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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공제 2007 제5회 올해의 책 선정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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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김훈 | 학고재 | 2007년 04월 14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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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07년 04월 14일
쪽수, 무게, 크기 384쪽 | 374g | 128*188*30mm
ISBN13 9788956250595
ISBN10 8956250596

이 상품의 태그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그해 겨울,
갈 수 없는 길과 가야 하는 길은 포개져 있었다.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옛터가 먼 병자년의 겨울을 흔들어 깨워,
나는 세계악에 짓밟히는 내 약소한 조국의 운명 앞에 무참하였다.
그 갇힌 성 안에서는 삶과 죽음, 절망과 희망이 한 덩어리로 엉켜 있었고,
치욕과 자존은 다르지 않았다.
말로써 정의를 다룰 수 없고, 글로써 세상을 읽을 수 없으며,
살아 있는 동안의 몸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을 다 받아 내지 못할진대,
땅으로 뻗은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으리.
-작가의 말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눈보라
언 강
푸른 연기
뱃사공
대장장이
겨울비
봉우리
말먹이 풀
초가지붕
계집아이

바늘
머리 하나
웃으면서 곡하기
돌멩이
사다리
밴댕이젓
소문

말먼지
망월봉
돼지기름
격서
온조의 나라
쇠고기
붉은 눈
설날
냉이
물비늘
이 잡기
답서
문장가
역적
빛가루
홍이포
반란
출성
두 신하
흙냄새
성 안의 봄
하는 말
남한산성 지도
연대기
실록
낱말풀이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백성의 초가지붕을 벗기고 군병들의 깔개를 빼앗아 주린 말을 먹이고, 배불리 먹은 말들이 다시 주려서 굶어 죽고, 굶어 죽은 말을 삶아서 군병을 먹이고, 깔개를 빼앗긴 군병들이 성첩에서 얼어 죽는 순환의 고리가 김류의 마음에 떠올랐다. 버티는 힘이 다하는 날에 버티는 고통은 끝날 것이고, 버티는 고통이 끝나는 날에는 버티어야 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었는데, 버티어야 할 것이 모두 소멸할 때까지 버티어야 하는 것인지 김류는 생각했다. 생각은 전개되지 않았다. 그날, 안에서 열든 밖에서 열든 성문은 열리고 삶의 자리는 오직 성 밖에 있을 것이었는데, 안에서 문열 열고 나가는 고통과 밖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고통의 차이가 김류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날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김류는 느꼈다.
--- p.93
서날쇠는 새벽에 떠났다. 김상헌이 떠나는 서날쇠를 성벽까지 따라갔다. 동쪽 성벽은 옹성을 지나서 오르막으로 치달았고, 그 아래에 배수구가 뚫려 있었다. 서날쇠는 배수구를 향해 산길을 걸었다. 지팡이가 눈 속으로 빠져서 김상헌은 자주 비틀거렸다. 서날쇠가 김상헌을 부축했다.
- 대감, 여기서부터는 더 가팔라집니다. 그만 돌아가십시오.
- 아니다. 떠나는 걸 보고 싶다.
서날쇠의 행장은 가벼웠다. 초로 봉항 격서를 기름종이에 싸서 저고리 속에 동였다. 등에 진 바랑 하나가 전부였다. 바랑 안에는 가죽신 세 켤레와 버선 한 죽, 호미 한 개, 칼 한 자루가 들어 있었다. 서날쇠는 먹을 것을 지니지 않았다. 김상헌은 서날쇠의 바랑 속이 궁금했다.
- 끼니거리는 지녔느냐?
- 먼 길을 가니, 한두 끼를 지녀서 될 일이 아니옵고......
- 어찌하려느냐?
- 백성들이 아직 살아 있으니 얻어먹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빈 밭을 파면 뿌럭지들이 나옵니다.
김상헌의 목젖이 뜨거워졌다. ...날쇠야, 너는 갈 수 있고, 너는 돌아올 수 있다......
--- p.231
적이 임진강을 건넜으므로, 서울을 버려야 서울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은 그럴듯하게 들렸다. 종묘와 사직단 사이에서 머뭇거리다 도성이 포위되면 서울을 버릴 수 없을 것이고, 서울로 다시 돌아올 일은 아예 없을 터였다. 파주를 막아 낼 수 있다면 서울로 돌아오기 위해 서울을 버려야 할 일이 없을 터이지만, 그 말이 옳은지 아닌지를 물을 수 없는 까닭은 적들이 이미 임진강을 건넜기 때문이었다. 반드시 죽을 무기를 쥔 군사들은 반드시 죽을 싸움에 나아가 적의 말발굽 아래서 죽고, 신하는 임금의 몸을 막아서서 죽고, 임금은 종묘의 위패를 끌어안고 죽어도, 들에 살아남은 백성들이 농장기를 들고 일어서서 아비는 아들을 죽인 적을 베고, 아들은 누이를 간음한 적을 찢어서 마침내 사직을 회복하리라는 말은 크고 높았다.
--- pp.18~19

눈 덮인 성벽에 햇빛이 내려서 성은 파란 하늘 아래 선명하게 드러났다. 북쪽 능선을 넘어가는 성벽 위에 낮달이 떠 있었다. 간밤에 작은 교전이 있었는지 성벽에 돋아난 나뭇가지에 찢어진 시체가 몇 구 걸렸고, 시체 언저리의 눈이 빨갛게 물들었다. (…)용골대가 통역 정명수에게 말했다.
-단단해 보인다. 산골나라에는 저런 성이 맞겠어.
-조선은 성 안이 허술합니다.
-허나 성벽은 날카롭구나. 깨뜨리기가 쉽지는 않겠어.
-바싹 조이면 깨뜨리지 않아도 안이 스스로 무너질 것입니다.
-그리 보느냐. 듣기에 좋다.
--- p.70

