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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나는 사람이 아니라 조개일지도 몰라
희석
발코니 2020.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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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 모래 위 발자국과 그 안의 덫
버려야 할 것들
배녀주의
사랑 뒤에 가려진 것들
검은 비둘기
밤의 해변에서 혼자 사라져라
꿈 속의 검은 꿈
서정적인 이빨들
깨끗한 자격
섭섭한 사람들
가장 평범한 얼굴
비겁한 무죄
마지막 메시지

* 눈에서 파도가 쏟아지던 날들
있는 그대로 늙는 행복
희희(熙喜)
무한한 공간 저 너머로
남는 장사
나대는 남자들
지나간 문장
캡틴 명자
2분의 1티스푼 만큼의 커피
연고 같은 영화
유치하게 늙어버린 남자들
그늘막을 걷어내면
기억을 붙잡아두는 방법
식칼 같은 사람

* 팝콘에 앉은 바닷바람
‘가족’이라는 단어가 빚는 비상식
영원한 햇살 아래, 서글픈 오케이
권위적인 남자들의 권위적인 개소리
지구에서 여성과 아동으로 살아남기
유물처럼 묻어뒀던 사랑과 용기

* 다정하고 서늘하게 배운 것
사진이 참 예쁘네요
글쓰기의 기쁨과 슬픔
A씨
사람들이랑 섞이고 싶은데 섞이기 싫어
유기농 KENZO
작고 좁은 종착역
비상등 인간
반복 불능 상태

저자 소개 1

주민등록상 이름은 ‘안희석’이지만, 태어나자마자 강제로 부여받은 부계의 성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에 행정 서류가 아닌 곳에는 ‘희석’만 쓰고 있다. 신문사와 시청과 기업과 정당 등에서 글을 쓰며 생활비를 벌었고, 이제는 이 책의 발행처인 독립출판사 ‘발코니’를 운영한다. 『권력냠냠』, 『우리는 절망에 익숙해서』, 『우주 여행자를 위한 한국살이 가이드북』 등을 썼고, 『1인 출판사의 슬픔과 기쁨』, 『로컬 라이프 트렌드』 등에 공저로 참여했다. 매주 금요일 아침 8시, 이메일로 「희석된 일주일」을 발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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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11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160쪽 | 198g | 115*188*10mm
ISBN13
9791196654764

책 속으로

누구든 흔적을 남긴다. 어떤 흔적은 유리컵에 묻은 지문처럼 가볍게 남기도, 어떤 흔적은 엉덩이가 꼭 맞도록 소파 모양을 잡아주기도 한다. 그러나 또 어떤 흔적은 당장 모든 걸 불태우고 싶을 만큼 절망을 심어놓는다. 나는 내 집을 모두 불태우는 상상을 자주 했고, 그래서 더욱 타인과의 거리를 조심스럽게 넓혔다.
--- 「인사말」 중에서

한 동창 남성은 무슨 일이 있어도 통장에 1백만 원을 꼭 남겨두는 철칙이 있었다. 애인이 있으면 특히나 더 그랬다. 이유는 간단하다. 본인은 섹스할 때 절대로 콘돔을 안 끼니까 혹시나 애인이 임신하면 낙태 비용을 내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 생각을 오래도록 품을 수 있는 이유는 대한민국 남성 대부분이 인공임신중절을 ‘간단’하고 ‘돈만 있으면 가능한 시술’ 쯤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 p.17, 「배녀주의」 중에서

n번방 분노는 면죄부가 아니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n번방에 들어가지 않았거나 이 사건에 대해 화가 난다는 이유만으로 본인은 ‘괜찮은 남자’라 생각하는 한국 남자들이 없기를 바란다. 당연한 이유만으로 괜찮은 남자가 된다면, 한국 남자의 인간성 기준은 얼마나 하향평준화 돼 있단 말인가.
--- p.41, 「가장 평범한 얼굴」 중에서

