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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간직한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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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8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504쪽 | 558g | 145*210*25mm
ISBN13 9788932320755
ISBN10 893232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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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옷 주머니에서 때 묻은 손수건을 꺼내 코를 풀었다. “그자가 쓰고 있는 소설에 관해 말해주시죠. 이런저런 말이 들리더군요.”
“이를테면요?”
“말해보세요. 이 『닥터 지바고』가 무엇에 관한 소설입니까?”
“저는 몰라요.”
“모른다고요?”
“아직 집필 중인걸요.”
--- p.31 「동」중에서

세묘노프는 나한테 손가락 하나 대지 않았고, 심지어 협박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폭력은 늘 그 자리에 있었고, 그 상냥한 품행은 늘 계산된 것이었다. 나는 그런 남자들을 평생 보아왔고 그들이 어떤 짓을 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 p.39 「동」중에서

당시 아빠는 군수 공장에서 일했지만, 그 전에는 붉은 교수 대학원에 다니며 철학을 공부했다. 3년째 되던 해, 아빠는 ‘지정된 커리큘럼 이외의 사상’을 표현했다는 이유로 퇴학당했다. 아빠의 계획은 볼티모어나 워싱턴의 여러 대학교 중 한 곳에서 일자리를 구하고 1-2년 정도 사촌 집에 살면서 돈을 모은 뒤 집을 사고, 차를 사고, 아이를 한 명 더 낳고 등등 모든 것을 한다는 거였다. 부모님은 그들에게 생길 아기를 꿈꾸었다. 아기가 살 일생을 그려보았다. 깨끗한 미국의 병원에서 태어나고, 러시아어와 영어 두 가지 언어를 배우고, 최고의 학교에 다니고, 커다란 미국 차를 널따란 미국 도로에서 운전하는 법을 배우고, 어쩌면 야구까지 하게 될 터였다. 그 꿈속에서 두 사람은 스탠드에 앉아 땅콩을 먹으며 응원하게 되리라.
--- pp.56~57 「서」중에서

“전혀 나쁘지 않아, 베벌리” 나는 실제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게 놀라웠다. 전쟁 이후 나는 국무부에 자리를 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워싱턴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실제로 국무부에 취직했다. 하지만 그들은 나에게 개인 사무실과 편한 일을 주는 대신, 기록을 정리하는 지하실에 나를 처박아버렸다. 나는 겨우 여섯 달을 다니다 그만두었고, 그 뒤로는 올드 보이스 클럽과는 거리를 두었다.
--- p.97 「서」중에서)

스탈린이 보리스의 시를 즐겨 읽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었다. 그런 인간이 그의 글에서 동류의식을 발견했다는 건 무슨 뜻일까? 붉은 차르는 무엇에 연결되어 있었을까? 그가 쓴 글이 세계 속에 존재하게 되는 순간 더는 자신의 소유가 아님을 아는 이상, 그것이 냉엄한 진실이었다. 글이란 일단 출간되고 나면 누구든, 심지어 미친 사람도 자기 것이라 주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스탈린의 숙청 명단에서 제외되었다는 사실, 그 미친 자가 하수인들에게 이 성스러운 바보, 구름 위에 사는 남자는 건드리지 말라고 했다는 사실은 더욱 견디기 힘들었다.
--- p.138 「동」중에서

나는 모든 문예지, 모든 편집자, 모든 출판사 등 『닥터 지바고』를 펴낼 만한 사람이면 누구든 가리지 않고 약속을 잡았다. 나 혼자 나가서 보랴를 대신해 말했다. 보랴는 작품을 설명하거나 옹호하거나, 심지어 홍보하라는 압박이 들어오면 자신은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다. “마치 내가 썼던 글이 종이에 쓰이고 나서 인쇄되어 나오기까지 중간 어디에선가 사라져버린 느낌이야.” 그는 나한테 말했다.
--- p.158 「동」중에서

“그들이 무언가를 우주에 쏘았대.” 이리나가 말했다.
“그들?”
“그들, 그들 말이야.” 이리나가 소곤거렸다. “생각해봐……” 그녀가 말끝을 흐리며 석면 타일 천장을 가리켰다. “그게 저 위에 있어. 지금.”
그것은 비치볼만 한 크기에 평균적인 미국 남자 무게 정도였지만, 핵탄두만큼의 파급력이 있었다. 스푸트니크호 발사 소식은 러시아 국영 통신사 TASS가 최초의 위성이 현재 지구에서 900킬로미터 상공의 우주에 도달해 98분에 한 번씩 지구를 돌고 있다고 발표하기도 전에 SR 분과에 퍼졌다.
--- p.182 「서」중에서

“이게 『닥터 지바고』입니다.” 그가 꾸러미를 내밀자 세르조가 받으려 나섰지만, 파스테르나크는 곧바로 내주지 않았다. 한동안 두 사람이 같이 꾸러미를 들고 있다가 결국 파스테르나크가 손을 놓았다. “부디 이것이 세계로 나아가기를.”
[……] 세 남자는 작별을 고했다. 세르조와 블라들렌이 기차역으로 출발할 때 뒤에서 파스테르나크가 불렀다. “이 일로 댁들은 내 처형식에 초대받은 거요!”
“시인들이란!” 세르조가 웃었다.
블라들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p.207 「동」중에서

샐리의 악수는 단호했다. 우리 손가락을 으스러뜨리는 남자의 악수와는 달랐지만, 주목하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손을 꽉 쥐긴 했지만, 지나치게 센 건 아니었어. 정치가들이 악수할 때 바로 그러거든.” 노마가 말했다.
“그런데 왜 여기 왔을까?”
“누가 알겠어.”
“글쎄, 내가 알기론 그들은 접수대 뒤에 그런 여자를 데려다놓지는 않아.” 노마가 말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이유가 있는 거야.”
--- p.236 「서」중에서

프랭크에게 모든 것을 보고했다. 파티에 누가 참석했고 언론은 뭐라고 보도하고 있었는지, 내가 엿들은 대화에 어떤 정보가 있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펠트리넬리가 연설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낱낱이 이야기했다. 다만 그 소설책에 명함을 몰래 끼워 넣은 남자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왔을 때, 나는 담배 케이스에서 꺼낸 그 명함을 화장실의 헐거운 타일 뒤에 숨겨두었다. 워싱턴에서 비밀은 일종의 보험이었고, 여자라면 뒷주머니에 몇 개의 비밀은 늘 필요한 법이다.
--- p.293

“난 축하하러 온 게 아니야. 자네 이웃이나 친구로서 온 것도 아니고. 공적인 업무 때문에 왔네. 지금 우리 집에 폴리카르포프 의장이 와서 대답을 기다리고 있어.”
“무슨 대답 말인가?”
페딘이 숱이 많은 하얀 눈썹을 긁적거린다. “자네가 그 상을 포기할 건지 아닌지.”
보리스가 들고 있던 전보를 내려놓는다. “어떤 상황이 와도 포기 안 해.”
--- p.400 「동」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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