김상헌의 목소리에 울음기가 섞여 들었다.
-전하, 죽음이 가볍지 어찌 삶이 가볍겠습니까. 명길이 말하는 생이란 곧 죽음입니다. 명길은 삶과 죽음을 구분하지 못하고, 삶을 죽음과 뒤섞어 삶을 욕되게 하는 자이옵니다. 신은 가벼운 죽음으로 무거운 삶을 지탱하려 하옵니다.
최명길의 목소리에도 울음기가 섞여 들었다.
-전하, 죽음은 가볍지 않사옵니다. 만백성과 더불어 죽음을 각오하지 마소서. 죽음으로써 삶을 지탱하지는 못할 것이옵니다.
임금이 주먹으로 서안을 내리치며 소리 질렀다.
-어허, 그만들 하라. 그만들 해.
--- p.143

조선 왕은 황색 일산 앞에 꿇어앉았다. 술상이 차려져 있었다. 칸이 술 석 잔을 내렸다. 조선 왕은 한 잔에 세 번씩 다시 절했다. 세자가 따랐다. 개들이 황색 일산 안으로 들어왔다. 칸이 술상 위로 고기를 던졌다. 뛰어오른 개가 고기를 물고 일산 밖으로 나갔다.
-아, 잠깐 멈추라.
조선 왕이 절을 멈추었다. 칸이 휘장을 들추고 일산 밖으로 나갔다. 칸은 바지춤을 내리고 단 아래쪽으로 오줌을 갈겼다. 바람이 불어서 오줌 줄기가 길게 날렸다. 칸이 오줌을 털고 바지춤을 여미었다. 칸은 다시 일산 안으로 들어와 상 앞에 앉았다. 칸이 셋째 잔을 내렸다. 조선 왕은 남은 절을 계속했다. _ 356쪽

임금은 늘 표정이 없고 말을 아꼈다. 지밀상궁들조차 임금의 음색을 기억하지 못했고 임금의 심기를 헤아리지 못했다. 임금은 먹을 찍어서 시부詩賦를 적지 않았고 사관을 가까이 하지 않았으며, 양사.司에 내리는 비답批答의 초안조차 승지들에게 받아쓰게 하여 묵적을 남기지 않았다.
--- p.10

임금은 취나물 국물을 조금씩 떠서 넘겼다. 국 건더기를 입에 넣고, 임금은 취나물 잎맥을 혀로 더듬었다. 흐린 김 속에서 서북과 남도의 산맥이며 강줄기가 떠올랐다. 민촌의 간장은 맑았다. 몸속이 가물었던지 국물은 순하고 깊게 퍼졌다. 국물에서 흙냄새가 났다. 봄볕에 부푼 흙냄새 같기도 했고 젖어서 무거운 흙냄새 같기도 했고 마른 여름날의 타는 흙냄새 같기도 했다. 임금은 국물에 밥을 말았다. 살진 밥알들이 입속에서 낱낱이 씹혔다. 임금은 혀로 밥알을 한 톨씩 더듬었다. …사직은 흙냄새 같은 것인가, 사직은 흙냄새만도 못한 것인가……. 콧구멍에 김이 서려 임금은 훌쩍거렸다.
--- pp.104~105

버티지 못하면 어찌 하겠느냐. 버티면 버티어지는 것이고, 버티지 않으면 버티어지지 못하는 것 아니냐. 김상헌은 그 말을 아꼈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힘으로 삶을 열어나가는 것이다. 아침이 오고 또 봄이 오듯이 새로운 시간과 더불어 새로워지지 못한다면, 이 성 안에서 세상은 끝날 것이고 끝나는 날까지 고통을 다 바쳐야 할 것이지만, 아침은 오고 봄은 기어이 오는 것이어서 성 밖에서 성 안으로 들어왔듯 성 안에서 성 밖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이 어찌 없다 하겠느냐…….
--- p.61

숨이 끊어질 때까지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었다. 성 안에 들어와서 견디어 낸 날들에 비하면 죽음에 이르는 시간은 견딜 만하리라. 그 짧은 동안을 견디면, 무엇을 부술 수 있고 무엇을 부술 수 없는지 선명히 드러날 것이었다. 그 지난한 것들의 가벼움에 김상헌은 안도했다. 삼전도로 가는 임금의 발 아래 시체를 깔아 놓고 시체가 되어 임금을 전송해야만 세상의 길은 열릴 것이었는데, 임금의 출성이 임박했으므로 일을 서둘러야 했다. 김상헌은 마당에 서 있는 두 조카를 향해 말했다.
-때가 되었다. 나는 죽으니, 너희는 그리 알라. 너희는 방 밖에 정히 앉아서 나를 보내라.
--- p.342

…전하, 지금 성 안에는 말言먼지가 자욱하고 성 밖 또한 말馬먼지가 자욱하니 삶의 길은 어디로 뻗어 있는 것이며, 이 성이 대체 돌로 쌓은 성이옵니까, 말로 쌓은 성이옵니까. 적에게 닿는 저 하얀 들길이 비록 가까우나 한없이 멀고, 성 밖에 오직 죽음이 있다 해도 삶의 길은 성 안에서 성 밖으로 뻗어 있고 그 반대는 아닐 것이며, 삶은 돌이킬 수 없고 죽음 또한 돌이킬 수 없을진대 저 먼 길을 다 건너가야 비로소 삶의 자리에 닿을 수 있을 것이옵니다. 그 길을 다 건너갈 때까지 전하, 옥체를 보전하시어 재세在世하시옵소서. 세상에 머물러주시옵소서…….
--- pp.197~198

부리던 노복이 성첩으로 끌려간 뒤 최명길은 손수 걸레를 빨아서 방바닥과 툇마루를 닦았고, 문풍지로 바람구멍을 막았다. 최명길의 방 한 칸은 세간이 없어 됫박처럼 보였다. 지필묵이 놓인 서안 한 개와 횃대에 걸린 조복 한 벌이 전부였다. 한 칸 방은 정갈했고, 비어서 삼엄했다. (…) 최명길은 묘당의 당상들을 방으로 들이지 않았다. 저물어서 돌아오는 김상헌은 마당을 쓸거나 아궁이를 청소하는 최명길과 마주쳤다. 둘은 멀리서도 서로의 기척을 알아차리는 듯싶었다. 김상헌이 질청 문을 들어서면 인기척을 내지 않아도 최명길은 일손을 멈추고 김상헌을 맞았다. 이조판서와 예조판서는 질청 마당에서 서로 허리를 굽혀 예를 갖추었다.
--- p.212


