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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가 집에 도착하니 대문이 열려 있었다. 침실로 들어갔지만 쥐 죽은 듯 고요했다. 그런데 침실의 자기 침대를 보니 아, 이게 웬일인가! 아내 옆에 한 흑인 남자가 누워 나란히 잠을 자고 있지 않은가!
이 광경을 본 젊은이는 이성을 잃었다. 그는 차고 있던 칼을 빼서 두 사람의 머리를 베어버렸다. 그리고 시신을 침대에서 끌어내려 집 안 한가운데로 가져 온 다음 흑인의 머리통을 아내의 몸통에, 아내의 머리통은 흑인의 몸통에 갖다 붙였다. 그리고 목소리를 높여 이렇게 읊었다. 여자들은 다 이렇구나. 정숙하고 순결한 척하고 신이 정한 계율에 따라 사는 척하지만, 여자들은 배고픈 개떼들이 달려드는 날고기와 같구나. 그대가 지키지 않으면 개떼가 갈가리 찢어 나눠 먹는다네. 오늘은 그대의 사람이 되어 그대와 인생을 함께하지만 내일이면 벌써 다른 사내와 놀아난다네. 여자는 집과 같구나. 비자마자 모르는 놈이 차지해버린다네. --- pp.12~13 왕은 궁으로 돌아와 후궁과 시녀들을 불러들였고 하나도 남김없이 모조리 머리를 베어버렸다. 흑인도 끌어내 죽인 다음 흑인의 머리통과 여인의 머리통을 집어 접시에 담아놓았다. 그리고 젊은이를 불렀다. 왕의 앞에 서서 두 개의 머리통을 본 젊은이가 물었다. “폐하, 이것이 무엇이옵니까?"” “흑인과 여인의 머리통이다.” 이렇게 대답한 왕이 시를 읊기 시작했다. 여자의 품은 말안장과 같구나. 그대가 타고 있을 동안만 그대의 것이다. 그대가 내려 한 걸음만 내디뎌도 당장 딴 놈이 올라타 몰고 가버린다. --- pp.19-20 왕은 한참을 홀로 지내다가 다시 여인을 가까이하였다. 그러나 어떤 여인이든 하룻밤만 같이 지내고 다음 날 죽여버렸다. 그러다보니 재상과 고관대작의 딸들까지 다 취하고 죽여버렸다. 그 나라의 대재상에게도 딸이 둘 있었다. 큰딸의 이름은 셰에라자드이고, 둘째딸의 이름은 디나르자드였다. 어느 날 왕이 그에게 말했다. “재상, 그대의 딸을 나의 아내로 주시오.” “그리 하십시오, 폐하.” 대재상이 대답했다. “제 딸과 그 동생은 폐하의 여인이옵니다. 오늘 밤 제 딸을 폐하께 보내겠나이다.” 해가 저물자 재상은 딸을 궁으로 데려갔다. 왕이 셰에라자드와 합방을 하고 그녀와 밤을 같이 지내면서 욕망을 만족시켰다. 그런 다음 그녀를 죽이려고 했다. 그런데 그녀가 그에게 말했다. “폐하, 내일 밤까지 저를 살려두신다면 폐하께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를 들려드리겠나이다.” --- pp.20-21 2010년 3월 14일 쥐트하이데도르프 베덴보스텔의 내 작업실로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건 사람은 베를린 마르틴 그로피우스 바우스의 프로그램 디렉터였다. 며칠 후 그곳에서 “아가 칸 박물관의 보물?이슬람 문화의 대작들”이라는 제목의 전시회가 열릴 예정이었다. 그녀가 내게 전화를 건 이유는 전시회 개막식에 쓸 음악 프로그램이 필요해서였다. 큰 고민 없이 나는 승낙을 했고 베를린의 류트 연주자와 약속을 잡고 내가 가지고 있던 이집트 플루트를 들고 베를린으로 출발하였다. 개막식을 마치고 처음 며칠 북새통이 지나가자 나는 조용히 전시회를 구경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 안달루시아 예술품 진열대에 다른 필사본들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 놓여 있던 한 필사본이 눈에 들어왔다. 붉은색 잉크에다 매우 고풍스러운 안달루시아 필체로 이런 제목이 쓰여 있었다. “Kitab fihi hadit mi at laylawa-layla(101야화).” 전시품의 표제를 보니 이 필사본은 13세기의 작품이었다. 온몸에 전기가 찌릿 흘렀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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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 섹슈얼리티, 몽환적 판타지와
