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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o Xingjian,高行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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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존재 이유를 지니려면 결코 정치의 도구가 되어선 안 됩니다. 문학은 미약한 개인의 목소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문학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감정과 감수성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문학이 반드시 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거나 정치에 일체 간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 문학의 정치적 경향성과 작가의 정치 성향에 대한 논쟁은 20세기에 문학을 병들게 한 가장 큰 원인입니다. 이런 논쟁은 각각 보수주의와 혁명을 낳았고, 문학계를 진보와 반동의 싸움터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사단은 머릿속 장난일 뿐입니다. 이런 정치성이 권력과 결합하여 현실에서 하나의 세력을 이루면 문학과 개인 모두 재앙을 맞게 됩니다.
부정의 부정으로는 결코 긍정에 이르지 못합니다. 혁명이 곧바로 새로운 건설로 이어지지 않듯이 말입니다. 구세계를 타도해야만 신세계의 유토피아가 도래한다는 식의 사회혁명론이 문학을 잠식해버리면서 창작의 터전은 전쟁터로 변해버렸습니다. 앞 세대를 타도하고 문화전통을 무너뜨리자 완벽한 무無가 펼쳐졌습니다. 새로운 것이 무조건 좋다는 분위기 속에서 문학의 역사도 끊임없이 전복으로 점철되어버렸죠. / 작가는 결코 세상의 창조주가 될 수 없습니다. 지나치게 비대해진 자아로 그리스도가 되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그랬다가는 정신착란으로 미치광이가 되거나 현실을 거대한 환각의 장으로 만들어버릴 뿐입니다. 자기 자신과 세상을 연옥으로 만들어버리면 도대체 무엇이 살 수 있겠습니까. 타인이 곧 지옥이라는 망상은 바로 이런 자아상실이 만들어내는 늪일 뿐입니다. 이 늪은 자기 자신마저 미래를 위한 제물로 삼는 동시에 남들까지 자신을 따라 희생하라고 강요합니다. 문학은 자기 자신에 대한 관조이자 자기 시대에 대한 인식입니다. 문학은 바로 이런 자기인식에 한 줄기 빛을 가져다주는 몇몇 실마리입니다. 문학은 결코 타도와 전복을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문학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 혹은 사람들이 발견하지 못한 어떤 실상을 발견하고 드러내는 데 그 가치가 있습니다. 이런 진실이야말로 어떻게 해도 무너지지 않는 문학의 기본 품격입니다. 시장경제가 세상 구석구석을 지배하게 된 이 시대에는 책도 하나의 상품이 되었죠. 경계 없이 광활하고 맹목적인 시장에는 개인으로서의 작가가 존재하기 어렵고, 문학과 관련된 그 어떤 파벌, 결사, 운동도 설 자리가 없습니다. 작가는 시장의 압박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 즉 시류를 따르는 제품으로서의 문학을 생산하지 않기 위해 문학이 아닌 다른 것으로 생계를 도모해야만 합니다. 문학은 차트에 오르내리는 베스트셀러 상품이 아닙니다. 작가가 시각매체의 추앙을 받는다면 그것은 차라리 광고라고 해야 옳지요. 창작의 자유는 거저 얻어지지 않으며 돈으로 살 수도 없습니다. 이 창작의 자유는 먼저 작가 자신이 그것을 마음속으로 간절히 필요로 해야만 가질 수 있습니다. 철학자의 미학은 대체로 이미 완성된 예술작품을 해석합니다. 이미 실현된 미에 해설을 보태는 것이지요. 아름다움이 어떻게 창조되는지는 연구하지 않습니다. 철학자들은 다만 미에 관한 정의를 내리고, 심미의 표준이라든가 이런저런 가치의 기준을 제시할 뿐입니다. 그러나 예술가의 미학은 그 반대입니다. 아름다움은 어떻게 발생하는가, 그 조건은 무엇인가, 창작자가 어떻게 미를 포착하여 작품에 실현할 것인가를 연구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술가의 창작미학이 철학자의 해석미학과 다른 지점입니다. 예술가의 미학은 철학의 방법인 추론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전통적인 철학자의 미학과 다릅니다. 철학자들은 어디까지나 이성과 개념에 의존하여 형이상학적 사변과 논리를 통해 미에 관한 정의를 내리고 예술을 명명하고, 작품을 판단하거나 해석하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미와 예술에 관해 어느 정도 인식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철학자의 미학에도 일말의 의의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이런 언설이 예술의 창작에 기여하는 바는 별로 없습니다. 시의는 예술가가 작품에 불어넣은 영혼과 같다. 하긴 영혼이라는 말도 이제는 유행이 지났다. 그렇다면 그보다 현대적인 ‘정보’라는 말을 써볼까. 현대예술가는 작품에(아직도 작품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어떤 정보를 담아 전달해야 할까? 아니 정보도 한물갔다. 현대예술은 이제 그 무엇도 전달하지 않는다. 그래도 어쨌거나 예술가는 창조자 아닌가? 작품으로서의 오브제는 포기하더라도 단순 서명 이상의 어떤 흔적은 남겨야 하지 않나? 현대예술은 도대체 무엇을 하는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현대예술은 다만 해체를 할 뿐이다. 예술을 예술 아닌 것으로 바꾸어놓고 그것을 예술이라고 부르거나, 예술이 아니었던 것을 예술이라고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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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에 대하여
