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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실수로 투명인간을 죽였다

나는 실수로 투명인간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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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실수로 투명인간을 죽였다 (큰글자도서)
[도서] 나는 실수로 투명인간을 죽였다 (큰글자도서)
경민선 저 팩토리나인
0% 27,000
나는 실수로 투명인간을 죽였다 (큰글자도서)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0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248쪽 | 320g | 134*200*18mm
ISBN13 9791165345884
ISBN10 1165345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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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나설 때마다 하는 생각이지만 계단은 야박하고 괘씸한 물건이다. 20센티미터 높이의 계단을 하나 오르기 위해선 최소 21센티 이상 발을 올려야 했다. 18, 19센티 정도 발을 들고 계단을 오르겠다 주장할 순 없다. 최소한의 합격선을 넘지 못한 자에게 세상은 반 계단조차 인정해 주지 않는 법이다. 이 계단의 법칙이 나를 반지하에 살도록 만들었다. 늘 15센티 정도 발을 들었다가 포기하고는 금세 다른 계단을 찾아 전전해 온 결과, 나는 스물아홉 살의 나이에 미처 한 계단도 못 오르고 층계 앞에서 탭댄스만 추고 있었다.
--- p.11

그제야 사태 파악이 되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소파 위쪽을 만져보니 탄탄한 근육과 그 안의 단단한 뼈까지 느껴졌다. 사람의 몸이라는 걸 의심할 여지는 없었다. 눈에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빼고는.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일어서서 기영을 봤다. 기영의 시선은 보이지 않는 소파 위의 물건에 고정되어 있었다. 기영은 농담을 한 적이 없었다. 여기 기영의 집에 분명 투명인간의 시체가 있다.
--- p.21

“그쪽은 정체가 뭔데요? 귀신? 투명인간? 초능력자?”
“우릴 부르는 명칭이 있지. 좋아하는 이름은 아니지만.”
“뭔데요, 그게?”
“묵인. 사람 할 때의 인이다.”
묵인. 이름을 붙인 이가 누군지, 부르는 이가 누군지는 몰라도 그들이 불리는 이름이었다. 침묵과 묵언, 묵살 할 때의 묵과 사람의 인이 합쳐진 기묘한 합성어인 것 같았다. 그 이름 자체가 으스스한 느낌을 줬다.
--- p.68

이런 순간을 연달아 겪게 한 신의 가혹함을 저주했지만 잘못은 내게 있었다. 내가 세상의 웃음거리인 줄도 모르고 살아온 죄였다. 세상 사람들의 시선은 지훈이네 패거리의 시선과 한 치도 다르지 않았다. 그들이 특별히 나쁜 것이 아니라 내가 특별히 못난 인간임을 나는 뒤늦게 깨닫고 있었다.
--- p.79

갑자기 동생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그…… 투명한 사람이 있을 수 있냐?’
‘무슨 미친 소리야? 사람 몸에서 투명한 건 각막밖에 없어.’
잠깐만, 사람은 투명한 각막으로 서로를 볼 수 있다. 또 사사녀는 묵인들이 서로를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묵인의 각막이라면 묵인을 볼 수 있다? 문득 이상한 가설이 떠올랐다. 어쩌면 내가 처한 위기에 대처할 방법이 딱 하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걸 실천하기 위해선 아주 극단적인 행동이 필요했다.
--- p.146

그리고 나는 태어나서 한 번도 못 봤던,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기묘한 장면을 보았다. 내 정수리 위에 누군가가 거꾸로 서 있었다. 그것은 양다리를 안테나처럼 쫙 펼쳐 벽과 천장을 지탱한 채 고개를 내 쪽으로 늘어뜨리고 있었다. 도저히 형언할 수 없는 모습의 생물이었다. 사람이 아니라는 것만은 너무도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 pp.174~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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