시적(詩的)인 영감으로 가득 찬 매혹적인 이야기 2013년 라이프찌히 국제도서전 번역상 수상작 2010년 아랍학자 클라우디아 오트가 1234년에 탄생해 800년 동안 묻혀 있던 안달루시아의 『101야화(Kitab fihi hadit mi at laylawa-layla)』 필사본을 발견하면서 지금껏 알려지지 않았던 셰에라자드의 새로운 이야기가 비로소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백일야화』는 인도와 이란, 이라크, 시리아, 아라비아, 이집트 등의 갖가지 설화가 한데 어우러져 세상에서 가장 격정적이고 신비로운 이야기로 우리의 밤을 매혹한다. 이국의 환상적인 정취가 담긴 무대에서 우아한 기사와 꾀 많은 악한, 무시무시한 용과 아름다운 처녀, 유목민과 대재상 등 어떠한 역경에도 결코 좌절하지 않는 인물들과 기상천외하고 흥미진진한 모험이 선과 악을 넘어 농담처럼 던져주는 삶의 지혜를 만날 수 있다. 아무도 믿지 못하는 왕, 날마다 죽음에 맞서는 셰에라자드 ‘사느냐, 이야기냐!’ 백하룻밤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백일야화』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천일야화(1001夜話)』의 여동생 격인 소설이다. 하지만 『천일야화』의 전 단계나 요약본이 아니다. 두 작품은 독자적인 이야기이며 별도로 전승되었다. 그럼에도 자매라 불러도 좋을 만큼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바로 ‘틀 이야기’라는 기본 형식이 둘의 공통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틀을 재상의 딸 셰에라자드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들이 채우고 있다. 심지어 이야기 속의 인물들도 이야기를 하고, 그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등장한다. 마치 인형 안에 더 작은 인형이 겹겹이 들어 있는 목각 인형 같은 구조다. 그런 의미에서 이 두 작품에 일관된 ‘사느냐, 이야기냐!’의 원칙이야말로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든 끝없이 듣고 싶어 하고 말하고 싶어 하는 인간, 그리고 이야기의 불멸성을 여실히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밤) 이야기꾼이 전하기를, 그날 밤 왕이 와서 봉인을 뜯고 처녀와 잠을 잤다. 약속한 시간이 되자 디나르자드가 셰에라자드에게 외쳤다. “오, 나의 언니 셰에라자드, 우리의 주인이신 폐하께 언니의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드리세요.” “그러자꾸나.” 언니가 대답했다. 그렇게 하여 셰에라자드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 (아침) …… 여기까지 이야기를 마치자 동이 텄다. 셰에라자드는 이야기를 멈추고 입을 다물었다. 왕은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재미난 이야기에 홀딱 마음을 빼앗긴 터라 문을 걸어 잠그고 반지로 봉인을 한 다음 집무실로 갔다. 아내의 배신으로 인해 인간성을 잃어버린 왕이 처녀와 하룻밤만 보내고 목숨을 빼앗기를 반복하다가 현명한 처녀로부터 매일 밤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트라우마를 치유해간다는 익숙한 설정은 위의 예시처럼 101일 동안의 밤과 아침마다 되풀이되는 판에 박은 듯한 문장 표현에도 불구하고 점점 흥미와 긴장감을 더해간다. 이는 『백일야화』가 갖고 있는 독특한 중독성이다. 마치 짧은 후렴구와 반복되는 가사로 흥겨움을 주는 후크송 같다. 낭만적인 장면은 영화음악처럼 아름다운 시로 장식되고, 일생일대의 결전은 ‘가장 아름다운’, ‘최고의 아침’을 배경으로 삼는다. 밤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상황에서 이야기는 중단되고 그럼에도 늘 해피엔딩이 보장된다. 현대적 기준의 정치적 올바름이나 치밀한 개연성은 존재하지 않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 책은 낭만에 관한 이야기이자, 이야기의 낭만을 보여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언론 추천평 마침내 『백일야화』가 세상에 나왔다. 