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가장 큰 운빨은 민사고와 다트머스와 옥스퍼드를 나온 것이 아니다. 북한이 아닌 남한에서 태어난 것, 여성이 아닌 남성으로 태어난 것, 성소수자가 아니고 비장애인이라 차별받을 일이 없었다는 것부터가 엄청난 특권이다. 그것만으로도 나의 출발선은 남보다 훨씬 앞에 있었다. 하지만 나의 가장 큰 특권은 따로 있다. 바로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동물 중에서 인간은 소수의 지배계급이다. 절대다수는 인간이 먹기 위해 만들고 가두고 죽이는 비인간 동물이다. 우리는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생명체를 함부로 대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내가 비교적 안정적인 집안에 비장애인 이성애자 남성으로 태어난 것이 나의 노력과 아무 상관이 없듯이 인간으로 태어난 것도 마찬가지다.
--- pp.13~14, 「사랑하는 능력
비거니즘과 페미니즘은 살림으로 하나 된다. 모두 생존과 공존을 위한 운동이다. 비거니즘은 우리의 밥상을 죽임이 아닌 살림의 먹거리로 채우는 것이 시작이다. 페미니즘은 남성중심 사회가 여성의 몫으로 할당하고 폄하했던 살림의 가치를 높이는 것에서 출발한다. 죽임의 문명에서 비거니즘과 페미니즘은 공통의 적을 갖는다.
--- p.35, 「페미니스트 애인과 나의 자존심
인간은 자연 상태에서 전혀 평화롭지 않다. 전쟁은 사랑만큼이나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마찬가지로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잡식동물이다. 오늘날처럼 인간이 육식을 많이 하는 것도 자연스럽지 않지만, 고기, 생선, 계란, 우유를 아예 안 먹는 완전채식주의자, 비건으로 사는 것도 자연스럽지 않다. 나는 자연인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살고 싶어서 평화를 꿈꾸고 채식을 하는 게 아니다. 이성적이고 성숙하게 살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다.
--- p.61, 「빛을 사랑하는 마음
종차별주의와 인종차별주의는 본질적으로 같다. 연속적 스펙트럼 상에 있는 존재를 인위적 이분법으로 나눠서 차별을 정당화한다. 같은 인간을 백인종과 유색인종으로 나누듯이, 같은 동물을 인간종과 비인간종으로 나눈다. 동물해방운동가는 인종차별처럼 종차별 역시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pp.103~104, 「노예해방과 동물해방
지금 우리의 관계는 틀렸다. 인간과 동물,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완전히 재정립해야 한다. 우리의 미래가 걸렸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만이 아니다. ‘느끼는 모두’를 뜻한다. 하나뿐인 지구라는 집에서 동고동락하는 식구를 전부 아우르는 새로운 집단 정체성이 필요하다. 인간과 동물, 인간과 자연이라는 근대적인 이분법이 오늘날의 비극을 자초했다. 절멸을 초래했다. 아니, 인간이 알면서도 멸종을 일으키고 있으니 박멸이라는 말이 적절하겠다. 더는 미룰 수 없다.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
--- pp.122~123, 「동물의, 동물에 의한, 동물을 위한 정치
이 세상에 완벽한 비건은 없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다른 동물에게 아무런 고통을 야기하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인간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 진정한 친환경이고 완벽한 비건이다. 겸허히 인정하되 격렬히 지향하자. 스스로 죄책감의 수렁에 빠지고, 또 서로를 빠뜨리는 것은 시간 낭비다. 우리는 그럴 자격도 여유도 없다. 이 시국에 누가 더 윤리적으로 순결한가를 겨루는 것만큼 인간중심적인 허세도 없다.
--- p.148, 「소의 젖을 먹지 않는 사람
동물해방운동은 이제 시작이다. 바꿀 말이 많다. 예를 들어 일석이조가 아니라 일거양득이다. 돌을 하나 던져서 새가 두 명이나 죽으면 그게 이득인가 손해인가? 방금 비인간 동물을 ‘마리’가 아닌 ‘명’으로 수식했다. 왜 이름 명을 사람 셀 때만 쓰는가? 사전상 마리는 ‘짐승, 물고기, 벌레 따위를 세는 단위’다. 이름 있는 동물도 많은데 사람만 명이라고 세는 건 종차별이다.
--- p.165, 「물고기 아니고 물살이
생활양식과 사회구조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나는 외주화에 대한 재고가 그 시작이라고 믿는다.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취하는 것이, 어머니가 차려준 밥상처럼,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 인간이 지구로부터 받는 돌봄이, 어머니가 베풀어준 사랑처럼, 무한해 보이지만 유한하다는 사실. 더 늦기 전에 자각해야 한다
--- p.215, 「내가 싼 똥을 내가 치워야 한다니
하루는 양반들과 집 앞에 산책을 나갔다. 부동산 개발을 위해서인지 도로 옆에 땅을 깎아놓은 곳이 있었다. 겨울에 지지와 함께 산책하다가 발견하고 한숨을 쉬었던 곳이다. 그때는 벌거벗은 황무지 같은 땅이었다. 앉아서 한참을 명상했었다. 그런데 고작 6개월 만에 찾은 그곳은 푸르렀다. 어디서부터 시작된 건지 알 수 없어서, 지리산 전체와 연결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는 덩굴이 땅을 덮고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 양반들에게 이야기했다. 여기가 지난번에 왔을 때만 해도 완전히 공사판이었다고. 잎사귀들이 바람결에 춤추면서 나를 비웃었다.
“자연의 생명력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해.”
나는 겸허해지는 동시에 엄청난 희망을 얻었다. 인간만 나대지 않으면 지구는 곧 회복하리라는 확신을 느꼈다. 덩굴의 계시와도 같았다.
--- p.240, 「사냥꾼에서 사랑꾼으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