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를 손 볼 새도 없이 나는 원고를 서류철에 넣어 출판 발행인이 어느 서점에서 주최한 사교 모임에 가져갔다. 복사본이 따로 없었기 때문 에 서류철을 서가에 올려두면서도 행여 원고가 분실되거나 발행인이 깜빡 잊지나 않을까 걱정이 됐다. 다행히 발행인은 원고를 챙겨 집으로 가져갔고 성탄절에 이를 다 읽었다. 1967년 10월, 책이 출간되자 나는 세 곳의 주요 진영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첫 번째 진영은 책에 참고 문헌 과 각주, 심지어 색인이 빠졌다고 지적한 학자들이었다. 사실 이 모두를 생략한 것에는 나름의 의도된 셈법이 있었다.
--- 19p, 저자 서문
인간은 왜 털을 벗어야만 했을까
새로운 종류의 다람쥐를 연구할 때처럼, 겉보기에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진 것처럼 보이는 다른 종과 비교하는 일부터 시작해보자. 인간의 이와 손, 눈을 비롯한 여러 가지 해부학적 특징으로 미루어보아, 인간이 일종의 영장류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아주 기묘한 종류의 영장류 이다. 192종의 원숭이와 유인원의 가죽을 한 줄로 길게 늘어놓고 인간의 피부를 어딘가 적당한 위치에 끼워 넣으려고 해보면, 인간이 얼마나 괴상한 영장류인가를 분명히 알 수 있다. 어디에 집어넣어도 인간의 피부 는 잘못 놓인 것처럼 동떨어져 보인다. 결국 우리는 인간의 피부를 그 줄 의 맨 끝에, 침팬지나 고릴라 같은 꼬리 없는 유인원의 가죽 옆에 놓을 수밖에 없다.
--- 45p, 제1장 기원
사냥하는 원숭이에서 털 없는 원숭이로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는 나중에 살펴볼 작정이지만, 우선 대 답해두어야 할 문제가 한 가지 있다. 이 책의 서두에서 제기된 의문이 바 로 그것이다. 우리가 ‘호모 사피엔스’라는 괴상한 종을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그것이 다른 영장류의 표본과는 전혀 다른 두드러진 특징을 갖고 있다는 것을 당장 알아보았다. 이 특징은 털 없는 벌거숭이 피부였고, 그래서 나는 동물학자로서 그 생물을 ‘털 없는 원숭이’라고 이름 지었다. 그 후 우리는 그 생물에게 적당한 이름이 수없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직립 한 원숭이, 연장을 만드는 원숭이, 영리한 원숭이, 텃세권을 가진 원숭이 등, 어떤 이름을 붙여도 좋다. 그러나 이런 특징들은 우리가 맨 처음 알아차린 것들이 아니었다. 단순히 박물관에 전시된 동물학적 표본으로만 바라보면 당장 눈에 띄는 특징은 털이 없다는 사실이고, 따라서 이 호칭이 다른 동물학적 연구와 조화를 이룬다면 끝까지 이 이름을 고수할 작정이 다. 게다가 ‘털 없는 원숭이’라는 호칭은 우리가 그 생물에 접근하고 있는 독특한 방식을 상기시켜준다. 그러나 이 이상야릇한 특징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도대체 무엇 때문에 사냥하는 원숭이는 털 없는 원숭이가 되어야 했을까?
--- 75p, 제1장 기원
‘네오필리아’ 충동과 ‘네오포비아’ 충동의 갈등
나는 이 논의에서 과학기술의 발전을 생략했는데, 그것은 주로 살아남기 위해 싸우고(무기) 먹고(농업) 보금자리를 짓고(건축) 편안함을 얻는 (의학) 기본적인 목표를 달성할 때 사용하는 특수한 방법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과학기술의 발전이 서로 맞물리게 됨 에 따라, 과학 분야에도 순수한 탐구욕이 침입해 들어온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과학 탐구 - 찾고 뒤진다는 이 명칭 자체로 그것이 놀이라는 것 이 드러나고 있다 - 는 대부분 앞에서 열거한 놀이 규칙에 따라 이루어진다. ‘순수한’ 탐구에 종사하는 과학자는 사실상 예술가와 똑같은 방식으로 상상력을 발휘한다. 그는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편으로써의 실험이 아니라 아름다운 실험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예술가와 마찬가지로 탐험 자체를 위한 탐험에 관심을 갖는다. 연구 결과가 실용적인 특수한 목적에 유용하게 쓰이면 더욱 좋지만, 이것은 부차적인 문제다.
예술가든 과학자든 탐험 행위를 할 때는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충동 (네오필리아 충동)과 새로운 것을 싫어하는 충동(네오포비아 충동) 사이에 갈등이 일어난다. 새것을 좋아하는 충동은 우리를 새로운 경험으로 내몰 고, 우리는 새로움을 갈망한다. 새것을 싫어하는 충동은 우리를 억제하 고, 우리는 낯익은 것에 안주하고 싶어 한다. 우리를 흥분시키는 새로운 자극과 우호적인 낯익은 자극이 우리를 양쪽에서 끌어당긴다. 우리는 그 사이에 끼여서 끊임없이 이쪽저쪽으로 오락가락하는 상태에 놓여 있다. 새것을 좋아하는 충동을 잃어버리면 우리는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침체할 것이다. 새것을 싫어하는 충동을 잃어버리면 우리는 곧장 재난 속으로 빠져들 것이다. 이런 갈등상태는 머리 모양과 옷, 가구와 자동차의 유행이 끊임없이 바뀌는 이유를 설명해줄 뿐만 아니라, 모든 문화적 진보의 토대이기도 하다. 우리는 탐험하고 후퇴하고, 조사하고 안주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살고 있는 복잡한 환경에 대한 인식과 이해를 조금씩 넓혀간다.
--- 192p, 제4장 탐험
위협 신호와 항복 신호
패배자가 백기를 드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이것은 적의 공격 성을 자극했던 위협 신호를 거두는 소극적인 방법과 비공격적인 신호를 보내는 적극적인 방법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부류는 단순히 우세한 동물을 진정시킬 뿐이지만, 두 번째 부류는 우세한 동물의 기분을 적극 적으로 바꾸어준다. 가장 유치한 형태의 복종은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하라는 듯이 꼼짝도 하지 않는 완전한 무저항이다. 공격은 격렬한 움직임을 수반하기 때문에, 정지 자세는 자동적으로 비공격의 신호가 된다. 완전한 무저항은 땅에 엎드려 웅크리는 자세와 결합하는 경우가 많다. 공격하려면 몸을 최대한으로 확대해야 하기 때문에, 거꾸로 몸을 움츠리는 것은 적을 달래는 작용을 한다. 공격자에게 등을 보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것은 정면 공격 자세와 반대되는 자세이기 때문이다
--- p. 215 제5장 싸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