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침략 이데올로기의 오랜 뿌리: 1,300년의 역사전쟁
일본은 언제부터 한반도를 침략했을까 600회가 넘는 왜구의 침략 임진전쟁의 전조 삼포왜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망상과 일본의 조선 침략 조선의 국토를 다시 유린하다 닥치는 대로 노예를 사냥하다 무참한 살육과 야만적인 코베기 불타는 도시, 빼앗긴 문화재 도자기전쟁: 첨단 하이테크 기술을 탈취하라 주자학을 전한 프로메테우스 포로 유학자들 전대미문의 국서 개작 사기극 정한론의 뿌리는 황국사관 조선의 개국을 윽박지른 운요 호의 도발 선전포고 없는 전쟁: 동학농민군 토벌작전 궁궐에 침입해 왕비를 시해하다 불법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다 모조리 불사르고 모조리 살육하라 군대를 앞세워 국권을 탈취하다 평화시위를 총칼로 진압하다 아비규환의 간도 조선인 학살극 간토 대지진에서 촉발된 광란의 살인극 황민화 정책과 민족말살 강제징병,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사람들 꽃다운 처녀들, 일본군의 성노예가 되다 영토침략 야욕은 계속되고 있다 |
李相
이상의 다른 상품
|
한국인의 반일감정을 ‘종족주의’라고 비하하는 연구자들이 갈채를 받는 세상이다. 그들의 논지에 따르면 일본의 식민지배는 우리에게 축복이었던 셈이다. ‘식민지 근대화가 아니면 무슨 근대화’냐고 정색하며 물으니. 조선인 노무자 강제징용설은 허구이고, 일본군 위안부는 자발적 매춘부였다는 주장도 서슴지 않는다.
--- p.5 한국과 일본은 일종의 역사전쟁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그것도 물경 1,300년에 걸친. 개작과 왜곡으로 점철된 것이라 할지라도 가공의 이야기들이 금과옥조로 받아들여지는 순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도 강압적인 한일병합도 모두 정당화된다. 한일병합 시기를 전후해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가장 빈번히 소환된 인물이 임신한 몸으로 신라를 정벌했다는 황당무계한 전설의 주인공 진구황후라는 사실을 한 번쯤 의미있게 상기할 필요가 있다. --- p.8 하치만 신앙의 확대와 함께 진구 황후의 ‘신라 정벌 전설’은 민간 속으로 널리 퍼졌으며, 그 영향력은 지금도 작지 않다. 후쿠오카 시에 자리한 가시이구香椎宮라는 신사에는 진구황후가 심었다고 하는 삼나무가 전해올 정도다. 가공의 이야기가 역사가 되고 신앙이 되어 왜곡된 역사인식을 증폭시키고 있다. --- p.20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이 패망한 다음 황국사관도 함께 폐기되었다. 그 가운데 가장 먼저 배제된 것 가운데 하나가 진구 황후의 이야기다. 그렇다고 역사전쟁의 종착역에 다다른 것은 아니다. 가공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진구 황후의 전설이 마치 역사적 실체인 양 아직도 많은 일본인들의 의식 속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툭하면 터져 나오는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 또한 같은 맥락이다. --- p.24 우리 민족은 900회가 넘는 외적의 침입을 받았다. 누구라도 한반도의 북 변경이 이민족 침입의 주무대였다고 생각할 것이다. 놀랍게도 그게 아니다. 숫자로만 본다면 절대다수의 침입은 일본이 저질렀다. 이른바 왜구倭寇라고 알려진 집단이 고려시대 후기와 조선시대 초기에 걸쳐 쳐들어온 것만도 648회나 된다. --- p.36 일본에서 온갖 상인들이 건너왔는데, 그 가운데는 인신매매상도 있었다. 그들은 일본군의 뒤를 따라다니며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사람을 사서, 목에 노끈을 옭아매 한데 모은 다음 앞으로 몰고 갔다. 제대로 걷지 않으면 뒤에서 몽둥이를 곧추세워 매질해대는 모습이 마치 저승사자가 죄인을 다루더라도 이처럼 심할 것인가 하고 생각되었다. --- p.84 일본군은 성안의 백성들을 닥치는 대로 살육하였다. 당시 종군승려로 참전하였던 게이넨은 자신의 일기에 성 밖을 돌아보니 길바닥에 죽은 사람이 모래알처럼 널려 있어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었다고 그 참상을 기록하였다. --- p.95 일본 병사들은 죽은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코를 베었다. 일본군은 죽은 조선 병사들만이 아니라 코를 얻기 위해 노인과 부녀자를 습격하여 전과를 부풀렸다. 갓 태어난 아기조차 가리지 않고 죽이고 코를 잘라 갔다. 장수들은 부하들이 베어 온 코를 확인한 다음 영수증을 써주었다. 