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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과 아홉 교향곡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
포노PHONO 2020.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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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이 만난 거장

책소개

목차

음악
베토벤 교향곡
베토벤의 삼중주와 소나타에 대한 몇 마디
〈피델리오〉 - 베토벤의 3막 오페라
토성 고리 속의 베토벤 - 영매들
베토벤 전기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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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2

Hector Berlio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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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토르 베를리오즈

프랑스의 낭만주의 작곡가이자 음악 평론가. 남프랑스 라코트생탕드레에서 의사인 아버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아들을 의사로 키우기 위해 파리로 보냈지만, 그곳에서 글루크, 스폰티니 등의 오페라에 매료되어 결국 작곡가의 길로 들어선다. 1826년 파리 음악원에 입학, 본격적으로 음악을 공부하기 시작한다. 1830년 네 번째 도전 끝에 칸타타 〈사르다나팔의 죽음La Derniere nuit de Sardanapale〉으로 ‘로마 대상’을 수상, 로마 유학의 기회를 얻지만 3년의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돌아온다. 일찍이 베토벤을 알아보고 파리 음악원 시절 작곡가의 후기 현악 사중주
프랑스의 낭만주의 작곡가이자 음악 평론가. 남프랑스 라코트생탕드레에서 의사인 아버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아들을 의사로 키우기 위해 파리로 보냈지만, 그곳에서 글루크, 스폰티니 등의 오페라에 매료되어 결국 작곡가의 길로 들어선다. 1826년 파리 음악원에 입학, 본격적으로 음악을 공부하기 시작한다. 1830년 네 번째 도전 끝에 칸타타 〈사르다나팔의 죽음La Derniere nuit de Sardanapale〉으로 ‘로마 대상’을 수상, 로마 유학의 기회를 얻지만 3년의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돌아온다. 일찍이 베토벤을 알아보고 파리 음악원 시절 작곡가의 후기 현악 사중주를 연구한 것 외에도 당시 베토벤을 받아들이기를 꺼리던 프랑스 비평계에 반발, 직접 평론 활동에 뛰어들어 여러 매체에 이 작곡가에 대한 호평과 찬사의 기사들을 기고한다.

1830년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보다가 배역을 맡은 여인에 대한 짝사랑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표작인 〈환상 교향곡Symphonie fantastique〉을 작곡한다. 1834년부터 본격적으로 작곡을 이어가 〈이탈리아의 해럴드Harold en Italie〉(1834), 〈레퀴엠Requiem〉(1837), 오페라 〈벤베누토 첼리니Benvenuto Cellini〉(1838) 등을 썼으나 마지막 작품이 참패하면서 한동안 침체기를 겪는다. 이후 외국으로 연주 여행을 떠나 1842-1843년에는 독일 각지에서 연주를 하면서 〈로마의 사육제 서곡Le Carnaval romain: Ouverture〉을 작곡하였다. 1845-1846년 프라하와 부다페스트에서의 성공적인 연주 여행에 자신감을 회복, 1846년에 일시 귀국하여 오페라 〈파우스트의 겁벌La Damnation de Faust〉을 발표하지만 비평계의 극찬에도 불구, 흥행에는 실패한다. 1854년 3부작 오라토리오 〈그리스도의 어린 시절L’Enfance du Christ〉이 비로소 파리에서 성공을 거두고, 만년에는 2부작 오페라 〈트로이 사람들Les Troyens〉 작곡에 열중하였으나, 살아생전 온전히 무대에 올리지는 못한다. 1867-1868년 많은 사랑을 받았던 러시아에서의 공연을 끝으로 연주 여행에 종지부를 찍는다. 대표 저서로 《근대 악기법과 관현악법Grand traite d’instrumentation et d’orchestration modernes》(1844), 《회상록Memoires》(1870)이 있으며, 《노래를 가로질러A travers chants》(1862)를 비롯해 매체에 발표한 글들을 묶어 만든 여러 권의 평론집이 있다.
서강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불문학을 공부했다. 프랑스 파리 제4대학에서 『단순성과 구성: 루소와 디드로의 언어와 음악론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양대학교 프랑스학과 교수이다. 디드로의 『미의 기원과 본성』, 『백과사전』, 『듣고 말하는 사람들을 위한 농아에 대한 편지』, 『자연의 해석에 대한 단상』, 장 스타로뱅스키의 『장 자크 루소. 투명성과 장애물』, 사드의 『규방철학』, 모페르튀의 『자연의 비너스』등을 번역했고, 『우리 시대의 레미제라블 읽기』, 『18세기 도시』를 공동으로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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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9월 21일
쪽수, 무게, 크기
260쪽 | 282g | 128*188*15mm
ISBN13
9791189716059

