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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소방관이 되다
- 전역(轉役) - 먹고살아야 한다! - 4전 5기 - 첫 근무지 부산진 구조대 - 주황색 제복의 무게 - 실전 감각 2장 잊히지 않는 기억 - 눈물이 마르지 않던 날 - 당신이 잠든 사이 - 이안류(離岸流) - 살아있는 모든 것들 - 두 번 살다 - 산속의 추격전 - 불 속의 어린아이 - 오늘의 나를 만든 소방학교 3장 절규는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 살아야 한다 - 죽으려는 자, 살리려는 자 - 부부의 연(緣) - 아버지와 산불 그리고 의용소방대 - 닫힌 문 - 천흥이 형 - 사랑을 죽이다 - 외로운 죽음 4장 내 가족, 나의 동료 - 소방관의 아내 - 엄마와 구급차 - 동료들 - 리더의 자리 - 밥 먹으러 출근합니다 - 할리우드 키드 - 나의 영웅 김범석 - 형제애(brotherhood) - 당신의 봉사에 감사드립니다 - 하늘의 별이 된 소방관들 - 여자, 엄마 그리고 구급대원 5장 당신의 마지막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 인생의 마지막 날 - 후천적 장애로 살아내는 사람들 - 이별하지 않으려 사투를 한다 - 낮은 곳을 바라보라 - 소방관이 되고 싶은 분들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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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복을 입고 있으면 묘한 사명감이 솟아오른다. 동료들과 같은 유니폼을 입고 함께 일한다는 것은 행동이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일사불란해야 함을 의미한다. 생명을 구하는 공동의 작업에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무게감을 느끼게 해준다. 20여 년을 근무한 베테랑 팀장님부터 이제 갓 들어온 나 같은 막내 구조대원까지 함께 몸에 걸치고 있는 주황색 옷의 통일성은 서로의 위험을 나눠 갖고, 사지에서 자신의 생명을 각자에게 의지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오래되어 색이 바래졌더라도, 그을음과 기름때가 잔뜩 묻어 있더라도, 빠지지 않는 핏물에 절어 있더라도 내가 입은 당근복이 주는 힘은 절대 약하지 않았다.
--- p.46, 「주황색 제복의 무게」 중에서 자고, 씻으며 지낸 형제와 다름없는 이가 떠났다. 차창 밖의 세상은 아무 일도 없는 듯 평온해 보였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고 여기 아까운 젊은 소방관이 세상을 떠났노라고 외치고 싶었다. 이내 부질없는 짓임을 알았지만, 그냥 그렇게 흘러가는 세상의 모습이 얄미웠다. 그렇게 나는 동료의 죽음을 처음으로 보았다. 아침저녁으로 이어지는 교대 시간의 인사가 어쩌면 생의 마지막 인사가 될 수도 있는 소방관의 운명을 직접 경험했다. 나는 그 이후로도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 p.69, 「눈물이 마르지 않던 날」 중에서 내 딸아이가 태어난 후로 아이들이 다치는 모습만 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보호받아야 하고 곱게 커나가야 할 우리의 아이들이 어른들의 방치로 다치고 죽는다. 아니 죽임을 당하기도 한다. 자신이 태어난 것을 선택한 것도 아닌 어린 생명이 어른의 괴로움에 동반되어 희생되는 일은 더는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나는 구조 일을 하며 다행히 아이들이 다치고 죽는 현장은 이 사례 이후로 더는 경험하지 않았다. 그것도 나의 복이라면 복이겠지만 아이들의 사고를 지켜본 동료들은 꽤 힘들고 괴로운 마음을 호소한다. --- p.117, 「불 속의 어린아이」 중에서 혹시 어떤 출동이 기억에 남느냐고 물어본다면 개인적으로는 자살 출동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높은 곳에서 몸을 던지려는 사람, 칼로 자신의 신체를 위해하려는 사람, 목을 매는 사람 등등 일생에 한 번 보기도 힘든 타인이 죽으려는 또는 죽어있는 현장을 구조대원들은 심심찮게 본다. 