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머리말: 왜 공공신학인가?
시작하는 글: 공론장에서 신학의 의미와 방법 제1장 | 근대 정치이론과 정의론 I. 도덕적 의무 II. 헤겔의 종교와 도덕 III. 신학과 칸트 보론: 루터의 칭의론과 경제적 정의 IV. 공리주의 V. 도덕, 시장 그리고 식민주의 제2장 | 사회계약론과 정치이론 I. 리바이어던: 정치적 절대주의 II. 사회계약과 민주주의 III. 존 롤스: 정의론과 목적론적 논의 IV. 일반의지 보론: 헤겔과 정치철학 V. 공화제와 군주론 VI. 신학적 평가: 자연법, 분배 정의, 주권 제3장 | 코스모폴리탄 원리와 인정투쟁 I. 칸트와 역사철학 II. 사회계약과 코스모폴리탄 윤리 III. 해방의 관점에서 비판적 평가 IV. 인정투쟁과 포스트콜로니얼 이론 제4장 | 기독교현실주의와 종교사회주의 I. 라인홀드 니부어와 기독교현실주의 보론: 원죄, 게이 유전자, 자연과학 II. 삶의 의지와 힘의 의지 III. 기독교현실주의와 마르크스 이론 IV. 리버럴 정치이론과 민주주의 V. 종교사회주의 원리 VI. 공공신학과 종속 근대성 에필로그 참고문헌 찾아보기 |
정승훈의 다른 상품
|
밀(J.S. Mill)은 칸트를 비판하는데, 다음과 같은 보편원리를 의무의 근거로 놓는 것은 오류에 속한다. “네가 행동하는 규칙은 모든 합리적인 존재들이 법으로 수용하고 받아들이도록 행동하라” 그러나 밀에 의하면, 칸트의 이러한 입장은 다음의 사실을 도외시한다: “모든 합리적 존재가 매우 쇼킹한 비도덕한 행동의 규칙을 수용하는 데서 대립과 논리적(신체적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불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밀의 주장과는 달리, 칸트는 도덕의 보편원리를 고려할 때 비합리적인 규칙으로 드러나는 귀결에 근거하지 않는다. 개인의 도덕적 격률은 정언명법에 일치해야 하고, 그것은 인간을 목적 자체로 존중하는 보편적 기준을 말한다. 칸트에 의하면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존재들이 쇼킹한 비도덕한 일들을 자행할 때, 이들은 더 이상 합리적이거나 도덕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저 악을 수행하는 존재가 된다. ---「1장 _ [근대 정치이론과 정의론] 」중에서 자유의 신학적 원리에서 각자에게 주어지는 정당한 몫의 원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적 노예개념과 반립된다. 본회퍼에 의하면, 정당한 몫(suum cuique)의 원리는 적용에서 여전히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권리 간의 충돌은 자연적인 것 안에 있기 때문이다. 분배의 원리는 자연적인 것 안에서 권리들의 충돌을 간과하며, 정의를 유지하기 위해 외부로부터 개입하는 실정법을 요구한다. 자연적으로 주어진 정당한 영예와 권리는 창조주 하나님과 관련되며, 하나님은 개인들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 비록 충돌의 세계 안에 살지만, 개인의 권리가 인정된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의미는 인간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서 자유롭다는 것을 말한다. “자유는 인간 존재가 소유하는 특질이 아니다. 그것은 능력이나 인간 안에 깊숙이 숨겨진 존재의 품성도 아니다. 자유는 발견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본회퍼는 자연적 몫과 권리의 원리를 궁극이전의 것으로 해석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이것을 모두 각자에게 성령을 통해 주신 것이라고 말한다. 궁극이전의 것은 종말 이전의 것이며 종말 즉 궁극적인 것에 의해 결정된다. 궁극이전과 궁극적인 것의 관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화해의 현실을 가진다. 여기서 세계는 궁극적인 것을 향해 성숙해나간다. 따라서 “영원한 생명, 새로운 생명은 보다 큰 능력으로 지상으로 치고 들어오며, 지상의 삶에서 자신의 영역을 가지고 승리한다.” ---「2장 [사회계약론과 정치이론] 」중에서 칸트는 노예제도를 유럽 백인의 문명선교에 디딤돌이 되어주는 구실로 인정했는가? 칸트는 사회 다윈주의자들처럼 역사적 발전 도식에 근거해서 인종 문제를 위계 질서적으로 파악했나? 그렇다면 칸트는 식민주의나 노예제도를 옹호해야 하지 않는가? 유럽의 우월주의 또는 목적의 왕국은 수단(문명선교와 식민주의)을 호혜적인 독재로 정당화하는가? 호혜적인 독재자는 칸트의 정언명법에서 유럽의 우월주의를 위한 디딤돌 역할을 하는가? 비록 맥카시의 칸트 비판은 몇 가지 측면에서 경청할 말한 것이 있지만, 그의 비판은 칸트의 식민주의와 노예 비판을 비켜 간다. 칸트의 역사에서 신정론(theodicy)은 실천이성의 지도 아래 파악된다. 역사발전에서 빚어지는 타락과 폭력 그리고 억울한 자들의 희생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사실 이것은 신학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철학의 문제다. 사도 바울의 십자가 신학에서 욥과 같은 신정론의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칸트는 스토아의 이성개념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보다 더 평등한 관점에서 취해지며, 이러한 평등주의를 자신의 보편사 안에 통합시켰다. 인간의 역사가 발전해온 것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문제는 이러한 발전을 어떻게 이해하는 데 논의가 주어진다. 칸트의 보편사의 입장을 유보함이 없이 그리스의 목적론적(위계질서적) 사고방식에 일치시키는 것은 오해다. 칸트의 신정론(theo-dicy)은 정의로운 하나님의 믿음에 근거하며, 자연의 목적론은 스토아의 보편 이성과 평등주의 원리에 기초한다. 이것은 인종의 위계질서와는 상관이 없다. 칸트의 신정론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역사철학과 비교할 수 있는데 하나님의 도성은 세상의 도시에 누룩처럼 침투하며, 더욱 좋은 발전으로 성장시켜 나간다. ---「3장 [코스모폴리탄 원리와 인정투쟁] 」중에서 니부어에 의하면, 기독교인의 삶이 공동체와 국가 그리고 건전한 문화에 책임감을 상실할 때, 참을 수 없는 피안의 종교로 변질된다고 한다. 기독교의 정치 책임성을 위해 니부어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원죄 개념에 주목한다. 현실주의는 자기 이해와 권력의 요소들을 고려하는 입장인데, 이것은 사회 정치적 상황에서 제도화된 도덕적 규범들과 이념들에 대한 저항에 관련한다. 아우구스티누스(354-430)는 북아프리카 히포의 감독인데, 413년 그의 대작인 『신의 도성』(De Civitate Dei)의 집필을 시작하고 426년에 완성했다. 이것은 410년 로마가 비시고트족(Visigoths)에게 약탈당했을 때, 그의 신학적이며 역사적인 답변을 담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구원사는 니부어에게 사회와 역사에 대한 현실주의적 접근에 기본 틀을 제공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입장은 악과 원죄의 문제를 다룰 때, 그의 성서적 사실주의(biblical realism)에 기초하며, 이것은 인간 자아에 대한 합리주의적 개념과는 다르다. 니부어는 아우구스티누스를 서구사의 첫 번째 위대한 현실주의자로 평가한다. ---「4장 [기독교현실주의와 종교사회주의]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