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청년패스
‘모국공헌’의 시대
재일상공인과 한국 경제 반양장
가격
25,500
25,500
YES포인트?
0원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해외배송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재일한인 연구총서

이 상품의 태그

책소개

목차

1장 | 한국 진출을 위한 재일상공인의 조직적 활동:오사카한국인상공회의 사례(1953~1980년)를 중심으로 _ 정진성
1. 머리말
2. 재일한국인오사카상공회의 탄생
3. 1950년대의 ‘재일한국인상공회’
4. 한일국교 정상화와 오사카상공회의 활동: 1960년대
5. 본국투자의 본격화와 오사카상공회의 활동: 1970년대
6. 맺음말
1장 보론 | 오사카한국인상공회 사람들:재일 1세 상공업자의 성장 과정 _ 정진성

2장 | 1960년대 재일상공인 모국투자와 공업단지 형성:구로, 마산, 구미의 사례 비교 _ 김백영
1. 1960년대 재일상공인 모국투자의 이상과 현실
2. 교포자본의 공단 개발 참여: 유형별 분류
3. 구로공단: 교포자본에 의해 주도된 최초의 공단 건설 계획
4. 마산공단: 임해기계공단 조성계획의 좌절과 굴곡
5. 구미공단: 특혜받은 지역성과 강력한 지연 네트워크의 결합
6. 교포자본의 공단 개발 참여와 ‘애국/애향’의 실천
7. ‘이윤 추구’와 ‘인정 투쟁’의 이분법을 넘어서

3장 | ‘자이니치’의 만박:1970년 일본만국박람회 당시 재일한국인들의 후원 활동 _ 정호석
1. 재일한인의 고국에 대한 ‘공헌’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2. 1970년 일본만국박람회와 재일한국인 만박후원회
3. 호혜적 커뮤니케이션으로서의 만박 후원
4. ‘조국의 미래’와 ‘자이니치의 미래’
5. ‘자이니치’의 만박: 만박 후원과 조국 지향의 새로운 비전
6. 재일한인 모국공헌의 역사사회학을 위하여

저자 소개 3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서울대학교 대학원 경제학과 졸업(경제학석사) 일본 쓰쿠바(筑波)대학 대학원 역사인류학연구과 졸업(문학박사) 일본 경제사 전공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배재대학교 조교수 현재: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일본학과 교수 논문 및 역서: 「重要産業統制法下における石炭?点組織の市場統制政策」(『社???係史?』), 『일본경영사』(역서) 등

정진성의 다른 상품

金白永

1970년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과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 교토대학 객원연구원,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을 역임했다. 현재 광운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사회사학회 편집부위원장과 도시사학회 편집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왕조 수도에서 식민도시로 : 경성과 도쿄의 시구개정에 대한 비교연구」(2003), 「서양의 모방과 전통의 변용 : 일본 근대도시 형성과정의 이중적 경향」(2006) 등이 있고, 지은 책으로 『식민지의 일상, 지배와 균열』(2006), 『공간 속의 시간』(200
1970년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과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 교토대학 객원연구원,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을 역임했다. 현재 광운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사회사학회 편집부위원장과 도시사학회 편집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왕조 수도에서 식민도시로 : 경성과 도쿄의 시구개정에 대한 비교연구」(2003), 「서양의 모방과 전통의 변용 : 일본 근대도시 형성과정의 이중적 경향」(2006) 등이 있고, 지은 책으로 『식민지의 일상, 지배와 균열』(2006), 『공간 속의 시간』(2007), 『경계의 섬, 오키나와』(2008), 『기억과 전쟁』(2009, 이상 공저) 등이 있다.

김백영의 다른 상품

일본 세이가쿠인대학(聖?院大學) 정치경제학부 준교수이다.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일본 국적법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일본 도쿄대학 대학원 정보학환·학제정보학부(情報?環·?際情報?府)에서 ‘김희로 사건’에 대한 논문으로 사회정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회운동,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이론적 관심에 바탕하여 재일한인의 다양한 실천을 통해 일본 전후사를 재해석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일본어 논문으로 「貧者の想像: アントニオ·ネグリにおける ‘想像’をめぐって」(2009), 「終わらない ‘金の??’: 近年における ‘金嬉老事件’の文化的?有をめぐって」(2012), 「空間の?形と?身の
일본 세이가쿠인대학(聖?院大學) 정치경제학부 준교수이다.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일본 국적법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일본 도쿄대학 대학원 정보학환·학제정보학부(情報?環·?際情報?府)에서 ‘김희로 사건’에 대한 논문으로 사회정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회운동,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이론적 관심에 바탕하여 재일한인의 다양한 실천을 통해 일본 전후사를 재해석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일본어 논문으로 「貧者の想像: アントニオ·ネグリにおける ‘想像’をめぐって」(2009), 「終わらない ‘金の??’: 近年における ‘金嬉老事件’の文化的?有をめぐって」(2012), 「空間の?形と?身の時間: デヴィッド·ハ?ヴェイとアントニオ·ネグリにおける社??革と想像」(2015)이 있으며, 주요 한국어 논고로 「‘자이니치(在日)’의 만박(万博): 1970년 일본만국박람회 당시 재일한국인만박후원회의 활동」(2017)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불안형 내셔널리즘의 시대』(2007)가 있다.

