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출간일 | 2021년 04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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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488쪽 | 840g | 153*225*28mm |
ISBN13 | 9791191432039 |
ISBN10 | 1191432033 |
출간일 | 2021년 04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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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488쪽 | 840g | 153*225*28mm |
ISBN13 | 9791191432039 |
ISBN10 | 1191432033 |
구멍가게 오십여 곳의 진한 이야기가 담긴 르포르타주이자 우리 삶의 바탕이 된, 소소하지만 소중한 것들의 근현대사 정확하고 빠르고 편리하게 변해가는 세상, 구멍가게는 이제 없어져도 그만인 구시대의 추억거리에 불과한 걸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2년여에 걸쳐 구멍가게 백여 곳을 방문하고 오십여 곳의 가게 주인과 마을의 단골손님들을 인터뷰해, 살아 펄떡이는 진짜 이야기를 길어냈다. 그 과정에서 생겨난 사회문화적 맥락이나 역사적인 변천에 대한 궁금증은 각종 매체와 사료로 채웠다. 구멍가게는 택배대행, 은행, 술집, 놀이터 등 마을에서 필요로 하는 다양한 일상의 역할을 해내는 멀티플렉스이자 주민들의 사랑방이다. 그 과정에서 서로의 소식 정보를 나누고 마을의 가치관을 전승하는 이야기판을 형성하며, 공동체와 바깥세계를 이어주는 연결점이 되기도 한다. 구멍가게가 이런 역할과 위상을 가지게 된 것은 사실 가게 주인들의 감정노동과 노련한 처세술 덕분이다. 저마다 가진 곡진한 사연을 듣고 있노라면 안타까우면서도 한편으로 공감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이 책은 ‘그렇게/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는 것을 새삼 일깨워주는 삶의 치유제이기도 하다. |
프롤로그: 새로 쓰는 구멍가게 1부 구멍가게는 어디에 있을까 1장 동네 안 구멍가게 연산상회를 찾아서 | 마을 속으로 | 나는 우체통 뜯어 가지 마라 그랬어 | 가게 전화? 마을 전화! | 택배도 되나요? | 할머니의 수상한 거래 | 연산상회 잇템 | 긍게 영감 앞에 죽으야 혀 2장 길 위의 정류장 가게 정류장 옆 구멍가게 | 코리안타임 버스 | 와룡마을 버스알리미 | 옥찬수퍼 동광고속정류소 | 사라진 버스표와 간판 | 그냥 갈 수 없잖아 | 내가 우리 아저씨 부를 때는 박씨아저씨야 | 쉼터 | 구멍가게의 어원 3장 학교 앞 문방구 가게 군것질 천국 | 꼬마 도둑 | 눈이 붐빈다 | 구멍가게 CCTV | 문방구와 놀잇감 | 주사위를 열심히 굴리면 착한 어린이가 됩니다 | 학교 앞 작은 학교 | 밤은 없고 낮만 있으믄 쓰겄다 2부 구멍가게가 걸어온 길 4장 마을공동가게에서 구멍가게로 새로운 발견 | 구판장에서 점방으로 | 잘사는 마을의 조건 | 공동구매의 원조, 부녀회 가게 | 문밖으로 나온 여성, 부인상회 | 잘되는 가게의 비결 | 36.5℃ 마을 정보통 | 창살 없는 감옥이야 5장 구멍가게는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야속한 관계, 모기 | 구멍가게 잔혹사 | 아름다운 상생 | 변신의 귀재, 농협 마트 | 외길 인생, 구멍가게 | 구멍가게에는 있고 농협 마트에는 없는 것 | 왕자네 가게와 피아노 | 쉼터 | 슈퍼마켓의 역사 6장 구멍가게의 변신, 이름으로 말하다 슈퍼인가 편의점인가 | 겉 다르고 속 다른 태양수퍼 | 변화의 현장,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 | 막다른 골목, 슈퍼에서 마트로 | 유통의 새바람, 편의점 | 구멍가게, 그다음 장 | 늦게 찾아온 봄 | 쉼터 | 사라진 구멍가게 3부 구멍가게 들여다보기 7장 구석구석 클로즈업 시간은 쌓인다 | 숨은 공간 찾기 | 유리문 진열장과 잠금장치 | 여럿이 함께 | 나만의 비밀번호 | 그들만의 포스트잇 | 홍보는 셀프 | DIY 술탁자 | 맨날 이사만 했제, 비워주라 그름 비워주고 | 쉼터 | 구멍가게와 부업의 세계 8장 눈깔사탕에서 