책 속으로

음악은 감성이면서 동시에 학문이기도 하다. 연주자나 작곡가처럼 음악을 연마하는 사람에게는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영감도 필요하지만 오랜 연구며 심오한 명상으로써 얻은 지식도 필요하다. 음악 예술은 지식과 영감이 하나가 된 것이다. 그래서 이 조건이 채워지지 않았을 때 음악가는 한낱 불완전한 예술가에 불과하다. 만일 그런 자도 예술가라는 이름으로 불려도 좋다면 말이다.
---「음악」중에서

음악곡의 어떤 악절을 들을 때 처음에 내 생명력이 두 배로 늘기라도 하는 것 같다. 내가 느끼는 감미로운 즐거움에는 추론이라는 것이 조금도 들어서지 않는다. 그다음에 분석에 익숙해지면 감탄이 절로 인다. 감동은 저자가 가진 에너지, 혹은 저자의 관념의 규모에 비례해서 증가하여, 이내 혈액 순환을 예사롭지 않게 자극한다. 동맥이 맹렬히 뛰고 눈물이 흐른다. 보통은 절정의 순간이 끝날 때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그렇지만 눈물이 흐른다는 것은 아직 절정의 순간에 이르기에는 한참 많이 남은 계속되는 상태를 가리킬 뿐이다. 분명 이런 경우 근육은 경련성 수축을 일으키고, 팔다리가 부들부들 떨리며, 손발은 완전히 무감각해지고, 시신경과 청신경은 부분적으로 마비된다. 더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간신히 들을 뿐이다. 현기증이 일고… 반쯤 기절한 상태나 같다.
---「음악」중에서

서른여섯 해 전인가, 서른일곱 해 전인가 파리 오페라 극장에서 종교 음악회(concerts spirituels) 프로그램으로 베토벤의 작품들을 올려본 적이 있다. 그 당시 프랑스에서 베토벤의 작품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그 훌륭한 음악을 듣는 즉시 음악가들 대부분이 얼마나 비판을 해댔는지 지금으로서는 생각도 못 할 것이다. 괴상하고, 통일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장황하고, 불쑥불쑥 솟은 거친 전조에, 화성은 매끄럽지 못하게 불거져 있고, 멜로디라는 것이 없고, 지나치게 시끄럽고 과도한 표현에다, 난해하기가 이루 말할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베토벤 교향곡」중에서

우리 프랑스 청중은 음악 예술이 마련해줄 수 있는 맹렬하고 뜨거운 감동을 그저 가물에 콩 나듯 느낄 뿐이다. 그런데 일단 우리 프랑스 청중은 마음에 진정으로 감동이 일었다면 그 감동을 전한 음악가가 누구든 상관없이 아낌없이 감사의 표현을 전한다. 저 유명한 7번 교향곡의 A단조 알레그레토를 2번 교향곡에 끼워 넣고 나머지 부분을 삭제하고자 했는데 그 악장이 시작되자마자 종교 음악회에 자리한 청중은 단번에 그 곡의 진가를 알아보았다. 1층 객석에서 우르르 큰 고함을 지르며 다시 한 번 연주해줄 것을 청했고, 두 번째 연주가 끝난 뒤에도 2번 D장조 교향곡의 첫 악절과 스케르초 악장이 연주되었을 때와 막상막하의 호평이 쏟아졌다.
---「베토벤 교향곡」중에서