최명길의 얼굴에 흐린 웃음기가 번졌다.
-그럼 내 머리를 들고 출성을 하면 어떻겠소?
-말씀이 너무 거칠구려. 지금 싸우자고 준열한 언동을 일삼는 자들도 내심 대감을 믿고 있는 것 같았소. 충렬의 반열에 앉아서 역적이 성을 열어주기를 기다리는 것 아니겠소. 이 성은 대감을 집행할 힘이 아마도 없을 것이오.
_수어사는 어느 쪽이오?
이시백이 대답했다.
_나는 아무 쪽도 아니오. 나는 다만 다가오는 적을 잡는 초병이오.
최명길의 목구멍 안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조선에 그대 같은 자가 백 명만 있었던들…….
--- p.218

줄거리 줄거리 보이기/감추기

성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나?

1636년 12월 13일 조정은 청의 대군이 청천강을 건너 한양을 향해 진격 중이라는 장계를 받고 술렁인다. 9년 전 정묘호란 때처럼 다시 강화도로 들어가야 하는가. 분분한 논란이 이어지고 인조의 어가행렬은 황망 중에 강화행궁을 향한다. 그러나 이미 청군은 가는 길을 차단했다. 인조는 얼어붙은 송파나루에서 남한산성으로 들 수밖에 없었다.

예조판서 김상헌은 양주 석실에서 형 김상용이 보낸 급보를 받고 남한산성으로 출발한다. 송파나루에 닿은 그는 뱃사공이 인도하는 길을 따라 강을 건너는데, 얼음길을 잘 아는 뱃사공에게 함께 남한산성에 들기를 청하나 뱃사공이 거절하고, 김상헌은 뱃사공을 죽인다. 한편 산성 안에서 대장장이 서날쇠는 아내와 쌍둥이 아들을 성 밖으로 내보내고 혼자 대장간을 지킨다.

성 안은 춥고 식량은 모자라며, 말들은 먹을 풀이 없었다. 비와 눈이 모질게 내려 얼어 죽는 병사들이 속출했고, 말들은 굶주려 죽는다. 청나라 장수 용골대는 삼전도에 진을 치고 성 밖을 둘러싼 채 항복을 요구하고 있었다.

전면전은 엄두를 낼 수 없고 몇 명씩 유군을 편성, 암문을 통해 나가 소규모 국지전만 몇 차례 치르는 상황인데, 묘당에서는 항쟁을 주장하는 김상헌과 화친을 주장하는 최명길의 논쟁이 포화보다 뜨겁다.

속내를 좀체 드러내지 않던 임금은 최명길을 조용히 불러 화친의 길을 열어보도록 명한다. 최명길은 청군 진영에 가서 청의 조칙을 따를 것과 세자와 척화파 대신들을 인질로 보내라는 청의 요구를 받아들고 온다. 마침내 칸이 당도했다는 소문이 성 안에 돌고, 묘당에서는 최명길을 죽여야 한다는 의견이 대세를 이룬다.
조정은 산성의 힘을 과장하는 격서를 만들어 성 밖의 군사들에게 돌리려 한다. 그들의 힘을 북돋우고 원군을 불러들이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 첩첩 적진을 돌파해 격서를 전달할 사람은 없었다. 김상헌은 서날쇠를 찾아가 그 일을 맡아줄 것을 부탁하고, 서날쇠는 격서를 돌리기 위해 성을 나간다.

새해를 맞아 인조는 세찬을 용골대에게 보낸다. 적들은 거절한다. 모욕을 당한 조정은 북문을 나가 청병을 공격한다. 무모한 도발로 오히려 조선 군사는 자멸하고 만다. 설날 아침 인조는 행궁 안에서 명나라를 향해 망궐례를 행하고, 칸은 망월봉 위에서 그 광경을 심상하게 지켜본다.

서서히 날이 풀리고 인조는 성을 나와 항복하라는 칸의 문서를 받는다. 그러나 신하 중 아무도 칸에게 보낼 답서를 쓰려고 하지 않는다. 인조는 정오품 교리, 정오품 정랑, 정육품 수찬, 최명길을 불러 각자 글을 쓰도록 명한다. 어명을 받은 정육품 수찬은 못 쓰겠다는 글을 써 곤장을 맞고, 정오품 교리는 심장이 터져 죽고, 정오품 정랑은 선택되지 않을 글을 써낸다. 결국 최명길이 쓴 글이 적진으로 간다. 답서에 불만을 품은 청군은 남한산성 안으로 홍이포를 쏘며 겁준다.

이때 원손과 빈궁이 있던 강화도도 청군에게 함락 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인조는 성을 나서서 칸에게 머리를 조아리기로 결심한다. 끝까지 척화를 주장한 김상헌은 사직 상소를 올린 뒤 목을 매고, 인조는 1월 30일 새벽 남한산성을 나와 삼전도에서 칸에게 항복하는데…….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땅에 찧는 삼배구고두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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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소개
주화인가, 주전인가? 논쟁의 주역 5인

작가 김훈은 “이 책은 소설이며, 오로지 소설로만 읽혀야 한다.”고 전제한다. 아울러 “실명으로 등장하는 인물에 대한 묘사는 그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될 수 없다.”고 못 박는다. 하지만 그가 되살린 인물들은 역사적 사실이라는 뼈대 위에 탁월한 소설적 상상력으로 살점이 붙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에서 막 튀어나온 듯 생생한 얼굴로 독자들에게 다가온다.