정호석의 다른 상품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2월 10일
판형
반양장 ?
쪽수, 무게, 크기
240쪽 | 368g | 153*224*20mm
ISBN13
9788946068483

책 속으로

1950년대에는 오사카 지역에서 재일한인을 중심으로 오사카상은과 오사카흥은이란 두 개의 신용조합이 설립되었다. 오사카상은은 한일합작의 신용조합이었지만 재일 한국인이 헤게모니를 가지고 있었으며, 오사카흥은은 순전히 재일한국인을 조합원으로 하는 신용조합이었다.
이 두 신용조합의 설립에는 오사카상공회 회원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으며, 신용조합 임원 중에 오사카상공회 관계자가 많았다. …… 상은과 흥은의 설립은 향후 오사카상공회가 발전하는 데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신용조합과 오사카상공회가 밀접한 관련을 가지면서 함께 발전해 가는 구도가 이 시기에 확립된 것이다. 일본 금융기관으로부터 융자받기가 곤란한 재일상공인에게 민족계 신용조합의 존재는 생명줄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었다. 거꾸로 상은과 흥은은 오사카의 재일상공인이라는 확실한 거래처를 확보할 수 있었다. 상은과 흥은은 1960년대에 급속히 발전하면서 1970년대에는 조총련계 신용조합을 제치고 최대의 민족계 금융기관으로 성장하는데, 이러한 상은·흥은의 발전은 오사카상공회 발전의 배경이 되는 한편, 오사카상공인의 성장은 다시 상은·흥은의 성장을 이끌어내었다.
--- p.46~47, 「제1장 한국 진출을 위한 재일상공인의 조직적 활동」 중에서

국교 수립 이전은 물론 국교 수립 이후에도 한동안 한일 간의 인적 교류가 자유롭지 못하던 시기에 오사카상공회에 축적된 한국의 정계 및 재계에 관한 정보는 당시의 재일상공인에게는 희소한 자원이었다. 오사카상공회는 그러한 희소한 자원을 유효하게 활용하기 위한 오사카상공인들의 ‘조직화된 기업자 활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오사카상공회가 본국의 정책에 협력한 대표적인 사례는 1970년 오사카에서 개최된 일본만국박람회(오사카만박, EXPO’70) 후원 사업일 것이다. …… 1968년 8월 재일한인은 “EXPO’70 재일한국인후원회」 중에서(회장 이희건) 발족 총회를 개최하고 오사카만박 후원을 위한 체제를 정비해 1억 8000만 엔이라는 거액의 후원금을 모금하는 데 성공했다. 후원회 활동의 핵심인 한국관 건설모금에서 가장 돋보였던 것은 오사카 지역 상공인들의 활약이었다. 전국적으로 모금한 1억 8000만 엔 중 71%에 달하는 1억 2810만 엔은 오사카 재주 한국인 59명의 기부금이었으며, 그중 53명이 오사카상공회 회원으로, 이들의 기부금만 1억 1900만 엔에 달했다.
오사카상공인이 이처럼 거액의 후원금을 모금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조국에 대한 뜨거운 애정(애국심)과 오사카 상공업자의 성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유수현 회장의 리더십하에 조직을 정비·강화한 오사카상공회가 상공인의 애국심을 조직할 수 있었다는 측면도 간과하면 안 된다.
--- p.67~68, 「제1장 한국 진출을 위한 재일상공인의 조직적 활동」 중에서

