체에 강한 소속감을 느낀다.--- p.237 「호텔 직원 조회에서 만난 중국의 집체문화」 국國과 가家로 이뤄진 ‘국가’라는 한자가 시사적이다. 린위탕은 “중국엔 원래 나라와 가족밖에 없고 사회라는 관념이 없었다”고 말했다. 영어의 ‘society’를 번역한 일본식 한자인 사회社會는 수입했지만 시민의식public mind은 수입하지 않았다. 가족을 돌보거나 국가에 충성할 뿐이다. 이중톈易中天은 “서양이 그리스시대와 같은 도시국가시대를 거쳐온 것과 달리 중국은 씨족제도가 감쪽같이 국가제도로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 중국에서 공안의 힘, 나아가 공산당의 일당지배가 수용되는 기저에는 이런 집단심리가 있다. 국민은 관광객이다. 서로 밀고 밀치고 올라가 경치를 한번 보고 떠날 뿐이지, 질서를 세우거나 바꾸는 주체라고 생각지 않는다.--- p.224 「일보일생一步一生 한 발 한 발의 분투」 중국의 통치자들은 백성들이 순한 양 같기를 바랐던 것 같다. 통치자의 언어였던 한자에서 양이 들어간 글자 중 부정적인 뜻은 별로 없다. 아름다울 미美, 착할 선善, 의로울 의義, 키울 양養…… 한자를 배우면서 양의 가치를 내면화한다. 관리들에게 수탈당해도 천하대란이 일어나지 않는 한 세상은 살 만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수치상으로 중국은 상하위 계층의 소득 격차가 미국보다 더 큰 나라가 됐다. 이 추세를 조사하려면 어려운 방법론을 고안할 필요 없이 여기 와서 시화위안과 제팡로 고가도로 밑을 보면 될 것 같다. 고급 음식점을 찾는 사람이 늘어나는 동시에 고가도로를 지붕 삼아 눕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언젠가 경보가 울릴 것이다. 누워 있는 양들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p.282 「'양떼의 길’에서 농민공을 생각하다」 일부 중국학자들은 반反유대주의가 없었던 유일한 나라가 중국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더 무시무시하다. 정복자든 피정복자든, 상인이든 군인이든 중국에 들어가면 민족성을 잃어버린다. 그러니 반유대주의도 있을 수 없다. 모계 혈통의 이스라엘은 카이펑 유대인 후손들을 유대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 중국에서는 이것을 용광로와 같은 문화의 힘이라고 믿는다. 나는 인구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이민족을 복속하는 데 통혼通婚 이상 좋은 방법이 없다. 결국 인구가 많은 쪽이 이기는 게임이다. 그래도 전쟁보다는 낫다.--- p.288 「카이펑의 유대인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다음날은 톈안먼 사태가 일어난 지 23주년이 되는 날이다. 광장은 이미 초여름의 강렬한 태양으로 후끈 달아오르고 있지만 어떤 불온한 징조도 느껴지지 않는다. 제복을 입은 공안들이 관광객들 속에 섞여 있다. 하물며 본인이 돈을 낸 관광여행에서 가이드한테 이렇게 휘둘리고 뜯겨도 불평 한마디 공개적으로 하지 않는 어진 사람들인데 쉽게 끓어오르지 않을 것 같다. 개인이 아니라 일련번호 중 하나의 번호로 대접받는 데 익숙하고 권력에 대한 복종심이 거의 내면화돼 있다. 관광 가이드는 어쩌면 공산당의 다른 이름이고 관광객들은 14억 명의 인구 중에서도 모래알처럼 뿔뿔이 흩어져 있는 라오바이싱을 상징하는지도 모른다.