인조仁祖 1595(선조 28)~1649(인조 27). 조선 제16대 왕. 1623년부터 1649년까지 재위. 서인이 주도한 인조반정에 의해 왕위에 올라 광해군의 중립 정책을 지양하고 친명배금親明排. 정책을 폈고, 그 가운데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라는 큰 전란을 겪었다. 임진왜란 이후 여러 차례의 내란과 외침으로 나라의 기강이 문란해지고 경제가 악화되었는데도, 주도권을 잡은 서인은 당쟁에 몰두했다. 청에서 서양 문물을 접한 소현세자가 오랜 볼모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얼마 되지 않아 죽자 봉림대군을 세자로 책봉하고, 며느리인 소현세자빈 강씨를 사사하였다.
정치적으로 이와 같이 혼란스러운 틈에도 대동법을 실시하였으며, 상평통보를 주조하고 여진족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국경지방 여러 곳에 개시開市하여 민간무역을 인정했다. 또한 군제를 정비하여 수어청 등을 설치하였다. 능은 장릉으로 경기도 교하에 있다.

영의정 김류金? 1571(선조 4)~1648(인조 26). 본관은 순천. 1596년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이렇다 할 중앙관직에 오르지 못하고 지방관으로 전전했다. 인조반정의 공로로 병조판서, 대제학 등에 봉해지는 등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정묘호란 때는 부체찰사, 이후에는 도체찰사와 몇 차례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을 지내며 인조시대 정국을 주도했다. 병자호란 때는 주화파와 척화파 사이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도체찰사의 임무 또한 소홀히 하여 비난받았다. 소현세자가 죽자 봉림대군을 왕세자로 책봉할 것을 주장하고 스스로 세자사世子師를 칭하였다. 1646년 소현세자빈 강씨의 옥사가 있자, 이를 반대하다 벼슬에서 물러나 다시는 벼슬길에 오르지 않았다.

예조판서 김상헌金尙憲 1570(선조 3)~1652(효종 3). 본관은 안동. 1596년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좌랑, 이조좌랑 등을 역임했다. 북인과 관계가 좋지 않아 이렇다 할 관직을 지내지 못하다가 인조반정 이후 대사간, 도승지 등에 올랐다. 그러나 강직한 성품으로 반정 주체들의 뜻에 거슬려 향리로 귀향가기도 했다. 정묘호란 때는 명나라에 가 구원병을 청하였으며, 돌아와 후금과의 화의를 끊고 강홍립의 관직을 복구하지 말 것을 주장하였고, 병자호란 때는 끝까지 척화론을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대세가 기울자 최명길이 작성한 항복문서를 찢고 통곡하였으며, 식음을 전폐하고 자결을 시도하였다. 그 뒤 안동에 내려가 명나라와 의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내용의 상소를 올린 뒤 두문불출하였다. 청에 의해 위험인물로 지목되어 심양으로 끌려가 6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명분을 지킨 절개 있는 척화신으로 추앙 받았으며, 효종이 즉위하여 북벌을 추진할 때 그 이념적 상징으로'대로大老'라고 존경받았다.

이조판서 최명길崔鳴吉 1586(선조 19)~1647(인조 25). 본관은 전주. 20세인 1605년에 생원. 진사시와 문과를 모두 통과하고 화려하게 중앙 관직에 진출했다. 북인들이 인목대비를 유폐하려 하자 반정계획에 참여하였고, 이괄의 난과 정묘호란을 극복하는 데 크게 공헌하여 1632년부터 이조. 예조. 호조 판서와 예문관, 홍문관 대제학을 지냈다. 정묘호란 당시 후금과의 화의를 주도하여 많은 지탄을 받았으며,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는 이조판서로 홀로 청과의 강화를 주장하여 조정에서 극렬한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인조에게 깊은 신임을 받아 우의정과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올라 국정을 주도하며 호패법과 양전.田의 실시를 주장하는 등 양란으로 피폐해진정국을 수습하였다. 임경업을 통해 명나라와 비공식적인 외교 관계를 유지한 일이 발각되어 1643년 청에 끌려가 수감되었으며, 1645년 소현세자와 함께 풀려났다.

수어사 이시백李時白 1581(선조 14)~1660(현종 1). 본관은 연안延安. 인조반정에 가담하여 형조. 공조. 병조 판서를 두루 역임했다. 효종 때는 이조판서, 영의정까지 올라갔다. 이괄의 난이 일어났을 때는 반란군을 격퇴하였고, 수원 방어사로 있던 정묘호란 때는 인조를 무사히 강화로 피신시켰다. 병자호란 때는 남한산성 수어사를 맡아 주화론과 척화론의 논쟁 속에서도 묵묵히 산성 방위에 책임을 다하였다. 병자호란 뒤에 남한산성 재건작업을 담당했고, 소현세자 사후 봉림대군을 세자에 책봉하는 것을 반대하고 소현세자의 아들을 세자로 세울 것을 주장하였다. 최명길과 함께 병자호란 뒤 상황을 수습하고 대동법을 실시하는 등 사회 안정에 큰 기여를 하였다. 일곱 번이나 판서를 역임하고 영의정까지 지냈으나, 그의 집은 가난한 선비의 집과 같아 그는 청빈한 삶의 모범이 되었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실천 불가능한 정의인가, 실천 가능한 치욕인가?”

1636년 음력 12월, 청의 대군은 압록강을 건너 눈보라를 몰고 서울로 진격해 왔다. 병자호란이었다. 정묘호란을 겪은 지 불과 9년 만이었다. 방비를 갖추지 못한 채 척화를 내세우던 조선 조정은 정묘호란 때처럼 다시 강화도로 파천하려 했으나, 길이 끊겨 남한산성으로 들 수밖에 없었다.
작가 김훈의 신작 장편『남한산성』은 1636년 12월 14일부터 1637년 1월 30일까지 47일 동안 고립무원의 성에서 벌어진 말과 말의 싸움, 삶과 죽음의 등치에 관한 참담하고 고통스러운 낱낱의 기록이다. 그해 겨울은 치떨리도록 모질었다.

