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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의 말들

옷의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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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9월 24일
쪽수, 무게, 크기 320쪽 | 404g | 135*210*30mm
ISBN13 9788932322445
ISBN10 8932322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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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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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도 언제나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옷이 단순한 천 조각 이상이라고 느껴졌다. 꽃무늬 원피스와 인디고색 셔츠, 체크무늬 코트를 볼 때면 이들을 입고 내가 살아가게 될 더 온전하고 발전된 삶이 보인다. 이들은 매우 신나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들어가며」중에서

내가 처음으로 브래지어를 착용했던 시기인 1969년에 브래지어는 내가 간절히 기다렸던 유년 시절로부터의 탈출과는 매우 다른 종류의 자유를 상징하게 되었다. 바로 브래지어를 착용이 아닌 제거하는 것이었는데, 페미니즘에 일어난 새로운 움직임이 브래지어가 억압적인 남성의 시선을 상징한다며 거부했다. 여성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보좌관이 아니라 여성의 모든 자연적인 특성을 부정하고 남성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만드는 공범으로 간주했다.
---「브래지어」중에서

내 첫 번째 (세루티 브랜드의 가는 밝은 청색 줄무늬가 있는 연회색) 정장은 이모가 준 선물이었다. 이모가 입는 정장처럼 어깨에 패드가 살짝 들어간 긴 재킷과 스트레이트 스커트였다. 내가 소유했던 옷 중 가장 비싼 것이었으나, 이모는 회의실과 사무실에서 좋은 인상을 심어주어야 하는 직장 여성은 내가 평소에 즐겨 입는 중고품 상점에서 산 잡다한 것들이 아닌 말끔한 정장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20대 내내 모든 중요한 회사 행사나 입사 면접 때 이 정장을 입었다. 심지어 이 옷에 어울리는 돌치스 브랜드의 누드 색깔에 굽이 높은 펌프스힐도 구매했다. 이 옷을 입으면 비즈니스 정장을 입었을 때 느낄 수 있는 그 기분을 느꼈다. 자신감이 생겼고, 똑똑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이 옷은 내 옷장을 채우고 있는 다른 옷들과 전혀 달랐지만, 침입자라기보다는 격려와 지원을 해주는 존재였다. 콘스턴스 이모가 나를 위해 사주었기 때문이다.
---「정장」중에서

하지만 이후로 흰색 셔츠는 메이플소프가 찍은 앨범 사진의 이상적인 모습과 반대되는 것들을 대표하게 되었다니 기이할 따름이다. 이들은 이제 질서와 단정함, 전문성, 권위를 의미한다. 내가 오베르토 길리의 사진을 위해 흰색 셔츠를 선택했을 때 나 역시 다수의 여성 간부 홍보 사진 대열에 합류 했다. 우리는 이런 여성들의 사진을 많이 보아 잘 알고 있다.

잡지나 신문, 웹사이트, 보도 자료의 사진 속에서 쏘아보듯이 빤히 쳐다보는 시선, 깔끔한 단발 또는 최소한 드라이어로 매끄럽게 매만진 머리, ‘저를 믿으세요’하는 표정. 심지어 가만히 바라보거나 때때로 따뜻한 미소를 짓고, 보통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지만 부드러운 턱선을 감추는 데는 언제나 도움이 되는) 매니큐어를 칠한 손으로 볼을 감싼 모습을 하고 있다.

흰색 셔츠는 눈에 띄지 않게 권한을 상징하고, 지나치게 화려하거나 반대로 초라해 보이지 않으면서 독설을 피해간다. 흰색 셔츠를 입은 여성에게 주가나 담보 대출을 맡기기 안전해 보인다. 이런 여성들은 책임자로 적합해 보이고, 대부분 사람들이 일할 때는 요란하기보다 꾸밈없는 모습을 선호한다.
---「흰색 셔츠」중에서

《보그》 편집장이던 시절에 다른 매체와 인터뷰할 때면 으레 내 사이즈가 언급되었다. 기사 내용이 어떻든 ‘《보그》 편집장을 만나다. 사이즈 14, 그러나 행복하다’ 같은 요란스러운 제목이 붙었다. 이상한 점은 나를 인터뷰한 여성들이(이런 기사를 작성하는 사람들은 거의 언제나 여성이었다) 마른 몸에 대한 집착이 잘못되었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내 옷 사이즈를 들먹이는 것을 가치 있다고 여겼다.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남자 후임인 에드워드 에닌풀에 대해 쓴 글에는 그의 외모는 물론 체중에 대한 평이 없다는 사실에 당혹스럽기는 했지만, 나는 언제나 대외활동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외모에 대한 평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것이 임신한 사실을 정말로 기쁘게 받아들이게 해준 많은 이유 중 하나였다. 만세! 마음 놓고 살이 쪄도 된다.
---「임부복」중에서

휴가용 옷은 일상에서의 탈출을 의미한다. 그리고 나는 내 조국에 방금 일어난 일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에 대한 실질적인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보통은 휴가 때만 입는 바지를 꺼내 입었다. 루이스 맥니스의 시 「눈 Snow」의 한 구절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세상은 미쳤고 우리의 생각보다 더 그렇다.’ 이 바지가 세상에 대한 나의 반응이었다. 세상이 갑자기 더 예측할 수 없는 곳으로 변했을 때 냉정을 유지하고 편안함이라는 보호막으로 나를 감싸려고 의도적으로 이바지를 입었다. 흐린 분홍색 면바지가 이런 식으로 도움을 줄 수 있었다.
---「휴가지에서 입는 옷」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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