--- p.321 「황당하고도 요상한 베이징 단체관광단 체험」 사람이 너무 많다. 너무 많아서 서로 믿기 어렵고, 너무 많아서 자유를 허용하면 혼란이 올지 모른다는 불안감. 이번 여행에서 만난 대학교수, 대학생, 농민, 상인, 노동자 등에게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정서다. 진짜 총선거를 실시하기에는 ‘런타이둬’라면 ‘알맞은 규모로 나라를 쪼개면 어떨까’ 싶다. 이렇게 물어볼 때마다 중국인들은 경기를 일으킨다. 천하통일이 되지 않으면 천하대란이 일어난다는 고래古來의 이분법을 여전히 믿고 있다. 이것이 혹시 일당독재가 받아들여지는 심리적 기저가 아닐까? --- p.330 「위안스카이 옛 저택에서 역사의 평가를 마주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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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시안, 베이징, 중국 역사의 세 꼭짓점을
따라 달리는 4800여 킬로미터의 여정 중국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깊은 내면을 만나는 자전거 인문기행! 자전거 두 바퀴로 달리는 오천 년 역사의 현장 “길모퉁이를 돌 때마다 중첩되고 융합되고 분기된 역사의 흔적이 나타난다.” 중국은 국토 면적에서 세계 3, 4위를 다투는 나라다. 오천 년의 역사 동안 이 대륙에서 흥하고 쇠했던 국가와 민족이 한둘이 아니요, 그들이 남긴 문화 또한 다종다양하다. 자전거 두 바퀴로 60일간 쉼 없이 이 대륙을 종횡무진한다 해도 결코 한 번에 꿰어낼 만한 나라가 아닌 것이다. 이에 홍은택은 ‘횡단’이라는 개념을 버리고, 중국에서 가장 번성한 도시 상하이에서 출발해 8대 고도(난징, 시안, 뤄양, 정저우, 카이펑, 안양, 베이징, 항저우)를 연결하는 삼각 코스를 그리기 시작했다. 황허와 양쯔강, 징항 대운하까지 돌아볼 수 있는 코스로 크게 보면 중원을 안에 품고 상하이와 시안, 베이징을 세 꼭짓점으로 삼각형을 그리는 노선이다. 이에 대해 중국 친구들이 다양한 조언을 주었는데 중국문학 교수인 타이완 친구는 “중국 역사상 중요한 정치경제문화권을 섭렵하게 될 것”이라며 “중국문화 발원지인 허난河南의 중원문화, 허베이河北의 호방한 연조燕趙문화, 장쑤江蘇, 저장浙江의 섬세하고 화려한 오월吳越문화, 공맹孔孟을 낳은 산둥山東의 제노齊魯문화, 유목민과의 혼혈인 시안의 관중關中문화가 다 삼각노선에 포함된다”고 격려했다. 이렇게 계획한 4000킬로미터 삼각노선은 길을 잃고 헤맨 덕에 결국 4800여 킬로미터로 늘어났고, 그 덕에 저자는 발길이 닿는 곳마다 중국의 어제와 오늘이 교차하고 융합되는 역사의 흔적을 빠짐없이 목격하고, 역사의 산증인인 보통 사람들, 즉 라오바이싱과 만났다. 런민광장, 팡리즈, 기독교, 농민공… 중국의 오늘을 이해하는 실마리를 발견하다 한국보다 경제개발이 20년쯤 늦은 나라가 아닌, 늦었더라도 우리와 다른 길을 걷는 나라이기를 기대했던 저자의 눈에 중국의 오늘은 어떠했을까?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제3의 길을 걷고 있는 지금, 말로만 듣던 이 나라의 변화는 곳곳에서 확인되었다. 중국 근현대사 굴곡의 현장이요, 인민들이 혁명의 열정으로 함성을 지르던 상하이 런민광장은 이제 각종 문화 편의시설로 쪼개져 젊은이들의 데이트 장소로 변모했다. 이제 런민광장에는 인민은 없고 개인만 남았다. 1986년 민주시위가 처음 일어났던 허페이 중국과학기술대학 캠퍼스에서 만난 젊은이들은, 그때의 시위나 이 대학의 부총장이었다가 시위 이후 해임돼 나중에 중국 인권운동가가 되는 팡리즈에 대해 알지 못했다. 