“주전파의 말은 실천 불가능한 정의였으며, 주화파의 말은 실천 가능한 치욕이었다.”
-김훈의 다른 글에서

쓰러진 왕조의 들판에도 대의는 꽃처럼 피어날 것이라며 결사항쟁을 고집한 척화파 김상헌, 역적이라는 말을 들을지언정 삶의 영원성은 치욕을 덮어서 위로해줄 것이라는 주화파 최명길, 그 둘 사이에서 번민을 거듭하며 결단을 미루는 임금 인조. 그리고 전시총사령관인 영의정 김류의 복심을 숨긴 좌고우면, 산성의 방어를 책임진 수어사 이시백의‘수성守城이 곧 출성出城’이라는 헌걸찬 기상은 남한산성의 아수라를 한층 비극적으로 형상화한다.
역사에 오르지 않은 등장인물은 더욱 흥미롭다. 보기 드문 리얼리스트인 대장장이 서날쇠, 김상헌의 칼에 쓰러진 송파나루의 뱃사공, 적진을 뚫고 안개처럼 산성에 스며든 어린 계집 나루 등은 소설『남한산성』의 상징을 톺아보는 존재들이다. 그리하여 병자년 겨울과 이듬해 봄, 조선 사직 앞에 갈 수 없는 길과 가야할 길이 포개진다.

“치욕을 기억하라!”

3년 만에 선보이는 전작 장편『남한산성』에서 김훈은 조국의 가장 치욕스런 역사 속으로, 가장 논쟁적인 담론 속으로 곧장 뛰어든다. 이 점에서‘남한산성’은 작가 이력에 새로운 마디를 이룬다.
앞선 소설『칼의 노래』와『현의 노래』역시 역사를 다루지만, 그것은 역사의 무게보다 존재의 무게에 방점을 둔다. 『남한산성』은 조선 왕이‘오랑캐’의 황제에게 이마에 피가 나도록 땅을 찧으며 절을 올리게 만든 역사적 치욕을 정교한 프레임으로 복원하고 있다. 47일간 갇힌 성 안의 무기력한 인조 앞에서 벌어진 주전파와 주화파의 치명적인 다툼 그리고 꺼져가는 조국의 운명 앞에서 고통 받는 민초들...“실천 불가능한 정의인가, 실천 가능한 치욕인가?”

1636년 음력 12월, 청의 대군은 압록강을 건너 눈보라를 몰고 서울로 진격해 왔다. 병자호란이었다. 정묘호란을 겪은 지 불과 9년 만이었다. 방비를 갖추지 못한 채 척화를 내세우던 조선 조정은 정묘호란 때처럼 다시 강화도로 파천하려 했으나, 길이 끊겨 남한산성으로 들 수밖에 없었다.
작가 김훈의 신작 장편『남한산성』은 1636년 12월 14일부터 1637년 1월 30일까지 47일 동안 고립무원의 성에서 벌어진 말과 말의 싸움, 삶과 죽음의 등치에 관한 참담하고 고통스러운 낱낱의 기록이다. 그해 겨울은 치떨리도록 모질었다.

“주전파의 말은 실천 불가능한 정의였으며, 주화파의 말은 실천 가능한 치욕이었다.”
-김훈의 다른 글에서

쓰러진 왕조의 들판에도 대의는 꽃처럼 피어날 것이라며 결사항쟁을 고집한 척화파 김상헌, 역적이라는 말을 들을지언정 삶의 영원성은 치욕을 덮어서 위로해줄 것이라는 주화파 최명길, 그 둘 사이에서 번민을 거듭하며 결단을 미루는 임금 인조. 그리고 전시총사령관인 영의정 김류의 복심을 숨긴 좌고우면, 산성의 방어를 책임진 수어사 이시백의‘수성守城이 곧 출성出城’이라는 헌걸찬 기상은 남한산성의 아수라를 한층 비극적으로 형상화한다.
역사에 오르지 않은 등장인물은 더욱 흥미롭다. 보기 드문 리얼리스트인 대장장이 서날쇠, 김상헌의 칼에 쓰러진 송파나루의 뱃사공, 적진을 뚫고 안개처럼 산성에 스며든 어린 계집 나루 등은 소설『남한산성』의 상징을 톺아보는 존재들이다. 그리하여 병자년 겨울과 이듬해 봄, 조선 사직 앞에 갈 수 없는 길과 가야할 길이 포개진다.

“치욕을 기억하라!”

3년 만에 선보이는 전작 장편『남한산성』에서 김훈은 조국의 가장 치욕스런 역사 속으로, 가장 논쟁적인 담론 속으로 곧장 뛰어든다. 이 점에서‘남한산성’은 작가 이력에 새로운 마디를 이룬다.
앞선 소설『칼의 노래』와『현의 노래』역시 역사를 다루지만, 그것은 역사의 무게보다 존재의 무게에 방점을 둔다. 『남한산성』은 조선 왕이‘오랑캐’의 황제에게 이마에 피가 나도록 땅을 찧으며 절을 올리게 만든 역사적 치욕을 정교한 프레임으로 복원하고 있다. 47일간 갇힌 성 안의 무기력한 인조 앞에서 벌어진 주전파와 주화파의 치명적인 다툼 그리고 꺼져가는 조국의 운명 앞에서 고통 받는 민초들의 삶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무섭도록 끈질긴 질감을 보여준다. 감당할 수 없는 역사이고, 씻을 수 없는 역사였다.
김훈 특유의 냉혹한 행간 뒤에 숨겨진 뜨거운 말의 화살들은 독자를 논쟁의 한가운데로 내몬다.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죽어서 아름다울 것인가, 살아서 더러울 것인가?” 작가는 주화를 편들지도, 주전을 편들지도 않는다. 다만 지도층의 치열한 논쟁과 민초들의 핍진한 삶을, 연민을 배제한 시각으로 돌아볼 뿐이다.

왜 ‘남한산성’인가?