코베기는 전공의 징표가 되었다. 한데 모인 코는 소금과 석회에 절여 큰 통에 담았다. 방부 처리된 코는 배에 실어 도요토미 앞으로 전달되었다. --- p.96 『조선정벌기』에 따르면 가토 기요마사의 군대는 하룻밤 사이에 경주를 모조리 불살라버렸다고 한다. 3만 채가 넘는 가옥이 소실되었다. 일본군은 불타는 도시를 돌아다니며 닥치는 대로 문화재를 약탈하였다. 참전한 장수들도 서로 앞다투며 조선의 문화재를 약탈해 일본으로 반출하였다. --- p.105 에도 시대 후기에 이미 국학자들은 일본을 신국神國으로 여기고 주변국을 멸시하는 황국사관을 주창하였다. 이들의 역사인식의 바탕에는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왜곡된 고대의 전승이 자리하고 있다. 야마토 정권이 옛날에 조선을 지배했기 때문에 조선 침략이 정당하다는 논리다. 요시다 쇼인의 ‘존왕양이’尊王攘夷, ‘일군만민’一君萬民 사상은 천황을 중심으로 한 근대국가를 세우자는 대의명분의 근거가 되었다. 그의 제자들이 메이지 유신의 주체가 됨으로써 그의 정신은 후대의 정치가들에게 이어졌다. 조슈 출신의 정치가들은 지금까지도 일본 정계에서 가장 큰 인맥을 형성하고 있다. 아베 총리도 조슈 출신이며, 그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바로 요시다 쇼인이다. --- p.153 일본군은 동학농민군에 대한 무자비한 압살에 나섰다. 중국 땅으로 전장을 옮겨 청일전쟁을 수행중이던 일본에 동학농민군은 후방을 교란하는 위협요소였다. 일본은 2천여 명에 이르는 진압군을 조직하였다. 동학당을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죽여 없앤다는 게 일본정부의 입장이었다. --- p.171 나는 이제까지 그토록 심한 참사를 본 적이 결코 없었다. 한 달 전만 해도 사람들이 붐볐고 풍요했던 마을이 이제는 은 잿더미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벽, 기둥, 장독, 그 어느 것도 성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여기저기에는 값나가는 물건을 찾기 위해 잿더미를 뒤적이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부질없는 일이었다. 이제 제천은 지도상에서 없는 마을이 되었다. --- p.206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에서 연이어 참패를 당한 일본군은 이성을 잃었다. 그들은 애꿎은 간도 주민들에게 화풀이를 하였다. 일본군은 간도 일대의 조선인 마을을 돌아다니며 마을을 불태우고 무차별 학살을 자행하였다. 수개월에 걸쳐 아비규환의 생지옥이 펼쳐졌다. 백운평마을에 사는 남자는 젖먹이까지 모두 학살당하였다. 곳곳의 조선인 마을에서 남자들은 총이나 창으로 참살당하고, 부녀자들은 겁탈당한 후 살해되었다. 일본군은 심지어 두세 살짜리 어린아이를 창끝에 꿰어 들고 울부짖는 비명을 즐겼다. --- p.241 근대법 체계 속에서 일본이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조선의 영토주권을 명시적으로 승인한 역사적 사건은 1877년의 태정관지령이다. 일본 정부는 17세기 말 조선과 일본 사이에 전개된 울릉도쟁계 자료를 비롯한 방대한 자료에 대한 검토작업을 벌였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영토라는 것이었다. 태정관지령은 관보에 해당하는 태정류전太政類典에 올려 공시되었다. 이로써 울릉도쟁계를 통해 확정된 조선과 일본간의 국경 문제에 대한 합의는 일본 메이지 신정부의 최고국가기관에 의해 다시 한 번 확인되었다. 입법, 행정, 사법을 통할하던 태정관의 지령은 일본 국내적으로뿐 아니라 국제법상으로도 중대한 의미를 갖고 있다. --- p.300 |
|
한국과 일본은 1,300년에 걸친 역사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일본은 고대에 자신들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고 주장하는데, 그 유력한 근거로 거론되는 것은 『일본서기』 진구 황후神功皇后조의 날조된 기사다. 이같은 황당무계한 내용을 마치 역사적 사실인 양 동경제대를 비롯한 모든 학교에서 가르쳤다. 지금은 학계의 정설에서 밀려났다지만, 지금도 여전히 버전을 달리한 채 비슷한 내용이 일본의 여러 교과서에 실려 있고, 진구황후를 제신으로 하는 하치만 신앙과 결부되어 세속에 널리 퍼져 있다. 임진전쟁 때도 정한론 논쟁 때도 한일병합 때도 틈만 나면 소환되어 일본의 한국 침략을 전당화한 게 진구황후 전설이다. 삼국시대 일본의 신라 침공에서부터 여말선초의 수백 회에 걸친 왜구의 침공을 거쳐 근대 일본제국주의의 침공시기까지 그같은 날조된 전승과 역사인식이 어떻게 재생산되며 작동했는가를 세부 주제에 대한 천착과 더불어 살피는 게 이 책의 핵심주제의 하나다.
