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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소설가 계피 씨의 불효
나를 놓은 엄마에게 패밀리 어페어 죽어서도 외로우소서 열무 꽃 필 무렵 명복 그래서 나는 당신을 모르고 싶어요 반려 게이 탈출기 딸이라는 불치병 여자를 사랑한 딸이 있었네 엄마 뒷담화 대장정 효가 아니면 또 어떤가 불효가 약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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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강요하는 효도를 거부하면 늘 불효녀와 불효자 등 지긋지긋한 성별 이분법으로 호명당했습니다. 이 단어를 우리는 ‘불효꾼’으로 바꿔 부르려 합니다. 세간의 말에 자꾸만 미끄러지던 불효꾼들이 작은 축제를 엽니다. 착취, 폭력, 도청, 방임, 차별 등으로 가정이 곧 가시밭 같았던 우리는 이 축제에서 기지개를 켜고 자신의 목격과 경험을 부르짖습니다. 이곳은 온통 시끄럽고 뜨겁습니다. 이 사람들의 가족과 가정은 당신의 것과 매우 흡사할 것입니다. 또는 매우 다를 수도 있고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모두가 각자의 진실이라는 것입니다.
--- 「기획자의 말」 중에서 부모님을 형사고발하고 민사고소하였습니다. 부와 모, 둘 다 고소했습니다. 이유요? 간단합니다. 부모님이 올바른 인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 「친절한 소설가 계피 씨의 불효」 중에서 엄마를 안아주면서 나는 동시에 스스로를 안아주었어. 당신의 모든 손찌검을 묵묵히 받아내던 세 살, 여덟 살, 열세 살, 열아홉 살의 나까지 함께 끌어안았어. 그 어린아이들을 부둥켜안고 속으로 조용히 말을 건넸어. 우리는 살아남았어. 살아남아서 우리를 수차례 죽이려고 했던 이 사람을 완벽히 용서하지 못했는데도, 여전히 안아줄 수 있는 어른이 되었어. --- 「나를 놓은 엄마에게」 중에서 엄마를 때리려는 시늉을 하기에 식칼 손잡이를 잡았나? 그걸 보고 그가 다시 자리에 앉았던가? 아니, 나를 때리려 들었던가? 그래서 어금니를 꽉 깨물고 폭력을 맞이할 준비를 했던가? 그때 내가 쥐고 있던 게 휴대전화였나 주먹이었나? 기억을 정리하는 일에 끊임없이 실패한다. 이제는 단언할 수 있다며 자신하다가도 하룻밤 지나면 다시 기억을 재조립해야만 한다. 그에게 욕을 뱉는 동안 나는 산산조각 났다. --- 「패밀리 어페어」 중에서 친부는 그렇게 무연고, 시신을 거둬줄 사람 없는 채로 공영 장례식장에 건너갔다. 죽을 때도, 죽어서도, 앞으로 영원히 당신은 외로워야 한다. 외롭고 처절하게 울부짖다가 저승의 시간마저 무기력하게 보내길 바란다. 나는 다짐한다. 당신을 추모하지 않고 당신의 죽음을 영원히 비웃겠다. --- 「죽어서도 외로우소서」 중에서 인생 첫 기억을 누군가 묻는다면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 아마도 일단 다섯 살이었던 것 같고 추석인지 설날인지 아빠 제삿날 중 하나였을 거다. 어른들은 전을 부치고 있고 그 옆에서 사촌들과 음식들을 집어 먹고 있는데 현관문이 열리며 어떤 ‘아줌마’가 들어왔다. 내가 모르는 친척인가? 생전 처음 보는 긴 생머리의 아줌마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열무야 엄마야.” --- 「열무 꽃 필 무렵」 중에서 죽어야 끝난다. 둘 중 하나가 죽어야 끝난다. 세상에는 그런 관계가 있다. 그런 이야기가 있다. 때로 그것은 가족 간의 것이다. 아직 아무도 안 죽었다. 욕 한마디 나오기에 딱 좋은 타이밍인데 이번에도 참는다. 나는 그런 인간으로 자랐다. 그 정도로밖에 못 자랐다. ‘아빠가 죽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 그걸 정말 쓰고 싶다. --- 「명복」 중에서 애초에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엄마를 팔아먹는다는 것 자체가 불효지. 