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쓰러져 있다. 노숙자인가? 무심코 지나가려는데 가슴 위로 붉은색 액체가 흥건하게 흐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사고가 난 걸까? 살았는지 죽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 기가 겁이 났다.
나는 지나가던 행인 한 명을 붙잡아 확인해 봐 달라고 부탁했다. 그 행인은 위아래로 나를 훑어보더니, “미친놈, 뭘 확인하라는 거야.” 하며 욕을 내뱉고는 그대로 지나가 버렸다. 순간, 정신이 혼미했다. 다른 사람을 붙잡아 물어보지만, 이번에도 무슨 말이냐며 못 본 척 무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몰려오는 공포에 머리털이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지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쓰러져 있는 사람을 도와 달라 부탁했지만,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날 미친 사람 취급할 뿐 도와주려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다른 사람에게는 도움을 받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직접 경찰에 신고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이 도착했다. 경찰은 주변을 살피더니 부상자가 어디에 있냐고 내게 물었다. 마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듯한 태연한 말투와 행동이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바로 앞에 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사람이 버젓이 있는데 왜 보지 못하는 거야?’ 미칠 노릇이었다.
경찰관은 한동안 내 얘기를 듣다,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정신이상자인 것 같다고 자기들끼리 수군댔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눈빛이었다. 혼란스러웠다. 그 순간,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져 오나 싶더니 점점 눈앞이 흐릿해졌다.
다음은…… 기억나지 않는다.
눈을 떠 보니 병원 응급실이었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지?
아, 맞다. 길에서 쓰러졌었지. 혹시 바닥에 쓰러져 있던 그 사람과 함께 병원에 온 건가? 그 사람은 괜찮은 건가? 혹시 꿈이었나? 아니다. 분명 있었던 일이다.
“저기…… 일어나셨어요?”
눈을 끔뻑이고 있는데, 옆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아까 신고를 받고 출동했던 그 경찰관이다. 이 사람이 나를 여기까지 데리고 와 준 듯했다.
“저기요. 괜찮으세요?”
“아……. 네,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아까 일, 기억은 하시죠? 그런 장난 전화는 하시면 안 됩니다. 일단 경찰서로 가시죠. 허위 신고 관련해서 경위서를 써야 하니 같이 가 주셔야겠습니다.”
“장난 전화요? 허위 신고라니요?”
“잠깐이면 됩니다. 이제 괜찮아지셨으면 같이 가시죠.”
“아니요. 허위 신고가 아니라 정말 사람이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었다니까요. 그 사람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여기 같이 온 거 아닌가요?”
“계속 같은 말을 하시네. 저희가 도착했을 때 부상자는 없었습니다. 지금 제 앞에 계신 분, 본인만 계셨다고요. 자꾸 이러시면…… 아닙니다. 우선은 서로 가서 얘기하죠.”
“아니에요. 정말 사람이 쓰려져 있었어요. 분명 제 눈으로 직접 보고 신고했다니까요. 정말이에요.”
“네, 네. 알겠습니다. 알겠으니까 일단 경찰서로 가서 얘기하시죠. 부모님께 연락해서 서로 와 달라고 하고요.”
--- 「제1화, 시체를 보는 사나이」 중에서
“젊은 친구. 이름이 시보라고 했죠?”
“네, 이름을 기억하시네요?”
“뭘 기억해요. 조서 보고 알았지.”
“아……. 팀장님, 저분께도 계속 말씀드렸지만 저는 억울해 요. 전 단지 그 여자분을 살리려고 했을 뿐이에요.”
“최 형사가 이상한 말을 하던데, 그 여자가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맞아요?”
“아니요. 그게…… 혹시 저번에 제가 여기 왔을 때 말씀드렸던 얘기 기억나세요?”
“음, 허위 신고로 잡혀 와서도 사람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걸 봤다고. 맞나?”
“맞아요. 근데 그런 사람이 없다고 말씀하셔서 제가 참 곤란했었죠. 그때도 못 믿으셨지만…….”
“믿을 수 있어야 믿지. 그날 신고를 받고 갔을 때는 부상자는커녕 아무도 없었다고. 안 그래요?”
“그랬죠…….”
나는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어떻게든 내가 본 것들에 대해 증명을 해야 했다.
“그럼 혹시 최근에 노량진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이나, 죽은사람 신고는 없었나요?”
“그런 사건이 한두 건이라야 말이지. 혹시 차림새나 정확한 위치라도 알 수 있을까? 아니지, 뭐야? 지금 미래에 일어날 일을 본다는 거야? 그것도 죽을 사람을? 지금 나랑 장난해!”
“아니, 저도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 제가 그때 버거킹에 햄버거를 먹으러 가는 길이었어요. 노량진로를 따라 걸어가다 봤는데, 푸른 셔츠를 입고 있었고 가슴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 다고요.”