목숨을 끊으려는 자와 살려야 하는 구조대원이 대치하는 상황은 서로에게 피를 말리고 살이 떨리는 순간이다. 삶과 죽음의 생생한 현장을 가까이에서 지켜본다는 것 자체가 보통 일이 아니다. --- p.130, 「살아야 한다」 중에서 현장에 대한 두려움이 왜 없겠냐마는 그 두려움을 상쇄시키고 나에게 그곳으로 들어갈 수 있는 용기를 주는 것이 바로 나의 팀과 동료들이다. 대단한 무언가를 나에게 주지 않아도 된다. 옆에서 숨 쉬고 있어 주는 것만으로 나는 힘을 낼 수 있고, 나의 시야에서 사라지지만 않아도 괜찮을 거라는 안도감이 생긴다. 나 역시 나약한 인간이며 피와 살이 남들과 다르지 않다. 위험이 다가온다면 한없이 무기력해지겠지만 그 위험에 빠지지 않게 나를 잡아주는 동료들이 있기에 용기 내어 이 일을 할 수 있다. 어쩌면 타인의 생명을 구하는 일을 위해 나의 생명을 동료에게 일부분 의지하고 있는 것 같다. --- p.220, 「동료들」 중에서 거창한 대접을 받고 싶어서 뜨거운 불 속이나 위험한 구조현장을 뛰어다니는 소방관은 아무도 없을 것이며, 범죄자의 칼이 두렵지 않은 경찰이나 쏟아지는 총알이 무섭지 않은 군인 역시 없을 것이다. 단지 그 일을 하는 것은, 이것이 내 직업이고 내가 해야 할 일이라 하는 것, 스스로 주어진 임무이기에 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본다. 일하다가 다칠 수도 있고 까딱 잘못하면 제 명에 못 살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 이 일을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바로 이 일이 내 일이기 때문이다. --- p.270, 「당신의 봉사에 감사드립니다」 중에서 생의 마지막 날이 바로 오늘이라면 우리는 평범한 일상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을 것이다. 내가 본 현장에서 요구조자들의 모습은 불과 몇십 분 전까지만 하더라도 뼈와 살이 온전했고, 들숨과 날숨이 코와 입으로 들락거리며 신체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했던 사람들이었다. 이들 역시 부지불식간에 들이닥칠 사고의 순간을 결코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찰나의 시간을 기점으로 죽고 사는 현장 중심에 서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 인생의 마지막은 결코 온전한 신체를 깨끗이 염하고 누워서 끝나지만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 p.292, 「인생의 마지막 날」 중에서 사고 현장에서 죽어가는 이들을 살려내야 하는 구조대원은 사람과 사람의 이별을 막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죽음은 이별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다. 수명이 다해 죽는 것은 그나마 죽음에 대한 마음의 준비와 슬픔을 이겨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지만, 사고에 의한 죽음은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우리는 살려야 한다. 죽음이라는 고통스러운 이별을 막아내야 한다. 구조대원이 할 수 있는 가장 힘든 일이자 가장 고귀한 일이 바로 그것이다. 한 사람을 사지에서 구해냄으로써 그 사람을 아는 많은 사람의 슬픈 이별을 막아낼 수 있기에 소방의 현장은 이별을 막아내는 사투의 현장일 수도 있다. --- p.307, 「이별하지 않으려 사투를 한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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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야 했고, 살아야 했다…….’
