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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이 책을 읽는 분에게 5

주요 등장인물 7
제1부 11
제2부 295

저자 소개 2

레프 톨스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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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v Nikolayevich Tolstoy,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러시아 툴라 지방의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고모 밑에서 성장했다. 1844년 카잔대학교에 입학했으나 대학 교육에 실망하여 삼 년 만에 자퇴하고 귀향했다. 고향에서 새로운 농업경영과 농민생활 개선을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하고, 1851년 큰형이 있는 캅카스로 가 군대에 들어갔다. 1852년 「어린 시절」을 발표하고, 네크라소프의 추천으로 잡지 〈동시대인〉에 익명으로 연재를 시작하면서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는 한편, 농업경영과 교육활동에도 매진해 학교를 세우고 교육잡지를 간행했다. 1862년 결혼한 후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의 대작을 집필하
러시아 툴라 지방의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고모 밑에서 성장했다. 1844년 카잔대학교에 입학했으나 대학 교육에 실망하여 삼 년 만에 자퇴하고 귀향했다. 고향에서 새로운 농업경영과 농민생활 개선을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하고, 1851년 큰형이 있는 캅카스로 가 군대에 들어갔다. 1852년 「어린 시절」을 발표하고, 네크라소프의 추천으로 잡지 〈동시대인〉에 익명으로 연재를 시작하면서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는 한편, 농업경영과 교육활동에도 매진해 학교를 세우고 교육잡지를 간행했다.

1862년 결혼한 후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의 대작을 집필하며 세계적인 작가로서 명성을 얻지만, 『안나 카레니나』의 뒷부분을 집필하던 1870년대 후반에 죽음에 대한 공포와 삶에 대한 회의에 시달리며 심한 정신적 갈등을 겪는다. 1899년 발표한 『부활』에서 러시아정교회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1901년 파문당했다. 1910년 사유재산과 저작권 포기 문제로 부인과 불화가 심해지자 집을 나와 방랑길에 나섰으나 폐렴에 걸려 82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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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어과,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고, 공군사관학교 교관 및 서울대학교와 고려대학교의 강사,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및 서양어대학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한국노어노문학회 회장 및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로 있다. 역서로 『부활』, 『러시아 사상사』, 『안나 카레니나』, 『아버지와 아들 · 연기』, 『죄와 벌』, 『예술이란 무엇인가』, 『첫사랑』, 『악령』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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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10월 12일
쪽수, 무게, 크기
348쪽 | 153*225*30mm
ISBN13
9788963652962

출판사 리뷰

작가 톨스토이는 1828년에 태어나 1910년까지 82년간의 생애를 살다가 갔다. 그의 생애는 말할 것도 없이 끊임없는 자기변혁의 도정(道程)이었다. 때문에 톨스토이의 일생만큼 드라마틱한 생애도 없으리라 여겨진다. 그것은 수많은 변전과 기복의 연속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두드러진 것은 대학 중퇴, 카프카스 여행, 결혼, 『참회록』 집필, 가출(家出)의 다섯 가지 사건이다. 톨스토이는 부유한 백작령(伯爵領)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태어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두 살이 채 되기도 전에 어머니를 잃고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여의는 불운을 겪었지만, 물질적으로는 조금도 부족함을 몰랐던 어린 시절이었다.

당시 귀족의 습관에 따라 가정교사로부터 초등 · 중등교육을 받은 후, 1844년 카잔 대학의 동양어과에 입학했다. 이때 톨스토이의 나이 16세였다. 그것은 곧 누구나 의식적인 생활을 시작하고 아울러 최초로 인생의 위기에 직면하는 고뇌에 찬 나이이기도 했다. 유난히 다정다감한 톨스토이로서는 이 시기를 무사히 넘길 수 없었다. 쾌락만을 좇는 상류 사회와 틀에 박힌 대학 시험과 수업의 틈바구니에 끼여, 그는 ‘이래도 좋은가?’ 라고 몇 번이나 자문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톨스토이는 보통 청년들이 별 저항없이 받아들이는 상류 사회와 대학에 등을 돌리고, 일생을 좌우하는 굳은 결의를 하게 되었다. 1847년 봄, 그는 대학을 중퇴하고 도시의 상류 사회는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고향 야스나야 폴랴나로 돌아와 버린 것이다. 그것은 주위생활을 타성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이성과 의지에 따라 살아가려는 결의였다. 그리하여 이 결의를 굳혔을 때 톨스토이는 자기도 모르게 작가에의 제일보를 내딛기 시작한 것이다. ( 중략 )

톨스토이는 그의 만년의 모든 온갖 예술적 노력을 『부활』 한 편에 기울였다고도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한 귀족과 한 창녀의 넋이 갱생하는 과정을 주제로 삼고, 작가의 사상 · 정신 · 종교 예술의 일체를 구현한 결정이다. 때문에 『부활』은 『전쟁과 평화』가 그의 생애의 성숙기를 장식한 것처럼 그의 생애의 만년을 장식하고 있는 것이다. 평소 톨스토이와 견해를 달리했던 러시아의 사상가 크로포트킨조차도 『부활』에 대해서만은 “고희에 이른 노작가가 이 소설에서 보여준 정력과 젊음은 실로 경탄할 정도다. 가령 톨스토이가 『부활』 이외에 아무 작품도 쓰지 않았다손 치더라도 그를 대작가로 인정하는 데 손색이 없으리 만큼 이 작품은 고귀하고도 절대적인 예술성을 지니고 있다”고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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