그 놀라운 탄생과 그에 참여한 인물들만으로도 멋진 소설 한 편을 쓸 만한 책이 말이다. 하지만 얼른 책을 펼치고 싶지가 않다. 보고만 있어도 아름답기 때문이다. 손가락 끝으로 겉장을 쓰다듬고 싶다. …그러다 책장을 펼쳐도 그 황홀함은 식지 않는다. 사자에 올라탄 처녀, 낙원 같은 정원을 헤매는 용감한 기사, 달처럼 아름다운 왕의 후궁들이 살아 움직이듯 다가온다. 그러니 어찌 이 책을 선물할 수 있으랴. 절대 남에게 주지 않으리라. 얼른 읽고, 읽고 나서도 오래 간직하리라. _[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존탁스차이퉁(Frankfurter Allgemeine Sonntagszeitung)] 『백일야화』는 제 스스로 빛을 내는 엄청난 매력을 가진 독자적인 작품이다. _[쥐트도이체 차이퉁(Suddeutsche Zeitung)] 연대표 서기 250년 이전 틀 이야기의 모티브, 특히 ‘거울아, 벽에 걸린 거울아’ 모티브, 여자에게 기만당한 두 남자, 아름답고 총명한 이야기꾼 여성 인물, 목숨을 구하기 위한 이야기 등의 모티브가 고대 인도의 설화문학에서 탄생하다. 서기 500년~ 이들 모티브가 팔라비, 즉 이슬람에 정복당하기 이전의 이란 언어인 중세 페르시아어로 전승되었고, 페르시아 이야기들과 결합되면서 더욱 풍성해졌다. 『헤자르 아프산(Hezar afsan)』(천 개의 모험 이야기)이 탄생하다. 632년 선지자 무함마드가 세상을 떠나다. 633년~ 아랍군이 사산왕조의 페르시아령 메소포타미아와 비잔틴 치하의 팔레스타인과 시리아를 공격하다. 비잔틴(636년, 야라무크 전투)과 페르시아(636년, 카디시야 전투)가 패배하다. 639~642년 아랍인들이 이집트를 정복하다. 그 후 북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서쪽으로 아랍의 세력이 급속도로 팽창하다. 아랍어로 ‘서방’과 ‘일몰’을 의미하는 ‘마그리브’라는 표현을 빌려 이후 베르베르족의 고향을 ‘알 마그리브 알 아크사’, 즉 ‘머나먼 서쪽’이라 불렀다. (현재의 알 마그리브는 모로코의 아랍식 이름이다.) 711~716년 베르베르족의 장군 타리크 이븐 지야드가 지휘한 아랍군이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공격하여 피레네 산맥까지 서고트 왕국을 정복하다. 그 후에도 산발적으로 프랑스를 공격하다. 756년 우마이야 왕조의 왕자 아드 알 하르만 1세가 코르도바 태수령을 건설하여 ‘알 안달루스’의 이슬람 지배를 공고히 하다. 800년경 바그다드로 추정되는 아랍의 동쪽에서 중세 페르시아어의 『헤자르 아프산』을 아랍어로 번역하다. 이슬람의 어법과 인용문을 첨가하고 아랍문헌들의 우화, 모티브, 이야기들을 추가하여 더욱 풍성한 이야기 모음집 『알프 라일라(Alf Layla)』(천일 밤)가 탄생하였다. 8~10세기 북아프리카의 정치적 격변기. 이드리스 이븐 압둘라가 페스를 수도로 하여 최초로 독립된 이슬람 국가를 오늘날의 모로코 땅에 세우다. 오늘날의 튀니지에는 아글라브 왕조가 들어섰지만 909년 강력한 파티마 왕조에 무너졌으며 973년에는 다시 자이리 왕조가 권력을 장악하였다. 850년경 『알프 라일라』의 가장 오래된 필사본 원고(소위 ‘시카고 필사본’)가 탄생하다. 아랍문학에서 최초로 『알프 라일라』가 언급되다. 900년경 『미 아트 라일라 와-라일라(Mi at layla wa-layla)』(101야화)가 스페인 혹은 북아프리카에서 탄생하여 서쪽 지역으로 보급되다. 1031년 코르도바 칼리프령이 무너지고 ‘타이파 왕국들’이라 불린 군소 왕국들이 탄생하다. 1086년~ 알모라비(물라비트) 왕조가 북아프리카에서 알 안달루스를 침공하다. 1147년 알모라비 왕조에 이어 더 급진적인 이슬람 알모하드(무와히드) 왕조가 이슬람 세계의 서부 전체를 지배하다. 1150년경 아랍식 작품명 『알 라일라 와-라일라』가 카이로의 한 유대인이 쓴 노트에 처음으로 언급되다. 1198년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서양에 전달한 스페인-아랍 학자 아베로에스(이븐 루쉬드)가 사망하다. 1212년 레콘키스타(이슬람에 대항한 기독교도의 국토 회복 운동). 라스 나바스 데 콜로사에서 기독교군이 알모하드 왕조를 무너뜨리다. 