아니 그 전에 난 너무 큰 불효를 했어. 자살 시도라는 불효. 너무 피곤해. 엄마의 입장을 생각하려는 게. 엄마를 이해하려는 게. 엄마를 한 인간, 한 여자로 여기려는 게. 어려워. 나도 나를 모르는데 어떻게 엄마를 알 수 있겠어. 평생 이루지 못할 일을 할 바에 이기적으로 굴겠어. --- 「그래서 나는 당신을 모르고 싶어요」 중에서 퀴어는 태어날 때부터 죄를 짓는다고 들었다. 태어난 것 자체가 죄인 것이다.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걸까. 하지만 적어도 나의 세계에선 현실인 걸. 정말 아버지가 그렇게 생각하는지 안 하는지는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다. 내가 스스로를 불효막심한 자식이라 여기고 있다는 것. 그것이 중요할 뿐이다. 그러나 동시에 반발심이 들기도 한다. 내가 뭐 그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냐고, 나를 낳은 건 당신이지 않냐고, 나는 당신이 낳은 대로 태어났을 뿐이라고. 한참을 그렇게 중얼거려봐도 남는 건 내가 게이라는 사실이 전부였다. --- 「반려 게이 탈출기」 중에서 오빠의 주먹질은 한 번의 실수로 그치지 않았다. 그 장면을 다시금 마주했던 순간, 나는 조용히 112를 눌렀다. 집 안에 들이닥친 경찰들을 바라보던 엄마의 시선은 한순간 부풀었다가, 내게로 옮겨와 살기 어린 칼날이 되었다. 미쳤냐고. 오빠를 전과자로 만들 셈이냐면서. 폭행 가해자에게 닿았어야 마땅한 비난들은 모두 내게 날아왔다. 어안이 벙벙해진 내 곁으로 경찰들이 다가왔고, 엄마는 그들과 내 사이를 비집고 섰다. 아무 일 없었다니까 그러네! --- 「딸이라는 불치병」 중에서 집 밖의 집은 평화로웠다. 때로 걸려오는 전화는 순간순간 날 흔들어 놓았지만 점점 나의 뿌리를 옮겨갔다. S와 함께 사는 고양이 덕분에 매일 알레르기 약을 먹어야 했지만 그 어떤 방해물이 되지 않았다. 내가 그린 청사진에서 멀어질수록 평온해졌다. 그리고 당연히 이 사실을 엄마는 알아차렸다. 하지만 나에게 묻지 않았다. 알면서도 외면하는, 그 불편한 거리감. 그 거리감이 처음에는 내가 따낸 메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 「여자를 사랑한 딸이 있었네」 중에서 엄마가 내 딸을 예뻐할 때마다 속이 뒤틀린다. 딸들한테 치대는 것도 모자라 손녀에게까지 사랑과 관심을 갈구할 때면 신경질이 난다. 사랑을 베푸는 것이 아닌, 아이에게 사랑받고 싶어 안달 난 모습이 밉살스럽다. 손녀를 데려가서 종일 웃게 해주고, 옷장을 나르고 낡은 옷을 버려주고, 온갖 쓸데없는 동네 사람들 뒷담화를 들어주어도 나는 엄마를 활짝 웃게 할 수 없다. 엄마 마음에는 언제까지고 남동생 모양으로 구멍이 나 있고 그 커다란 구멍을 채우기에 나는 작고 보잘것없는 딸이니까. --- 「엄마 뒷담화 대장정」 중에서 엄마가 원하는 딸 노릇, 고모 노릇을 하는 것이 효도하는 것이 과연 맞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가 바란다고 퇴사를 안 하고 다니기 싫은 회사를 꾸역꾸역 다니는 일이 효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바꾸어 말하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를 발견하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 더 효에 가깝지 않을까? 이런 삶이 효가 아니라고 한다면 그것 또한 뭐 어떤가. --- 「효가 아니면 어떤가」 중에서 글을 쓰고 동생에게 한번 읽어달라고 했더니 눈물 흘리는 사진을 보내왔다. 우는 동생을 웃으며 놀렸다. 불효꾼은 웃고 있는데 네가 왜 우냐며. 세상의 모든 불효꾼들이 울지 말고, 웃었으면 좋겠다. --- 「불효가 약이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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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위해 우리는 불효를 선택했다.”
