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6년 07월 15일 |
---|---|
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156쪽 | 254g | 127*188*20mm |
ISBN13 | 9788937433207 |
ISBN10 | 8937433206 |
발행일 | 2016년 07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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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156쪽 | 254g | 127*188*20mm |
ISBN13 | 9788937433207 |
ISBN10 | 8937433206 |
바나나 소설은 때로 상처 입은 이들을 아름답게 묘사한다. '고통은 겪지 않을수록 좋은 것이 아닌가?', '인간이 상처로 인해 아름다워질 수 있는 걸까?'라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고통스러운 경험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이미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다. 그 상처입은 마음에는, 굴곡으로 인하여 인생이 더 입체적이고 풍성한 모양이 될 것이라고 위로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러니 바나나 소설은 우리에게 가능한 한 많은 아픔을 견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우리의 인생도 아름다운 한 편의 소설일 수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몇 달 전 <키친>을 읽고 요시모토 바나나에게 반해버려 <바다의 뚜껑>도 읽게 되었다.
<바다의 뚜껑>은 자칫 가볍고 소소해 보이지만, 삶에 대한 작가의 깊은 통찰이 담겨있는 글이다. 잠깐 시간을 죽이려고 책을 집어들 때와는 달리,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나도 모르게 인물들에게 깊이 이입하게 돼버린다. 그들의 삶이 마치 내 것인 양 슬퍼하고 기뻐하는 것이다.
주인공 마리는 귀향 후 작은 빙수가게를 운영하면서 때때로 자신이 나고자란 고장의 추억을 되새긴다. 그러나 좋은 시절을 생각하다 보면, 북적이던 관광지에서 쓸쓸하게 쇠락해버리고만 현실과의 괴리로 인해 그는 곧잘 억울한 기분에 잠식된다. 늘 사람도 많고 시끌시끌하던 거리의 가게가 텅텅 비고 자연의 생명체가 죽어가는 풍경(어쩌면 시대의 불가피한 흐름이라고도 할 수 있는)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하지메와 바다에서 신나게 헤엄치고 호텔의 라운지에서 차를 마시다가도, 하지메에게 쇠퇴한 고향의 모습을 보여준 데에 대한 아쉬움과 미안함을 느끼곤 한다. 고향을 향한 탄식은 마리가 얼마나 자신의 터전을 사랑했는지 알려준다.
그러나 도시에서 자란 하지메에겐 그러한 고장의 모습마저 생경하고 아름답게 다가온다. 사랑하는 할머니의 죽음과 그로 인한 친척들의 갈등으로 심신이 지쳐있던 하지메. 그는 마리의 빙수가게 일을 돕고, 날마다 바다에서 수영하고 지역 곳곳을 여행하며 조금씩 우울을 내려놓는다. 모두가 잠든 새벽이면 소리 죽여 고통을 삼키기도 하지만, 진중한 성격의 그는 마리를 비롯한 낯선 지역의 모든 것을 관찰하면서 슬프고 부정적인 감정을 차차 정리해나간다.
여름이 끝나고 하지메는 어느새 상실과 무력을 극복한 상태에서, 인생의 새로운 목표를 가지고서 자신이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간다. 마리는 하지메와의 이별을 크게 슬퍼하지만, 허전함을 애써 묵묵히 견디며 두 사람이 함께 했을 때처럼 소소하고 평화롭게 일상을 살아간다.
한 여름 밤의 꿈처럼 다가온 인연이 두 사람의 인생에 큰 족적을 남긴 것이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소름돋을 정도로 내면의 속삭임을 잘 표현한다. 이 지구에 발딛고 살면서 느끼는 수많은 감정을 예민하게 포착한 뒤 솔직하게 풀어쓴다. 그래서 데뷔작인 <키친>을 읽었을 때는, 책장을 넘기는 줄곧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싶었다. 특정 장면에서 주인공이 느끼는 기분이, 과거의 비슷한 상황에서 내가 느꼈던 그것과 놀랍도록 일치했기 때문이다. 누가 내 뇌를 머리에서 꺼내서 그 속의 기억들과 그때마다의 기분을 하나하나 훑어본 뒤 종이에 옮겨적은 듯한 기분이었다.
다행인지 아닌지 <바다의 뚜껑>에서는 그만큼 뼛속깊이 인물에게 공감되는 부분은 없었지만, 인물들의 대사로 표현되는 그들의 세계관은 너무나도 솔직하고 정교해서 바나나가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보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해준다. 이를테면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을 만한 소재로 하여금 인생을 고찰하는 것이다. 이렇게 섬세한 이야기를 읽을 때면 어느새 작가의 사고를 닮기라도 하는 듯 이 세상의 모든 것이 기적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마주하는 모든 사건들이 그물망처럼 촘촘하게 이루어진 무언가이고, 나는 세상의 순리에 맞춰 흘러가듯 사는 존재라고 생각하게 된다. 나도 모르게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는 것이다. 하지메와 함께 여름을 보낸 후 더 단단한 내면을 갖게 된 마리처럼.
때로는 한 치 앞이 깜깜해, 세상을 살아갈 용기가 나지 않기도 한다. 우울함이 나를 갉아먹는 것을 알면서도 헤어나오기 싫을 때가 있다. 그러나 어떻게든 사람은 그것을 극복하고 나아가는 방법을 찾는다.
바다의 생명력을 가지고서 말이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은 참 담백하다.
그리고 그 느낌을 김난주 번역가는 한국어로 잘 담아낸다.
그 동안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은 대부분
김난주 번역가의 문장으로 읽었다.
쇠락해가는 고향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빙수 가게를 하고 있는 주인공에게
할머니의 죽음으로 애도의 시간이 필요한
엄마 친구 딸과 한 여름을 함께 보내야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처음에는 혼자가 익숙한 탓에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을 어색해하지만
둘이 함께 지역 곳곳을 돌아보며
익숙했으나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변하는 것들의 다른 면들을 보게 된다.
겨울에 읽기 좋은 소설이었다.
여름을 상상하며 따스해 질 수 있었다.
조급한 일이 있을 때 보다는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읽으면 좋을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