암시장이 재일한인의 경제적 기회가 될 수 있었던 이유의 하나는 GHQ에 의해 재일한인이 전승국민은 아니지만 해방민족(liberated people)에 해당되어서 일본 정부의 사법권이 미치지 않는 특수한 지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재일한인은 이러한 특수한 지위를 이용해 GHQ를 등에 업고 부족한 물자를 각종 루트를 통해 구입하는 것이 가능했으며, 구입한 물자를 암시장에서 거래함으로써 경제적 이익을 취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재일한인의 암시장에서의 활약은 당시의 일본 위정자들에게 위협으로 비추어지기도 했다. 오사카의 암시장 폐쇄를 단행했던 스즈키 에이지(鈴木?二) 당시 오사카경찰부장은 암시장을 ‘제3국인(第三?人)의 제국’으로 칭하면서 조선인·중국인이 돌출해서 암시장에서 암약하고 있는 것처럼 기술을 하고 있지만, 오사카부경찰부가 조사한 암시장업자의 국적별 구성을 보면 일본인이 75%인 1만 1350명이었으며, 재일한인은 쓰루하시 시장에서 절반을 차지하지만 오사카부 전체로는 21%인 3172명에 지나지 않았다. …… 암시장을 비즈니스 기회로 삼아 성장한 상공인은 크게 두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암시장에서 확보한 물자 또는 그런 물자를 원료로 제조한 제품을 암시장에 판매해 크게 이득을 본 그룹이다. 또 하나는 당시 무법천지라 할 수 있는 암시장의 규율을 잡고 암시장을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지도력을 발휘해 재일상공인의 리더 내지는 조정자로 성장한 그룹이다.
--- p.98~100, 「제1장 보론 오사카한국인상공회 사람들」 중에서

1960년대 ‘재일교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팽배했던 데에는 특히 당시 한국 사회에 반일민족주의, 반공주의, 개발주의라는 세 가지 담론적 필터가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었다는 점과도 관련이 있다. 즉, 당시에 ‘재일교포’라고 하면 대체로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하는 ‘반(半)쪽발이’, 조총련 등에서 연상되는 ‘빨갱이’, 그리고 경제대국 일본의 자본주의를 배경으로 치부(致富)한 ‘졸부(猝富)’라는 세 가지 이미지가 지배적이었다. …… ‘재일교포’는 냉전적 대결 국면에서 재일한인을 ‘분리와 배제’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의미가 상대적으로 강한 반면, ‘재일동포’는 민족적 포용 국면에서 재일한인을 ‘포섭과 회유’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의미가 더 강하다는 것이다. 당시 재일상공인들의 ‘모국투자’를 재일한인들의 ‘명예 회복’과 ‘정체성 인정’을 위한 집단적 실천의 일환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다.
과연 재일상공인들의 모국투자는 ‘경제적 이윤 추구’ 행위인가 아니면 ‘정체성 인정 투쟁’ 행위인가? 그들의 행위는 애국심에 바탕을 둔 공익추구적 행위인가 아니면 기업논리에 바탕을 둔 사익추구적 행위인가? 이 글에서는 이들의 투자 활동을 ‘이익 지향적 기업가 정신의 산물’이자 ‘진정한 애국자 정신의 발로’라는 양면성과 모순성을 띤 행위로 평가해 온 선행연구의 한계를 넘어서, 재일동포 기업인들의 고국 자본 투자가 차별적인 양상을 띠면서 전개된 몇 가지 대표적 사례를 비교·분석함으로써, 그 실천 동기와 구현 양상의 차이에 대해 좀 더 세밀한 유형화 작업이 필요함을 제기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그들의 역사적 행위에 내포된 실체적 진실에 한걸음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 p.122~123, 「제2장 1960년대 재일상공인 모국투자와 공업단지 형성」 중에서

1970년의 만박 직후 한국 정부와 민단, 재일한인 재계의 협조 관계는 더욱 긴밀해졌고, 유효성이 증명된 ‘공헌의 윈윈 모델’은 이후 본국투자, 모금활동, 정부활동 후원 등으로 확대·재생산된 바 있다. 하지만 그러한 호혜적 관계는 이른바 ‘유신민단’ 이래 정부의 예산 지원과 개입에 대한 일방적인 추종이라는 종속관계로 변질되었고, 그로부터 40년 이상 지난 오늘날의 민단은 변화된 현실에 대처하지 못하고 ‘정부의 하부기관’이 되었다는 비판 앞에 놓여 있다. 한편, 한인 상공업자들은 기업 경영상 차별이 상당 부분 완화된 까닭에 굳이 민족계 금융기관을 고집하거나 민단계 경제인들의 연합회를 위해 ‘헌신’할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1960년대 중반 이후의 민단 - 경제인 - 한국 정부의 삼자 간 협조 관계가 “일본 사회의 다문화화 속에서 역설적으로 와해」 중에서되는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기업과 정부 간의 협력은 오히려 청산해야 할 구시대적 ‘정경유착’의 유산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현실을 염두에 두고 재일한인들의 ‘공헌’을 되돌아보는 일은 그들을 이른바 ‘민족의 영웅’으로 치켜세우기만 하는 작업일 수 없으며, 반대로 그들의 삶을 단순한 이해타산이나 외적 압력으로 환원시키는 일이어서도 안 될 것이다. ‘공헌’의 복합성, 역사성, 역동성을 비판적으로 묻고 또 깊이 있게 음미하는 작업은 아직까지 한일 두 사회 속에 강하게 작동하는 식민주의, 국가 건설, 개발과 성장이 남긴 유산의 양가성(ambivalence)과 대면하는 일이자 과거로부터 새로운 미래를 재발명(reinvent)하는 일이다. 우리는 이러한 커다란 과제 앞에 이제 막 섰을 뿐인지도 모른다.

