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이희수입니다. 이슬람 학교 교장입니다. 앞으로 8강을 할 텐데 종교적인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을 겁니다. 워낙 민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문화를 공부할 때 종교적인 도그마가 개입되면 정말 힘들어집니다. 신앙이 관련되고, 기독교냐 아니냐는 식으로 논란이 번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철저히 약속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것은 문화적인 공부다, 우리와 다른 가치와 다른 생각 그리고 다른 삶을 가진 사람들을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들여다봄으로써 글로벌 문화의 실체에 다가가는 훈련이라고 여러분이 약속해 주셔야 합니다.
제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대학 학부 과정에 [이슬람 문화론]이라는 과목을 개설해서 20여 년 동안 강의해 왔고, 지금도 개설되어 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듣는 과목입니다. 지금까지 4,800여 명이 이 수업을 들었습니다. 제 수업을 들은 학생 중에 아직까지 이슬람으로 개종한 학생은 없습니다.
제가 있는 한양대학교가 ‘사랑의 실천’을 슬로건으로 하는 기독교 재단입니다. 학교로 가끔 항의가 들어온답니다. 왜 이슬람을 강의하는 이희수에게 월급을 줘 가며 이런 강의를 계속하느냐는 것이지요. 제발 부탁하는데 이슬람 학교를 오래 하기 위해 여러분 중에도 개종자가 나타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제가 이 강의를 오래오래 할 수 있습니다(청중 웃음).
제가 이슬람을 공부하면서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경험을 중심으로 강의를 풀어 나갈 텐데, 여러분은 그들에 대해 조금은 다른 시선에서 편견 없이 들여다보자, 그렇게 생각해 주시면 좋을 것 같고요, 질문은 중간 중간에 끼어 들어오셔도 좋습니다. 끝나는 시간에 질문하셔도 되고요.
많은 분들이 저에게 이슬람 신도냐고 묻습니다. 그런 질문을 참 많이 들었는데요, 그때마다 저는 “아마르티아 센 교수의 《정체성과 폭력》이란 책을 한번 읽고 질문해 주십시오.”라고 대답합니다.
그 책의 요지가 이렇습니다. 아마르티아 센 교수는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옥스포드 대학교 학장입니다. 그분이 주장하는 것은 바로 ‘이중적 정체성’입니다. 가장 위험한 것이 ‘단선적 정체성’이라는 거죠. 사람은 어느 순간에 이쪽 편이 됐다가 저쪽 편도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정체성이라는 게 움직이는데 “너는 그쪽이다.”라고 고정해 버리는 것이 위험하다고 말합니다.
제 집안 분위기는 가톨릭 일색이고, 부산에서 유학한 중학교 3년 동안은 절에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사춘기 때 아이 버린다고 어머니가 부산에 있는 대명사라는 절에 저를 맡겨서 스님처럼 까까머리를 하고 3년 내내 거기서 다녔습니다. 그때 [천수경]과 [금강경]도 상당 부분 저절로 외웠습니다. 일부러 외웠던 건 아니고요,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매일 들으니까 어린 나이에 저절로 머리에 입력된 것이죠. 물론 지금은 다 기억을 못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저는 스님들 목탁 치는 것을 조금만 들어도 그분 공력이 얼마쯤일지 감이 옵니다. 중헌重憲이라는 법명도 받았습니다. 지금도 초파일이 되면 절에 가서 연등도 달곤 합니다. 저는 그것이 너무 좋습니다. 가톨릭, 불교, 모두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중략)
---「제1강 [이슬람의 탄생] 발문」중에서
이슬람의 기본 정신은 포용과 융합입니다. 지금의 이슬람과 전혀 안 맞죠? 이슬람이 만들어진 메카라는 곳은 문화적으로 축적된 하부 구조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뛰어난 종교적 열정이 있었습니다. 유대교와 기독교를 받아들여 업그레이드된 신학 체계를 만들었고, 군사력에서 갖는 우월감, 새로운 세상에 대한 선도적인 소명감, 조세 제도나 토지 공개념 같은 민생 정책, 게다가 개종을 하면 인두세를 면제해 주는 통치 기술까지 아주 단단한 용광로의 외관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메카라는 곳 자체가 원래부터 콘텐츠가 없는 곳입니다. 그래서 이슬람 문화는 기본적으로 텅 비어 있는 용광로라고 보시면 됩니다. 문화적인 하부 구조를 빠른 시간 안에 만들려면 정복 전쟁을 하면서 정복한 지역의 문화를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태생적인 과제였습니다. 여기서 포용과 융합의 정신이 나옵니다. 이게 이슬람 문화의 특징입니다.
