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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존경의 실천적 원리
고려 말에 주자학이 들어오면서 더욱 활기를 띠기 시작한 유교 문화 수용은 조선에 이르러 그 화려한 꽃을 피웠다. 서원을 중심으로 향촌의 유림 활동이 확산되고 향약鄕約이 시행되면서 향촌 질서의 유교적 교화가 심화되었다. 그런가 하면 가정의례를 중심으로 발전한 예학은 유교 윤리의 표준을 제시, 유교 사회의 기강을 확립하였다.
유교 사회에서 예법의 제도는 일상의 실천 원리로서 이념과 사상을 담아내는 그릇과 같다. 우리 나라의 경우, 삼국 시대이래 시행되어 오던 각종 의례가 엄연한 법식으로서 백성의 일상에서 풍속을 이루기까지는 무엇보다 {주자가례}의 영향이 컸다. 유교 의례가 백성의 생활 속에 확산되면서 전통 사회의 도덕 규범과 가치관 및 미풍양속을 확립해 나갔던 것이다. 따라서 조선 사회 나아가 한국 사회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라 하겠다. 그런데 그 예학의 남상濫觴 {주자가례}는 이 땅에 들어온 지 수백 년이 흐르도록 온전한 번역서 한 권 갖지 못한 채 세기의 저편으로 사라질 처지에 있었다. 그것도 폐쇄적 문벌주의를 낳았다, 신분 계급의 차별성을 심화시켰다, 수직적 계층 질서를 옹호하는 낡은 시대의 유물이다 하는 등의 오명을 달고서 말이다. 우리의 선조는 {주자가례}를 올바로 이해, 이 땅의 풍속에 맞게 적용하기 위해 10여 권의 주석서를 펴낸 바 있다. 이런 선행 연구에도 불구하고 아직 제대로 된 완역서 한 권 없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주자가례}는 성리학을 집대성한, 당대 최고 지성 주희(1130∼1200)가 가정에서 일용하는 예절을 모아 엮은 책으로, '가례家禮', '문공가례文公家禮', '주문공가례朱文公家禮' 등으로도 불린다. 우리 나라에 도입된 것은 고려 말경이며, {주자가례}의 예절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는 데는 300여 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10권이 넘는 가례주석서에서 우리는 중국이라는 공간성과 송대라는 시간성을 극복, 시의성을 살리고자 했던 선조들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풍속과 관념이 중국과 달라 처음부터 시행상의 많은 문제점을 노정하고 있었음에도 {주자가례}가 조선 사회에 깊이 뿌리내리게 된 데는 성리학이라는 이념성 짙은 학문과 사대부의 명예를 유지하고 체면을 지킨다는 명분론의 영향이 컸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유가 학문의 본령이 치세治世에 있다는 점이 더 큰 이유였다. 치세의 기본은 사회적 인간 관계를 바로잡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 관계 속에서 인간이 지켜야 할 보편적 규범이 필요하다. 유교 사회의 기본 구조는 가족 제도에 기초하며, 군신 관계의 모범을 부자 관계에서 찾는다. 요컨대 {주자가례}는 가족 상호 간에 준행해야 할 법도를 제시, 나아가 사회 구성원간의 원활한 의사 소통을 위한 구체적 형식을 성리학적 세계관에 입각하여 정리한 예서이다. 바로 여기에 {주자가례}의 의미가 있다. {주자가례}는 예의 기본적 논리인 사회 질서와 기강을 위한 관혼상제의 의장을 제정하고 그 내면의 정신인 경애愛敬와 명분名分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곧 관혼상제의 실천적 도리가 선비에게는 수신제가의 이념을 실현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국가의 숭화도민崇化導民 즉 교화를 숭상하고 백성을 인도하여 사회와 국가의 질서 형성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