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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 도덕과 무관하게 거짓말에 다가가기
1장 │ 진실의 파토스 모두가 거짓말쟁이, 루소만 빼고 거짓말, 그 이론과 실천 : 몽테뉴, 루소, 칸트, 콩스탕, 니체 거짓말의 용기 : 푸코 2장 │ 삶과 반대되는 이론 철학자들이 꿈꾸는 삶 : 피에르 아도 거짓말이 탄생시킨 걸작 : 《에밀》 현재의 자신과 다르게 존재하기 : 사르트르의 참여 3장 │ 개념에 대한 물신숭배 개념의 마력과 개념의 거부 : 프로이트 개념으로 도피하기 : 들뢰즈, 칩거하는 유목민 개념 속에서 눈멀기 : 레비나스와 눈부신 타인 4장 │ 다중 인격 이론의 이중적 삶 : 미국에서의 보부아르 수많은 타인으로 살고 생각하기 : 키르케고르의 가명들 거짓말과 사후死後 진실 5장 │ 거짓말의 해방 거짓말의 세 가지 길 단언하는 리비도 이차적 청취를 위해 나가며 │ 삶과 담론의 간극에서 옮긴이의 말 │ 생각하고 말하는 그 순간에 일어나는 일 |
Francois Noudel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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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정신은 진실보다 거짓을 통해 훨씬 더 잘 파악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 에라스뮈스, 《우신예찬》 다른 사람들이 진실을 감춘다고 화를 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스스로에게도 얼마나 자주 진실을 감추는가. ─ 라로슈푸코, 《잠언집》 --- 첫문장 중에서 내가 이 연구를 하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학계와 방송 매체를 통해 많은 철학자들을 가깝게 알게 된 것이다. 나는 순진하게도, 당당하게 주장된 원칙이나 가치와는 정반대로 펼쳐져 나간 삶을 마주할 때마다 놀라곤 했다. 담론이 요란할수록 간극은 더 명확했다. 하긴 철학자들 가운데 이야기를 지어내는 이들이 보통의 사람들보다 더 적을 이유가 딱히 있겠는가? --- 「들어가며」 중에서 진실은 아이들의 입에서 나온다. 하지만 거짓말도 그렇다. 그래도 아이들의 거짓말은 적어도 유쾌하고 짓궂은 어떤 성향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상상력, 그리고 의미 작용의 중단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거짓말하기 위해 거짓말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해진다. 어떤 주장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 주장은 말해지는 동안에 지어질 수도 있으니까. --- 1장 「진실의 파토스」 중에서 삶과 모순되는 이론서를 쓰는 것은 글쓰기 속에 긴장의 흔적을 남긴다. 주의 깊은 독자라면 텍스트 안에서 이상함이나 불완전함을 느끼고 흔적을 찾아낼 것이다. 거짓말은 진실과 반反진실의 힘겨운 연결을 보여 주는 바느질 같은 것이다. 글이라는 옷감에 꿰매진 이 자국은 간혹 눈에 띄지 않기도 한다. 거짓말은 자명한 주장에 덮여 자국이 완전히 지워진다. 그때 독자는 심리학자가 되어, 언어 속에 사용된 모든 술책을 검토해 봐야 한다. --- 2장 「삶과 반대되는 이론」 중에서 “이름을 내걸고 무엇인가를 말한다는 것은 매우 이상한 일입니다. 자신의 고유한 이름으로 무엇인가를 말하는 순간은 그가 자신을 어떤 자아로, 어떤 인격 또는 주체로 간주하는 순간이 전혀 아니기 때문이지요. 반대로 개인성을 제거하는 혹독한 훈련을 마치고 사방에서 그를 관통하는 다양성에, 그를 거쳐 가는 강력한 힘들에 자신을 열어 놓을 때 개인은 진정으로 고유한 자신의 이름을 갖게 됩니다. --- 3장 「개념에 대한 물신숭배」 중에서 여러 개의 목소리를 받아들이는 것, 살면서 겪게 되는 위기 때마다 그에 맞는 곡조들을 부르며 사는 것, 이것이 곧 여러 개의 악보를 통과해야만 하는 진실의 길이다. --- 4장 「다중 인격」 중에서 대사상가라는 칭호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바르트는 그가 가르치는 상황에서 유지하고팠던 목소리에 대해 시사하는 글을 남겼다. 