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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구름 속의 아이

핵 구름 속의 아이

이야기 도시락-05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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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1월 03일
쪽수, 무게, 크기 264쪽 | 482g | 152*220*17mm
ISBN13 9791197634482
ISBN10 1197634487
KC인증 kc마크 인증유형 : 적합성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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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3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치과 의사도, 상냥한 은행 직원도, 엄마랑 고기를 사러 가면 늘 울리와 카이에게 소시지 조각을 쥐여 주곤 했던 정육점의 여점원도 지나쳐 갔다. 울리의 담임선생님은 손을 흔들었다. 우체부도 지나갔는데, 지금은 노란 우편차가 아니라 자신의 자가용에 타고 있었다. 야나와 울리를 알아본 사람들은 고개를 돌려 외면하거나, 난감한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차에 빈자리는 없었다. 짐이 가득가득 실려 있었다.
--- p. 42

환자들은 계속 들고 났다. 새로운 환자들이 실려 왔고, 위급한 환자들은 따로 차출되었다. 부모와 함께 이곳에 들어온 아이들도 많았는데, 부모들은 다른 방에 수용되어 있어 간혹 아이들을 보러 왔다. 때로 야나가 잠을 못 이루고 누워 있을 때면 몰래 자녀의 상태를 확인하러 온 부모들을 보기도 했다. 그들은 아이들이 아직 살아 있는지 보러 온 것이었다.
--- p. 93

“얘, 가만히 좀 있어” 간호사가 그렇게 말하며 야나를 흔들어 깨웠다. “잠자는 사람 다 깨우겠다.”
야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몸을 일으키며 아이제의 손을 놓쳤다.
“울리가 너무 뜨거워요.” 야나가 어물거렸다.
“누구?” 간호사가 물었다.
“아이제.” 야나가 말했다. “아이제가요.”
간호사는 몸을 굽혀 아이제를 살펴보더니 아이제의 침대를 밀고 문쪽으로 향했다. 침대들 사이에 빈 공간이 남았다.
“죽었어요?” 야나가 물었다
“쉿.” 간호사가 속삭였다. “왜 죽어? 다른 교실로 가려고 해. 그게 다야.”
--- pp. 133-134

“나 같으면 얼른 쓰겠어.” 헬가 고모가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오염 지역에서 왔다는 걸 알면 좀 이상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거든. 재난 지역에서 피난 온 사람들에겐 방을 내주지 않는 호텔들도 있어. 병색이 완연한 경우에 말이야. 그들을 받으면 있던 손님들마저 나가 버린다는 거야.”
“이해해요. 그 사건을 떠올리기 싫은 거죠.” 야나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나 같으면 모자를 쓴다고.” 헬가가 말했다. 하지만 야나는 모자를 쓰지 않았다.
“난 사람들이 그 사건을 계속 떠올렸으면 좋겠어요.” 야나가 그렇게 말하며 의자 깊숙이 몸을 묻었다.
--- p. 144

한동안 말이 없던 헬가 고모가 다시 말을 이었다. “가방이며 책이며 다 함부르크에 놓고 갔더구나. 공부 공백은 어떻게 따라잡을 셈이니?”
“전 함부르크로 돌아가지 않아요. 학교도 더 이상 안 다닐 거예요.” 야나가 열을 내며 대답했다. 헬가 고모는 흥분하지 않으려고 목소리를 억누르며 말했다. “학교 교육을 받지 않으면 네 장래가 어떻게 될까?”
“장래라고요? 제게 장래 같은 게 있을지 어떻게 알아요? 전 모르겠어요. 하지만 내게 남아 있을 약간의 삶은 내 맘대로 살 거예요. 우리같은 사람에게 학교가 뭘 그리 대수겠어요!”
“학교보다 더 중요한 게 대체 뭐란 말이니?” 헬가 고모가 물었다.
“내가 여기에 살아 있다는 것.” 야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헬가 고모의 표정을 보고 이렇게 덧붙였다. “이곳에서 나는 사는 것처럼 살고 있어요.”
--- p. 207

횡단보도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을 때였다. 그들 뒤에서 누군가가 작은 소리로 수군거렸다. “세상에. 당했군, 당했어.” 하지만 목소리는 다들리고도 남았다. 엘마는 화들짝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당신들은 아닌 것 같아요? 여기까지도 다 왔다고요! 안 간 데가 없어요! 강하지 않다고요? 생명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라고요? 누가 그런 말을 하죠? 내무부 장관? 정치인들? 웃기고 있네. 땅, 공기, 먹거리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오염되었어요! 머리는 벗겨지지 않았는지 몰라도, 당신네들도 다 암에 걸릴 거라는 건 기정사실! 원전에서 400킬로미터, 50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게 뭐 대수인가요? 어떤 암에 걸릴 것인지가 관건일 뿐. 손주들 중엔 이제 아주 환상적인 기형아들이 속출하겠죠. 그 역시 기정사실이에요. 손주들이 나중에 어떻게 이렇게 되었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지나 생각해 놓으시죠!”
--- p. 162

할아버지는 언짢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내가 뭐가 중요한지를 알려주지.” 할아버지는 마치 다수의 청중 앞에서 강의라도 하듯 설교조로 말을 이었다. “중요한 건 이런 사건 사고는 언론에 알리지 말아야 한다는 거야. 그러면 이런 야단법석이 벌어질 염려도 없어. 그러면 경종을 울리며 사실을 과장하는 일도 없을 것이고……. 요즘 사람들은 뭘 그렇게 다 까발리려고 하는지. 야나 어미만 해도 그렇지. 원자로 내부 구조니, 렘이니, 베크렐이니 하는 걸 제가 알아서 어쩌겠다는 거야 ? 결국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말이야. 우리의 사고로 대체 몇 명이 사망했는지 전 세계에 알려서 어쩌겠다는 건지 모르겠어. 재난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어 봤자 외국에서 우리 이미지만 나빠지는 것을! 난 그냥 이 땅의 정치인들이 알아서 조용히 이 일을 처리했더라면 좋았을 뻔했다는 생각이야. 그랬더라면 슐리츠 사람들은 이런 사고가 일어났다는 걸 알아차리지도 못했을 텐데. 어떤 기자도 이 일을 염탐하고 돌아다
닐 생각을 하지 않았을 거고 말이야.”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순간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야나가 살며시 모자를 벗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 pp. 262-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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