굳이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저자가 상하이와 난징을 거쳐 오는 동안 만난 대학생들은 몇 가지 문제를 빼고는 대체로 자신들의 삶에 만족한다고 대답했다. 랍 기포드가 『차이나 로드』에서 “중국인들은 이제 피자의 토핑을 고를 수 있게 된 데 만족하지 않고 결국 정치지도자들을 선택하고 싶어할 것”이라고 썼는데 이들은 중국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낙관했고 정치구조의 개혁에 무관심했다. 공산당 일당독재의 상부구조는 외려 시장경제에 의해 떠받쳐져 공고해진 것처럼 보였다. 이에 대해 홍은택은 유럽 대륙만한 땅덩어리에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에 사는 55개국 인구를 모두 합친 수의 인구가 5000년 넘게 한 나라를 이루고 사는 중국의 현실을 떠올린다. 이러한 상황은 다른 어느 나라 사람들도 경험할 수 없는 사회경제적 압력이다. 정치적 자유보다는 천하태평과 같은 사회적 안정이라는 가치가 더 중시되었을 거라고 이해한다. 장차 중국이라는 거대한 바람은 어디로 불게 될까? 자전거 기행의 형식에 깊이 있는 통찰을 더한 중국 입문서! 많은 이들이 혹은 매체에서 중국의 변화에 대해 다룰 때 보통 베이징, 상하이, 선전, 톈진 등 대도시의 눈부신 발전이나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성장만을 이야기하는 때가 많다. 하지만 중국의 오늘은 대도시 마천루나 수치, 통계로 나타나는 경제 발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알고 보니 홍은택이 자전거를 타고 몸으로 훑듯 다니며 만난 시골마을의 농민들, 대도시의 농민공, 대학생, 젊은 부부 등이 중국이라는 이 거대한 바람의 핵심이었다. 방법은 간단한데 구현이 어려운 종류의 일처럼 중국이 잘하는 일은 없다. 북쪽 오랑캐의 침입을 막기 위해 국경에 성벽을 쌓으라고 한마디만 하면 만리장성이 세워진다. 남쪽의 풍부한 곡식을 북쪽으로 운송하기 위해 남북을 연결하는 운하를 파라고 한마디만 하면 길이 1700킬로미터가 넘는 징항대운하가 남북을 종단한다. 설계보다 시공이 어려운 일이지만 수백만 명을 수십 년 또는 백년 넘게 동원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고 있는 나라기에 가능하다. 그렇기에 이 거대한 하나를 이루는 한 명 한 명 라오바이싱의 힘을 간과할 수가 없다. 라오바이싱의 힘이 중국의 힘인 것이다. 저자는 이번 여행을 ‘중국 라오바이싱의 발견’이라고 할 만큼 내내 이들의 환대와 도움을 받았다. 허난성에 급격하게 퍼지고 있는 교회 십자가를 보며, 개혁개방 이후 의지할 곳 없는 농민들의 마음을 읽고, 농촌 인력자원시장 앞에서 일자리를 놓고 농민공 수십 명이 벌이는 실랑이를 지켜보며 중국의 사회 안정을 염려하는 대목을 읽으며 독자들은 이 거대한 대륙 중국이 장차 어떠한 행로를 걷게 될지 더욱 궁금해질 것이다. 중국 대륙은 워낙 넓고 그 역사가 유구하여 한 번에 학습하기에도, 다 둘러보기에도 쉽지 않은 나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자전거 기행의 형식에 깊이 있는 역사문화적 통찰을 더한 『중국 만리장정』은 ‘중국’이라는 과목에 독자들이 쉽고 재미있게 다가설 수 있도록 돕는 믿을 만한 조력자가 되어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