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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행복

사소한 행복

: 3개월 농사 짓고 9개월 우아하게 사는 농부 이야기

유진국 | 올림 | 2021년 11월 1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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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1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120쪽 | 148g | 127*188*7mm
ISBN13 9791162620496
ISBN10 1162620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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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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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노란색이라고 노래하는 꽃다지와 봄은 하얀색이라고 주장하는 냉이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 싸움은 논둑, 밭둑 그리고 강둑에서 전면전으로 번졌다. 전투에서 기세를 올리기 위해 꽃다지는 노란 꽃대를 마구마구 올리고 냉이는 하얀 꽃을 구름처럼 피웠는데, 하느님은 꽃다지 편이었다. 하느님은 냉이를 맛있게 만들고 꽃다지는 예쁘게 만들어서 봄처녀가 냉이만 모두 솎아 내게 했다. 사월이 오기 전에 냉이는 사람 뱃속으로 다 들어가고 꽃다지는 노오란 봄의 영광을 누리고 있다.
--- p.28

새 생명의 탄생을 기다리는 마음은 나도 박새 못지않다. 알을 품는데 혹 방해가 될까 봐 장미넝쿨 앞에서 나는 매우 조심스럽다. 장미 넝쿨 앞에 수도가 있는데 솔 순을 씻으려고 고양이 걸음으로 살금살금 다가가면 박새는 개미 똥구멍만 한 눈동자를 반짝이며 나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한다. 내가 웃으며 괜찮다고 해도 미덥지 않은 눈치다.
--- p.36

많이 기다리던 뻐꾸기가 올해는 좀 늦게 왔다. 반가운 뻐꾸기 소리가 어제 해거름에 잠깐 들리더니 오늘은 종일 공연이 이어진다. 뻐꾸기는 한 마리만 울어도 오케스트라처럼 울려 퍼진다. 꾀꼬리는 피콜로 연주자이고 딱따구리는 드럼 연주자다. 뻐꾸기는 호른 연주자다. 새들은 모두 한 가지씩 악기를 연주한다. 하지만 뻐꾸기는 호른을 연주하면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한다. 바렌보임이 피아노를 치며 런던 필하모니를 지휘하는 것처럼 말이다. 가는 봄이 오는 여름과 손을 잡고 왈츠를 추는 아름다운 계절이다.
--- p.51

이렇게 모든 종류의 곶감을 담은 상자는 음악으로 치면 교향곡이 될 것이다. 나는 여태 고종시 곶감과 대봉 곶감을 주로 만들었다. 선물 상자에도 고종시는 고종시끼리 대봉시는 대봉시끼리 같은 종류의 곶감만 담았는데 이제는 고종시, 대봉시뿐만 아니라 반시, 둥시, 단성시, 수시 등등 만들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곶감을 한 상자 안에 담아보려고 한다. 단순히 재미나 호기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브람스나 말러처럼 교향곡을 만든다는 진지한 마음으로 제대로 된 곡을 써보려는 것이다.
‘말러 교향곡 1번’이라고 이름 지어질 상품은 4개의 악장을 표현할 곶감으로 구성해야 할 것이다.
--- p.66

감이 덕장에 걸리면 지리 상봉에서 얼음으로 만든 화살바람이 내려온다. 높은 봉우리에서 사스레나무, 당단풍, 가문비나무, 함박나무 이파리를 떨구고 이 골짝 저 골짜기를 스쳐온 바람은 산자락의 은행과 벚나무 단풍을 어루만지고 곶감 덕장에 머무른다. 그러면 옷 벗은 감이 덕장에 매달린 채 흔들리다 노란 은행단풍이 들고 다시 붉은 벚단풍이 든다. 이렇게 단풍이 든 감은 단단했던 자아를 놓아버리고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맛의 정진에 들어간다.
--- p.88

잘 숙성된 곶감을 먹어보고, “아, 이건 옛날 곶감 맛이네요” 하는 사람도 있고 “돌아가신 외할머니 생각이 나네요” 하며 추억에 젖는 사람도 있다. “혹시 곶감에 꿀을 바른 거 아닌가요?” 하고 너스레를 떠는 사람도 있다. 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옛날 곶감은 정말 그랬다. 옛날 날씨는 곶감을 말리면서 동시에 숙성을 시켜주었기에 외할머니가 시골집 처마 밑에 매달아두었던 곶감에서는 꿀맛이 났던 것이다. 옛날에는 사흘 춥고 나흘 따뜻했다. 꿀곶감을 만들기 위한 날씨의 황금비율이었다. 곶감은 하늘이 선물한 맛의 오르가슴이다.
--- p.98

유튜브에서 말러의 1번 교향곡을 고르니 덕장 안이 국립극장이 되었다.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울림에 덕장에 가득 매달린 곶감이 바르르 떨며 마른다. 내가 말러를 편애하니 아내는 말러를 듣고 곶감이 잘 ‘말러’라고 말러만 듣느냐고 놀리는데, 말러의 1번 교향곡을 들으면 봄기운이 느껴져 반복되는 단순 작업을 하는 나에게 큰 위안이 된다. 겨울 추위에 떨면서 일을 하지만 마음은 봄과 함께하는 것이다.
---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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