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생각을 번역하는 것이고, 생각이 없다면 글을 쓸 수 없다. 글보다 생각이 먼저 머릿속에서 떠오르고 만들어져야 한다. 어쩌면 글쓰기를 위해 먼저 ‘생각을 만드는 법’에 대해 이야기해야할지도 모른다. 생각하는 법을 아는 사람,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생각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의 순서로 글쓰기 능력은 비례하는 것일까. 지적인 행위에서 쾌감과 즐거움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것은 불행이다.--- p.6
모든 문장 앞에는 늘 ‘의문사’가 있다. 하나의 문장은 질문에 대한 답이다. 질문은 글쓴이 스스로 한다. 모든 문장은 의문에 대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그러므로 질문을 하는 자만이 글을 쓸 수 있다. 질문, 의문하는 것은 생각을 만들어내는 기술이고, 문장은 의문과 질문에 대한 답으로 만들어진 생각을 글로 옮긴 것이다. 문장 앞에 숨겨진 의문사를 찾아라.--- p.15
모든 처음은 착하고 선하다. 과거가 없기 때문이다. 모두 시작은 가장 넓고 크다.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기 때문이다. 시작과 출발은 무지하다. 아직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아직 어떠한 행위도 없었으며 결과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든 시작은 그 무엇이 되고자하는 의지다.--- p.43
주어(主語)는 늘 외롭다. 왜냐하면 주어는 모든 사건의 시작이며 결정하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주어의 불안함, 두려움은 결국 주어를 따르는 낱말들의 운명을 결정한다. 주어가 불안하면 모든 낱말들이 몸을 떤다. 주어의 행위를 알려주는 서술어(敍述語), 즉 동사가 기가 잔뜩 죽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용감한 주어, 당당한 주어, 위풍당당 주어를 따르는 낱말들 또한 자신만만하다. 주어의 운명이 곧 목적어, 서술어 등 문장의 모든 직업과 품사를 지배한다.--- p.119
명사가 품고 있는 감정은 무엇인가?
명사는 완성된 것들의 감정을 가진다. 이루어진 것들, 정체성을 가진 것들, 모양과 형태를 갖춘 것들의 안도감이 느껴진다. 완성된 존재. 완성되기까지 많은 사연들이 있었을 것이다. 흐릿하게 시작해서 점점 더 뚜렷해지고 드디어 어떤 모양과 형상을 갖게 될 때, 그것은 명사가 된다. 명사의 왕관을 쓰게 된 그것은 어떤 성취감을 느낄 것이다. 이루었다는, 도달했다는, 마침내 해 냈다는 스스로의 존재감에 취할 것이다. 그리고 그 성취감과 존재감을 계속 유지하고 보존하고 싶을 것이다.--- p.150
형용사, 그녀는 화장의 달인이다. 이 친구는 무색무취, 즉 아무런 색도 없고 아무런 맛도 냄새도 없는 세계를 가장 싫어한다. ‘어떻게 아무런 맛도 없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단 말이야!’ 음식의 맛을 내는 조미료를 친다. 외출을 하기 전에 반드시 화장을 하고 옷을 고르는데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어떤 물건이든 형용사를 만나면 자신을 개성 있게 꾸미고 자신만의 순수한 빛깔을 갖는다. 순수하고 담백한 명사에게 정성스럽게 붓질을 한다.--- p.157
어휘, 낱말이 부족한 사람이 쉽게 분노하고 화를 낸다. 자신이 무엇 때문에, 왜 분노하고 화를 내는지 제대로 알 수 없다. ‘사랑’이라는 낱말을 알지 못하면 자신의 감정과 마음의 정체를 포착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것의 정체 또한 알 수 없다. 언어는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조직하고 모양을 만들어주는 물질이다.--- p.219
언어는, 낱말들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거쳐서 나에게까지 왔을까. 낱말들은 내공이 깊다. 사람들의 바람과 욕망을 가득 담고 수많은 실전경험으로 단련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우리에게 올 때는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정갈한 모습으로 왔지만, 낱말은 이미 많은 사람들의 쾌락을 맛보았을 것이다.--- p.225
비유는 A=B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A=B, A=B=C라는 주장은 미친 사고이다. 어떻게 서로 다른 것을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다른 것에서 같은 것을 발견하는 능력, 여러 개의 사물과 현상 속에서 같은 점을 찾아내어 그것을 언어화하는 능력, 이것이 공통점을 사고하고 추상화하는 능력이다. 공통점, 유사성, 동일성의 세계를 대표하는 언어가 바로 수학에서 사용하는 등호(=)이다. 수학에서 등호(=)가 휘두르는 사유능력을 언어에서 비유가 담당한다.--- p.257
언어와 연애하기, 문장으로 자신을 사랑하기
언어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에세이는 써지지 않는다. 하나씩 등장하는 낱말들과 교감하고 애정을 나누지 않는다면 문장은 완성되지 않을 것이다. 에세이는 자신을 사랑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최초의 독자는 늘 자신이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최초로 보는 사람이고, 출현하는 낱말과 문장을 보면서 자신의 모습을 하나씩 확인하는 것이다. 에세이는 자신을 음미하고, 언어의 정교함과 질서 있는 모습에 기대어 대부분 그럴듯한, 대견한 자아의 감정을 경험한다. 완성된 문장은 자신에게 흐뭇함을 맛보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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