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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어진 낮달과 낫과 푸른 산등성이
권달웅
시인동네 2021.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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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함박눈 · 13
너 없으면 · 14
청보리의 힘 · 16
상사화처럼 · 17
누에의 꿈 · 18
휘어진 낮달과 낫과 푸른 산등성이 · 20
해질녘 · 22
향학 · 24
웃음소리 · 25
붕어빵 · 26
안동포 · 28
토닥토닥 · 29
먼 산을 남겨두고 · 30
개구리 떼 울음소리 · 32
달빛이 머무는 자리 · 34
반성 · 36

제2부

배웅 · 39
바람의 귀 · 40
까치집에 불 켜고 · 41
무명저고리 매듭단추 · 42
사무치는 이유 · 44
복사꽃 흩날린다 · 45
그날의 빗소리 · 46
은파 · 48
눈밭에 떨어진 동백꽃 · 49
모자 · 50
카피바라 · 52
슬픈 졸업식 · 53
삽 · 54
입춘 이후 · 56
하루살이 · 57
즐거운 추억 · 58

제3부

초월에 가서 · 61
그믐달 · 62
광야의 별 · 63
유일한 기쁨 · 64
숲속의 새들 · 66
0번 버스 · 67
내일 또 내일 · 68
까만 열매 · 69
돼지두루치기 · 70
풍등 · 72
헌신 · 73
내 마음의 별빛 · 74
가을 순리 · 75
병산서원 자귀나무 그림자 · 76
춘정 · 78
해맞이 · 79
아주 귀한 진주처럼 · 80

제4부

물자라의 사랑 · 83
연필로 쓴 시 · 84
방년 · 86
모과 · 87
한발(旱魃) · 88
치과에 가서 · 90
마트료시카 목각인형 · 91
벌초 · 92
헬레나벌새처럼 · 94
사람 향기 · 95
박주가리 박토 · 96
흙 한 줌 · 98
곶감 · 100
물이 이끄는 대로 · 101
학동 몽돌 · 102
받아쓴 시 · 104

해설
김정배(문학평론가·원광대 교수) · 105

저자 소개 1

1943년 경북 봉화에서 태어나 한양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75년 박목월에 의해 『심상』 신인상에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해바라기 환상』, 『사슴뿔』, 『바람 부는 날』, 『지상의 한사람』, 『내 마음의 중심에 네가 있다』, 『크낙새를 찾습니다』, 『반딧불이 날다』, 『달빛 아래 잠들다』, 『염소 똥은 고요하다』, 『공손한 귀』, 『광야의 별 이육사』 등이 있고, 시선집으로 『초록세상』, 『감처럼』, 『흔들바위의 명상』 등이 있다. 편운문학상, 최계락문학상, 펜문학상, 신석초문학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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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1월 18일
쪽수, 무게, 크기
124쪽 | 153*225*20mm
ISBN13
9791158965013

책 속으로

그제는 산골에 들어가
외딴집 낙숫물 소리에 이끌려
너에게 편지 썼는데
그 빗소리 그치고 나면
휘휘해서 어쩌지

어제는 대숲 그늘에서
대숲을 흔드는 바람 소리를 따라
너에게 편지 썼는데
그 바람 소리 그치고 나면
그리워서 어쩌지

오늘은 달빛 아래서
달빛에 반짝이는 귀뚜라미 소리에 이끌려
너에게 편지 쓰는데
그 귀뚜라미 소리 그치고 나면
적막해서 어쩌지

이제 아득히 눈이 내리고
모든 것들이 흔적도 없이 묻히는데
아무리 너를 불러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으면
사무쳐서 어쩌지
---「너 없으면」중에서

일부러 돌아오는 해질녘 듣는
새소리 같은 것
풀벌레 소리 같은 것

어느새 붉어진 단풍들이
미안하다, 미안하다,
사과하는 편지처럼
노을빛에 흩날린다

하루하루 짧아진 해가
아득히 먼 길을 재촉하는
풀벌레 울음을 안아 들고
서쪽으로 사라진다

적막하다, 적막하다,
새들은 울면서 서쪽으로 날아가고
어두워오는 하늘을 향해
홀로 외치는,

일부러 돌아오는 해질녘 듣는
물소리 같은 것
바람 소리 같은 것

기울어져 가는 석양빛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짚어가는
내 발걸음을 앞서간다
---「해질녘」중에서

