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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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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10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144쪽 | 156g | 110*165*18mm
ISBN13 9788950983215
ISBN10 8950983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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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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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할 걸 해결하지 못하고 헤어진 관계였잖아. 무주는 내 물음에 정확히 답해주지 않은 채 스위스로 가버렸어. 끝났지만 뭔가 풀 게 남은 것 같은 기분은 때론 미련으로 때론 분노로 감각됐지. 차라리 잘된 걸지도 몰라.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마무리하는 거야.
--- p.28

잠이 오지 않았다. 잠이 어떻게 오고, 어떤 감각이 희미해져 꿈속으로 빠져드는지, 평생 해왔던 가장 익숙한 그 느낌이 낯설게 느껴질 정도였다. 만나고 싶고 만나고 싶지 않다. 잊었지만 잊지 않았다. 보고 싶지 않지만 보고 싶다. 만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왜 만나면 안 되는 건지 의문을 품고 있다. 마음의 정체를 도무지 알 수 없어 이쪽으로 저쪽으로 뒤척거리기만 했다.
--- p.40

한 장면도 기억나지 않는 꿈인데 마음은 뭔가를 느끼고 있었다. 나는 알았다. 무주를 본 것이다. 얼굴도 생각나지 않으면서 표정이 기억난다는 것이 말이 되나. 그 쓸쓸한 기운. 나를 바라볼 때의 눈동자. 그 비구름 같은 분위기가 다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은 무주의 얼굴이 생각난다. 기억 속에 저장된 수천 수만의 모습이 겹치고 겹쳐 홀로그램처럼 허공에 떠오르고 있다.
--- p.41

너답다고 생각했어. 넌 늘 너 하고 싶은 대로 했으니까. 빈에 왔겠지. 마침 내 생각이 났겠고 이참에 오랜만에 만나는 것도 좋겠다, 생각했겠지. 선 같은 거 없어. 감정이 선이야. 감정이 없다면 지킬 선도 없는 거지.
담담하게 말하는 무주의 음성 속에 희미하게 증오가 섞인 게 느껴졌다.
--- p.89~90

그때와 완전히 달라진 것도 있었는데 처음에는 그게 뭔지 잘 몰랐다. 하지만 지금 알았다. 감정. 무주의 감정은 깨끗하게 닦아 선반에 올려놓은 그릇 같았다. 불 같고 물 같고 때론 동물 같았던 무주의 감정이 정물처럼 느껴지는 것이 당황스러웠다.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했고, 그래야만 한다고도 생각했는데, 막상 그것을 마주한 마음은 서글펐다.
--- p.69~70

그 마음이 품고 있을 감정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알고 감춘 게 아니라 몰라서 감추고 있는 것. 사라지지도 소멸되지도 않은 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내가 모르는 마음. 담요를 머리까지 뒤집어쓴 채 이 시간을 통과하려 애쓰고 있다. 방이 좁게 느껴진다. 사방에서 벽들이 조여오는 느낌이다. 속이 빈 나무 속에 꽉 박혀 있는 기분이다.
--- p.108

구름 한 점 없는 오후의 강한 햇살이 무주 위로 쏟아졌다. 무주는 빛에 젖어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처럼 휘청휘청 걸어 물속으로 들어갔다. 머리까지 쑥 집어넣고 한참 뒤 떠올라 아아아, 소리를 내며 배영을 했다. 그러고는 느리고 꾸준하게 호수 끝까지 헤엄쳐 갔다. 멀리 사라질 동물처럼. 자유롭게. 자유롭게.
--- p.136~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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