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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재일한인 1세대 집주 공간의 형성과 변천: 오사카와 가와사키의 사례 비교_김백영
1. 재일 코리아타운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2. 오사카와 가와사키의 근대도시 형성사 개관 3. 이주민 인구 집단의 성격 4. 정착지의 초기 환경과 집주지 형성 양상 5. 코리아타운의 장소성 형성 과정 6. 망국 디아스포라의 공간에서 한류 문화의 체험 공간으로 2장 1940년의 재일조선인 취업 구조: 국세조사 통계 원표의 분석을 중심으로_정진성 1. 전시경제하의 재일조선인 2. 전국(일본 본토) 차원에서 본 재일조선인의 취업 구조 3. 지역별로 본 재일조선인의 취업 구조 4. 재일조선인 취업 구조의 변화: 최하층 노동자에서 공장 노동자와 경영자로? 3장 “일하고 일하고 또 일했어요”: 재일한인 1세 여성의 노동 경험과 그 의미_권숙인 1. 재일한인 1세 여성, 일하는 존재 2. 몇 가지 선행 연구를 통해 본 재일한인 여성 노동자 3. 통계로 본 재일한인 여성의 공적 노동 4. 생애사를 통해 본 여성의 노동 경험 5. 재일한인 1세 여성의 일과 노동: 특수성과 보편성 4장 일본에 돈 벌러 간 이야기: 1910~1920년대 일본 방직 산업의 조선 여공_권숙인 1. 조선 여공의 등장 2. 일본 방직 산업의 조선인 여성 노동자 3. 일본에 돈 벌러 간 이야기: 개인 서사를 통해 본 조선 여공의 이동과 노동 4. 조선 여공의 고난과 성취를 역사화하기 |
金白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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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20세기 전반 일본판 산업혁명의 현장이었던 이들 공업 대도시에 이주해 온 조선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이들 이주민 인구 집단에 대한 본격적인 분석에 앞서 우선 한 가지 전제되어야 할 것은 당시 한반도가 제국 일본의 영토였다는 점이다. 조선인은 ‘외지인(外地人)’으로서 ‘내지인(內地人)’과 구분되기는 했고, 때로는 이주 인구 조절을 위한 도항 허가의 제한이나 검문검색 등 당국의 관리·통제 체제가 작동하기는 했으나, 식민지 제국 체제하에서 한반도와 일본열도는 본질적으로 국경의 장벽이 없는 ‘매끄러운 평면’으로 통합되어 있었다.
--- p.33, 「제1장 ‘재일한인 1세대 집주 공간의 형성과 변천」 중에서 이카이노 일대에 조선인 집주지가 형성되면서 1930년대부터 조선인들을 위한 상거래 공간이 자리 잡았으며, 주로 노점상들을 중심으로 1930년대 말 이카이노 일대에 ‘조선시장’이 형성되었다. 조선시장에는 갈비집이나 천엽집과 같은 조선식당은 물론이거니와 조선인들이 생활하기에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풍부한 상품 시장이 조성되어 있었다. 이 일대에는 식료품부터 혼수용품까지 한인 생활용품을 판매하는 점포 약 200개가 모여 있어 오사카 한인들이 운집하는 상업적·문화적 중심지가 형성되었다. --- p.50, 「제1장 ‘재일한인 1세대 집주 공간의 형성과 변천」 중에서 공업 부문에 가장 많은 재일조선인들이 취업하고 있었다. 공업 부문 중에서는 금속 및 기계 기구 부문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1930년대에 진행된 중화학공업의 발전과 전시경제의 영향이라고 생각된다. --- p.77, 「제2장 1940년의 재일조선인 취업 구조」 중에서 여성 작업자의 경우는 제조 관련 작업자가 전체 여성 작업자의 48.8%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특히 방직품 제조 작업자(19.9%), 피복·일상용품 제조 작업자(8.2%)에 집중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표 2-7〉). 그러나 금속·기계 관련 작업이나 요업 토석류 가공 작업처럼 남성의 일로 생각되는 작업에도 여성들이 상당수 취업하고 있음이 주목된다. 이밖에 점원·판매원(6.5%), 접객업(5.5%), 소사·급사(4.4%), 가사 사용인(4.5%) 등도 여성이 많이 취업하는 직종이었다. --- p.93, 「제2장 1940년의 재일조선인 취업 구조」 중에서 재일조선인 취업자의 30% 이상이 공업 부문에서 주로 노동자로 일하고 있었다. 더구나 그들이 가장 많이 취업하고 있는 업종은 기능 수준이 낮은 섬유공업이나 고무공업, 유리공업, 기타 잡업이 아니라 금속, 기계 기구 업종이었다. 