기울어져 가는 양철지붕에서
너와 같이 피하던
그날의 빗소리 들리지

넌 멀리 떠났지만
난 아직도 그 양철지붕을
후드득 두드리는
빗소리를 듣고 있어

네가 없는 텅 빈 자리를
가득 채우는
빗소리는 세상을 적시고

흘러내린 눈물처럼
비에 젖어 늘어진 큰 오동잎이
내 가슴에 떨어지고 있어

기울어져 가는 양철지붕에서
너와 같이 피하던
그날의 빗소리 들리지

넌 멀리 떠났지만
난 아직도 그 양철지붕을
후드득 두드리는
빗소리를 듣고 있어
---「그날의 빗소리」중에서

3·1운동 100주년 해에 이육사 연작시를 썼다. 독립투쟁 역사를 시로 표현하기에는 내 힘이 부족했다. 육사는 온몸으로 시를 썼지만 나는 다만 손으로만 시를 썼기 때문이었다. 내 몸과 정신이 큰 강줄기를 따라갈 수 없었다. 육사가 태어난 원촌 일대와 낙동강 상류를 수없이 오르내렸다. 그런 어느 날 새벽 강에 뛰어오르는 은어처럼 캄캄한 북경감옥에서 새어나오는 광야의 별을 보았다. 독방의 어둠 속에서 외치는 만세 소리가 들렸다. 정신은 아득히 멀어지고 물질만 넘치는 이 시대에 마지막 남아 있는 시가 피에 젖은 육사의 흰 옷자락을 적셨다
---「광야의 별」중에서

대한 추위가 몰려오는 겨울 저녁이었다. 지팡이를 짚고 백합꽃 한 다발을 안은 할아버지가 마을버스에 올라탔다. 찬 바깥공기를 따라 백합꽃 향기가 버스 안에 확 퍼졌다. 책가방을 멘 여학생이 백합꽃을 얼른 받아들고 할아버지를 부축한다. 그 여학생을 보고 작업복 입은 아저씨가 웃고, 그 아저씨를 보고 콩나물봉지 든 아주머니가 웃는다. 나는 또 슬며시 그 아주머니를 보고 웃는다. 차창엔 혹한이 휘몰아치는데, 달동네 비탈길을 오르는 마을버스 안은 온통 훈훈한 사람 향기로 가득하다.

---「사람 향기」중에서

출판사 리뷰

한 번쯤 자연의 소리에 천착해본 사람이라면, ‘소리 풍경’이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소리 풍경은 소리(Sound)와 경관 혹은 조망을 의미하는 스케이프(Scape)의 복합어로, 시각적인 이미지(Landscape)를 귀(소리)로 파악하는 풍경의 의미를 담는다. 이 말에는 소리를 통해 계절의 변화와 시간의 리듬을 느끼기도 하고, 때로 그 소리를 통해 어떤 내면의 울림을 체감하는 인간의 모든 감각과 활동을 내포하는 개념을 담기도 한다. 권달웅 시인은 이 소리 풍경을 통해 내면의 경험과 기억을 덧입히고자 노력하는 청자(聽子) 중 하나이다. 다양한 사물과 풍경에 깃든 그 소리에 귀를 열어두고서, 그는 전통서정시가 지닌 순수한 심상의 세계를 조향한다. 그 과정에서 파생되는 곡진하고도 청명한 소리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자연이 주재하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세계와 주체가 합일되는 시적 사유의 근원에 도달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권달웅 시인의 『휘어진 낮달과 낫과 푸른 산등성이』는 눈으로 읽는 시라기보다는 귀로 듣는 시에 가깝다. 말 그대로 자연과 사물의 ‘소리’를 듣고 받아 적은 시다. 조금 더 편하게 부연하자면, 그는 이번 시집 전반에 걸쳐 “나의 내면과 사물의 풍경이 등가적으로 유추된/청명하고 간결한 시”(「시인의 말」)를 옮겨 적길 희망한다. 글을 써본 사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책의 서문은 가장 늦게 쓰이는 글 중 하나이다. 어느 철학자의 말을 빌려 말하면, 저술이 전부 끝난 뒤에 글의 의도를 재창조하는 것이 바로 서문이다. 뱀이 자기의 꼬리를 물고 빙빙 도는 것처럼, 글을 다 쓰고 난 이후에야 맨 마지막에 고백하는 것이 바로 ‘서문’인 셈이다. 권달웅 시인의 「시인의 말」을 등불 삼아 전체의 맥락을 살핀다면, 이 시집은 그가 전하는 다양한 청각 이미지를 통한 내면의 고백이자 시의 전언이라 할 수 있다.