그가 바란 것은 힘이 잔뜩 들어가 지식을 강요하는 목소리가 아니라, 유연하게 사용하는 유동적인 목소리였다. 이 저자는 라디오 방송에 출연할 때마다, 자신의 목소리에 담긴 서투름, 망설임, 침묵 등을 녹음 기술로 없애지 말라고 요청함으로써 위엄 있는 목소리의 위선에 맞섰다. 분명 우리는 말하듯이 글을 쓰지는 않지만, 말하는 목소리와 글의 어조의 결합에는 많은 시사점이 있다. 어떤 사상을 이해하려면 잘 알아들을 수 있는 예민한 귀가 필요하다. --- 5장 「거짓말의 해방」 중에서 조금만 주의 깊게 듣는다면, 거짓말은 글에서도 들린다. 우레와 같은 단언, 말 더듬기, 반복되는 관례적 표현, 위조된 어조는 균열을, 나아가 기만의 징후를 보여 준다. 자기 목소리를 녹음해서 다시 들어 보면 낯설게 느껴지고, 이는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누가 이렇게 말하는가, 누군가 우리의 이름으로 이야기하기 위해 음색을 빌렸는가? 이러한 불일치의 인식은 우리에게 단언하고픈 욕망을 절제하라고 부추긴다. 또는 모르는 채 살아온 삶의 비극적 거짓말을 여실히 드러내라고 부추긴다. 거대 담론에 지나치게 빠지게 되면, 때때로 우리는 그러한 악보와 동떨어지게 되어 더 이상 위안을 주는 의미의 음악을 들을 수 없게 된다. 그것들은 해체되고, 이상한 소리를 내다가, 재구성되고…… 그리고 차츰차츰, 믿기지 않는 놀라운 진실의 작은 소리를 낸다. --- 「나가며」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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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거짓말을 한다. 글을 쓰면서는 더 많은 거짓말을 한다.
글로 구현된 ‘나’는 이미 내가 아니라 나로부터 기원한, 나보다 조금 더 낫기를 바라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김겨울(작가, 유튜브 [겨울서점] 운영자)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자신이 보이는 모습과 정말로 일치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려 깊은 아버지로 스스로를 소개하며 위대한 교육론을 쓴 루소는 자신의 다섯 아이를 버렸다. 푸코가 진실을 말할 용기를 주장했을 때, 그는 그의 목숨을 앗아갈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를 숨기고 있었다. 보부아르가 『제 2의 성』을 써서 페미니즘의 기초를 마련했던 바로 그때, 그녀는 미국의 한 작가와 사랑을 나누며 순종적 여성의 역할을 자처했다. 키르케고르는 금욕주의자로 살 때 ‘유혹자의 일기’를 기록했다. 철학자들이 창조한 담론과 그들의 실제 삶 사이에 무엇이 놓여 있을까? 삶과 언어 사이의 간극철학자들의 담론은 “바로 거기서부터” 16세기의 정치철학자 에라스뮈스는 “인간의 정신은 진실보다 거짓을 통해 훨씬 더 잘 파악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고 했다. 21세기의 작가 이슬아는 자신의 책에 “사실은 모두가 어느 정도 거짓말이 섞인 문장을 쓰고 있다. 그 문장들을 쌓아서 어떤 진실을 강조하기 위해서다”라고 썼다. ‘거짓말’이라는 단어에 우리는 움찔하게 된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인데, 하나는 우리가 다른 어떤 도덕 가치보다 ‘거짓말하지 말 것’을 강력하고 지속적으로 요청받아 왔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그럼에도 거짓말을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거짓말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에 대한 연구 결과들이 널려 있다. 중요한 것은 하루 평균 몇 번인지, 몇 분에 한 번인지가 아니라 누구나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이다. 어린이도, 어른도, 회사원도, 예술가도, 수리공도, 정치인도 거짓말을 한다, 글을 쓰는 사람의 거짓말은 더 정교하고(뻔뻔하고) 더 유려하고(감쪽같고) 더 리얼하다(교활하다). “말을 비틀고 확장”하고 “강조와 반복, 다듬기”에 집중함으로써 거짓말은 “미학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놀라운 풍요”를 보여 준다. 