민 팀장은 잠시 눈을 굴리더니 살짝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노량진로? 푸른 셔츠에 가슴에서 피가 흘러? 잠시만…… 잠시만. 저기, 김 형사! 잠깐만 여기로 와 봐!”
그날은 내가 그곳을 왜, 어디로 가고 있었는지 계속 기억이 나지 않았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불현듯 그날의 일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저녁으로 햄버거를 먹기 위해 버거킹 으로 가다가 그 시체를 본 것이었다.
이미 일어난 일일까? 아니면 아직일까?
“며칠 전에 노량진로에서 살인 사건 하나 있지 않았나?”
“네, 삼 일 전인가? 아니, 이틀 전이네요. 노량진로 편의점 근방에서 살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현재 조사 중인데 왜 그러세 요? 혹시 뭐라도 찾으신 게 있으십니까?”
“그 피해자가 그때 푸른 셔츠를 입고 있었나? 가슴에 자상 이 있고?”
“맞습니다. 심장 부위가 정확히 두 번 칼에 찔린 상태로 발견 됐습니다. 근데 민 팀장님이 그걸 어떻게…… 아니, 그건 왜 물어보시는 건데요?”
“아니……. 아니야 고마워.”
민 팀장은 김 형사의 말이 믿기지 않는지 고개를 갸웃거렸 다. 김 형사가 자리로 돌아가자, 민 팀장은 묘한 눈빛으로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된다는 듯한 표정이다. 무슨 말이라도 해 주면 좋으련만 아무 말 없이 한참을 쳐다보기만 했다.
“저기…… 팀장님, 제가 본 사람이 진짜 죽은 건가요? 정말 제가 본 그 장소에서 죽은 게 맞나요?”
민 팀장은 매서운 눈빛으로 나를 계속 주시하고만 있었다.
“저도 믿어지지 않지만요. 그게 사실이라면…… 아니, 제가 분명 그 여성분이 죽은 것도 봤거든요. 그분은 괜찮은 거죠? 혹시 또 자살을 시도하는 건 아니겠죠? 팀장님! 무슨 말씀이라도좀 해 보세요.”
“남시보 씨, 그러니까 당신 말이…… 죽은 사람 아니, 앞으로 죽을 사람이 어디서 어떻게 죽는지를 미리 알 수 있다는…… 아니! 말도 안 돼. 단순히 우연의 일치겠지.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무슨 예지 능력이라도 있다는 건가?”
“모르겠어요, 예지 능력까지는. 그냥 제가 본 걸 말씀드린 것뿐이에요. 근데 왠지 진짜로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그 여성분을 우연히 구한 것뿐이라고요!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요?”
민 팀장은 길게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잘못했다는 게 아니라, 믿기 어려워서 그러죠. 지금 21세기예요. 최첨단 과학 기술이 엄청나게 발달한 이런 세상에 그걸 누가 믿을 수 있겠어요? 안 그래요?”
“그렇죠. 알아요. 그래서 저도 미치겠어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도 모르겠고요. 그냥 믿어 달라고밖에 할 수 없는 저도! 억울해서 팔짝 뛰겠다고요.”
“그럼 혹시…… 다른 건 없어요? 그 여성분 말고 또 시체를 미리 본 게 있냔 말이에요.”
“아, 저번에 제가 여기 잡혀 온 날에요. 머리가 아파서 화장실에…… 맞다! 그날 같이 계셨는데…….”
“누가요? 뭐라도 본 게 있어요?”
나는 잠시 망설이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팀장님……. 혹시 이 형사라고…….”
“어? 이 형사? 이연우 경위를 알아요?”
“아니, 그날 화장실에서…….”
“화장실? 화장실이라면 혹시…….”
민 팀장과 나는 동시에 “목을 매…….” 하고 같은 말을 내뱉 었다.
“그걸 어떻게 아세요?”
“시보 씨야말로 어떻게 알지? 그날 그걸 봤다는 건가?”
“네? 혹시…… 죽었나요?”
“음……. 어제 새벽에 발견됐어요. 아직 조사 중이라…….”
“아…….”
“아직 외부에 알려진 사건이 아니니 말조심해 줘요. 타살인지 자살인지도 확실하지 않고요.”
“네, 걱정 마세요.”
민 팀장은 자세를 고쳐 앉더니 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허위 신고로 여기 온 날, 그 모습을 봤다는 거죠?
자세히 좀 설명해 봐요.”
“그게……. 사실 그날 일을 떠올리기가 겁나요. 너무 무섭기도 하고요. 목을 맨 채 죽어 있는 사람을 본 건 처음이라…….”
“아, 그렇지. 미안해요. 나도 살인 사건 현장을 볼 때마다 힘든데 일반인은 더 힘들겠지. 트라우마가 생길 수 있으니 힘들면 말 안 해도 돼요. 단지 사건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물어본 거니……. 내 생각이 짧았네요.”
