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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전달자

시간 전달자

: 이상권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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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5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208쪽 | 266g | 140*205*20mm
ISBN13 9791188912766
ISBN10 1188912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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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로 편입된 지 이십 년이 되어가는데도 아직까지 동 이름 대신 옛 마을 이름으로 불리고 있지만, 금싸라기 땅이 되어버렸으니 이제는 돈이 없으면 들어올 수가 없는 곳이다. 한때 조상들 덕에 떵떵거리면서 살았던 원주민들은 거의 다 떠나버렸고, 이제는 대여섯 집 정도만이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마을을 질러가자 새로 지어진 전원주택 단지들이 나왔다. 그곳은 십 년 전까지만 해도 공동묘지에 가까운 뒷동산이었다. 그러나 내가 열 살 때, 마른장마 끝에 들이닥친 폭우는 그곳의 질서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산사태로 대부분의 유골은 찾을 수도 없었다. 문중 사람들은 간신히 찾아낸 유골들을 모아서 화장한 다음 자그마한 납골당에다 안치해놓고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 땅을 팔아버렸다. 그 땅 대부분을 구입한 건설회사는 무덤 터야말로 최고의 명당자리라면서 동산마을이라는 이름을 내걸었다. ---p. 11~12 중에서

마을회의가 소집되었다. 불을 낸 아이들이 회관 앞에 꿇어 앉아 있었다. 여자가 두 명, 나머지 다섯은 남자들이었다. 죄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얼굴을 볼 수는 없었다.“ (중략) 우리는 너무도 소중한 숲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미래를 잃어버릴 수는 없습니다.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목소리는 전혀 군인답지 않고 낮았는데, 그래서 오히려 울림이 있었다. “숲은 사라졌지만 다시 살려낼 수 있습니다. 불을 낸 아이와 그 가족이 책임을 지고 저 숲을 살려내겠다는 약속을 우리에게 해야 합니다." ---p. 21 중에서

나는 눈을 뜨자마자 바지부터 확인했다. 꿈속에서는 청바지였고 지금은 잠옷차림이지만, 놀랍게도 잠옷바지를 거꾸로 입고 있었다. 그때도, 그러니까 빈딧불이를 쫓아다녔던 그날 밤에도 나는 바지를 거꾸로 입었다. 나는 말도 안 된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잠들기 전에 선생님이랑 같이 반딧불이를 쫓아다니면서 놀았던 기억이 떠올라서, 그것을 생각하려고 하다가 잠이 들었다. 그런데 이토록 생생한 꿈이 나타나다니! ---p. 34~35 중에서

“얼마 전에 이안이가 그런 말 했잖아? 선생님한테 옛날 부채 같은 것을 받은
사람 있냐고? 그 이야기를 아빠한테 했더니, 그건 부채가 아니고 청동 거울일 것이라고 하는 거야. 아빠도 우리 문중에 그런 유물이 전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대. 그걸 갖고 있는 사람을 ‘시간 전달자’라고 하는데, 시간 여행을 자유롭게 할 수가 있고, 시간을 맘대로 전달할 수도 있대.”
“헐! 그거 갖고 있으면 진짜 좋겠다! 근데 그게 말이 돼?”
“우리 아빠는 확신하고 있더라고. 아빠 말로는 상사할아버지라고 불렀던 그분이 시간 전달자였을 것이고, 그 뒤에는 선생님한테 물려줬을 거래. 시간 전달자들은 그 마법 같은 능력으로 숲 지킴이 노릇을 하고, 문중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해결하기도 한다고 하니까!” ---p. 41 중에서

“요새 잠도 안 와요, 그 생각만 하면. 분명 이게 옳지 않다는 걸 알지만 세상은 변해버렸잖아요. 그 황금 땅을 사람들이 놔두겠어요! 그렇다고 해도 우리만큼은 변하지 말아야 하는데 솔직히 자신 없네요. 과연 우리가 끝까지 그 가치를 고수한다고 해서, 그것이 지켜질 것인가?” (중략) “여보, 근데 말예요. 항이만 생각하면…… 그 돈으로 원룸이나 상가건물 한두 동만 지어놓으면, 나중에 월세 받으면서 살 수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이…….” ---p. 95 중에서

“아무튼 그때부터 사람들은 유진하 선생님한테 의견을 구하면서, 나무를 심기도 하고, 숲에서 자연스럽게 돋아나는 나무들이 있으면 그것들을 중심으로 숲을 가꿔나갔답니다. 이 자작나무 숲에도 이십여 종의 나무들이 어우러져서 살아간답니다. 선생님은 혹시 나중에 더 강한 나무들이 나타나서 자작나무들을 가린다고 해도,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대요. 그래야 숲의 다양성이 생겨나고, 숲이 영원해질 수 있다고요. 사람은 그런 변화를 따라가는 것일 뿐, 그 흐름을 막아서고 인위적으로 숲을 끌고 가는 주체는 될 수 없다고요.” ---p. 101 중에서

“그나저나 누가 우리한테 그런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 것일까?”
“그러게 말이야. 난 우리 중에 시간 전달자가 있을 줄 알았는데, 우린 지금 여기 다 같이 모여 있잖아? 아까 이안이 말을 듣고 시간을 보내려고 했다면, 우리 중에 누군가는 움직였어야 하고, 최소한 요술부채나 청동거울을 만지면서 어떻게 했을 텐데 말이야. 근데 아무도 움직인 사람은 없었고, 우린 그냥 그 마법 같은 시간 속으로 빨려든 것이잖아!”
---p. 171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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