시가 써지지 않는 날이면
햇살이 바글거리는
과수원 복사꽃 받아쓰고

시가 써지지 않는 날이면
숲에서 자욱하게 우는
풀벌레 울음소리 받아쓰고

시가 써지지 않는 날이면
소슬한 가을바람에 지는
장독대 붉은 감잎 받아쓰고

시가 써지지 않는 날이면
약속한 첫눈처럼 날리는
밤하늘 별똥별 받아써라
― 「받아쓴 시」 전문

의도한 듯 의도하지 않은 듯, 권달웅 시인은 이번 시집의 서문 격인 「시인의 말」과 시집의 마지막 시로 수록한 「받아쓴 시」를 수미상관의 형식으로 묶고 있다. 처음과 끝의 그 시적 간극은 이번 시집의 시원(始原)이 바로 자연의 본원인 ‘소리 풍경’을 시로 받아 적는 것으로부터 시작됨을 말해준다. 그 소리는 자연과 사물의 풍경 전반에 걸쳐 묻어나는데, 예를 들면 ‘풀벌레 울음소리’, ‘파도 소리’, ‘개구리 떼 울음소리’, ‘빗소리’, ‘아가의 첫울음소리’, ‘보리 잎과 보리 잎이 부딪치는 소리’, ‘누에가 뽕잎 먹는 소리’, ‘새소리’, ‘물소리’, ‘피아노 소리’, ‘어머니의 바디 소리’, ‘바람 소리’, ‘기침 소리’, ‘만세 소리’, ‘음식이 익는 소리’, ‘연필 깎는 소리’ 등등이다.

특히 시인의 내면을 가장 크게 대변하는 ‘바람’의 이미지는 자연과 사물의 소리를 더욱 내밀하게 변주하는 이 시집의 근원적인 대표 심상이 된다. 권달웅 시인은 다양한 바람의 표상을 통해 자기 삶에 내재한 은은한 그리움과 삶 전체를 환유할 수 있는 실존적 자각을 드러내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가령, “대숲을 흔드는 바람 소리”(「너 없으면」)나 해질녘 듣는 “바람 소리”(「해질녘」), “바람 소리만 가득한 허공”(「까치집에 불 켜고」)과도 같은 이미지를 통해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순수한 ‘바람’의 주체를 타자(독자)의 영역으로까지 변증해 나가기도 한다. 이제 그 바람 소리는 시인이 “아무리 그리워해도 가슴을 후비는 바람 소리뿐”(「복사꽃 흩날린다」)이거나 “빈집에 몰려가는 바람 소리가 또 나를 배웅”(「배웅」)하는 내면의 쓸쓸한 기억으로 자리하면서 자신이 견뎌야 하는 삶의 페이소스로 인식하게 된다.

이처럼 권달웅 시인은 다양한 청각 이미지, 구체적으로 말해 ‘바람 소리’에 자주 귀를 기울임으로써, 시인으로서 포착할 수 있는 소리 풍경과 그 속에 담긴 실존적 자의식 그리고 자기 갱신의 의미를 더욱 공고히 확보해 나간다. 기본적으로 시인이 인지하는 바람은 “귀가 크며”, “계절의 순환”을 다 듣는 표지이며, 심지어 “보이지 않는 풍경/천 리 밖 세상까지 내다보는/바람의 귀”(「바람의 귀」)로 인식되는 실존적 자의식이다. 그래서일까. 시인은 세상의 모든 소리가 들리지 않거나 멀어지면, 그리움과 불안으로 더욱 사무치는 존재로 전이된다.
― 김정배(문학평론가·원광대 교수)

시인의 말

하얀 눈밭에 통째로 떨어진 동백꽃처럼
나의 내면과 사물의 풍경이 등가적으로 유추된
청명하고 간결한 시를 쓰고 싶다.

2021년 1월
권달웅

시인의 산문

시는 내면과 대상의 등가적 유추에 의해 이루어진 창조물이다. 시인은 적절한 비유의 대상을 찾아 떠도는 나그네이며, 고통스러운 삶을 감내해나가는 수행자이다. 시인은 대상을 통해 현실을 재인식하고 삶의 갈등과 부조리를 투영함으로써 구원을 얻는다. 그런 점에서 시인은 고통스러운 현실을 감내하고 극기하는 정신주의자다. 나는 담백하고 간결한 언어로 도달하지 못한 삶의 슬픔과 허무, 안타까움과 쓸쓸함을 이미지로 표상한다. 나는 문명의 인위성과 자연의 순수성, 이 상반된 두 개의 연민 속에서 시를 쓰고 이미지를 찾는다. 문명에 의해 사라져가는 자연성과, 문명에 길들어 가는 인간의 삶을 조응하기 위해 시를 쓴다. 자연은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나는 본성을 잃어가는 오늘의 삶을 성찰하기 위해, 그 대상을 자연세계에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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