제2악장의 장송 행진곡은 고스란히 한 편의 드라마라고 할 것이다. 젊은 팔라스의 장례 행렬을 그려내는 베르길리우스의 아름다운 시구의 번역을 보는 것 같다./ 그는 관棺 앞에 라우렌툼 전투에서 노획한 전리품을 옮기게 했다. 그를 태운 군마 아이톤이 장식을 내려놓고 빈 몸으로 굵은 눈물 얼굴 적시며 그 뒤를 따랐다. _ p.57-58(‘베토벤 교향곡’ - III 영웅 교향곡)/ 그런데 베토벤의 시는 어떠한가! 저 다채롭게 길고 또 길게 이어지는 악단樂段들이란! 저 말하는 듯한 이미지란! 저 향기! 저 빛! 저 웅변적인 침묵! 끝도 없이 펼쳐진 저 지평! 숲속으로의 이런 황홀한 은둔! 저 황금빛 수확! 하늘에 떠다니는 반점 같은 저 분홍빛 구름! 정오의 햇빛 아래 잠든 저 광대한 평원! 인간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만이 베일을 벗고 모습을 드러내 제 멋진 모습을 보고 놀란다. 그리고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저 심오한 휴식이란! 또 휴식하고 있는 모든 것의 저 감미로운 생生이란! 강을 향해 아이같이 졸졸거리면서 달려가는 개울이란! 물의 아버지인 강江은 위엄 있게 침묵을 지키며 대양을 향해 흘러내린다! 그리고 인간이 들어선다. 건장하고, 종교적인 들(野)사람이다. 폭풍이 불어닥쳐 잠시 멈춘 흥에 겨운 깡총거림… 그를 소스라치게 했던 공포… 그가 부르는 감사의 찬가….
---「베토벤 교향곡 - VI 전원 교향곡」중에서

9번 교향곡 총보에 다양한 평가가 이루어졌지만, 그중에 똑같은 두 개의 평가는 아마 없을 것이다. 어떤 비평가는 이를 무시무시한 광기로 보았고, 다른 비평가는 그저 꺼져가는 천재의 마지막 미광微光으로나 볼 뿐이다. 더 신중했던 몇몇 사람은 현재로서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지만 적어도 가까운 시일 내에 정당하게 평가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음악가 대부분은 이 작품의 발상이 참으로 기이한 것이었다고 본다. 그 발상의 몇몇 부분은 아직 설명되지 않았거나 그것의 뚜렷한 목적을 찾지 못한 채 그대로 남아 있다.
---「베토벤 교향곡 - IX 합창 교향곡」중에서

여기서 나는 베토벤이 어떤 목적으로 그렇게 했는지 아무리 노력을 해서 알아보려고 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기악과 성악에서 레치타티보가 계속 나타나기 직전의 두 순간에 왜 두 불협음을 내도록 했는지 의도는 뻔하며, 그 계획이 계산되고 깊이 숙고한 것임은 알겠다. 그렇지만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이유를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나는 모르겠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베토벤 교향곡 - IX 합창 교향곡」중에서

많은 프랑스 사람이 베토벤의 이름을 듣는다면 관현악곡과 교향곡만 떠올릴 뿐, 지칠 줄 모르는 저 타이탄과 같은 사람이 모든 음악 장르에서 한결같이 감탄스러운 걸작을 남겼다는 점은 잘 모른다.
---「베토벤의 삼중주와 소나타에 대한 몇 마디」중에서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불 켜지 말게. 베토벤의 C샤프 단조 아다지오를 연주하려면 어스름한 빛이면 좋겠네.”/ 그러자 리스트가 말했다./ “물론이지. 불을 다 꺼주시게. 불을 켜면 안 되네. 완전히 어둠에 묻히도록 말일세.”/ 그때 저 어둠 속에서, 잠시 명상의 시간이 흐른 뒤 그가 예전에 그렇게 괴상망측하게 일그러뜨렸던 저 고상한 엘레지가 숭고할 정도로 단순한 연주로 솟아 나왔다. 베토벤의 음표와 악센트 말고 음표 하나, 악센트 하나 더하지 않았다. 그것은 거장이 불러낸 베토벤의 그림자였다. 우리는 그의 위대한 목소리를 들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침묵 속에서 몸을 떨었다. 마지막 화음이 연주된 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침묵했다…. 우리는 눈물을 흘렸다.
---「베토벤의 삼중주와 소나타에 대한 몇 마디」중에서

