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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2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424쪽 | 518g | 134*200*26mm
ISBN13 9791165346928
ISBN10 1165346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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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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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남녀의 만남이 그렇듯 우리 부부도 운명적으로 만났다고 다소 안일하게 생각하던 시기가 있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결혼 생활은 아니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와 나사를 조이기도 하고 덜컹거리는 진동이 느껴져 못질을 해대기도 하며, 홈을 끼워 맞추고 틈을 좁혀가면서 사는 평범한 부부였다. 결혼 생활이란 그런 거라고, 다른 부부들도 그럴 거라고 여겼다. 돌이켜 보면 시작부터 잘못된 만남이었다. 결혼이라는 단어가 주는 안온함에 안주하려고 했던 건 우리 부부 중 나뿐이었다. 그날도 여느 날과 같았다. 세안, 식사, 배웅 순으로 진행되는 가족의 아침 의식을 마치고, 남편은 출근했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프롤로그」중에서

두 건설사가 함께 지은 이 아파트 단지 안에는 18평형, 22평형, 36평형, 49평형 그리고 60평형이 있다. 앞 동을 구경하러 가는 여자들도 있지만 나는 지금껏 단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여러 평형을 한 단지 안에 구역을 나누어서 지은 것까지는 좋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것도 좋다. 공동주택이란 그런 의미이니까.

하지만 왜 내가 사는 22평형이 가장 큰 60평형 앞 동과 가까운 건지 모르겠다. 내가 사는 동과 앞 동 사이에 있는 앙상한 몇 그루의 나무는 마치 신분별로 사람들을 나누는 제단 같아서 볼 때마다 부아가 치민다. 앞 동이 반 층 정도 높은 지대에 지어진 것도 나를 열받게 하는 요인이다. 22평형은 네모반 듯한 땅 위에 지어진 것이 아니고 삼각형과 부채꼴을 닮은 모양의 부지 위에 비뚜름하게 들어앉아 있다. 두 건설사 중, 조금더 돈이 많은 건설사에서 노른자위 땅에 60평형을 배치하고 그다음 평수, 동을 순차적으로 배치하다가 남는 자투리땅을 다른 건설사가 사들여 22평형을 한 동 더 지은 모양새다. 60평형과 가까운 자리에 꼽사리 낄 수 있도록 허락받았으니 고마워해야 하는 건가?
---「1장. 남편이 사라졌다」중에서

삑삑삑삑. 삐리릭. 쉬릭. 철커럭. 쉬리릭.
남편이 돌아왔다. 실눈이 떠졌다. 시간은 1시 58분. 잘났다.
이 인간아. 이제야 기어들어 오니? 아주 밖에서 처잘 것이지.
하루 종일 처자식이 뭘 하고 사는지 관심도 없지? 어휴, 여기까지만 하자. 너에게는 저주도 아깝다.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쏴아.
웬일로 씻는 모양이네. 나는 일어나서 남편을 반기는 척할 것인지 그대로 자는 척을 해야 할지 갈등했다. (중략)

쏴아. 첨벙첨벙. 헉헉.
잠이 확 달아났다. 남편이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혹시 어디가 아픈가? 이른 나이에 심장마비라도 왔나? 아니다. 남편은 당황한 상태였다. 무슨 일인가 벌어졌다. 긴박한 어떤 일이. 나는 하원이를 살며시 품에서 내려놓았다. 바위에 붙은 굴처럼 단단하게 나의 몸에 달라붙어 있던 하원이는 어렵사리 품에서 떨어져 나갔다. 순간적으로 배 부분이 서늘해졌다. 아이의 얼굴과 목 뒤로 땀에 젖은 머리칼이 찰싹 달라붙어 있다. 나는 품에서 떼어낸 딸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살금살금 움직였다.

불 꺼진 집 안. 욕실에서 비어져 나온 빛줄기가 거실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고 있다. 한 뼘 정도의 틈을 벌린 채 열려 있는 문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남편이 보였다. 남편은 완전히 벌거벗은 상태였다. 나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뒷걸음질 쳤다. 피! 온통 피였다. 세면대에도 욕실 바닥에도……. 변기 뚜껑 위에는 피 묻은 칼이 놓여 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그때, 건넛방에서 상원이가 뒤척이는 것이 보였다. 나는 움직임을 멈추었다. 안 돼! 상원아! 아들을 저지하는 것처럼 허공으로 뻗은 내 팔이 보였다. 그대로 눈동자만 움직여 욕실을 쳐다보았다. 남편은 여전히 물을 틀어둔 채로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상원이는 다시 고른 숨소리를 냈다. 나는 뒷걸음질해서 침실로 향했다. 하원이가 깨어나지 않도록 손가락 끝, 머리칼의 쏠림까지 주의하며 다시 침대에 누웠다. 난 덜덜 떨리는 두 팔로 딸을 품에 안았다. 따뜻했다. 다행이었다. 딸의 체온에 떨림이 잦아들었다. 자는 척해야 한다.
---「1장. 남편이 사라졌다」중에서

마감 뉴스에서는 당연한 것처럼 호프집 살인 사건을 보도했다. 남편은 아무런 말 없이 텔레비전을 응시했다. 나는 죽은 듯이 눈을 감았다. 피해자의 신원이 확인되었다는 내용이었다. 피해자는 피의자로 지목되어 용의 선상에 있었던 김 목수였다. 부패가 심하게 진행된 데다가 주민등록이 말소된 사람이라 신원 확인에 난항을 겪었다는 설명과 함께 호프집에 드나들던 손님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두어 달 전쯤부터 하루가 멀다 하고 드나든 양복쟁이가 있었다는 것이다. 올 것이 왔다.

자기 일도 아니면서 격앙된 어투로 내뱉는 기자의 말을 끝으로 남편은 소리를 줄였다. 내 뺨이 닿아 있는 남편의 허벅지가 딱딱할 정도로 경직되었다. 오싹해졌다. 남편은 텔레비전 화면이 아니라 내 얼굴을 보고 있었다. 방금 전 텔레비전에서 나온 방송 내용을 내가 들었는지, 거기에 반응하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굳이 눈을 뜨지 않아도 피부 위로 내리꽂히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중략) 나는 단 한 순간의 움찔거림도 없이 아기처럼 자는 모습을 유지했다. 남편의 발걸음이 아이들 방 쪽으로 향했을 때 나는 잠시 갈등했다. 그러나 과도한 긴장은 내 몸을 쉬이 놓아주지 않았다. 결국 난 미동 없이 누워 있는 쪽을 택했다.

남편이 아이들에게 이불을 덮어주는 인기척이 들렸다. 하마터면 안도의 숨을 몰아쉴 뻔했던 그때, 남편은 나에게로 다가왔다. 그는 나를 마치 아기처럼 두 팔로 안아 올려 침실로 향했다. 침대 위에 나를 눕힌 남편은 이불을 덮어주었다. 남편은 샤워를 하고 내 옆으로 다가와 이불을 덮고 누웠다. 그의 숨소리는 내가 절대로 흉내 낼 수 없을 만큼 안정적이었다. 연기가 아니라 실제로 그는 숙면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 남편은 평소처럼 출근했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다.
---「1장. 남편이 사라졌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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