그해 겨울은 일찍 와서 오래 머물렀다. 강들은 먼 하류까지 옥빛으로 얼어붙었고, 언 강이 터지면서 골짜기가 울렸다. 그해 눈은 메말라서 버스럭거렸다. 겨우내 가루눈이 내렸고, 눈이 걷힌 날 하늘은 찢어질 듯 팽팽했다. 그해 바람은 빠르고 날카로웠다. 습기가 빠져서 가벼운 바람은 결마다 날이 서 있었고 토막 없이 길게 이어졌다. 칼바람이 능선을 타고 올라가면 눈 덮인 봉우리에서 회오리가 일었다. 긴 바람 속에서 마른 나무들이 길게 울었다. 주린 노루들이 마을로 내려오다가 눈구덩이에 빠져서 얼어 죽었다. 새들은 돌멩이처럼 나무에서 떨어졌고, 물고기들은 강바닥의 뻘 속으로 파고들었다. 사람 피와 말 피가 눈에 스며 얼었고, 그 위에 또 눈이 내렸다. 임금은 남한산성에 있었다.
-김훈의『남한산성』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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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에 대하여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2020.06.28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처음 남한산성 책을 읽기 전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나는 역사를 잘 모른다. 고등학교 때는 그때그때 시험을 준비하면서 무식하게 외웠기 때문에 남한산성을 듣자마자 병자호란의 배경 속 단순한 청과의 전쟁이라고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그래서 책을 읽기 전에 인터넷으로 남한산성에 대해서 알아보고 책을 읽었다. 그런데 이렇게나 남한산성이 우리나라의 비극적인 역사, 민족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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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남한산성 책을 읽기 전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나는 역사를 잘 모른다. 고등학교 때는 그때그때 시험을 준비하면서 무식하게 외웠기 때문에 남한산성을 듣자마자 병자호란의 배경 속 단순한 청과의 전쟁이라고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그래서 책을 읽기 전에 인터넷으로 남한산성에 대해서 알아보고 책을 읽었다. 그런데 이렇게나 남한산성이 우리나라의 비극적인 역사, 민족 최대의 굴욕을 담고 있는 책이라고 생각을 못 했다.  


이 책은 병자호란 당시의 배경으로 나타내고 있다. 청군의 침입에 강화도로 피난을 갔지만 갈 수 없게 되어 결국 남한산성으로 쫓겨 들어간 인조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예조 판서인 김상헌은 남한산성 밖으로 나가 청군과 적극적으로 싸우자고 주장하고 이조 판서인 최명길은 청나라와의 화친을 통해 나라의 살길을 찾자고 주장하면서 대립하는데 임금인 인조는 백성과 신하를 아끼는 인간적인 면을 지닌 듯해 보이지만 나라가 위급한 상황에서 둘의 의견에 모두 공감하며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갈등하는 모습을 보이니 청군에 대해 제대로 대처도 못 하고 겨울이란 배경 속에 전쟁하고 있으니 남한산성에서 고립되어 싸우고 있는 우리 민족의 힘든 모습을 생각하니 매우 안따까워 보였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되는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시련이 겹치고 겹치는데 결말을 정해져 있지만 극복해 나가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자호란에서는 우리의 적은 청나라이지만 남한산성 안에 고립되어 있으면서 우리 민족의 적은 우리 민족의 갈등이라고 생각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결말이 정해져 있다고 했는데 청나라의 압박 속에서 아무리 갈등한다고 해도 결국에는 항복하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최명길은 청나라와의 화친을 주장하면서 오랑캐 소리를 들어왔지만 결국에는 최명길의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청군에 의해 남한산성에서 고립되어 식량도 부족해지고 내부에서는 분열이 일어나고 임금은 갈등하고 백성들도 힘을 잃어가고 할 수 있는 게 없게 되니 결구 항복하게 되는 과정이 찾아올 수밖에 없는데 애초에 항복했었더라면 백성들의 희생과 갈등으로 인한 분열도 줄어들었을 것이고 덜 치욕스러운 역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남한산성은 "서울을 버려야 서울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은 그럴듯하게 들렸다."(p.9)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처음 읽으면서 단순히 지독한 모순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계속 읽으면서 서울 버려야만 서울로 돌아올 수 있고 서울을 지키고자 하면 서울로 돌아올 수 없었던 병자호란 당시의 상황을 인식하게 됐다. 김상헌과 최명길의 대립 속에 인조의 초라한 모습이 아른거리고 처연해 보였다. 그리고 소설 서두 여섯 문장의 주어가 모두 '말'이라는 단어로 시작한다. 그래서 '말'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다시 읽어본 후 김훈 작가는 청나라 군대의 침입이라는 일종의 재해에서 각자의 뜻과 말만을 되풀이하며 섞이지 못하는 관료들과 왕, 이들의 허무한 담론이 오가는 남한산성 안에서의 '말', 즉 정치적인 언어의 힘과 이중성, 그리고 허망함에 주목하면서 한마디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으로 생각하게 됐다.


이 책을 읽고나서, 김훈 작가가 이 책을 쓰면서 남한산성에 대하여 어떻게 말하는지 우리가 어떻게 생각해야되는지 고민해보면서 읽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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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vs 김윤석, 이병헌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l********r | 2017.11.30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조정래, 박경리, 박완서 그리고 김훈.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작가들이다. 남한산성은 내가 읽은 김훈 작가의 작품 중에서 4번째 책이다.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라면을 끓이며 그리고 남한산성.라면을 끓이며에서 아직도 기억에 박힌 문장이 하나 있다.'우리 아버지는 공회전과 원점회귀를 반복하는 한국 현대사의 황무지에 맨몸을 갈았다.'한국 현대사를 이리 간결하게 한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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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박경리, 박완서 그리고 김훈.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작가들이다. 

남한산성은 내가 읽은 김훈 작가의 작품 중에서 4번째 책이다.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라면을 끓이며 그리고 남한산성.

라면을 끓이며에서 아직도 기억에 박힌 문장이 하나 있다.

'우리 아버지는 공회전과 원점회귀를 반복하는 한국 현대사의 황무지에 맨몸을 갈았다.'

한국 현대사를 이리 간결하게 한 문장으로 나타낼 수 있다니.

그 전 두 권의 책을 읽으며 크게 와닿지 않았던 김훈은

이 한 문장으로 나에게 작가의 존재감을 마구 뿜어대며 다가왔다.