사실 말이지 내가 베토벤의 이 작품을 계속 들을수록, 계속 읽을수록, 그것이 찬사를 받아 마땅한 작품임을 알게 된다. 전체는 물론 세부 역시 똑같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에너지며, 위대함이며, 독창성이며 진실한 만큼 심오한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곳이 없다./ 그의 작품들은 그런 강력한 혈통을 지닌 작품들의 종족에 속한다. 그 작품들을 비방하는 엄청난 편견이, 너무도 명백한 거짓말이 그 작품들 위에 산처럼 쌓여도, 그 작품들의 생명력은 대단히 강렬한 것이어서 그 무엇으로도 압도되지 않는다. 바위 속에서, 폐허 가운데서 싹튼 기운찬 너도밤나무가 결국 바위를 쪼개고 벽에 구멍을 내고 푸르게 당당하게 솟아난다. 뚫고 솟아올라야 했던 장애물이 많았을수록 그만큼 저 너도밤나무의 뿌리는 땅에 깊이 박히게 된다. 반면 강가에 그저 돋아나는 버드나무는 강 밑 진흙으로 넘어져 그곳에서 썩어 사라지고 만다.
---「〈피델리오〉 - 베토벤의 3막 오페라」중에서

그러므로 아름다움과 추함은 절대적이지 않고, 보편적이지도 않으므로 지상에서 사람들의 찬탄을 받은 인간 지성의 많은 산물이 정령의 세계에서는 무시될 것이라고 믿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이 결론 내릴 수 있게 되었다(더욱이 내가 오래전부터 확신해 온 것이다). 매일 신중하게 이름을 댈 수 있는 극장 무대에 올려지고 갈채를 받는 오페라들이 토성, 목성, 화성, 금성, 팔라스, 시리우스, 해왕성, 큰곰자리와 작은곰자리, 마차 자리에서 연주되었을 때라면 야유를 받을 수도 있으며, 그저 무한한 우주에 대해 무한히 맥빠진 것에 불과하다고 말이다.
---「토성 고리 속의 베토벤 - 영매들」중에서

즉흥 연주자들이 정말 정직한가 하는 점은 흔히 의심받곤 하는데 아마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미리 곡을 지어놓고 사기를 치는 것이 아니냐는 비난은 베토벤의 성격에 비추어본다면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 10년인가 12년 전에 빈 사람들은 그런 명백한 증거를 보았다. 대규모 콘서트에서 베토벤이 즉흥 연주를 할 거라는 벽보가 나붙었다. 이 소식이 퍼지기가 무섭게 빈 인근 마을에서 음악 애호가들이 몰려들어 오스트리아 수도 빈 주민들과 객석을 두고 다투었다. 베토벤 이름만으로 이런 열기가 자극된 것이다. 콘서트 날이 왔다. 즉흥 연주자가 무대에 올라 피아노 앞에 앉아 노래의 악구 하나를 시작하고, 이를 한 번, 두 번, 세 번 반복하면서 잠시 궁리를 해보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선 강하게 화음 하나를 쾅 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릿속에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은 것이다. 청중은 이를 받아들이고 음악가가 보여준 이런 솔직한 모습에 박수갈채를 보냈다.
---「베토벤 전기」중에서

베토벤의 비판자들이 그의 작품이 모호하고 변덕스럽고 괴상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면 베를리오즈가 보기에 그것은 그들에게 베토벤 작품의 규모 전체를 한눈에 바라보고 그가 작품에 불어넣은 섬세한 세부를 지각할 능력이 없는 탓이다. 베토벤은 자신의 교향곡 하나하나에 통일성을 부여하고자 했다. 모든 예술의 걸작이 그러하듯 그 통일성은 작품 속의 아무리 작은 요소라도 결코 헛되이 집어넣지 않았을 때야 성취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베토벤 교향곡 마지막 악장의 피날레가 아무리 강력하더라도, 그 부분만 듣고 느끼게 되는 힘은 베토벤 작품 전체를 귀 기울여 계속 이어 들을 때 느끼게 되는 힘과는 비교할 수 없다. 그것은 촘촘히 이어진 장편 소설을 건성으로 건너뛰고 결말만을 읽는 것과 같다. 3번, 5번, 7번 교향곡 제2악장의 장송 행진곡의 비탄의 울림을 제1악장의 연속으로 듣지 않을 때 그 비극적인 힘이 온전히 느껴지기나 할 것인가.
---「옮긴이의 말」중에서