이 점에서 철학자들의 거짓말을 살펴보는 일은 특히 흥미롭다. 추상적인 언어를 체계적으로 사용해 사상의 보편성을 주장하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철학자들이 창조해 낸 지적 구성물과 그와 상반되는 실천 사이에는 무엇이 놓여 있는가. 그 간극을 들여다보는 일은 짓궂은 데가 있지만, 누구도 완벽하게 고결하지 않다는 ‘진실’을 알려주기에 위안이 된다. 누델만은 철학자가 “행동은 다르게 하면서 저런 원칙을 표방한다”는 관점이 아닌 “자신이 이론화한 것과 반대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저런 원칙을 표방”할 수 있었다는 관점을 취한다. 누델만의 ‘거짓말 분석’은 철학자들을 “비열한 거짓말쟁이”로 고발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의 관심은 간극, 즉 삶과 언어 ‘사이’의 닿을 수 없는 심연에 있다. 철학자들의 담론은 “바로 거기서부터” 구성된다. 말하고 쓰는 모든 사람은 진실과 거짓의 게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 간극을 통해 우리는 이른바 철학적 사유에 함축된 “내면 제작소”에 접근할 수 있다. 거짓말이라는 단어가 도덕적 차원에서는 경멸적 뉘앙스를 갖지만, 심리적 결합물로 분석한다면 삶과 언어 사이의 ‘이음새’를 가리키게 될 것이다. 누델만의 질문, “철학자가 말을 할 때, 말하는 이는 누구인가?”라는 이 엉뚱한 질문은 비단 철학자에게만 적용될 것은 아니다. 말하고 쓰는 모든 사람이 진실과 거짓의 게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언어를 재료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변형시키고, 인격을 재구성하면서 자신만의 ‘진실한 소설’을 써 나간다. 누델만은 살아가는 자아와 말하고 쓰는 자아가 결코 같지 않음을 강조하면서, “저자란, 부서지기 쉬운 것”이라는 사려 깊은 이해의 관점을 택한다. 우월한 도덕주의자라는 역할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진실과 거짓말 사이의 긴장에서 비롯된 보편적 진실을 들을 수 있다. 소설이든 편지든 고백록이든 철학 개론이든, 글쓰기는 현실을 살아내는 하나의 방식일 뿐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무엇을 말하기 위해 혹은 무엇을 말하지 않기 위해 글을 쓰는가? (…) 그것을 쓴 사람 역시 문을 열고 커튼을 걷은 뒤 가면을 착용한 채 무대에서 모습을 드러냈다가 무대 뒤로 사라지는 한 명의 등장인물일 뿐이다. 따라서 책 표지에 박힌 저자의 이름은 저자의 것이기도 하고 저자 이름으로 표현된 어떤 인물의 이름이기도 하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 자신과 벌이는 게릴라전! 누델만은 말한다. “자신이 진실 속에 있다고 믿는 무모함에서 벗어나려면, 말을 해야 하고 생각해야 하고 글을 써야 하고 거짓말을 체험해야 한다”고. 침묵조차도 거짓말이 되기 때문이다. 작가든, 철학자든, 혹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든 진실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거짓말을 격파하는 것이 아니라(이는 가능하지도 않다), 역설적으로 거짓말 한가운데로 뛰어드는 수밖에 없다. “진실을 쥐고 있다고 믿는 사람보다 더 나쁜 거짓말쟁이가 없고, 진실을 원하지 않는 사람보다 더 나쁜 개인도 없으니까.” 그러므로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철학자들의 모순되고 다중적인 인격이 보여 주는 것은 거짓말쟁이의 모습이 아니다. 도리어 그것은 열정적으로 진실을 원함으로써 그 자신보다 더 멀리 나아가는 용기 있는 자의 모습이다. “들뢰즈는 이를 혁명적인 언어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철학을 한다는 것은 권력에 맞서는 것을 넘어 자기 자신과 게릴라전을 벌이는 것이라고. 자아의 이 불안정성은 분열과 확장을 초래한다. 이를 통해 우리 각자는 여럿으로 쪼개지고, 준準안정상태가 되며,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변하게 된다.” 