이슬람은 주변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자기화하는 데에도 성공했습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껍데기만 모방하면 생명을 잃고 언젠가는 변질되거나 사라졌을 텐데, 이슬람 세력은 받아들이되 자기화했습니다. 문명이란 것은 자기와 다른 생각과 가치가 섞여 어울리는 데서 발생합니다. 그 모순 속에서 새로운 창의성이 생기거든요. 그래서 동종 집단에서는 창의력이 생기기 어렵습니다. 완전히 다른 것들이 무한으로 섞일 때 누구도 경험하지 못했던 창의적인 문화가 생기는 겁니다.
요약하면 다양한 문화의 완전한 흡수와 융합 정신이 바로 이슬람 문화의 특징입니다. 이슬람의 특징을 쉽게 한 단어로 이야기하라고 한다면 저는 ‘완벽한 잡탕 문화’라고 말하겠습니다. 역설적이게도 문화는 잡탕일수록 우수합니다. 단일 문화는 고이고 썩어서 경쟁력이 떨어져 결국 오래 못 갑니다.
우리도 살다 보면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유리한 게 있으면 받아들이지 않습니까? 기술도 조금 앞선 것이 그렇지 못한 곳에 전파되면서 발전하잖아요. 그 변화의 물줄기를 차단하고 자기들끼리 고여 있으면 얼마 못 갑니다. 완전히 열고 과감하게 받아들여서 잘 녹여 낼 때 생명력이 자라납니다. 거기에서 문화적 역동성이 생깁니다. 이런 이슬람의 포용과 융합 정신이 천 년을 갑니다. 얼마나 길게 갑니까? 받아들이는 데는 귀재들이었습니다.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니까 포용과 융합이 이슬람의 기본 철학이 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지난 시간에 배웠죠? 메카에서 출발한 이슬람이 새로운 시대적 소명을 품고 300년간 사산조 페르시아와 비잔틴 제국의 틈바구니에서 시달리며 새로운 이념에 목말라하던 오리엔트 사람들을 향해 나아갑니다. 오른쪽으로 페르시아를 툭 치니까 한번에 무너졌습니다. 전쟁다운 전쟁도 못해 보고 그 큰 제국이 무너졌습니다. 고대 페르시아 때부터 축적돼 온 오리엔트 지역의 거대한 페르시아 문화가 고스란히 이슬람 용광로 속으로 들어옵니다. 이것이 첫 번째 포용입니다.
이제는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서쪽에 있던 비잔틴 제국을 툭 칩니다. 역시 비잔틴이 KO패 당하죠? 멸망하지는 않았지만 소아시아를 포기하고 콘스탄티노플로 쫓겨 갑니다. 콘스탄티노플 성벽은 3중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견고합니다. 이때부터 1453년 오스만 튀르크에게 함락될 때까지 800년간을 더 버팁니다. 그러나 비잔틴이 지배하던 오리엔트 지역은 이슬람에게 다 내줍니다. 유럽이 축적해 왔던 그리스 로마 문화와 지중해의 거대한 동로마 문화를 또 한 축으로 받아들입니다. 두 번째 포용입니다. 인류 역사상 이런 경우는 없었습니다.
(중략)
---「제5강 [찬란한 이슬람 문명] ‘페르시아와 비잔틴을 단번에 포용한 이슬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