삼포왜란에서 그 전조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 우리 역사상 최대의 비극 임진전쟁은 전쟁사적 측면에서뿐 아니라, 노예 사냥,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적 코베기, 문화재 약탈, 하이테크 도자기술의 유출, 주자학의 일본 전래, 전쟁후 국교 재개과정에서 발생한 희대의 국서개작 놀음사건까지 다양한 맥락에서 입체적으로 들여다본다. 이어서 정한론 논쟁에서 촉발되어 군대를 동원한 무력시위로 불평등조약을 강요하고, 동학농민군 학살, 명성황후 시해, 군대 해산과 의병에 대한 무차별적 섬멸을 거쳐 마침내 총칼을 앞세워 국권을 탈취한 일본제국주의 식민침탈과정을 추적한다. 일제강점기에 대한 접근은 제암리학살을 비롯한 삼일운동시의 양민학살사건, 청산리전투 이후의 간도 조선인 학살극, 간토대지진 조선인 집단살인 같은 일본정부가 주도한 살인범죄와 징병, 징용, 위안부 강제연행 같은 국가범죄를 중심으로 그 실체를 해부한다. 황국사관은 아직 폐기되지 않았다.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과 보수우익뿐 아니라 다수의 일본인들도 역사적 책임을 회피하는 ‘무의식적 식민주의’에서 여전히 헤매고 있다. 일본제국주의가 저지른 범죄에 대한 불감증과 우리 영토인 독도에 대한 영토침략 야욕을 보면 그것은 자명하다. 이 책은 일본학자들의 글을 원용해 논거의 객관성을 높이려 하였을 뿐 아니라, 새로 발굴된 자료를 포함한 100매 이상의 사진/그림 자료를 통해 시각적 설득력을 제고하였다. |
|
한국과 일본 사이의 불편한 관계는 참으로 뿌리가 깊다. 이 책의 저자는 한 발을 시민사회에 딛고 있으면서도 오랫동안 한일관계사를 탐구해왔다. 그렇기에 한일관계라면 왜 일반시민이 늘 화가 나 있는지, 무엇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를 충분히 포착하고 있었다. 그는 이 책에서 그 뿌리가 식민지근대화론이라는 이름으로 식민 피해자에게 주홍글씨를 새긴 ‘반일反日 종족주의’가 아니라 지난 2000년간 일본이 일관되게 보여 온 ‘반한反韓종족주의’였음을 정확히 집어내고 있다. - 최병현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숭실대 명예교수)
|
|
저자는 역사학자가 되고 싶었지만 우리 시대 민주화의 흐름을 외면할 수 없었고, 감옥에서 젊은날을 보내야 했다. 그러다 역사의 바다로 다시 뛰어들어 이 책을 펴내게 됐다. 저자는 일본의 심장부로 들어가 면밀히 관찰한 뒤 일본의 ‘한반도 침략' 본질이 무엇인지 깨달았다고 한다. 그리고 일본의 침략 의도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앞으로의 한일관계를 개선하는 기반이 된다고 보고 있다. 이 책은 아직도 친일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친일파 후손들이 득세하는 우리 사회에 던지는 통렬한 메시지이자 평화로운 동아시아의 미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첩경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시대에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 김준혁 (한신대 평화교양대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