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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서울 퍼즐―잠수교의 포효하는 남자 분홍색 상의를 입은 여자 숨바꼭질 손수건 울음소리 소유의 문법 옐로 애도 해설/ 타자와의 동행―어떤 환대의 세계 박혜경 작가의 말 |
崔允, 최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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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즈음에서야 우리는 왜?의 부재, 그것이 바로 왜?의 답이라는 것을 감지했던 것 같다. 우리의 수사의 정열은 싸늘해졌다. 1년 넘게 지속된 불행의 강렬한 연대는 끝났다. 둘이 할 일이 없어 우리는 그와 나로 분리되었다. 서로 바라다보는 것은 물론, 상대편이 살아서 숨 쉬고 있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지훈이 대신 그가 살아남아 있는 것이 나는 부당했고 그것은 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동행」중에서 J,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 J, 네 덕분에 내 인생에 불필요한 것들이 다 쓸려가버렸으니 오히려 너한테 고맙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뭐가 고마운데요? 당돌하게 묻는 어린 소녀의 목소리 앞에 나는 자주 멈추어 선다. 물론 나와 그의 삶은 매일 오후에 거를 수 없는 산책처럼, 산책 후에 마주 앉는 차 마시는 시간처럼 달콤하지만은 않다. 그러나 황량하고 견고한 시멘트 바닥에 육체가 부딪치며 내는 둔중한 소리와 동행하는 사람에게 웬만한 쓴맛은 차 한잔에 넘겨버릴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운 것이 된다. ---「동행」중에서 연락 두절이 두려워 그 자리에 멈추어버렸던 시간과 공간…… 크고 작은 사건은 치통과 관계가 있다. 진통제의 용량을 가감해 통증을 잡는 곡예라면 달인이 되어 있다. 치통은 사랑과 관계가 있다. 고통은 치통과 관계가 있다. 사라진 식구의 실종을 신고하던 오래전 어느 날, 그때부터 치통이 시작되었다. 수년 후 먼 대륙에서 도착한 첫 편지로 치통은 악화되었다. 새로운 모든 사건 앞에서 치통은 재발한다. ---「서울 퍼즐」중에서 정지! 나는 자신에게 경고했다. 과장하지 말 것. 감각을 절제할 것. 나는 벌써 이성적으로 추론을 하기도 전에 K의 삶에 대한 가장 비극적인 시나리오를 머릿속으로 쓰고 있었던 것이다. 멀리 가지 말 것. 모르는 것에 대해 상상하지 말 것. 건물 옆을 지나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앉을 수 있는 그 의자에 한 여인이 앉아 있었다 해서 K일 리는 없지 않을까. K는 내가 살고 있는 곳을 알 리가 없다! ---「분홍색 상의를 입은 여자」중에서 가늘고 긴 남자의 두 눈이 앞에 앉은 나를 무심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의 시선을 받은 그 순간 나는 고개를 떨구고 울먹이기 시작했다. 이어 내 가슴 한구석에 억류되어 있던 흐느낌의 봇물이 터져 나왔다. 그건 갑작스럽게 일어난 사고 같은 거였다. 오열의 파도가 격정적으로 내 몸을 훑고 지나갔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소리를 죽이며 난생처음 마주 본 남자 앞에서 나의 안간힘에도 불구하고 솟구쳐 나오는 괴성과 함께 몸을 흔들며 흐느꼈다. 5분, 10분…… 시간이 흘러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고 나의 흐느낌은 정점을 향해 가듯 더욱 강렬해졌다. ---「손수건」중에서 정자에서 본 여인의 얼굴 중 무엇이 J를 생각나게 했을까. 그녀는 여인을 바라보며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에 놀랐다. 그리고 여인이 두 손가락으로 집어 목덜미에서 떼어낸 거미 한 마리. 벽돌과 같이 단단한 시간의 틈새를 비집고 잡초의 끈질긴 싹처럼 J에 대한 생각이 돋아나 있었다. 그래 저렇게 어딘가에서 미쳐 있을지도 몰라. 그래야 마땅하지 그 애는. 오랫동안 J를 떠올릴 때마다 던지던 질문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왜 그랬을까. J는 왜 그런 식으로 그 시간을 견뎠을까. ---「울음소리」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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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설명해낼 수 없는 상처와 고통,
