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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생물 이야기

무생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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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생물 이야기 (큰글자도서)
[도서] 무생물 이야기 (큰글자도서)
양지윤 저 팩토리나인
0% 29,000
무생물 이야기 (큰글자도서)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6월 16일
쪽수, 무게, 크기 276쪽 | 336g | 130*200*19mm
ISBN13 9791165343743
ISBN10 1165343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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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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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났는데 내가 무생물이 되어 있었다. 반대로 나를 제외한 집 안의 모든 것이 생물이 되어 있었다.
이불은 느끼한 자세로 내 몸에 엉겨 붙어 있었고, 침대는 내가 무겁다며 성질을 냈다. 책들은 번식을 끝낸 나방처럼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책상은 늙은 조랑말처럼 앞다리를 굽히고 앉아 있었다. 전자레인지는 오르골 흉내를 내며 빙글빙글 돌았고, 식기들은 캐스터네츠처럼 서로 부딪치다가 깨져버렸다. 바닥은 잠자는 고래의 등짝처럼 흔들렸고, 의자는 시츄처럼 뛰어다녔다. 화장실에 들어가자 변기가 나폴레옹 흉내를 내며 물대포를 쐈고, 샤워기가 묘기 부리는 뱀처럼 일어나 내 목을 물 준비를 했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 「1부. 무생물 이야기」 중에서

벌써 며칠째 나는 제대로 잠도 못 자고 먹지도 못했다.
침대와 냉장고가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다가가면 그들은 겁을 주면서 나를 쫓아냈다. 그것들이 무생물일 때는 몰랐는데, 생물이 되고 나니 덩치가 커서 무서웠다. 그들이 내 몸 위로 떨어지기만 해도 죽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아도 죽을 수도 있다는 게 아이러니했다.
나는 배가 고파서 죽을 지경이었다.
“대체 내가 뭘 잘못한 거야?”
내가 물었다.
“몰라서 물어?”
냉장고가 말했다.
“내가 무생물일 때 네가 어떻게 했는지 떠올려봐.”
나는 생각해보았다. 기억나지 않았다.
“모르겠는데.”
“‘나의 냉장고’라고 불러준 적 있어? 있으면 빨리 말해.”
냉장고가 말했다.
“없어.”
냉장고가 흥분해서 코와 입으로 슉슉대며 냉기를 쏟아냈다. 그러고도 더운지 문을 열었다 닫았다 했다. 나는 냉장고 문짝에 맞아서 죽은 사람 얘기를 들어본 적 있는지 생각해보았다.
“나는 이 집에 온 이래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널 위해 일했어. 네가 지키고 싶어 하는 것들을 지켜내느라.
그런데 넌 나한테 고마워하기는커녕 나의 냉장고라고 불러준 적도 없어.”
냉장고의 말은 사실이었다. 나의 냉장고라고 불러주 긴커녕 한번도 진지하게 냉장고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가 무생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오는 걸 알았다.
그 소리는 안방에서 나고 있었다. 베개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 보이지 않았지만 침대가 내는 소리였다. 지난 며칠 동안 지켜본 결과, 우람한 몸집의 궤짝은 깃털보다 더 마음이 여렸다.
내가 침대를 의식하는 걸 눈치채고 냉장고가 말했다.
“넌 침대에게도 ‘나의 침대’라고 불러준 적 없어. 네 인생의 무게를 받아내느라 쟤는 말더듬증까지 생겼는데.”
“나는 똥오줌을 받아줬지.”
바로 그때 화장실 문이 열리고 변기가 소리쳤다. 나폴레옹이 양손을 허리에 올린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며칠째 똥을 누지 못해 얼굴이 누렇게 변한 걸 빠뜨리고 말하지 않았다. 그가 무언가 빠뜨리기 좋게 생기기도 했지만.
“그래. ‘나의 변기’도.”
냉장고가 친절하게 덧붙였다.
나는 상황이 생각보다 더 심각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 하지만 그건 내가 너흴 무시해서 그런 게 아니야.”
내가 변명했다.
“이건 크기의 문제야. 내가 너흴 들고 세상 밖에 나갈 수만 있었어도 사람들 앞에서 나의 냉장고라고 말할 기회가 있었을 거야.”
“과연 그럴까?”
냉장고가 고개를 까딱하자 멀리서 검정 물체가 뛰어 왔다. 걸레였다. 원래는 행주였던 게 분명한 노란 천 조각이 불에 그을린 것처럼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런 게 내 집에 있는지도 몰랐다.
--- 「1부. 무생물 이야기」 중에서

나는 젖은 책들을 거실 바닥에 일렬로 늘어놓았다. 그것들은 저수지에서 건져 올린 미라들처럼 보였지만 나는 그것들을 꽃잎처럼 말렸다. 어떻게 보면 영구보존할 가치가 있는 아름다운 시절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는 내 집에 있는 무생물들을 바라보았다. 침대와 냉장고, 변기, 노트북, 심지어 배은망덕한 시츄들까지. 그들은 떨고 있었다. 잊혀질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내가 책을 쓴 것도 잊혀지지 않기 위해서다. 나는 책을 써서 그러한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무생물이 된다는 것은 잊혀진다는 것이다. 무생물이 무생물인 이유는 살아 있지 않아서가 아니라, 자신의 가슴속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모두 얼마쯤은 무생물이다. 텅 빈 가슴을 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살아가는 동안은 그 안을 진실로 채워야만 한다. 내 집 안의 무생물들을 보며 깨달았고 마찬가 지로 내가 무생물이라고 착각하는 동안에도 깨달은 사실이다. 나는 살아간다.
나는 창가로 다가갔다. 아줌마와 나의 연인은 차디찬 겨울날 따뜻한 볕을 쬐러 나온 병아리처럼 서 있었다. 그것은 이상한 광경이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나와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곳에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미소 지었다. 나도 미소 지었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깨달았다. 그것은 이 세상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쓰는 일이다.
그렇게 이 모든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내가 굳이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살다 보면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잃어버릴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밤이 오면 거리마다 케이크에 불이 켜지듯 인생의 길에도 어둠만 있는 것이 아니다.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둘러보면 가방에서 나온 사람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럴 땐 함께 손을 잡고 그 길을 따라가면 된다.
당신은 무생물이 아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이 말을 하고 싶었다.
--- 「5부. 잠들지 않는 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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