14년차 현직 119 구조대원의 기억 속에 각인된 처절한 삶의 기록들 서른이 넘은 나이에 생계를 위해 선택한 소방관이라는 직업. 해군 특수부대 UDT를 전역한 저자는 강한 육체를 바탕으로 뭐든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하지만 그가 소방관이 되고 나서 보게 된 세상은 이전에 봐왔던 그곳과 달랐다. 매일같이 죽고 다치는 수많은 사람들. 그가 목도한 사고의 현장은 피가 흐르고, 살이 터져나가는 처절한 죽음의 경계선 위였다. 직업적 소명이 아니더라도 본능의 무언가에 이끌려 살려야 했고 스스로도 살아야 했다. 살이 녹아내릴 것 같은 뜨거운 불에 맞서 어린아이를 껴안아야 했고, 찢겨진 교통사고의 현장에서 죽어가는 누군가를 끄집어내야 했다. 차갑고 어두운 물속에서 굳어있는 시신의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런 날이 쌓이고 쌓여 소방관의 주황색 제복은 핏빛으로 변했고, 저자의 가슴은 까만 그을음으로 채워졌다. 삶이란 그런 것일까? 당장의 소중함을 모른 채 보이지 않는 더 높은 곳만을 향해가는 현대인의 삶. 하지만 저자의 삶은 지금 이 순간이다. 껌벅거리는 눈과 까닥거리는 손가락이 움직이는 찰나의 이 순간이 가장 소중한 삶의 순간이다. 살아 숨 쉬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저자는 죽어가는 그리고 죽은 자들의 얼굴에서 수도 없이 보았다. 번쩍이는 화려함과 현대 사회의 물질적 풍요로 가려진 거대한 도시 한 귀퉁이에서 다치고 죽는 사람들을 저자는 모두 기억해냈다. 아니 잊을 수 없었다. 뙤약볕 한여름에 썩어가는 육신이 풍기는 냄새만이 그들의 죽음을 알리는 유일한 수단이었고, 저자는 그렇게 죽고 쓰러져, 가고 없는 사람의 몸을 힘겹게 들어 옮겨야 했다. 살고 싶어 살려 달라고 외치는 사람들 구하려 사지에 뛰어들고, 죽고 싶어 죽겠다고 울부짖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또다시 죽음을 무릅쓰고 뛰어야 했다. 저자의 기억 속에서 죽음은 멀리 있지 않았고, 삶 역시 길게 가지 않았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삶과 죽음을 있는 그대로 말해준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지금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자세히 알려주고 있다. 저자의 말은 정제되지 않았지만, 그래서 읽는 이의 심장을 더욱 요동치게 할 것이다. 소방관이 바라보는 진정한 삶이란, 지금을 온전히 살아내는 것, 그리고 생의 순간에 감사하는 것이 진정 아름다운 삶이다. 아파도 아픈지 모르고, 슬퍼도 슬픈지 모르며 살아가는 소방관들. 무너지고, 부서지는 처참한 현장에서 본 죽음의 나신(裸身)은 결코 지워질 수 없는 ‘트라우마’가 되어 온몸 구석구석 상흔이 되어 남는다. 그러려니 지내온 세월의 흔적들에 우리 사회의 영웅이라 불리는 자들은 결국 무너져 내린다. 그들 역시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자식이었다. 살기 위해 모두가 피하며 뛰쳐나오는 사지(死地)로 걸어 들어가야 하는 이들의 일상은 결코 평범히 살아가는 세상의 하루와는 분명 다르다. 코끝에서 사라지지 않는 진한 그을음의 냄새가 하루를 온전히 살아냈음을 알게 해주는 유일한 감각이다. 하루의 끝에서, 내 곁에 있어 준 동료의 웃음만이 내일 다시 살려야 하고, 살아내야 하는 이유를 알게 해주는 소중한 행위이다. 그리고 그것이 소방관의 사명임을 알게 한다. 생의 마지막 날에 스스로 숨이 멈춰 가는 것을 느끼며 눈을 감는 죽음이 축복이라는 것을 저자는 말한다. 생각하지도 못하는 죽음이라는 고통은 누군가에게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음을 자각하기를 저자는 바란다. 안전(安全)이라는 양보할 수 없는 인간의 근본적 방어막을 망각한 채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부디 스스로를 보호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책 속 곳곳에 녹아있다. 슬프지만 써내야 했다고 한다. 아프지만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부끄럽고 민망한 글이라 몇 번을 썼다 지운 글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모여 만든 글이 이제 누군가의 삶의 희망이 되는 놀라운 메시지가 될 것 같다. 이 책은 살아가야 하는, 아니 살아내야 하는 소중한 삶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지침서다. 결국, 멀리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소방관 한 사람의 초라한 기억이라고 말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보이는 내 이웃의 이야기였다. 삶과 사람 그리고 사랑이 있는 따뜻한 이야기였다. 보이는 글은 어두웠지만, 말하는 내용은 밝은색의 빛이었다. 코로나19 사태에 알 수 없는 미래의 두려움까지 밀려오는 지금의 현실에 그래도 힘차게 살아가야 할 분명한 이유를 말해주는 책 『레스큐』. 이 책이 읽는 이에게 지금을 살아가는 지긋한 힘을 줄 것이라 굳게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