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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_누가 고종을 변호하는가 1부_장성 1864~1873 1장_아버지, 장성을 쌓다 대원군의 갑자유신 1864~1873이양선의 시대 | 일본의 굴기 | 학정과 민란의 시대 | 흥선대원군의 개혁, 갑자유신 | 대원군, 군사력을 강화하다 | 대원군, 진영논리를 부수다 | 대원군, 만동묘를 부수다 | 대원군, 서원을 부수다 | 대원군, 삼정문란을 개혁하다 | 대원군의 장성 | 대원군의 실책: 경복궁과 당백전과 쇄국 | 조선을 바꿀 수 있었던 갑자유신2장_아들, 장성을 부수다 고종의 친정 선언 18731864년 운현궁에 열린 두 개의 문 | 1873년 11월 4일 심야회의 | 폭풍 전야 | 청황제의 친정과 고종의 사전포석 | “모든 것을 원위치하시라”: 노론의 대반격 | 최익현의 직격탄: 대원군을 쫓아내라 | 노론의 깊은 뜻 | 심야의 반격과 대반전 | 결별2부_출항하는 유령선 1873~1882 3장_병정놀이 고종 친위부대 무위소와 사라진 진무영공인된 폭력, 병권과 금권 | 의문의 사건들과 고종의 복심 | 고종의 욕심: 친위부대 무위소 | “매번 이런 식이니, 황공하옵니다 그려” | 괴물로 변한 무위소 | 고종을 위한, 고종의 군사 | 무너진 장성, 진무영 | 1875년 8월 일본 군함의 포격4장_돈놀이 청나라 돈 청전 폐지공포영화 같았던 화폐개혁 | 권력을 위한 두 번째 공인된 폭력, 금권 | 대원군 지우기: ‘백성을 위하여’ | 1874년 1월 6일 청전 폐지령 내린 날 | 일주일 뒤 1월 13일, 드러나는 고종의 무능 | 나흘 뒤 1월 17일, 고종의 끝없는 고집 | 다시 사흘 뒤 1월 20일, 포기하지 않은 왕 | 후폭풍, 가난의 나락 | 무능과 무지와 이기심 | 사악함, 그 결과5장_건달 놀이 우글대는 민씨들1906년 국무총리를 거부한 여흥 민씨 민영규 | 지도자와 고종, 권력과 비전 | 되살아난 250년 전 밀약 | 도전받는 왕권과 권위 | 다시 지켜진 밀약1: 숭용산림과 노론 | 다시 지켜진 밀약2: 노론보다 더한 연맹, 여흥 민씨 | 민씨, 고위직을 장악하다3부_조선을 고물로 만들다 1882~1894 6장_“이미 주상께 5만 냥을 상납하였느니라” 부패미친 호랑이 | 가난한 군인들의 반란, 임오군란 | 모든 민씨들을 다 죽인다: 진살제민 | 황현이 기록한 민씨들의 행각 | 직접 뇌물을 거둔 최악의 부패 군주 | 죄의식이 전혀 없는 부패 | 당오전 발행과 무명잡세의 부활 | 갈수록 가난해진 나라 | 갈수록 부자가 된 군주 | 망국으로 이끈 기생충들7장_이 나라는 내 것이니라 갑신정변과 독재자 고종 1884고종의 파트너 갈아치우기 | 노론 정권을 위한 이념, 척화론 | 노론 거두 김평묵의 척양론 | 이어지는 노론과의 악연 | 첫 번째 반성문 “모두가 내 죄다” | 두 번째 반성문, 그리고 “또 말로만 그러시려고?” | 지켜지지 않은 반성 | 개혁과 본질적으로 무관했던 지도자8장_개틀링으로 학살한 백성 1894년 동학혁명대신 모두가 경악한 어느 어전회의 | 동학농민혁명의 원인과 결과 | 고종과 민영준, 합동으로 청나라 군사를 불러들이다 | 민영준과 원세개의 비밀회담 | 그들은 백성을 무엇으로 보았는가 | 원로 김병시의 작심 발언과 벗겨진 고종의 가면 | 일본의 참전과 대학살 | 모두 사면된 민씨들과 조병갑4부_잃어버린 태평성대 1895~1904 9장_갑오개혁의 좌절 반동의 시작낭비당한 10년 | 500년 모순 청산을 노린 갑오개혁 | 반동의 조짐 | 반동의 시작 | 권력 회수 | 나라를 팔다: 아관에서의 1년 | 실록에 기록된 나라 판매 현황10장_집을 세우다 대한제국과 광무개혁제국의 건설 | 권력 독점의 완성: 대한국 국제와 독립협회 | 경제력 독점의 완성: 내장원 | 부활한 매관매직 | 부활한 무명잡세: 우뭇가사리에도 세금을 | 군사력 독점의 완성: 대한제국군 | 텅 빈 국고와 사라진 비자금 | 광무개혁의 허구: 황제를 위한 개혁 | 허세와 낭비: 궁궐 신축과 생일파티 | 망국의 징조와 예언 | 1905년 마지막 반성 | 비웃음 당한 황제11장_집을 버리다 고종의 칠관파천七館播遷파탄 난 나라와 도주하는 군주 | 청나라 군사를 부른 왕과 병조판서 | 청일전쟁과 미관파천 | 그 사이 영국으로: 영관파천 | 성공한 망명, 아관파천 | 1897년 두 번째 미관파천 | 러일전쟁과 무더기 파천 미수 | 무더기 파천 미수의 결과5부_고물을 팔아치우다 1904~1910 12장_러일전쟁과 주합루 황천항해 1904~1905좌절된 도주, 그리고 러일전쟁 | 소름끼치는 사진 한 장 | 잃어버린 10년, 고물이 된 나라 | 거제도 일본국 기념탑과 러일전쟁 | 러시아의 동방정책과 조선 | 북새통이 된 조선과 지도부의 무지 | 1904년 제물포와 1905년 거제도 | 일본군이 총살한 대한제국인, 일본군을 위문한 대한제국 | 황천항해13장_황제가 기댄 그녀, 앨리스 1905년 9월, 