컵라면까지 오래된 히트상품 | 옷만 없고 모든 게 다 있는 거여 | 하나 물고 십 리 가는 눈깔사탕 | 007 돈사탕을 찾아라! | 구멍가게 1세대 과자 | 새우깡은 현금 판매합니다 | 정(情)의 한류, 초코파이 | 석빙고 아이스케잌과 칠성사이다 | 라면 전성시대 | 그리고 문명이, 문화가, 신비가 있었다 9장 담배와 함께한 육십 년 구멍가게 아이콘 | 담배, 상품 이상의 상품 | 구멍가게가 곧 담배가게 | 담배는 어떻게 공급되었을까 | 약국에서 담배를? | 잘나가도 함께, 못나가도 함께 | 담배외전 | 서울처녀의 냉장고 | 담배가 맺어준 인연 | 아구발 없으면 이 장사 못 해요 | 쉼터 | 우리 담배의 변천사 4부 구멍가게, 치열한 삶의 현장 10장 구멍가게, 주막을 품다 소문난 술안주 | 하루 세 번 술참 | 흙 묻은 장화 | 키핑도 되나요? | 첨에는 독아지다 부서서 팔았지 | 행운을 소주 뚜껑 속에서 | 풍류주막 | 트러블메이커 | 술 팔아 번 돈은 귀신도 맘대로 못 쓸 거예요 | 쉼터 | 구멍가게와 나눔 11장 구멍가게와 쩐(錢)의 전쟁 돈 때문에 울고 돈 때문에 웃고 | 갈등의 씨앗, 외상장부 | 삼태마을 다이어리 | 개구쟁이 석이의 외상 | 속이 쓰려 간이 녹는다 | 어쩔 것이여 냅둬 | 애증의 화투판 | 놀이와 노름 사이 | 긍게 여자도 강하믄 다 그러고 살아, 남자 지지 않애 | 쉼터 | 구멍가게와 셈 12장 구멍가게에서 찾은 삶의 무늬 살아온 일을 생각하믄 아실아실해 | 나도 가이내 때는 웃는 게 인사였어 | 우리 동네 멀티플렉스 | 너와 나의 연결고리 | 곽 속에 들어도 큰소리 하지 마라 | 내가 그릏게 고생을 타고난 사람인갑서라 | 남도 나처럼, 나도 남처럼 | 비를 기다리는 사람들 에필로그: 숙제를 마치며 구멍가게 목록 주 |
#1. [어쩌다 사장] 이라는 방송을 보면서 시골의 한 가게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이제는 도심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것이어서 너무나 재미있었다. 단순히 물건을 파는 장소가 아니라 동네 사람들이 간단히 식사와 술을 하면서 소통의 장으로도 활용이 되었으니 우리가 알던 마트와는 확실히 다른 공간이었다. 심지어 가게 문을 닫고 게스트와 함께 늦은 식사와 술을 마시면서 하루를 정리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출연자의 모습은 내가 일상에서 그토록 동경하던 것이어서 더욱 남다르게 느껴지기까지 하였다.
#2. 어렸을 때, 동네 아주머니들께서 가게 앞에 있던 평상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시는 모습을 자주 보곤 하였다. 저녁 반찬거리들을 거기에서 다듬거나 과일을 드시다가 하교하는 동네 아이들에게 아는 척을 하던 그 모습은 지금도 여전히 잊혀지지 않는다. 특히 요즈음에는 그런 모습들을 통 볼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다.
[구멍가게 이야기]는 이제 도심에서는 거의 사라진 공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요즈음 세대들에게는 아마 '구멍가게'라는 표현조차 낯설텐데, 저자는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전라남도의 구멍가게들을 답사하면서 이 책을 출간하였으니 정말 소중한 책이 아닐 수 없다.(참고로 전라남도 지역으로 정한 것은 그나마 공업화가 덜 진행되어 그래도 명맥을 유지하는 구멍가게들이 이 지역에 많은 편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제 점점 예전에 대한 기억들이 하나둘씩 가물가물해지고 있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구멍가게에 대한 기억들이 남아 있어서 이 책이 무척 반가웠다. 우선 그 시절의 학교 앞 문방구가 구멍가게 역할을 하였으며,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셨던 큰아버지를 명절에 방문할 때마다 이 책에 등장하는 구멍가게들이 그곳에서도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시골에 놀러가면 어린 나이에 과자를 사기 위해서 동네 어귀에 위치한 구멍가게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자칫하면 이러한 기억마저 사라질뻔 했는데, 이 책을 통하여 다시금 떠올리고 또 새길 수 있었으니 너무나 고마울 따름이다.