시골 논두렁에는 가로등을 놓지 않는다. 가로등의 환한 빛 때문에 벼가 밤낮을 구분하지 못하면, 쭉정이를 만들어낸다고 한다. 이삭 껍질을 깠는데 속이 텅 비어있는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영원한 햇살이 내리쬔다면 슬프고 후회할 겨를이야 없겠지만, 속이 텅 빈 채로 자라 아무런 발전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밤에 웅크린 덕분에 다음 날 뜨는 태양 아래서 우리는 조금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다.
--- p.99, 「영원한 햇살 아래, 서글픈 오케이」 중에서

출생 날짜와 오늘이 멀어질수록, 낯선 사람과 가까이 지내기 힘들어졌다. 예전엔 그래도 낯 가리지 않는 척이라도 하며 너스레 떨었는데, 이젠 그것마저 포기했다. 말보다 글이 편해서 글로 먼저 친해진 사람들은 조금 낫다. 복잡한 성격 때문에 대학 땐 그 흔한 MT 한번 가지 않았다.
--- p.136, 「사람들이랑 섞이고 싶은데 섞이기 싫어」 중에서

단 한 번의 에너지 폭발은 중요하지 않다. 소소하고 꾸준한 에너지가 쌓여야 무엇이든 발달한다. 이 책은 매일 반복 불능 상태까지 갔던 결과다.

--- p.147, 「반복 불능 상태」 중에서

출판사 리뷰

무해한 불편, 낯선 연대로 전하는 진주 한 알

“나는 언제나 사람을 사랑한다. 그러면서도 사람과 섞이기 싫어하는 이 모순이 종종 지독해서 내가 밉다. 미울 때마다 글을 썼다.”
- 희석

조개처럼 온몸을 닫고 타인을 밀어내던 작가 ‘희석’의 신간. 기존에 활동하던 이름 ‘안희석’에서 ‘편안 안(安)’을 떼어내고 모든 불편함을 쓰기로 했다. 누군가에겐 무해하지만 누군가에겐 불편한 이야기, 낯설면서도 연대를 느낄 수 있는 문장이 《어쩌면 나는 사람이 아니라 조개일지도 몰라》에 담겨 있다.

이번 책에는 “평등한 세상을 바란다”라면서 정작 차별과 혐오를 지적하면 섭섭하다는 남자들, 그리고 그들이 만든 집단으로부터 밀려난 작가가 배우고 생각한 것들을 실었다. 38편의 글 속에는 텔레그램n번방부터 남성 중심 사법부 등 오늘의 화두를 비롯해, 타인에 대한 사랑과 용기, 장애와 비장애의 시선 간격 등 일상의 장면도 선명하게 기록돼 있다.

이 책은 희석의 두 번째 에세이임과 동시에 맑은 폭로이기도 하다. 불법촬영물을 옹호하는 동성 친구들에게 이별을 고한 기록 〈마지막 메시지〉, 생물학적 아버지에 대한 영원한 거부를 표현한 〈남는 장사〉, 타인과의 거리 조절을 그린 〈사람들과 섞이고 싶은데 섞이기 싫어〉 등의 글을 통해 투명한 마음을 모두 담았다.

이번 책을 통해 작가는 자신을 깎고 반성하며, 설득과 회유가 아닌 성찰과 고백으로 독자에게 다가간다. 또 한편으론 ‘2분의 1티스푼보다 더 큰 사랑(73쪽)’을 담겠다는 다짐, ‘사랑과 용기를 더 이상 유물처럼 여기지 않기로(123쪽)’ 하는 선언 등 희망을 붙잡는다. 외부 침입을 방어하다가 진주를 만들어내는 조개처럼, 작가는 타인과의 거리를 넓히려다 본인도 모르게 진주 한 알을 책으로 빚었다.

얼굴 위로 흰 천이 하나 더 씌워진 세상에서, 우리는 점점 더 조개처럼 서로의 몸을 닫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누군가와 연대하고 싶은 마음을 작은 진주알처럼 보듬고 있다면 지금, 《어쩌면 나는 사람이 아니라 조개일지도 몰라》를 건넨다. 조개처럼 여린 속을 품은 채 단단한 껍데기로 세상을 견디는 우리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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