--- p.206, 「제3장 ‘자이니치’의 만박」 중에서

출판사 리뷰

재일한인 상공인의 본국을 향한
‘조직적 활동’과 ‘공헌’이 남긴 의미

아직 조명되지 않은 재일한인 상공인의 역사


오늘날까지 재일한인에 관한 연구는 수없이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대부분의 재일한인 연구논문 및 도서는 일본 내 소수자 또는 사회적 약자로서 겪어야 했던 차별과 투쟁의 역사, 그리고 타국 살이를 하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 같은 ‘절실한’ 문제를 다루어왔기 때문에, 이른바 ‘본국’이라 불리는 한국과의 관련성에 관한 연구는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재일한인 연구총서 3권 『‘모국공헌’의 시대』는 이와 같은 경향에 가려져 그다지 다루어지지 않았던 재일한인 1세들의 경제 활동과 모국인 대한민국을 향한 ‘조직적인’ 공헌 활동에 관해 이야기한다. 정진성·김백영·정호석 세 저자는 일제강점기부터 지금까지 이루어진 재일한인 1세들의 일본 내 경제 활동, 박정희 정부로 대표되는 발전국가 시기 한국에의 투자와 기업 활동, 1970년 일본 오사카만국박람회 후원 활동을 주제로 삼고, 다양한 연구 문헌과 신문 기사, 자서전, 재일한국인 상공회의 기록물 등 역사의 단편들을 모아 각자의 방식으로 연구 성과를 이룩했다.
저자들은 재일한인의 경제 활동의 다양함과 구체적인 ‘내용’, 재일한인들의 경제 활동이 불러온 결과의 ‘너비’, 그리고 각 활동의 정서적 의미, 정체성, 진정성과 같은 ‘깊이’에 대해 다각도로 분석하고 적극적으로 토론하는 행위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그리고 앞으로의 연구가 재일한인을 바라보는 한국의 위치를 특권화하지 않으면서도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재일한인의 역사를 한국 역사의 일부로서 끌어안는 행위를 통해 역사에 대한 성찰과 비교사적 탐구를 자극할 수 있는 마중물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기존 재일한인 연구와의 차별성을 두고자 했다.
『재일한인 연구총서』 시리즈는 재일한인 1세이자 신한은행의 창립자인 고 이희건 신한은행 명예회장의 이름을 따서 만든 ‘이희건 한일교류재단’의 지원을 받아 만들어졌다. 사회학, 인류학, 경제학 등 여러 분야의 연구자 6인은 제각기 전공을 살려 재일한인을 주제로 공동 연구를 수행해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했고, 이 연구 성과들을 보완해 책으로 엮어냈다. 재일동포 사회의 역동적인 모습과 다양성, 재일한인과 한국 사회의 관계를 살펴봄과 동시에 각 연구의 이론적 함의와 관점을 성찰한 이 책은 재일한인의 일대기를 우리나라 역사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다방면에서 바라보는 시도를 통해 한국 현대사 연구에 또 다른 지평을 열어갈 것이다.