1부. 구멍가게는 어디에 있을까?
2부. 구멍가게가 걸어온 길
3부. 구멍가게 들여다보기
4부. 구멍가게, 치열한 삶의 현장
책은 이렇게 4개의 주제로 구멍가게를 다루고 있다. 2011년부터 2014년의 답사를 통하여 쓰여진 이 내용들은 분명 현재의 구멍가게에 관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1900년대 중후반의 느낌을 물씬 풍기고 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구멍가게들이 빠른 변화의 시간 속에서도 여전히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적어도 나에게는 아련한 그 시절이 기억을 떠올리는 여정과 같았다.
옛날에는 공중전화가 여가 있었어. 그랬는데 저그 바깥에다 해농게 수화기 창살을 빼가부러. 그래서 안에서 혔제.
- p. 43 中에서 -
이제는 도심의 거리에서조차 쉽게 볼 수 없는 공중전화가 예전에는 구멍가게에 있었다. 보통 구멍가게 바깥에 주황색, 청록색의 동전을 넣어서 사용하던 공중전화가 있었는데, 지금과는 달리 많은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였다. 화순의 <운농수퍼>를 운영하시던 아주머니의 말처럼 구멍가게 안에 공중전화가 있는 경우도 있었는데, 내 기억 속에서도 그런 경우가 흔했던 것 같다. 가게 주인이나 동네 사람들이 듣던 말던 구멍가게 안에서 떠들썩하게 전화를 하고, 또 전화만 사용하기가 뭐해서 껌이나 사탕, 담배도 함께 사던 손님들의 모습은 이제는 보기 힘들다. 공중전화로 인하여 그것이 놓여 있던 예전 구멍가게의 모습을 다시 한 번 재구성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옛날에는 이달학습, 다달학습 그런 것이 있었거든요. 그런 것을 학교에서 인자 채택을 해요 선생님들이. 그러믄 우리가 너주고. 그때는 한 학년이 사백 명, 오백 명 그렇게 됐으니까 여그서 찰흙, 교재, 수수깡 그렇게 선택허믄 사백 명, 오백 명이 다 사거든요. (중략) 지금은 그런 것이 뭐 필요 있습니까? 다 학교에서, 조달청에서 조달헝가 어쩡가 몰라도 다 그렇게 해서 해부리니까 전혀 장사가 안 돼요.
- p. 105 中에서 -
담양의 <대치서점> 주인의 회상은 곧 나의 유년 시절의 회상이었다. 당시 문방구는 문제집과 학용품은 물론 군것질과 뽑기, 게임과 같이 많은 것들을 제공하던 곳이었다. 매월 문제집을 그렇게 사고자 했던 이유 중 하나는 문제집을 사면 단골 문방구 주인이 100원어치 군것질을 할 수 있게 해줬기 때문이다. 당시 100원이면 50원짜리 막대 아이스크림 1개에 남은 50원으로 온갖 군것질거리를 제법 살 수 있었으니 그것이 또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또한 문구점에서 축구공을 빌리거나 학교에 준비물을 놓고 온 경우 자전거를 빌릴 수도 있었으니 요즈음 문구점에서는 전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들이 그 시기에는 당연했다. 하지만 이제는 학교 앞에서 이런 문구점 자체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나마 <대치서점>은 그래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내가 다녔던 학교 앞의 문구점들은 거의 사라졌거나 아예 슈퍼로 이름을 바꾸고 남아있는 것이 전부였다.
시골에 있는 처가에 가도 농협에서 운영하는 마트가 자주 보인다. 예전 구멍가게, 구판장의 자리를 밀어내고 그런 마트들이 들어선 셈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는 여전히 남아있는 구멍가게들이 있다. 분명 농협에서 운영하는 마트가 가격도 싸고, 물건도 많은데 어떻게 그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잘해준 것 없어. 잘해준 것이 아니라 내가 더 잘해부러. 저가 농협 있잖아요. 저리 가믄 다믄 십 원이라도 싼 건 사실이여. 근디 구태여 그리 안가지. 여기서 가져가.
- p. 190 中에서 -
보성의 <미력슈퍼>를 직접 운영하는 아주머니조차 왜 농협 마트가 아닌 자신의 가게로 사람이 오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하지만 분명 마트에는 없고 구멍가게에는 있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마을사람들과의 '관계'였다.
