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투두리스트를 좀 순조롭게 지워 나간다 싶으면 ‘나 갓생 시작인가?’ 했다가도, 결국 저녁부터 밤늦게까지 유튜브만 보다 잠들 때면 ‘내일부터 진짜 갓생 산다’고 결심한다. 하지만 이 말을 할수록 어쩐지 갓생과 거리가 더 멀어지는 거 같아서, 실은 저주문을 외우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 p.19
이런 만성적 번아웃의 시대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미라클이고, 매일매일 루틴을 지키는 건 신의 경지가 될 수밖에 없다. 통근하느라 길바닥에 시간과 체력을 버리거나, 가사 노동과 육아 혹은 간병을 병행해야 하거나, ‘건강’한 몸이 아니라면 더더욱 노동 로봇으로 변신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삶은 너무 비인간적이라는 점에서도 갓생이라고 불리는 걸지도 모른다.
--- p.37
어쩌면 나는 ‘자본 없는 자본주의 인간’일지 모른다. (중략)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런 라이프스타일이 그렇게 나쁜지도 모르겠다. 배민맛이 좀 찜찜해서 그렇지, 장 보고 요리하는 시간을 이만큼 아껴주는 걸 따지면 계속 맛봐도 상관없을 것 같다. 그렇게 아낀 시간들로 못다 한 일을 하고, 경력을 쌓고, 돈을 좀 벌면 그때 가서 대안적인 삶 좀 챙겨도 되지 않을까? 과장 좀 보태, 배민맛은 나라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일지도 모른다. 배민맛, 불닭앤카스맛, 스벅맛, 마늘주사맛, 편의점맛, 레토르트맛이 없었다면 도시 노동자로 생존할 수나 있었을까?
--- p.48
패션은 길거리에 널려 있지만, 인테리어라는 건 누군가의 집에 초대되고 나서야 볼 수 있는 내밀한 광경이다. 그때만 해도 가장 잘 꾸민 집에 대한 상상력은 드라마 속 재벌 집까지였다. (중략) 국민 대다수의 상상력도 나와 비슷했을 거다. 이걸 오늘의집이 바꿨다. 예를 들면, 플랫폼 내에서 클릭 한 번만으로 낯선 사람들의 집 사진을 몇만 장 이상으로, 그것도 커튼이나 조명 하나하나의 가격까지 클로즈업해서 끊임없이 볼 수 있게 됐다.
--- pp.64~65
내 집 마련은 불가능해졌다. 하지만 인테리어는 어느 정도 손볼 수 있다. 누구나 집을 살 수는 없어도, 누구나 예쁜 집에 사는 건 상대적으로 허들이 낮으니까.
--- p.71
이케아는 ‘체인징 룸 제너레이션’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인테리어를 자주 바꾸는 세대라는 뜻으로, 2년마다 한 번씩 세련된 저가 가구로 집을 단장하는 유행에서 유래했다. 이를 통해 이케아는 가구를 소모품으로 프레이밍하는 데 성공했다. 가구란 신혼 때 맞춰 평생 쓰거나, 자식에게까지 물려준다는 생각으로 샀던 위 세대와는 아예 다른 사고방식인 것이다. (중략) 이렇다보니 “가구가 옷 가격이라 부담 없어요”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많아진다. 하지만 그 저렴한 가격에는 보이지 않는 비용이 붙어 있다.
--- pp.74~75
인테리어는 주거 개념의 일부일 뿐이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방 이미지들에선 주거의 질에 대한 이야기는 지워져 있다. 아무리 좁은 원룸이어도 넓어 보이게, 로망대로 실현하는 노하우 수준에서만 이야기된다. 평수나 환기 시설이 최저 주거 기준에 미달하는 집이 넘치고, 성폭력 범죄에 대한 치안 비용을 여성 개인만 감당하는 문제 같은 건 러그나 포스터 뒤편에 그대로 가려져 있다. 가난은 더 이상 이전과 같은 방식으론 눈에 보이지 않게 됐다.
--- p.84
사수가 없는 게 얼마나 당연하면 스스로 사수가 되라는 이 책이 주직의 직무 유기가 아닌 ‘선물’이 되는 걸까? 대체 누가 내 사수들을 랜선으로 옮긴 걸까? 오프라인 현실부터 짚어보자. 신문지 접기 게임처럼, 오프라인 사무실은 사수들이 발 디딜 자리가 해마다 성큼성큼 좁아져왔다. (중략) 신입부터 뽑아 육성하는 공채 티오도 점점 줄어들다 못해 바늘귀 수준이 됐다. 공무원조차 호봉제가 폐지되는 건 시간문제가 되고 있다. 조직 내 중간 직급이 없다며 개탄하는 말도, 당연한 일이 되어버린 탓에 이제 들리지도 않는다. 문명의 단위도 12진법이 아니라 11진법으로 바뀌었다. 정규직으로 전환해주기 싫어서 11개월씩만 계약하는 짓을 비꼰 거 맞다.