을사조약 두 달 전공주, 하늘에서 내려오다 | 1905년 5월 일본 황족의 한성 나들이 | 1905년 6월 미국 부영사 스트레이트의 부임 | 1905년 9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1882년 한미조약 거중조정 | 철석같이 미국을 믿은 고종 | 홍릉에 나타난 버펄로 빌 | 고종만 몰랐던 가쓰라-태프트 밀약14장_늙은 조병세의 죽음과 난파선의 쥐떼들 을사조약 전야의관 안종덕의 상소 | 원로 조병세와 고종의 대화 | 나라를 고물로 만든 고종 | 난파선을 떠나는 쥐떼들 | “그물 치기도 전에 물고기가 뛰어들었다” 15장_매국노 고종 1905년 을사조약과 뇌물 2만 원엠마 크뢰벨의 기억 | 그 음울하고 비겁했던 풍경 | 상소한 자들을 처벌하라 | 황제가 받은 접대비 2만 원 | 뇌물 30만 엔과 경부선 지분 | 떡밥 150만 엔 | 을사오적의 상소와 고종의 묵묵무답 | “나가 죽으시라”16장_도주쿠노미야 이태왕 헤이그 밀사와 왕공족 돌아오지 않은 밀사들 | 밀사들, 그날 이후 | 왕공족, 도주쿠노미야 이태왕과 쇼토쿠노미야 이왕 | 왕공족의 탄생 | 왕공족의 식민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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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의, 고종에 의한, 고종을 위한 나라의 종말!고종에게 조선은 국가가 아니었다. 그저 개인 소유물에 불과했다. 백성은 자신의 배를 불리는 수단이요, 유일하게 그의 안중에 있던 것은 자신의 안위와 호사뿐이다. 왕권을 잡은 고종은 자신의 친위부대 무위소에 모든 병력과 군비를 집중시키며, 중무장한 서양 함대와도 대등했던 국방력을 무장 해제시켰다. 또한 외국 군대를 끌어들여 학정에 저항하는 백성들을 학살하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또한 고종의 대책 없는 화폐개혁은 경제를 붕괴시켰으며 부족해진 국고를 채우기 위해 환곡 폐단은 심화되었고, 통나무와 우뭇가사리에까지 세금을 매겨 백성을 도탄에 빠트렸다. 그리고 자신의 생일잔치를 위해 폐선을 사들이는 등 온갖 사치와 향락에 막대한 국고를 쏟아 부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채굴권 등 국가자원을 팔아 자기 금고를 채우는 데 몰두했다. 그렇게 온갖 무능과 부패로 국가가 흔들리는 와중에도 고종은 조정을 민씨 일가로만 채웠고 황제를 등에 업은 이들은 가렴주구와 학정을 일삼아 국가 몰락을 재촉했다. 고종은 철저하게 그리고 처참하게 국가와 백성의 운명을 난파시키고 있었다.무능한 지도자는 어떻게 역사를 무너뜨리는가! 무능한 지도자가 이끌던 시대에도 개혁의 기회는 존재했다. 하지만 고종은 그 기회들마저 하나하나 무너뜨렸다. 목숨 걸고 상소하던 충신들은 하나둘 스러져갔고, 조선의 미래를 위해 개혁을 일으켰던 세력들은 자신의 왕권에 대항한다며 분노한 고종에 의해 처참히 몰살됐다. 당시 대한제국에서 활동한 외국 인사들은 고종에 대해 공통된 평가를 내렸다. 미국공사 호러스 알렌은 “황제(고종)는 이 나라에 끔찍한 해충이며 저주다”라고 했고, 청나라 공사 서수붕은 고종의 면전에 “매관매직을 30년 간 하고도 옥좌가 건재하니 귀국의 운수가 왕성하다”며 비아냥댔다.국가가 침몰하는 와중에도 고종은 일본을 신뢰하며 사례금이라는 명목 하에 일본으로부터 거액의 돈을 받아 챙겼다. 무엇보다 을사조약 당시 자신의 지위와 안녕을 약조하는 조항만을 챙기고 총 한 번 쏴보지 않은 채 평화롭게(?) 국가와 백성을 일본의 손에 넘겼다. 결코 개혁군주도, 비운의 황제도 아니었던 그는 나라가 사라진 뒤에도 일본 황족에 준하는 지위를 누리며 호의호식했다. 우리는 고종을 통해 무능한 지도자가 어떻게 국가와 백성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지 보았다. 『매국노 고종』을 집필한 박종인 기자는 단언한다. “불편한 역사도 우리의 역사다. 그리고 진실을 외면한다면 치욕의 역사는 반복된다”고. 이 책의 목적은 단순히 감추고 싶은, 부끄러운 과거를 끄집어내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함이 아니다. 희망의 미래를 준비하고 위기의 재현을 막아보자는 데 있다. 우리는 국민들의 헌신과 땀방울을 딛고 다시금 부활한 나라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 흔들리지 않는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역사의 교훈을 직시하고 다시 징비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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