일본의 중화학공업화, 그리고 전시경제의 진전에 따른 군수공업의 확대 속에 재일조선인은 이러한 산업을 저변에서 지지하는 공업 부문의 노동자로서 존재했으며, 일본의 공업은 전시 노동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재일조선인의 존재 없이 성립되지 않는 상태였다. --- p.99~100, 「제2장 1940년의 재일조선인 취업 구조」 중에서 유업 비율이 15% 이하로 떨어지는 20대 (결혼) 이후에도 여성들은 내직을 포함해 비공식 부문에서 경제활동을 계속했을 확률이 크다. 나아가 돈벌이를 위한 일 외에도 “교회에서 성심으로 수십 년간 봉사”를 하거나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아이를 들쳐 업고 민족학교 일을 위해 간빠(모금)하러 다니거나” 병문안, 행사음식 만들기 등의 다양한 볼런티어 일을 했다. --- p.166, 「제3장 “일하고 일하고 또 일했어요”」 중에서 조정순은 어머니가 일본에 가면 편하게 살 수 있다고 해서 왔는데 일본에 와서 “일만 세가 빠지게 하고”, “생전 안 해본 일도 다했다”고 회고한다. 탄광 일을 했는데 처음 갔던 야마구치현 우베 탄광은 좁은 갱도가 바다 아래로 이어지는 해저 탄광으로 남자들도 겁이 나서 못 들어가는 데를 들어가서 일했다. 갓 스무 살이었다. 남편은 탄광 일을 싫어했다. 노름에 빠져 지내는 일이 많았다. 탄광 일 외에도 온갖 막노동을 전전했다. --- p.178~179, 「제3장 “일하고 일하고 또 일했어요”」 중에서 이런 상황에서 가구의 생존을 위한 여성의 기여와 역할이 어떻게 평가되었고 가족 내 권력관계와 위신 구조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가부장제에 어떤 변화와 균열을 초래했는지에 대해 향후 보다 심도 있는 분석이 시도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이 점과 관련해 흥미롭게 살펴볼 수 있는 지점 중 하나는 제사이다. 많은 재일 1세 가정은 제사를 매우 중요하게 지내고 나름대로 상세한 제사 규범을 고수해 왔다. --- p.189, 「제3장 “일하고 일하고 또 일했어요”」 중에서 물론 일본에서 일했던 조선 여공이 그대로 다 일본에 정착해 ‘재일한인’이 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적지 않은 여성들은, 요즈음의 국제 노동 이주자처럼, 단기간의 출가 노동을 목적으로 일본으로 향했고 실제 많이 귀국했다. 다른 한편 조선 여공 중 일부는 일본에 정착해 재일한인 1세가 되었고, 1세 여성 중 다수가 방적·방직을 포함한 공장 노동을 했다. 그러나 이들의 모습은 일본의 산업 경제사나 재일한인의 역사에서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이는 한국 근대사나 한인 해외이주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조선 여공’의 모습을 가시화시키는 것은 재일한인 1세의 역사나 한인 해외이주사를 좀 더 다면화하고 그 주체들의 삶을 보다 면밀히 들여다보는 창구가 될 것이다. --- p.199, 「제4장 일본에 돈 벌러 간 이야기」 중에서 이렇게 일본의 방적 공장은 당시 조선 여성들이 임금노동을 위해 ‘국경’을 넘는 주요 목적지가 되었다. 방적 여공은 조선 여성이 임금노동자의 지위를 갖고 일본으로 이주한 특별한 경로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여성들의 공적 노동이 아직 예외적이던 상황에서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노동 이주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 셈이다. --- p.210, 「제4장 일본에 돈 벌러 간 이야기」 중에서 재일한인 1세 여성의 삶을 일과 노동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면 그동안 이들에 대한 지배적인 재현이 지나치게 단순하며 이들이 살아냈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함을 알게 된다. 1세 여성은 기존의 연구나 대중적 재현에서 흔히 강조해 온 것처럼 ‘숭고한 어머니’이자 ‘억압받는 희생자’인 것만큼이나 노동하는 존재였다. 그리고 종종 그 노동을 통해 가족의 생존을 책임지고 자식을 가르친, 실질적인 생계 부양자였다(본서 제3장 참조). --- p.224, 「제4장 일본에 돈 벌러 간 이야기」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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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한인들의 실제적 생활세계에 좀 더 입체적으로 다가간다.