--- p.90
일머리라는 게 우리가 보통 말하는 ‘뇌’일 수 없다. 일머리가 ‘공부 머리’와 구분되는 개념인 것처럼, 일이란 게 단지 수능 인터넷 강의 듣듯 지식만 쌓는다고 잘하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구든 인수인계서가 아무리 잘 정리돼 있다 하더라도 그것만 달달 외워서 따라 해내기만 하면 순조롭게 일이 풀리는 게 아니란 걸 안다. 일머리에는 일터에서 사람들과 부대낄 ‘일몸’ 그리고 그 일몸들 간의 적절한 ‘관계’가 필요하다. 오피스 사수는 멸종하고 랜선 사수만 증식하는 시대에는 일몸들이 뻗을 자리가 사라지고, 일머리만 둥둥 떠다니는 것 같다.
--- pp.99~100
우리는 꽤 전지전능해졌다. 안부를 굳이 묻지 않아도 중학교 동창이 자신과 똑 닮은 파트너를 만났고, 결혼식은 언제 올렸고, 아이 이름은 뭘로 지었는지까지 안다. (중략) 우리들의 이야기와 관계는 나날이 손쉬워지고 있다. 어째 편리해질수록 톡포비아 증세는 악화된다. 카톡의 편리함이 오히려 ‘톡’의 지분을 점점 앗아간다. 관심 들여 대화해야 할 수 있던 것을 너무 쉽게 알려주니까 말이다. 안부를 묻고, 표정과 몸짓으로도 마음을 전하고, 공감을 표현하는 대화의 너무 많은 기능을 메신저 플랫폼에 외주를 줘버렸다. 웃음과 감사의 뜻은 이모티콘이 탬버린으로 엉덩이도 때려주거나 헤드스핀이나 프리즈 같은 고난도 비보잉 춤까지 춰주며 대신해준다.
--- pp.139~140
콜포비아나 톡포비아를 호소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젊은 세대로 지목된다. 그것은 단지 면대면 대화를 꺼리거나 사회화가 덜 된 미숙한 탓이라기보다, 메신저 플랫폼을 통해 초연결 노동과 갑질, 폭력에 더 쉽게 노출되는 청년의 현실과도 이어진 문제다.
--- p.147
사주나 신점은 K-심리 상담이라고도 불린다. (중략) 날 보자마자 내 인생에 대해 단정지어주고, 장점과 단점을 적절히 적절히 섞어 짚어주며 단짠단짠 고자극 재미를 선사해주며, 맛대가리 없고 안 예쁜 알약 대신 구체적으로 몇 년도부터 풀릴지 약속해준다. 다소 부적절한 구석이 있지만, 인생이 나쁘게 흘러가는 상황에는 나쁜 방법도 적절한 법이다.
--- pp.159~160
오늘날 대안 종교의 융성은 어떤 격변의 토양 위에 있는 것일까? MZ세대의 또 다른 이름은 N포세대다. 포기의 목록에는 대표적으로 (가부장 중심적인) ‘연애, 취직, 내 집 마련, 결혼, 출산’이 꼽힌다. 이 항목들은 정상 생애주기의 이정표이기도 했다. 과거에는 이런 통과의례를 거쳐 ‘어른’이라는 사회의 일원이 되었는데 지금은 그럴 기회를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갖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성장에 관한 전통적인 내러티브가 희미해져가고 비혼 공동체를 꾸리는 소식이 더 들려오고 있지만, 제도와 정치, 문화는 아직 간극이 크다. 하지만 대안 종교는 개인 맞춤형으로 삶의 이정표를 제시해준다.
--- pp.161~162
우리는 영원히 실향민 신세다. 종교, 국가, 지역, 가족 내 역할, 섹슈얼리티, 평생 직장처럼 인류가 오랫동안 뿌리내려온 정체성의 기반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이건 자유라기보다 의미의 상실이라는 고통을 주는 쪽에 가깝다고들 말한다. 이런 정체성을 개인들이 알아서 챙겨야 하는 문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이 문제를 대부분 소비를 통해서 해결하고 있다. (중략) 그리고 이 정체성 소비의 핵심은 ‘이미지’다. 인스타그래머블 이미지는 단지 세련되고 특이한 비주얼이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 규정해주는 역할을 한다.
--- pp.205~206
‘좋아요’는 의외로 좋다는 감각과 멀다. ‘좋아요’는 초조하고 압도되고 과하게 쾌락적이고 우울하고 곁눈질하고 수치스럽고 음침하고 외롭지만 더욱 혼자가 되고 싶은, 갉아 먹히는 감정에 더욱 가깝다.
--- p.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