1230년 무함마드 유수프 이븐 아스르 1세가 그라나다에 나스르 왕조를 세우다. 1234~1235년 알 안달루스의 무함마드 이븐 아비 바크르 아즈 주흐리가 필경사 압둘라 이븐 아브드 알 마울라 안 나굼에게 의뢰하여 특색 있는 알 안달루스와 마그레브 서체로 『백일야화』와 『지리책』을 기록하게 하다. 1235년 아라곤의 야곱 1세가 이슬람이 지배하던 이비자와 포르멘테라를 정복하다. 이 해는 또 ‘마인츠 평화령’이 발표된 해이며, 황제 프리드리히 2세가 십자군을 일으킨 기간이다. 1236년 기독교인들이 코르도바를 재정복하다. 1250~1517년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가 오늘날의 이집트, 시리아, 레반트를 지배하다.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시기여서 문화가 꽃을 피웠다. 13세기 칭기즈 칸이 몽골을 통일하고 세계제국을 건설하여 중앙아시아, 페르시아, 메소포타미아, 아나톨리아 지방을 정복하다. 이 과정에서 많은 아랍 동부의 문화유산과 필사본들이 훼손되었다. 몽골족이 바그다드를 정복하고 마지막 칼리프가 사망하다. 1450년 이후 지금까지 가장 오래되었고 내용도 풍부한 『알 라일라 와-라일라』의 필사본 [갈랑 판본]이 탄생하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족에 정복당하다. 1492년 기독교인들이 그라나다를 재정복하다. 약 800년에 이르는 아랍-베르베르 및 모로코의 지배가 끝나다. 1500년부터 오스만 제국의 승전 행렬. 1514년에는 페르시아의 사파비 왕조를 물리쳤고 1516년에는 시리아와 이집트를 정복하였다. 북아프리카 알제리(1520년), 트리폴리타니아(1566년), 튀니지(1583년)는 터키의 파샤(오스만의 문무 고급관료)들이 지배하였다. 모로코만 유일하게 오스만의 지배를 받지 않았다. 1614년 이베리아 반도에서 스페인군이 이슬람인들을 완전히 추방하다. 레콘키스타가 끝나다. 1650년경 오스만의 작가 하기 할리파의 아랍어 서지학 사전 『카스프 아즈 주눈』에 유일하게 『백일야화』가 언급되다. 1704~1717년 『알프 라일라 와-라일라』의 [갈랑 판본]이 대폭적인 수정작업과 다른 문헌을 통한 보완 작업을 거쳐 프랑스어로 번역되다(『Les Mille et Une Nuits』). 1706년 [갈랑 판본]이 독일어로 번역되다. 이후 다른 유럽 언어로도 번역되었다. 1776년 『백일야화』의 필사본이 탄생하다. 1798~1801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이집트 원정. 1830년 프랑스의 알제리 점령. 1870년~ 유럽의 북아프리카 식민지화가 시작되다.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이 북프랑스를 분할하다. 1911년 파리에 보관된 『백일야화』의 또 다른 19세기 필사본을 모리스 고드프로이-데몸비네스가 프랑스어로 번역하다(『Les Cent et Une Nuits』). 1920년경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근동과 중동이 정치적으로 재편되다. 시리아와 레바논은 잠시 프랑스의 지배를, 이집트와 팔레스타인, 이라크는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1945년 이후 북아프리카의 독립운동이 거세지다. 유럽 식민주의가 종식되고 각 국가들이 주권을 회복하였다. 1979년 튀니지의 아랍학자 마흐무드 타르수나가 최초로 18세기와 19세기의 필사본을 근거로 『백일야화』를 발행하다. 1984년 이라크의 아랍학자 무흐신 마흐디가 [갈랑 판본]을 근거로 『천일야화』의 첫 비평판을 출간하다. 2005년 스페인에 보관 중이던 1234~1235년 작품인 『백일야화』와 『지리책』 모음집 필사본을 1988년 제네바에 설립된 아가 칸 문화재단이 런던에서 경매로 구입하다. 알제리 문예학자 수라이비트 아흐마드 수라이비트가 알제리에 보관 중이던 19세기 필사본을 근거로 『백일야화』 아랍판을 출간하다. 2010년 클라우디아 오트가 아가 칸 박물관의 전시회 개막식에서 아카 칸 필사본을 발견하다. 2013년 아카 칸 필사본의 한국어 번역판 『백일야화』가 발행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