근래 들어 재일한인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증가하고 한인 이전에 비해 훨씬 다양한 주제로의 접근이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책의 세 저자는 (도시/공간) 사회학, (근대 일본) 경제사, (젠더/이주) 문화인류학이라는 서로 다른 학문적 관점에서 재일한인의 집주 공간과 취업 구조 및 노동 체험에 대한 연구를 학제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재일한인의 구체적인 삶의 실상을 파악하고자 했다. 첫 번째 논문에서, 김백영은 오사카의 이코누구와 가와사키의 가와사키구 한인 집주 지역에 대해 경로 의존적 변화라는 중장기적 관점에서 비교했다. 지역의 형성 주체, 지리적 특색, 그리고 현대 일본사에서 이들 장소가 가진 시계열적 장소성의 변천을 짚어보았다. 우선 주체의 측면에서는, 이쿠노구에서는 민족적 동질성과 지연 공동체적 성격이, 가와사키에서는 계층적 동질성과 생활공동체적 성격이 상대적으로 더 강하게 나타났다. 이러한 인구 집단의 속성은 집주 공간의 입지 여건과 주변 지역 도시환경의 변화와도 긴밀한 상관성을 띠었으며, 결과적으로 양 지역에서 코리아타운이라는 장소성이 창출되는 중장기적 과정에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다. 두 번째에 실린 정진성의 연구는 전전 일본 정부에 의해 만들어진 1940년대 국세조사(인구센서스) 통계 원표를 직접 데이터베이스화해 분석하는 통계분석방법론을 활용해 당시 재일한인들의 취업 구조와 직업세계의 가변성과 다차원성을 가시화해 냈다. 통계가 보여준 사실은 기존의 통념과는 상당히 달랐다. 재일조선인이 가장 많이 취업하고 있던 산업 부문은 공업이었으며, 공업 중에서는 금속, 기계, 화학, 섬유, 요업 부문의 비중이 컸다. 직업별로는 취업자의 대부분이 임금노동자였다. 이처럼 재일조선인 취업자의 가장 큰 섹터가 공업 부문 노동자였다는 점은 그들의 대부분이 토목 노동자나 하역 노동자였다는 종래 이미지의 수정을 요구하는 것이다. 소수이긴 하나 공업 부문을 중심으로 경영자가 출현하고 있음도 확인할 수 있다. 성별 연령별 분석에서도 특기할 것이 많으며 오사카와 도쿄의 취업 형태의 차이를 찾아볼 수 있다. 세 번째 논문은 권숙인의 “일하고 일하고 또 일했어요”로 구술사적 접근법을 통해 다양한 제조업과 서비스업에 종사했던 1세 여성의 생애 서사를 통해 재일한인 1세 여성의 주체성과 다양성을 젠더적 시각에서 재구성했다. 거시적인 접근에서 잘 보이지 않던 재일한인의 삶을 보다 면밀하고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실제 재일여성들의 생애 서사에는 온통 일 이야기가 넘쳐난다. “일하고 일하고 또 일”을 한 그녀들의 평생은 생계를 위한 일, 가사와 돌봄 일, 공동체를 위한 일 등으로 채워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일한인 여성에 대한 재현에서는 이러한 노동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저자의 말이 이 논문의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네 번째 논문도 권숙인의 연구이다. 1910~1920년대 임금노동을 위해 도일했던 조선 여성의 존재와 그들의 노동 경험이 갖는 의미를 고찰한다. 내지인보다 적은 임금으로 관리가 쉬운 양질의 값싼 노동력으로서 조선 여성 바라보았다. 이 연구에서는 일본으로 도항을 주도하고, 가족 생계를 책임지며, 에스닉 커뮤니티를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일을 담당하고, 때로는 억압적인 가족이나 착취적인 고용주에게 저항을 하기도 한, 보다 주체적이고 다양한 얼굴을 한 여성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