그런데 남한산성은 책 한권이 통째로 그 한 문장 같은 존재감을 뽐낸다.

감히 비유하건데

조정래 작가의 오른손과 정유정 작가의 왼손이 만나

키보드를 두드려 완성한 작품이랄까.

그정도로 이 작품에서 김훈이 보여주는 문장력은 어마어마하고 동시에 평범하다.


사실 이 책을 나온지 10년이 지난 뒤에서야 읽었다.

만일 이병헌과 김윤석이 이 영화를 찍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도 남한산성을 읽지 않았을지도.

아이를 키우느라 영화관에 가질 못하니

대리만족이라도 하자는 마음에 무심코 집어든 책이었다.

책장을 펼치고 첫 문장이 나를 압도했다.

'서울을 버려야 서울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은 그럴듯하게 들렸다.'

누구든 이 문장을 읽으면 앞으로 나가는 길 밖에는 없다.

그리고 그 길이 끝날 무렵이면 분명 아쉬워 할 것이다.

지금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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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문화리뷰 말들이 넘쳐나는, 말들의 세상에서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오***스 | 2017.08.27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말들이 넘쳐나는, 말들의 세상에서- 김훈 󰡔남한산성󰡕       󰡔남한산성󰡕은 말들이 만들어내는 폭력적인 세상의 풍경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말은 관념이다. 관념은 실제 현실을 넘어 현실과는 다른 말들의 세계를 이룩한다. 대명 사대주의에 빠진 조선의 관료들에게 신흥 강대국 청나라는 결코 인정할 수 없는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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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들이 넘쳐나는, 말들의 세상에서

- 김훈 󰡔남한산성󰡕

 

 

 

󰡔남한산성󰡕은 말들이 만들어내는 폭력적인 세상의 풍경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말은 관념이다. 관념은 실제 현실을 넘어 현실과는 다른 말들의 세계를 이룩한다. 대명 사대주의에 빠진 조선의 관료들에게 신흥 강대국 청나라는 결코 인정할 수 없는 오랑캐 나라이다. 그들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관념은 항상 그 강함을 무시한다. 오랑캐는 오랑캐일 뿐이라는 관념이 더 이상 오랑캐일 수 없는, 그래서 스스로 황제국이라 칭하는 청나라의 현실을 부정하는 근거가 된다. 대명(大明)이라는 정치적 상징물이 대청(大淸)의 현실을 왜곡하는 근거가 될 때, 세상은 이미 말들의 세상에 포섭된 관념의 세계로 돌변해버린다. 그러므로 그 관념이 강력한 적의 현실과 맞부딪치게 될 때, 다시 말해 전쟁이 현실화될 때 관념은 비로소 현실 속으로 스며든다. 하지만 적대적인 현실에서 관념의 언어들이 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남한산성으로 도피하는 사직의 주체들은 이로 보면 관념에 빠진 존재들의 당연한 귀결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남한산성󰡕에서 말들의 싸움은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난다. 성안에서 벌어지는 대의(근본)와 방편(사세)의 논쟁이 하나라면, 문장의 성격으로 극명하게 비교되는 두 나라 왕(황제)들의 문장론의 차이가 다른 하나이다. 대의와 방편의 싸움은 척화파와 주화파로 갈려 사대부의 윤리를 둘러싼 말의 싸움으로 진행된다. 말의 윤리는 명분에 따라 결정된다. 척화파의 대의는 대명 사대주의의 원칙을 중시한다. 따라서 거기에서 벗어나는 어떤 행동도 비윤리적이라는 낙인을 찍어버린다. 주화파의 핵심인 최명길을 목 베라는 주청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것도, 최명길은 척화파의 원칙에 어긋나는 화친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칙으로서의 대의는 명나라가 청나라보다 강하다면 쉽게 현실화될 수 있다. 하지만 명나라가 청나라를 누르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의는 지키는 사람만의 대의, 청나라 칸의 입장에서 보면 이 무력하고 고집 세며 수줍고 꽉 막힌 나라의 아둔함으로 인식될 뿐이다. 특히 산성 속에 틀어박혀 맞겠다는 것이지 돌아서겠다는 것인지, 싸우겠다는 것인지 달아나겠다는 것인지, 지키겠다는 것인지 내주겠다는 것인지, 버티겠다는 것인지 주저앉겠다는 것인지, 따르겠다는 것인지 거스르겠다는 것인지를 조선 조정은 분명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 이렇게 해도 안 되고 저렇게 해도 안 되는,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서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말들의 부풀림을 낳은 주된 원인이라 하겠다.

 

 

임금은 오랫동안 서안에 엎드려 있었다. 임금의 어깨가 흔들렸다. 신료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김상헌이 말했다.

- 전하, 적들이 비록 세찬을 내쳤으나 전하께서는 곤궁한 속에서도 선린의 법도를 보이셨으니, 전하께서 이기신 것이옵니다. 힘은 선한 근본에 깃드는 것이라고 신은 배웠나이다. 성심을 편히 하시고 더욱 방비에 힘쓰시옵소서.

임금의 어깨가 더욱 흔들렸다. 내관들이 임금 곁으로 다가갔다. 내관은 임금의 양쪽에서 머뭇거리기만 할 뿐, 흔들리는 임금의 어깨에 손대지 못했다. 최명길이 말했다.

- 전하, 죽음은 견딜 수 없고 치욕은 견딜 수 있는 것이옵니다. 군병들이 기한을 견디듯이 전하께서도 견디고 계시니 종사의 힘이옵니다. 전하, 부디 더 큰 것들도 견디어주소서.

