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유난히 잘 웃었다. 엄마 대신 아이가 먼저 웃으니 점점 웃는 날이 많아졌다. 어느새 나는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쥐어짜도 없던 모성도 아이와 교감하며 생겨났다. 아이를 존재 그 자체로 사랑하니 그저 하루하루가 감사한 날이 되었다.
--- p.22, 「아이로 인한 예상치 못한 아픔」 중에서
아이들이 어릴 때는 젖을 먹이다 잠들기 일쑤였다. 자꾸 깨는 아이들을 위해 아예 젖가슴을 풀어 헤치고 자는 나를 발견할 때면 마치 짐승의 어미가 된 기분이었다. 두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과 달리 날것으로 날뛰다 괴물같이 변하는 내 모습을 보며 자책했다.
--- p.31, 「육아 독립군, 동굴 속에서 나로 환생」 중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과 중요하게 대하는 일은 엄연히 다르다. 나에게 정말로 필요했던 것은 스스로를 중요하게 대하는 마음이었다. 온전히 시간을 내어 나를 마주하고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성찰하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 p.48, 「나만을 위한 달리기」 중에서
아이로 인해 뜨겁게 달아오를 때 마음의 공간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를 김형경의 『천 개의 공감』에서 발견했다. 아이가 분노를 표현할 때 엄마가 쏟아 낸 분노를 돌려주지 않고, 되갚지 않고, 그저 그 감정을 반복적으로 담아 줘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 아이는 자신이 분노해도 자신도, 부모도 무사하다는 사실을 믿는다. 그러면서 화를 낸 사실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품으며 비로소 내면의 성장이 일어나는 동시에 관계가 개선된다는 것이다.
--- p.73, 「사춘기 딸아이와 살아남기」 중에서
누구나 잘하고 싶다. 아이도 어른도 마찬가지다. 성장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잘하고 싶은 그 마음에 따스한 빛을 비추면 된다. 우리가 불안한 이유는 눈앞의 문제 행동이나 지금의 어설픈 모습이 영원할 것 같아서다. 그래서 오지도 않은 미래를 미리 걱정한다. 흔히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큰 숲을 봐야 한다지만 때로는 불확실한 큰 숲보다 풀 한 포기에 집중하는 것도 중요하다.
--- p.131, 「정성스러운 마음은 통하기 마련이다」 중에서
아이는 스승이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아이를 키우며 나도 크고 있기에. 내 안에서 나온 눈앞의 아이를 사랑하기 위해 나를 먼저 사랑해야 함을 알게 되었고, 그러기 위해 나의 상처와 결핍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아이를 보며 유독 불편하고 화가 치미는 상황이 생길 때면 못마땅하고 억울했던 어린 날을 더듬어 보며 그때 엄마의 삶까지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아이와 부딪히고 깨지고 화해하며 그 자리를 보듬고 넘어가는 시간의 무한 반복이다.
--- p.154, 「좋은 엄마라는 프레임을 깨다」 중에서
마흔, 누군가는 집문서를 가질 때 나는 내 마음에 솟는 땅문서인 책을 내려 한다. 그렇다. 누군가 집문서를 하나씩 늘릴 때 나는 책을 쓰며 내 안에 여러 채의 집을 짓겠다고 마음먹었다. 내 고유한 삶을 존중하고 지지하고 싶다는 다짐으로 쓰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이방인일지라도 나 자신에게만은 이방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
--- p.173, 「마흔, 마음의 평수를 넓혀야 할 때」 중에서
날카로운 삶의 파편에 베여 뜨겁고도 빨갛게 넘치던 마음도, 시간 속에 응고되면 종이에 손가락 벤 것처럼 가볍게 여겨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절대 가볍지는 않았다. 그 뜨거움의 순간들을 지나서야 지금의 나로 조형되었음을 잊고 싶지 않다.
분명한 것은 해결되지 않고 지나쳐 온 것들은 ‘불시’에 언제고 ‘불쑥’ 다시 온다는 것이다. 마치 후불카드 청구서처럼 계산될 때까지.
그때는 연체하지 않고 그 세부 내역에 대해 계산해야 한다. 그래야 삶의 진도를 나갈 수 있다.
--- p.186, 「우리는 때때로 알 수 없는 얼굴이 된다」 중에서
내가 나에게 시간을 들이는 순간부터 질문이 자꾸만 들러붙기 시작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지 못할 곳에 있는 경험을 하면서 든 생각이다. 다가오는 질문을 지나치지 않고 숙고한다면 삶은 내 편이 된다. 설령 실패해도 그 의미를 붙잡고 내 편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내가 나에게만은 유일한 옹호자가 되고, 세상의 잣대에서 벗어나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 유일한 잣대가 되는 것이다.
--- p.251, 「삶이 자꾸 말을 걸어올 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