베를리오즈가 베토벤에게서 음악의 완전히 새로운 지평을 발견하는 곳이 바로 여기다. 말(言)의 위세에 어쩔 줄 모르고 끌려가는 음악이 아니라 말로는 닿을 수 없는 세상을, 말로는 이를 수 없는 사상을 오직 음의 힘만으로 보여준 베토벤은, 베를리오즈에게는 호메로스와 셰익스피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위대한 예술가였다. 젊은 베를리오즈는 음악가이기 전에 호메로스와 셰익스피어의 독자였고, 네르발이 프랑스어로 번역한 《파우스트》를 읽고 괴테에 매료되어 극음악 〈파우스트의 겁벌〉을 작곡한 문인이기도 했다. 베를리오즈에게 이들 작가는 인류의 정신 그 자체이자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예술의 정점이었다. 베를리오즈는 베토벤의 음악에서 셰익스피어와 괴테를 발견하고, 그곳이 자기가 꿈꿨던 예술의 세계임을 알아차렸다. 그곳은 자기보다 앞서 글루크며, 스폰티니며, 카를 마리아 폰 베버가 부단히 달려갔던 예술의 신세계였으며, 그의 뜨거운 정신과 자유에의 열망이 다다라야 할 바로 그곳이었다. 베를리오즈에게 베토벤은 그저 ‘새로운 음악’의 창시자가 아니라 음악의 영역을 무한히 넓혀, 그 한없이 먼 지평으로 인류를 이끄는 해방된 정신이었다. 그러니 베를리오즈에게 베토벤을 옹호한다는 것은 음악 예술의 가능성의 낙관이며, 진부하고 값싼 숱한 음악에 대한 가차없는 도전 그 자체였다. 이제 베를리오즈는 자신을 비롯한 모든 진지한 음악가들은 아무리 숱한 세기가 흐른 뒤라도 베토벤의 천재에 여전히 감탄하고 고개를 숙여야 할 운명임을 깨닫는다. 음악으로 눈물을 흘리게 하는 작곡가들은 많겠지만 불안 너머 환희로 가득 찬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작곡가는 영원히 그저 베토벤뿐이리라.

---「옮긴이의 말」중에서

출판사 리뷰

영원한 현대 음악 베토벤, 그 새로운 세계

‘귀를 막고 달아나버리는’ 것이 그 시대 베토벤 음악을 들은 파리 음악가들의 흔하디흔한 입장이었다고 베를리오즈는 전한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소수의 사람들, 그의 표현에 따르면 “너무 영향력이 미미해서 눈에 띄지도 않은 분파”가 수없이 노력한 결과 일부나마 베토벤의 작품을 오페라 극장에 올린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었고, 그렇게 청중이 단번에 베토벤의 진가를 알아보고 박수갈채를 보냄으로써 그를 비방하던 자들을 무력하게 만든 일은 한줄기 여명이 비춰들고 거대한 태양이 떠오르는 서막과도 같았다. 그 음악이란 바로 베토벤의 교향곡이었다.

“음악은 감성이면서 동시에 학문이기도 하다. (…) 음악을 연마하는 사람에게는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영감도 필요하지만 오랜 연구며 심오한 명상으로써 얻은 지식도 필요하다.”(‘음악’ 중에서) 음악을 대하는 베를리오즈의 태도는 이러했다. 그는 연주회장에 가기 전에 악보를 꼼꼼히 분석해서 총보를 모두 외울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 그였기에 많은 이들이 베토벤의 음악을 들으며 귀에 익숙하지 않은 화성과 리듬에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는 동안, 베를리오즈는 거기에서 새로운 세계를 경험했다. 이 책의 옮긴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베토벤의 현대성은 베토벤 이후의 어떤 음악가도 그 이전의 음악으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들었다는 데 있”으며, 그의 음악은 “그 자체로 방대한 현대 음악 이론이면서, 동시에 그 누구도 그가 성취한 음악 너머로 나아갈 수 없게 만드는 헤라클레스의 기둥이다.”

베를리오즈는 베토벤의 3번 ‘영웅’ 교향곡 제2악장 장송 행진곡에서 베르길리우스의 아름다운 시구를 떠올리고, 제3악장 스케르초에서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서 전사들이 대장의 무덤 주위에서 거행하는 것과 같은 유희를 읽어낸다. 마지막 악장에서는 동일한 음을 연주하는 바이올린, 플루트, 오보에의 음색의 대립을 언급하며 베토벤 이전에는 그렇게 섬세한 조성의 차이를 전혀 표현할 줄 몰랐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흔한 관례와는 정반대로 시작하며 불협화음이 들려오는 첫 번째 악장에 대해서는 청중이 냉랭한 반응을 보인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내비친다. 베를리오즈는 “보되 보지 못하고, 듣되 듣지 못하는” 그들을 향해 자신이 차라리 미치광이가 되어서 누구나 똑같이 느끼는 절대적인 아름다움이 존재한다고 믿고 싶다고 토로한다.