그 아픔을 육체에 새긴 채 ‘겨우’ 살아가는 자들 어차피 빈 아파트일 바에야 아주 황량하게 비어 있는 것이 좋다. 이것이 그와 나의 공동의 취향이 되었다. 실내는 작은 부엌 쪽을 빼고는 완전히 비어 있다. 이 안에서는 모든 것이 ‘겨우’다. 부엌도 겨우 부엌의 면모를 갖추었고 침실도 겨우 침실을 닮았을 뿐. 응접실이라 부르기에는 너무 작은 그 공간에 소형 텔레비전 한 대가 ‘겨우’ 놓여 있다. 이것이 그와 나의 평화의 방식이다. ―「동행」 표제작 「동행」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열두 살 남자아이의 부모인 나와 남편을 중심인물로 한 소설이다. 자식을 잃고 하루아침에 하얗게 세어버린 남편의 머리칼처럼 나의 일상 역시 송두리째 뒤바뀌어버린다. 소설은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그 이유를 찾아 나서는 듯하다 이내 부부가 놓인 답답한 상황 자체에 주목한다. 최윤이 ‘왜’라는 질문에 명료한 답을 내놓지 않는 것은 부부가 아무리 매달려도 설득력 있는 답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지만 반백이 되어버린 머리칼처럼 육체에 남은 상흔과 함께 삶이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다라는 현실이 좀더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데에서 기인한다. 가슴에 사무치는 아픔을 간직한 채로도 일상은 계속 굴러간다. 대신 최윤의 인물들은 밖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최대한 단순하고 평평하게 만들어간다. 모든 것을 비워버린 뒤 겨우 삶이 유지되는 정도로만, 딱 그 정도로 삶을 가볍게 정리하는 것이다. 「서울 퍼즐」에서는 동생을 잃은 형이 등장한다. 그의 아픔은 한순간에 머리칼이 세는 것과 같은 극적인 변화를 동반하지는 않지만 오히려 치통과 같은 좀더 직접적인 고통으로 드러나면서 간헐적으로 그러나 점진적으로 그를 조여온다. 생생한 치통의 아픔을 새기면서 「서울 퍼즐」 속 형 역시 마치 자전거를 타기 위해 사는 것처럼 자전거 이외의 것들을 축소하는 방식으로 상실을 견디길 선택한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아픔을 짊어진 채 우리를 ‘다시’ 살게 하는 연대의 가치 K가 돌아왔다. 하강과 실추의 드라마를 온몸에 싣고. 궁금해하지 말자, 절대 내 입으로 질문을 던지지 말자!라고 나는 거의 입 밖으로 중얼거리다시피 다짐했다. 내 속에서 강렬하고도 끈질기게 일어나는 궁금증을 억누르고 나는 그녀를 보살피게 되었다. ―「분홍색 상의를 입은 여자」 극도로 쪼그라든 삶을 유지하는 작중인물들을 ‘다시’ 살게끔 하는 일상의 작은 반전은 갑작스럽게, 그리고 아름답지만은 않은 방식으로 들이닥친다. 「분홍색 상의를 입은 여자」 속의 ‘나’는 “거리에서 죽을 일은 없”다고 할 만큼 최소한의 삶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인물이고, ‘K’는 매우 유명한 사진작가로 과거에 나와 잠시 인연이 있었던 지인이다. 어느 날 나로부터는 물론 세상에서도 모습을 감추었던 K가 우연히 내 앞에 등장한다. “하강과 실추의 드라마를 온몸에 싣고.” 잘나가던 과거를 모두 지운 초라한 모습으로 등장한 K를 두고 나는 그의 지난 삶이 궁금하지만 묻지 않기로 결심한다. ‘왜’라는 질문 앞에서 답을 찾지 않고 오로지 현재의 K 옆에 함께 있어주기를 택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선택에 대해 이 책의 해설을 쓴 박혜경은 “침묵의 환대”라 일컫는다. 침묵의 환대는 책에서 다양하게 변주하여 등장하는데, 학교 폭력으로 고통받는 친구가 우는 소리를 묵묵히 들어주거나(「울음소리」), 처음 보는 사람이 눈앞에서 오열하는데도 당황하기는커녕 그저 지켜보는 한 남자의 모습(「손수건」) 등에서 그러하다. 언어로 명확히 정리될 수 없는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인물들에게 “‘왜’라고 묻는 대신 조용히 옆에 앉아 있거나 그저 침묵하며 같이 울 수밖에 없는 환대의 방식”을 최윤은 보여주는 것이다. 최윤식 환대는 ‘겨우’ 살아가는 이들의 내면에 자그마한 파동을 불러일으키면서 동시에 함께 걷기, 즉 동행의 가치를 일깨운다. 육체와 삶에 새겨진 상처를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같이 걸어가는 동행의 삶이야말로 최윤 소설 속 인물들이 “타자의 고통에 응답하는 방식”(박혜경)이자 다시 서로를 일으켜 세우는 동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