지긋지긋한 효도 강요 세상에 선사하는 열세 편의 불효 자랑집! 어려서부터 부대끼던 단어들이 있었습니다. 모성애, 든든한 아빠, 끈끈한 가족, 내리사랑 같은 것들. 가만 보면 쟤네 집도 엉망이고 얘네 집도 난장판인데 왜 다들 ‘그래도’인지 의아했습니다. 그래도 엄마니까, 그래도 아빠니까, 그래도 가족이니까. 살면서 우리는 아마 각자의 지옥에서 합리화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만하면’이라는 주문을 외우면서 말입니다. 그렇게라도 주문을 외우지 않으면 자고 일어나 하루를 시작할 수 없었을 테니까요. 그 때문인지 덕분인지 매일을 보태어 우리는 여기까지 자랐습니다. 자라는 동안 수많은 ‘그래도’와 ‘이만하면’에 배반당해온 작가 열세 명이 이 책에 모였습니다. 세상이 강요하는 효도를 거부하면 늘 불효녀와 불효자 등 지긋지긋한 성별 이분법으로 호명당했습니다. 이 단어를 우리는 ‘불효꾼’으로 바꿔 부르려 합니다. ‘꾼’은 어떤 일을 전문적으로 하거나 잘하거나 즐기는 사람에게 붙이는 접미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불효꾼이라는 단어에 담긴 뜻은 굳이 풀어쓰지 않아도 쉽게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세간의 말에 자꾸만 미끄러지던 불효꾼들이 작은 축제를 엽니다. 착취, 폭력, 도청, 방임, 차별 등으로 가정이 곧 가시밭 같았던 우리는 이 축제에서 기지개를 켜고 자신의 목격과 경험을 부르짖습니다. 이곳은 온통 시끄럽고 뜨겁습니다. 이 사람들의 가족과 가정은 당신의 것과 매우 흡사할 것입니다. 또는 매우 다를 수도 있고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모두가 각자의 진실이라는 것입니다. 당신과 같다면 함께 목 놓아 울어도 괜찮겠습니다. 다르다면 있는 대로 바라봐주세요. 불효꾼들이 어떤 불효를 구체적으로 행했는가 살피는 일은 크게 중요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미 『전국불효자랑』 집필에 참여했다는 것만으로도 불효를 행했다며 각자의 가정에서 손가락질할 테니까요. 예로부터 가정사를 바깥에 허락 없이 발설하는 행위를 큰 불효 중 하나로 여기는 한국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한편으론 모든 일을 겪고 찾은 배설 혹은 복수의 방식이 글쓰기라면, 그 또한 나름의 효도 아니겠어요? 그러니 결국 우리는 완벽한 불효에는 실패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아니 실은, 누구보다도 완벽한 효도를 해보고 싶었던 사람들일 테지요. 가족과 가정이 조금만 더 나았다면, 아니 세상이 완벽한 형태를 강요하지 않았더라면, 효도라는 개념이 애초에 없었다면 오히려 이 책이 만들어지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뭐, 어쩌겠어요?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고 우리는 더 만만치 않습니다. 불효하기 어디 쉬운 세상이어야 말이지요. 그 어려운 걸 열세 명의 불효꾼이 해냅니다. 대단히 대담한 이들의 자기고백을 당신께 보냅니다. 용기와 사랑 그리고 분노를 담아. _「기획자의 말」 전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