<미력슈퍼>의 주인 아주머니는 동네 사람들의 대소사는 물론 취향을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을사람들이 편안히 가게를 찾을 수 있던 것이다. 마을사람 중 누가 오늘 농사일을 하면서 새참이 필요한지, 또 어떤 담배와 술을 마시는지 모두 알 수 있기 때문에 마을사람들은 가게를 애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한 편안함은 가게 안에 마련된 작은 술마시는 공간에서도 마을사람들이 자주 드나들고 또 그곳에 모여서 농사 정보는 물론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있으니 이는 구멍가게가 아니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이다. 가게 안에서의 만남이 끊임없이 계속되기 때문에 구멍가게는 단순히 물건만 사는 곳이 아니라 지극히 일상적이지만 풍부한 삶의 공간이 되면서 마트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도 담양읍인데 이거 막걸리 한 병에 천육백 원 받고 손님들한테 드려요. 그런디 안주를 보십시오. 천육백 원짜리 막걸리 한 병에 안주가 이렇게 나와. 요것도 떨어지믄 또 갖다줘요. 저그 저 시내 계신 분들이 여기까지 와요. 아주 고정손님이 돼가지고. 여그를 한번 들러서 잡수신 분들은 못 잊고 계속 오셔요.
- p. 352 中에서 -
전주의 유명한 막걸리 골목에서는 안주가 아닌 막걸리를 주문하면 온갖 푸짐한 안주가 차려진다고 한다. 2만원 내외의 기본상이 주전자에 막걸리 3병을 넣고 거기에 안주가 딸려나오는 방식이고, 이후 추가 주전자를 하면 안주가 더 나오는 방식이다. 안주를 선택할 고민도 없고, 정말 다양한 안주들이 막걸리 주전자와 함께 나오니 그 후한 인심에 그곳은 '가맥'과 더불어 전주 여행의 성지가 되었다. 그런데, 담양의 <강쟁상회>에 대한 주민의 예찬을 들으니 막걸리 골목에서 느꼈던 그 인심이 반감되는 것 같다. 한 병에 천육백원을 받으면서도 막걸리와 함께 나오는 예닐곱 가지는 되어 보이는 각종 나물과 갓 담은 열무김치, 장아찌 등이 무료로 딸려나오니 말이다. 그 광경 역시 내가 어렸을 적에 구멍가게에서 볼 수 있었던 장면이었는데, 거기에서 느껴진 감성을 아마 요즈음은 막걸리 골목에서 느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감성에 젖어들 무렵 책의 말미에는 치열한 삶의 현장으로서의 구멍가게를 다룬다. 사실 시골에 들어선 구멍가게의 주인 대부분은 시골에서 농사를 지을 수 없는 형편인 경우가 많았다. 시골로 시집을 왔다가 남편이 일찍 죽어서 마땅히 농사 기술이 없는 상황에서 그나마 구멍가게를 해볼만한 것이라고 생각되어 운영하였다는 아주머니의 넋두리는 구멍가게 역시 살기 위한 자구책이었던 것이다. 또한 구멍가게에서 마을사람들과의 관계와 정 때문에 제대로 받을 수 없었던 외상이라든지 가게에서 술을 마시고 난동을 부리는 경우도 종종 있었으니 이런 모습들은 그저 구멍가게를 통하여 예전의 추억을 떠올리는 것이 전부인 나로서는 꽤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그러한 치열한 과정을 거쳐서 오늘날까지 명맥을 유지하는 구멍가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하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구멍가게 이야기]의 저자가 시간이 흘러 다시 찾은 구멍가게 중 몇몇 가게는 문을 닫았다고 한다. 운영하시는 분들이 세상을 떠났거나 경제적인 상황으로 더이상 경영하지 못하여 사라진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 가게들의 입장으로 보일 수 있지만, 나 역시 그렇게 사라지는 가게들의 이야기에 못내 아쉽고 슬프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지니고 있던 추억과 기억이 함께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최근 로드뷰로 예전에 내가 살던 곳을 보면서 그 당시의 모습이 전혀 남지 않은 모습을 보면서 느꼈던 그 감정을 바로 이 책의 에필로그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에게 무척 고맙고 또 감사할 따름이다. 점점 우리 곁에서 사라지는 구멍가게에 대하여 글로나마 온전하게 읽고 또 간직할 수 있게 해주었으니 말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지난 3월 말 대학 시절 농활을 다녔던 마을에 놀러 간 적이 있다. 선배와 연이 닿은 것이 계기가 되어 몇몇이 찾아간 것이다. 처음 연을 맺은 지 30년이 다 되어 가는지라 매우 반가웠다. 우리를 챙겨주셨던 마을 형님은 그대로셨고, 여전히 마을을 지키고 계셨다. 마을을 잠시 둘러보고 농활 당시 숙소로 묵었던 구멍가게에 들렸다. 건물 형태는 그대로였으나 구멍가게는 없어진 지 오래였다. 의자와 탁자 몇 개를 남겨 놓고 마을 분들이 잠시 지나다 쉬는 사랑방이 되어 있었다.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는 내 기억 속 마을의 구멍가게는 그래도 꽤 번잡한 곳이었다. 구멍가게 앞으로 버스 정류장이 있었고, 많지 않은 물건이지만 마을의 필수품을 조달하는 곳이었으며, 들녘에 나가 일을 하던 마을 어르신들이 가게 안 탁자에 모여 앉아 막걸리 한 잔을 마시며 피로를 푸는 곳이었다. 안주는 김치 하나였지만 오가는 술잔 속에 마을의 이야기들이 화기애애하게 펼쳐지는 소통의 장이기도 했다. 나도 그 자리에 붙들려 막걸리를 몇 잔 얻어 마시고 얼굴이 벌게져 논으로 향했던 기억이 난다.