재일한인 1세와 재일한인 상공회의 치열한 성장사

1장 및 1장 보론의 저자 정진성은 오사카한국인상공회를 중심으로 재일한인 1세들이 만들어온 재일한인 상공회의 역사를 다룬다. 오사카상공회의 의의는 1950년대 당시 암시장을 주 무대로 활동하던 상공업자들이 한 곳에 모여 정보를 공유하며, 이후 한국 경제계와 교류할 때 정보센터로서 재일한인 상공업자들의 대한 무역을 돕는 것은 물론 한국 정부 정책 수행을 지원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데 있다. 저자는 일본 내에서 법인으로서 자격을 갖지 못하던 시절부터 오사카상은과 오사카흥은 등 신용조합의 설립, 오사카상공회의 활동과 한국과의 무역, 그리고 1980년대 교민은행인 신한은행의 설립에 이르기까지 재일한인 상공업자들이 성장을 위한 얼마나 부단한 노력을 했는지 시대 순으로 풀어놓았다. 그리고 박한식, 이희건 등 재일한인 중 경제 분야에서 입지전적 인물들의 사업과 그 성공 과정을 서술해 글의 이해를 도왔다. 또한 1장에 보론을 덧붙여 도일 시기, 창업 시기, 업종, 활동 무대, 직력과 학력 등 오사카한국인상공회 구성원 56명 각각의 내력을 정리해 그 특징을 결론으로 이끌어냈다.

이윤 추구와 인정 투쟁 사이, 재일한인에게 모국투자란

2장의 저자 김백영은 재일한인 상공인의 이른바 ‘모국투자’라 불린 대(對)한국 투자 및 한국으로의 사업 진출 배경과 그 실체를 파헤치고, 1960년대~1970년대 국내의 대표적인 공업단지였던 구로공단, 마산공단, 구미공단의 사례 비교를 중심으로 재일상공인 모국투자의 이상과 현실을 조명한다. 그리고 재일교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팽배하던 시기에 그들이 이룩해 내고자 한 모국투자를 통한 한국 진출이 과연 ‘진정한 애국심의 발로’인 정체성 인정 투쟁 행위였는지, 아니면 ‘이익 지향적 기업가 정신’이 담긴 경제적 이윤 추구 행위였는지 탐구한다. 저자는 모국투자라는 정체성이 정치적 상황이나 지역적 맥락에 따라 사회적으로 수용되거나 굴절 혹은 거부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었음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공익 또는 사익, 애국심 또는 이윤 추구라는 이분법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재일한인 상공인의 동기들을 구체적으로 파악하면서 그들의 역할이 구로·마산·구미 세 공단의 지역적·정치적 특성과 합쳐져 어떤 결과를 만들어냈는지 알아본다.

1970년 오사카만국박람회를 통해 바라보는 모국공헌의 의미

3장의 저자 정호석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첫 번째 ‘메가 이벤트’인 1970년 일본 오사카만국박람회(오사카만박)라는 특정한 사건을 중심으로 재일한인들이 펼친 만박 후원 활동, 가족 초청 이벤트, 영주권 신청 운동 등 ‘조직적인 대중운동’을 탐구한다. 저자는 재일한인으로서, 재일한인 단체의 일원으로서, 무엇보다도 대한민국 국민이되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남아 있는 ‘자이니치’로서 그들의 정체성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본래 순수한 선물이라는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던 고국을 향한 ‘공헌’이 시간이 지나며 어떻게 발전되고 변형되었는지를 기업가, 재일한인 단체, 한국 정부 등 다양한 행위자들의 상호작용인 ‘커뮤니케이션’의 면면에서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공헌의 의미에 대해 본질적으로 자발적이고 순수한 마음이나 이해타산적 마음처럼 어떤 한 가지 의미로 나누는 것이 불가능하며, 어느 방향으로도 온전히 편입되지 않는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면을 지니고 있다고 결론을 짓는다.

재일한인 연구총서 3권 『‘모국공헌’의 시대』는 각기 다른 연구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각 연구자들의 의견은 몇 가지로 모인다. 하나는 일본 내에서는 외국인이라고, 한국에서는 ‘반’일본인이라고 차별받던 이들이 타국에서 조직적인 활동을 통해 자신들의 입지를 만들고자 능동적·주체적으로 치열하게 노력해 왔다는 사실이다. 또한 저자들은 재일한인들이 고국을 향해 펼친 경제활동, 정책 지원, 공헌이라 일컬어지는 후원 활동을 다루면서, 재일한인들과 한국의 연관성이 무시할 수 없는 상당한 규모를 지니고 있음을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이들의 활동은 어느 한쪽으로만 정의내릴 것이 아니라 고국을 향한 자발적인 애국심·애향심은 물론이고 이윤을 추구하고자 했던 부분까지 여러 가지 면모를 바탕으로 이전보다 더 복합적이고 구체적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재일한인 연구총서 3권 『‘모국공헌’의 시대』 한국 현대사의 한 축을 담당해 온 재일한인의 고국에 대한 관여와 헌신을 새롭게 조명함으로써 재일한인과 한국의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내다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리뷰/한줄평0

리뷰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한줄평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

25,500
1 25,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