가오싱젠의 미학과 예술론 200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중국 최초의 작가이자 문학, 미술, 연극, 영화 등 다방면의 예술을 아우르는 전방위 예술가 가오싱젠이 말하는 예술의 본질과 창작의 핵심 『창작에 대하여』는 “날카로운 통찰과 기지에 찬 언어로 보편적 가치를 담아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지난 2000년 중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사람이자 소설가, 화가, 극작가, 감독·연출가 등 장르를 뛰어넘는 전방위 예술가로도 유명한 가오싱젠의 미학과 예술론을 담은 책이다. 노벨문학상을 비롯해 이탈리아 페로니아Feronia 문학상, 프랑스 명예기사 훈장, 2002년에는 미국의 국제평생공로아카데미에서 금상, 2006년에는 미국 공공도서관 사자상을 받은 세계적인 거장의 예술에 대한 진지한 탐색이 집대성된 이 책의 기본 어조는 한마디로 ‘20세기의 극복’이다. 가오싱젠은 이 책에서 20세기식 사회비판과 1960~1970년대에 일어난 예술전복은 전복 그 자체를 위한 전복이 되어, 새로운 것이면 무조건 좋다는 식이 되어버렸다고 개탄한다. 또한 “그 결과 지난 한 세기 동안 예술은 소멸해버렸고, 예술이 하나의 쇼나 가구 설계 혹은 패션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또한 “작가는 다시금 본래의 취약한 개인으로 돌아가 냉정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자기 자신을 깊이 성찰함으로써 20세기에 형성된 의식의 안개를 헤쳐 나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오싱젠은 예술가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독자적인 시선과 재능, 그리고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이미지를 표현할 만한 솜씨라고 말하며, 철저한 관념 같은 개념적 순수는 예술가의 창작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즉, 진보니 반동이니 하는 정치적 평가를 심미의 영역에서 몰아낼 때 예술은 비로소 예술일 수 있다고 말한다. 『창작에 대하여』는 기존 이론서를 인용하거나 다른 미학자의 관점을 끌어들인 것이 아닌 오직 가오싱젠 자신의 심미체험을 바탕으로 꽃피운 사유들로 가득하다. 또한 가오싱젠의 문학·예술·미학론 이외에도 대만의 국보급 작가 황춘밍과 예스타오, 일본의 작가 오에 겐자부로 등 각계 문화예술인과의 대담이 수록되어 있어 창작에 종사하는 예술가는 물론 일반 독자들에게도 미학과 창작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선사할 것이다. ▶ 단순한 기술적 창작론이 아닌 창작의 도와 정신이 살아 있는 대가의 미학사상 지난 수십 년간 장르를 뛰어넘는 창작을 해온 탐색가답게 가오싱젠의 창작미학은 20세기의 주류 의식형태를 뛰어넘어 대단히 흥미로운 길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문학의 죽음’이라든가 ‘회화의 죽음’ 같은 사이비 명제를 단호히 거부한다. 오히려 그는 문학ㆍ희곡ㆍ회화와 같은 예술양식의 한계 아래서 다른 새로운 창조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즉, 여러 예술양식들이 지닌 가장 기본적인 한계를 긍정하면서도 바로 그 유한성 안에서 무한을 추구했다. 예를 들어 가오싱젠 자신이 쓰는 소설과 희곡에서 인물을 인칭으로 대신하고, 의식의 흐름을 언어의 흐름으로 대신하고, 인칭의 전환을 희곡작법에 도입하고, 중성적인 배우 표현법을 확립하며, 구상과 추상 사이에서 조형의 새로운 방향과 표현법을 발굴하는 등의 실험들을 시도하고 있다. 또한 인식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식과 재인식이 있을 뿐이며, 거듭되는 새로운 인식이야말로 전에 없던 가능성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기제라고 말한다. 가오싱젠은 예술가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현실세계에 대한 자신만의 느낌과 표현이며, 진실에 대한 신념의 토대 위에 이러한 이해와 표현을 쌓아올릴 때 예술가의 진정성은 곧 예술의 진실이 된다고 역설하고 있다. 바로 예술가 자신의 손으로 빚어내는 예술에 대한 진정성이야말로 예술가가 견지해야 할 도덕이라고 말한다. ▶ 다방면에서 창의성이 요구되는 시대, 자신만의 예술창작은 어떻게 가능한가? 가오싱젠은 “작가에게 한 쌍의 눈이 있다면, 하나의 눈으로는 세계를 관찰하고 다른 하나의 눈으로는 자기 자신을 관찰함으로써 자기연민에서 벗어나야만 한다”고 말한다. 현대예술의 병폐라고도 할 수 있는 극단적인 자기애를 극복하는 것이 자기 자신을 극복하는 지름길이자 인식의 폭을 넓히는 방법이라고 말하는 가오싱젠은 개인이라는 자각에서 출발하는 고독이야말로 자신의 존재방식이자 창작태도 그 자체라고 밝힌다. 가오싱젠은 육조 혜능의 사상과 삶의 태도에 큰 영향을 받았고, 혜능의 존재가 의미하는 핵심적 가치는 바로 개인의 존엄이나 자유로운 표현 등의 독립적인 목소리라고 말한다. 시장의 압력과 정치의 압력이 동시에 존재하는 지금과 같은 시기에 작가들이 독립적인 목소리를 내려면 타인의 인정을 구하는 데서 자유로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독립적인 목소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권력의 중심에서 멀어져야 하며, 고독이야말로 자유로운 사상에 전제가 된다고 말하는 가오싱젠은 “작가는 타인을 개조하려 들기보다 일개 관찰자의 신분으로 돌아와 냉정한 눈으로 인생사를 바라보고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편이 나”으며, 다만 “사람들의 삶을 냉정하게 관조할 수 있는 차가운 눈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가오싱젠만의 섬세하고도 독창적인 미학은 비단 예술가들의 창작법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삶에 임하는 자세와 타인과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에도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왜냐하면 가오싱젠이라는 예술가가 살아온 삶이 곧 ‘고독’과 ‘차가운 정신’ 그 자체였으며, 이것이 바로 가오싱젠 예술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