박혜진, 심우장의 <구멍가게 이야기>를 읽다가 다시 옛 추억에 젖어 들 수밖에 없었다. 잠시였지만 소중했던 과거의 기억들이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듯 생생하게 다가왔다. 저자가 만난 주인공들은 내가 어머니, 할머니로 불렀던 분들이다. 구부정한 허리를 끌며 막걸리를 건네주시고 더운 여름 의자에 앉아 부채를 부치시던, 가게 앞을 지나는 마을 분과 짧은 몇 마디로 얼굴 가득 환한 웃음을 지어주시던 어머니였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한 구멍가게 이야기가 아니다. 구멍가게를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주는 정보보고서이자 어쩌면 사라질지 모를 삶의 한 단편을 생생히 기록한 구멍가게 자서전이다.
이 책의 남다른 가치는 3년여에 걸친 현장답사와 인터뷰, 기록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에는 책의 분량이 좀 많아 보였는데 책을 읽고 보니 덜어낸 부분이 많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만큼 흡입력 있게 읽혔고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챕터를 여러 가지 주제로 나누어 다양한 시각에서 구멍가게를 바라보았으며, 생각지도 못한 부분까지 세밀하게 다루어 뻔한 스토리에서 더 나아가 읽는 재미와 신선함을 주었다. 구멍가게의 위치에서부터 생존 과정, 구성품들, 가게에 얽힌 다양한 사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책을 읽기 전에는 다소 딱딱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그런데 막상 읽고 보니 재미가 있었던 건 바로 그런 이유이다. 구멍가게를 찾아가는 생생한 여정을 시작으로 가게마다 지닌 사연이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또한 추임새를 넣듯 아버님, 어머님의 목소리가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로 재연된다. 게다가 굳이 요청하지 않았음에도 저자는 특정 사건이나 상품에 얽힌 과거의 역사와 기원을 찾아가 소개한다. 구멍가게의 어원에서부터 담배 변천사, 새우깡이나 초코파이 등의 출시와 당시의 상황들을 읽는 재미가 꽤 쏠쏠했다.
한편으로는 아련함도 느껴졌다. 구멍가게가 지닌 태생적 운명이라고 해야 할까. 구멍가게를 운영할 수밖에 없었던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그런데도 자식들 잘 키웠노라고 자랑스러워하시는 말씀들에 긍정의 위로를 받았다. 사실 매출은 얼마나 되었을 것이며, 365일 자리를 지키며 겪는 스트레스는 오죽했을까. 종종 싸움이 일어나면 중재도 해야 하고 조막만 한 손이 물건을 슬쩍 훔쳐 가는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해야 할 때도 있었다. 그렇게 구멍가게는 주인장과 세월을 같이 하며 흘러왔는데 이제 그마저도 힘들다. 간판이 하나씩 내려지고 꽁꽁 닫힌 문은 열리지 않는다.
농촌 인구가 점점 줄어드니 당연한 현상일 테지만 아련한 추억 속의 구멍가게가 하나둘씩 사라져가는 게 못내 아쉽다. 그나마 저자가 이렇게 구멍가게를 찾아다니며 기록이라도 하여 참으로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책을 읽고 난 후 지난 3월 방문했던 구멍가게의 사진을 다시 보았다. 놀랍게도 저자가 책에서 소개한 케이블드럼통 앞에서 다섯 명의 남자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책과 과거의 기억들이 넘나들며 잠시나마 즐거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