진실과 거짓의 불협화음을 뚫고나오는 철학 담론의 독창적인 선율 누델만의 전작 『건반 위의 철학자』가 ‘피아노’라는 키워드를 통해 철학자의 삶을 새롭게 조명했다면, 『철학자의 거짓말』은 ‘거짓말’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철학자들의 삶과 그들의 이론을 밀도 높게 파고들어간 책이다. 저자는 ‘거짓말’이라는 복합적이고도 창의적인 방식을 통해 “반대의 삶을 살면서도 어떤 주제를 지지하는 정신적 경향”을 섬세하고도 조목조목 밝혀 나간다. 이 과정에서 독자들 앞에는 대표적인 사상가 및 철학자들의 주요 담론에 새롭게 접근할 또 하나의 길이 열린다. 도덕의 잣대를 잠시 내려놓고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선율에 귀 기울여 보자. 진실과 거짓의 불협화음을 뚫고나오는 철학 담론의 독창적인 음악을 듣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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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거짓말을 향해 나아가는 진실한 인간들
철학자의 담론을 삶을 통해 분석하거나 규명하려는 시도는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들이 선택한 보편성을 기각하고 다시금 알몸을 드러내는 일은 보편성을 담지하고자 하는 철학의 시도를 개별 철학자의 의견으로 끌어내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철학자의 삶 속에서 구현된 거짓말이 곧 그의 철학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를테면 솔직하게 말하는 것 자체가 사회의 거부 반응을 일으킨다면, 그는 진실을 드러내는 일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시작할 수밖에 없다. 혹은 그가 자신의 삶과는 다른 글을 씀으로써 삶을 확장시키려는 시도를 했다면, 그것은 삶에 대한 거짓말이 아니라 삶으로부터 시작한 ‘거짓말인 진실’일 수도 있다. 우리는 모두 거짓말을 한다. 글을 쓰면서는 더 많은 거짓말을 한다. 글로 구현된 ‘나’는 이미 내가 아니라 나로부터 기원한, 나보다 조금 더 낫기를 바라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거짓말들을 우리의 상像으로 삼는다. 어쩌면 우리는, 이 철학자들처럼, 모두 거짓말을 향해 나아가는 진실한 인간들일지도 모른다. - 김겨울 (작가, 유튜브 [겨울서점] 운영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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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사람과 사유하는 사람은
같은 사람이 아니다 거짓말이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에 반대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거짓말은 인간 삶의 본질을 함축하고 있다는 사실도 떠올려 보아야 한다. 인간관계, 정치, 문학 등 방대한 허구의 목록에서 사람들은 흔히 철학을 빠트린다. 프랑수아 누델만은 충격적인 실례들을 보여 주면서 이런 생각이 틀렸음을 입증하고 있다. 이 흥미로운 책에서 누델만의 섬세함이 돋보인다. 그는 누구도 비방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애써 모른 척해 온 사실, 즉 철학적 진실 역시 허구라는 사실을 환기시키고자 한다. 철학적 진실은 그것을 만들어 낸 사람의 삶과 우회적인 방식으로 복합적이고 교묘한 관계를 맺는다. 거기에는 부인, 환상, 정직, 회피가 뒤섞여 있다. 자신이 상상하는 세계가 틀림없이 존재한다고 확신하는 이상하고 강력한 성향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과 사유하는 사람은 정확히 같은 사람이 아니다. 둘 사이에는 창의적인 비틀림이 있다. 이 사실을 놓친다면 커다란 실수가 될 것이다. - 로제 폴 드루아 (철학자, 『걷기, 철학자의 생각법』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