(󰡔남한산성󰡕, 248~249)

 

 

힘은 선한 근본에 깃드는 것이라는 김상헌의 말과, ‘치욕은 견딜 수 있는 것이라는 최명길의 말은 진심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대의에 입각했든, 사세를 중시했든 그들은 사직을 살리기 위해 임금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소문과 수근거림으로 들끓는 묘당의 말들(특히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는 영의정 김류의 말)에 비하면, 그들의 말은 분명한 관점이 있고 그 관점에 따라 현실을 해석하는 장처가 있다. 하지만 김상헌의 말에는 현실이 없고, 최명길의 말에는 현실은 있지만 나라로서의 자존심이 없다. 자존심을 버려야 살 수 있다는 현실론이 대세이긴 하지만, 대명 사대사상에 철저한 선비들에게 이러한 현실론은 결코 인정할 수 없는 수치로 인식된다. 청의 황제에게 보내는 항복 문서를 쓰라는 임금의 명령을 받은 사대부들의 행동을 생각해 보자. 정육품 수찬은 임금에게 올리는 글에 쓰지 말아야 할 언어(, 오줌 따위)를 사용하여 곤장을 맞고는 오래지 않아 죽었고, 정오품 교리는 고민하다 지병인 협심증으로 죽었으며, 정오품 정랑은 남한산성의 상황을 고구려의 안시성과 비교함으로써 자신의 글이 원천적으로 선택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선비들은 만고의 역적으로 몰릴까 두려워한다. 임금의 명령으로 항복문서를 썼을지라도, 그 죄는 궁극적으로 글을 쓴 자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선비로서의 대의는 역적으로 몰려서는 안 된다는 사세에 의해 쉽게 깨지지만, 청나라의 사세는 대명의 대의를 결코 넘어서지 못한다. 그리하여 묘당의 신하들은 청의 칸을 황극이라 일컫고, 칸의 나라를 천인소귀(天人所歸)’라 일컬은 최명길의 글을 대의를 명분으로 비판하고 있다. ‘뜻을 빼앗기면 모든 것을 빼앗긴다고 김상헌은 주장한다. 임금이 이미 항복을 선언한 마당에 신하들이 내세우는 은 과연 무엇일까? 최명길은 스스로 자신의 글을 글이 아니옵고 길이라고 밝힌다. ()과 길의 차이가 김상헌과 최명길을 소통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간다. 대의와 방편, 근본과 사세, 글과 길 등으로 말이 바뀌며 전개되는 말들의 싸움은 결국 살고자 하는임금의 의지에 의해 방편-사세-길의 관점으로 정리된다. 이로써 모든 것이 끝난 것일까? 한 나라의 군주가 청의 칸에게 세 번 절하고, 여섯 번 머리를 조아리는 것으로 말들의 싸움은 끝난 것일까?

 

청나라 칸의 문장은 거침없고 꾸밈이 없었으며, 창으로 범을 찌르듯 달려들었다.”고 김훈은 서술한다. “칸은 고사를 끌어내거나, 전적을 인용하는 문장을 금했다. 칸은 문채를 꾸며서 부화한 문장과 뜻이 수줍어서 은비한 문장과 말을 멀리 돌려서 우원한 문장을 먹으로 뭉갰고, 말을 구부려서 잔망스러운 문장과 말을 늘려서 게으른 문장을 꾸짖었다.”(󰡔남한산성󰡕, 284)고도 말한다. 지나치게 꾸미는 말을 경계하는 칸의 문장론은 대의를 중시하고, 전적을 인용하여 뜻을 넌지시 제시하는 조선 선비들의 문장과는 분명히 다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곳에서 해야 할 일(행동)이다. 부풀려진 말의 세상에 빠져 고정된 관념으로 세상을 판단하는 일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 김훈은 대장장이 서날쇠가 봄농사를 위해 똥물을 밭에 뿌리는 장면으로 󰡔남한산성󰡕의 결말을 짓고 있다. 말들의 싸움 속에서 서날쇠는 적진을 뚫고 왕의 격문을 성의 외부로 전했으며, 전쟁이 끝나자 봄농사를 지으려 하고 있다.

 

말만 앞세우고 행동으로 나서지 않는 사대부들의 삶과 서날쇠의 삶은 극명하게 대비된다. 사대부들이 대의를 앞세우며 산성 속에서 움직이지 않을 때, 서날쇠는 성문이 열려야 백성들이 살 수 있다는 마음으로 임금의 격문을 외부로 돌려달라는 김상헌의 요구를 기꺼이 수용한다. 말들의 세상에서 유일하게 비껴나 있는 서날쇠는 일상 생활의 감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이순신과 우륵에게 견준다면, 서날쇠는 김훈의 역사소설에서 확실히 진보한 인물로 평가할 수 있다. 서날쇠는 허무의식에 빠져들 여지가 없다. 생활의 감각으로 세상을 인식하고, 그것은 곧바로 행동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김훈이 서날쇠의 삶을 소설의 결말로 삼은 것은 그러므로 김훈 소설의 맥락에서 보면 획기적인 일이라 할만하다.

 

그러나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서날쇠가 일상의 감각에 충실하며 살아가는 와중에도, 조정의 관료(선비)들은 말들의 싸움 속을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전쟁이 진행되는 상황에서는 서날쇠의 일상 감각이 빛을 발하겠지만, 전쟁이 끝난다면 서날쇠의 삶은 어떻게 될까? 물론 대장장이의 삶으로 돌아가 평범한 삶을 살 가능성이 가장 많을 것이다. 그리고 세상은 전쟁을 잊고, 서날쇠를 잊고 다시 말들의 싸움 속으로 스며들어갈 것이다. 이순신과 우륵의 개인적 영웅주의가 서날쇠의 삶에 그림자처럼 드리워지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어떻게 살든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서날쇠의 건강한 삶에 끼어든 김훈의 지독한 허무주의는 자본주의의 승리가 이미 선언된 지금 이곳의 현실과 공명한다. 정말 길은 없는 것일까? 김훈의 역사소설로 대답한다면, 길은 없다. 그리고 그 길 없음의 허무적 미학이 이 시대 독자들의 마음을 울리는 근본적인 이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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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18건) 한줄평 총점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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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었을까.
1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1
YES마니아 : 로얄 구* | 2017.11.07
평점5점
첫 김훈 소설. 간결하다. 그리고 날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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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플래티넘 현* | 2017.08.11
평점5점
김훈 작가만이 줄 수 있는 간결하고 힘찬 문장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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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로얄 자* | 2017.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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