“아……. 이유는 모르겠지만 제가 본 걸 기억하려고 하면 머리가 너무 아파요. 시야가 흐릿해지고 어지러운 것도 있는데 저번엔 그러다 기절까지 한 거라……. 죄송해요.”
“그래서 그랬군요. 그래요. 괜찮아요. 그럼 혹시, 나중에라도 괜찮아지면 부탁할 수 있을까요?”
“네, 그럼요.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저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저 정말 그런 사람 아니에요. 단지 살리려고 허리를 잡아끌다가, 저도 모르게 자세가 그렇게 된 거라고요.
믿어주세요.”
민 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본 것들을 이해할 순 없겠지만, 실제 있었던 일이라는 것을 믿어주는 듯했다.
“그래요. 만약 시보 씨 말이 맞는다면 그 여성분이 오해를 풀어주겠죠. 조금만 기다려 봅시다.”
“감사합니다, 팀장님. 믿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나중에 괜찮아지면, 그때는 꼭 이 경위님 일도 도와드릴게요. 진심이에요.”
“고마워요.”
한 명이라도 믿어주는 사람이 있어 다행이었다. 이제 그 여성분이 사실대로 진술만 해 준다면 일이 쉽게 풀릴 것 같았다.
아무도 보지 못하는 시체를 나만 볼 수 있다. 그것도 앞으로 죽을 사람의 시체를……. 그런데 왜 갑자기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고, 어째서 나에게만 이런 초자연 현상이 보이는 거지?
대체 이유가 뭘까?
--- 「제1화, 시체를 보는 사나이」 중에서
“여기네요. 여기가 이진성 씨가 쓰러져 있던 곳이에요.”
“아, 네. 잠시만요.”
“그래요. 천천히 생각해 봐요.”
현장에 도착했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과연 기억이 날까? 그날 봤던 시체를 떠올릴 수나 있을지 걱정이 됐다.
눈을 감고 그날 보았던 푸른 셔츠 입은 남자의 모습을 그려 보았다. 그리고 이내 그때의 장면에 서서히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다. 마치 눈앞에 시체가 놓여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다행히 걱정했던 머리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얼굴은 반대편을 향하고 있었고, 푸른 셔츠엔 붉은 피가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바닥까지 흘러내려 넓게 퍼진 피 웅덩이에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검은 정장 바지와 검은 구두. 딱히 특별한 것 없이 처음 봤던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시선을 위로 올려보니, 주머니에 종이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반쯤 삐죽 튀어나와 있다. 그땐 보지 못했던 것 같아 좀 더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들여다봤다. 무슨 영수증 같은데……. 종이 에도 피가 묻어 있어 확실친 않았다. 아니, 택배 전표인가? 조금 더, 조금만 더. 아윽! 머리가…….
“시보 씨! 괜찮아요? 힘들면 잠시 쉬어요.”
갑자기 머리에 통증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눈을 떠 버렸다.
“아……. 네, 잠깐 쉬고 다시 생각해 볼게요. 그때처럼 머리가 좀 아프네요.”
“뭐가 보이긴 해요?”
“종이가 있는데 그게 영수증인지, 택배 전표인지…….”
“정말 그게 보여요? 영수증이에요, 택배 전표예요?”
“택배 전표 같은데……. 아! 편의점 택배 영수증 같아요.”
“주머니 안에 있다고 했죠? 그러면 증거품에 있겠네요. 뭐 또다른 건 없었어요?”
“네, 특별히……. 근데 그분이 칼에 찔려 죽은 게 맞나요?”
“그건 왜요? 뭐가 또 보였어요?”
“시체 뒤통수가 움푹 들어가 있는 듯 보여서…….”
“맞아요. 부검 결과가 추락사로 인한 뇌출혈과 심정지로 나왔 어요. 추락으로 뇌에 손상을 입었고, 그로 인해 뇌 안에 출혈이 있었어요. 심장이 칼에 찔려 심정지도 왔고요. 뭐가 먼저인지는좀 더 검시를 해 봐야 한다고 해서……. 뭐, 둘 다 사망 원인이긴 하겠죠.”
“그럼 저 건물 위에서 떨어진 건가요?”
“주변 CCTV 영상을 봐서는…… 네, 맞아요. 저 위겠네요.”
“그래요? 그럼 CCTV에 범인이 찍혔겠네요.”
“그날 이 건물을 출입한 사람들을 다 확인해 봤지만 의심할 만한 사람은 없었어요. 그런데…….”
나는 다음 말을 기다리듯 김 형사의 입만 보고 있었다.
“뭐……. 아무튼 그렇더라고요. 이제 다시 한번 떠올려 볼 수있겠어요?”
“아아, 네.”
나는 숨을 고르고 다시 눈을 감았다.
--- 「제3화, 살인범의 등장」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