위대한 작품을 앞에 두고 남들이 자신과 똑같이 느끼지 못하는 현실은 슬프지만, 그는 그것을 애석한 진실로 받아들인다.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오류는 어디에 있는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누구나 다 옳다. 한 사람에게 아름다운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다.” 9번 교향곡 ‘합창’이 연주되던 날 로시니 음악의 옹호자들과 베를리오즈는 같은 음악을 두고 전혀 다른 감상을 이야기한다. 그들에게 이 교향곡은 지루하고 멍청한 곡일 뿐이며 멜로디라곤 없는 음악이다. 당시 매체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이렇게 썼다.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은 기괴하기가 이를 데 없다”, “작곡가에게 관념이란 것이 없었다는 점이 빤히 보인다”.

하지만 베를리오즈가 바라보는 합창 교향곡에는 멜로디가 있다. “이 경이로운 아다지오는 여러 번 들어보아야 그토록 기가 막힌 배치에 익숙해진다. 이 멜로디 전체의 아름다움이며, 그 멜로디 위에 덮인 더없이 우아한 장식이며, 그 멜로디가 표현하는 다정한 멜랑콜리, 격렬히 빠져들고 만 실의, 꿈꾸는 듯한 종교적인 감정, 그 모든 것을 내가 산문으로 그저 비스름한 관념만이라도 제시할 수 있었다면, 음악은 그렇게 써진 글에서 경쟁자를 찾게 될 것이며, 미래의 가장 위대한 시인조차 그와 대적할 수 없을 것이다. 정말로 엄청난 작품이다.”

베토벤 시대의 개막을 증언하는 생생한 목소리

베를리오즈의 또 다른 글(‘베토벤의 삼중주와 소나타에 대한 몇 마디’)은 우리를 19세기 초반의 어느 날로 데려간다. 그곳에는 베토벤의 〈C샤프 단조 소나타(‘월광’)〉를 연주하는 서로 다른 모습의 리스트가 있다. 아직 채 영글지 않았던 젊은 날의 리스트는 박자와 악센트를 제멋대로 하며 베토벤의 곡을 연주해 베를리오즈를 끔찍한 고통으로 몰아넣는다. 하지만 몇 년이 흐른 뒤 베를리오즈는 전혀 다른 모습, 이른바 거장의 연주를 목격한다. 어스름한 빛만이 비치는 어두운 방 안에서 단순한 연주로 솟아나온 그것은 베토벤의 그림자이자 목소리 그 자체였다고 베를리오즈는 감동에 찬 음성으로 전한다.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한 편의 시와 같은 음악을 침묵과 눈물 속에서 나누는 당시 음악가들의 모습이 생생히 그려지는 듯하다.

베를리오즈가 나서지 않았더라도 베토벤의 천재는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드러났겠지만, 다수가 그 음악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홀로 확신을 가지고 외로운 싸움을 벌였던 베를리오즈의 용기가 아니었다면, ‘눈에 띄지도 않은’ 분파의 노력이 없었다면 역사는 또 다르게 쓰였을지 모를 일이다. 지금의 베토벤이 있기까지 베를리오즈의 역할을 결코 간과할 수 없으며, 그런 의미에서 베토벤이 아직 대중에 낯선 존재이고 평단에는 불편한 대상이었을 때 부단히 이 작곡가의 가능성을 외치고 그를 “음악 문명에서 가장 앞서나간 첨병”으로 치켜세운 이 글들은 현대의 독자에게 베토벤의 ‘처음’을 선명하게 목격할 수 있는 인상적인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거장이 만난 거장’ 시리즈

『베토벤과 아홉 교향곡 _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은 음악전문출판사 포노가 선보이는 ‘거장이 만난 거장’ 시리즈의 여섯 번째 권입니다. 이따금 얄궂은 예외도 없지 않지만, 대개 천재는 천재를 알아보는 법. 제목과 마찬가지로 역사에 ‘등대’와 같이 등장했던 한 거장이 다른 거장을 만나 그를 통해 어떻게 세계와 예술을 이해했는지 직접 그 거장의 글로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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