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1년 11월 2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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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64쪽 | 344g | 120*200*15mm |
ISBN13 | 9791160406818 |
ISBN10 | 1160406812 |
발행일 | 2021년 11월 2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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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64쪽 | 344g | 120*200*15mm |
ISBN13 | 9791160406818 |
ISBN10 | 1160406812 |
프롤로그: 촛불을 들고 다가서면 1. 성냥갑에 딱 하나 남은 성냥 같은 말 길항 규모 적산온도 주악 삽수 라페 몰드 버저 비터 휘도 잔나비걸상 버력 피막 블라이기센 2. 홀로 짓는 표정 같은 말 모루 유루 내력벽 루어 흑건 오고오고 가시손 빈야드 구득 홈질 선망선 출몰성 플뢰레 덧장 탕종 꼭두 3. 나의 작은 말들의 놀이터 안료 탁성 벼락닫이 적화 밀코메다 묘실 파밍 기저선 네온 불리언 덖음 시드볼트 모탕 페어리 서클 도량형 끗 |
나의 책 읽기는 매번 이런 식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생각들을 붙들고 살다 보니 책이든 삶이든 페이지가 쉽게 넘어갈 리 없다. 소설을 읽을 땐 소설을 읽어야 하는데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에 머무느라 방금 전까지 읽은 건 까맣게 잊어버리고 만다. 그래도 오늘은 소망이라는 단어에서 출발해 길항이라는 단어에까지 다다른 하루였으니 이를 생산적 난독이라 말해도 될까. 그래서 "까다로운 작은 소망들"이라는 표현이 어떤 소설에 등장하느냐고? 내용이 무엇이냐고? 아무래도 책을 다시 읽어야겠다. p.18
한때 책을 읽으면 단어와 문장들을 노트에 따로 적어서 수집하는 것이 취미였던 적이 있다. 요즘은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못하고 있지만, 독서의 목적이 '단어' 그 자체에 있는 편이라 안희연 시인처럼 늘 특정 페이지에 시선을 빼앗기곤 하는 편이다. 작품의 전개상 전혀 중요하지 않은 표현에 포스트잇 플래그를 붙이고, 한 동안 그 페이지에서 시선을 못 떼는 경우가 종종 있는 나로서는 이 책에서 특히나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안희연 시인은 스스로를 '단어 생활자'라 부른다. 이유는 단어가 그저 단어가 아니라 자신을 이루는 피와 살처럼 느껴질 때가 많고, 한 단어에 대해 말하는 일은 한 세계를 들여다보는 일이라는 생각을 자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떤 단어는 시간의 역할을 대신했고, 어떤 단어는 공간의 역할을 대신했다. 어떤 단어는 시인을 소용돌이처럼 휘감았고, 어떤 단어는 정수리에 번개처럼 내리 꽂히기도 했다. 단어로 이루어진 놀이터를 떠나고 싶지가 않다고 말하는 시인은 단어의 집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니, 함께 단어를 골라보자고 손을 내민다.
탕종의 힘은 나날이 커져갔다. 놀랍거나 두렵거나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슬픈 일이 닥칠 때마다 탕종, 탕종 하고 입 밖으로 되뇌는 것이다... 탕종이라는 말의 비밀스러운 느낌은 오래도록 내 곁에 남아 있다. 비록 단호박크림치즈 탕종식빵은 하루도 못 가 사라져버렸을지라도. 탕종, 탕종. 나는 단어 하나로도 나를 지킬 수 있다. 단어가 빵처럼 부풀고 종처럼 울려 한 사람의 집이자 우주가 된다는 것. 참 따뜻한 움막이다. 뜻밖의 신비다. p.163
안희연 시인의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이라는 시집을 인상적으로 읽었던 기억이 있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문장들 속에 숨어 있는 감정들이 공감도 되고, 삶과 슬픔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를 주었다. 덕분에 시인이 쓰는 에세이는 어떤 모습일지 매우 궁금했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역시나 수많은 단어들의 안팎을 살아가는 시인이기에, 여타의 가벼운 에세이들과는 뚜렷하게 달랐다. 포스트잇 플래그를 너무 많이 붙여서 책이 두툼해졌을 정도로, 밑줄 긋고 싶은 문장들이 가득했고, 오랜만에 노트를 꺼내 필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했으니 말이다. 단어들을 꼭꼭 씹어서 먹고, 문장들을 제대로 외우고, 행간 사이에 숨겨져 있는 의미를 유추해 여운을 즐기고 싶은 그런 책이었다.
이 책에 수록된 단어들은 길항, 적산온도, 주악, 삽수, 버력, 피막, 유루, 내력벽, 선망선, 플뢰레, 벼락닫이, 밀코메다, 파밍, 기저선, 시드볼트 등등 분명히 한번 들어본 것 같은데 뜻을 모르겠거나, 대충 의미는 알겠는데 어쩐지 낯설다. 특히나 너무도 비문학적인 단어들에서 가장 문학적인 순간을 길어 올린다는 점에서 이 책은 더욱 흥미롭다. 대파 한 단 가격에 놀라고, 단추 하나 다는 값이 비싸 무거운 겨울 점퍼를 들고 다시 집으로 되돌아오는 시인의 일상은 특별하지 않다. 그런데 그 평범한 매일의 일상들 속에서 발견하는 '단어'들을 통해 바라보는 '삶'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순간을 영원으로 붙드는 마법을 경험해보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 제목 《단어의 집》을 봤을 때 사전이 생각났어요. 김소연 시인은 《마음 사전》을 쓰기도 했지요. 이 책 제목을 보고 그런 책인가 했는데, 제 생각과 달랐습니다. 시뿐 아니라 글쓰는 사람은 낱말을 자기 식으로 생각하기도 하더군요. 저는 그러지 못합니다. 따로 말을 정리하지도 않고 잘 적어두지도 않아요. 뭔가 떠오르거나 느낌이 와야 적을 텐데 그런 일은 없습니다. 가끔 찾아오기도 했는데, 이젠 그런 일은 없네요. 그걸 생각하니 조금 슬프기도 합니다. 이 책이 어떤지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려워요. 어떤 낱말을 생각하고 글을 썼는지, 쓰다 보니 그 낱말이 떠오른 건지. 둘 다일까요. 안희연은 아직 쓰지 못한 것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 거 생각하니 부럽기도 하네요. 저는 언제나 쓸 게 없고, 언젠가 글이 될 것도 없습니다.
마음이 안 좋을 때 저는 자거나 아무것도 안 해요. 여전히 그러는군요. 안희연은 음식을 만들더군요. 음식 만들기는 먹을 사람을 생각하고 마음을 담아 만들어야 할 것 같은데. 안희연은 여름에 당근을 채썰어서 라페를 만든답니다. 라페는 이 책 보고 처음 알았습니다. 음식 만들기도 집중해야 하고 그거 하나만 생각해야 하죠. 마음이 시끄러울 때 음식을 만들면 다른 건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그런 것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 그림 그리기나 만들기. 뜨개질도 만들기와 다르지 않겠습니다. 사람마다 마음 푸는 게 있으면 좋은 거죠. 저도 자기보다 다른 거 하는 게 나을 텐데. 기분이 안 좋아서 편지 못 쓰겠다 했는데, 막상 쓰니 기분이 좀 나아지더군요. 그것도 집중하고 다른 걸 생각해설지도. 손을 움직인 것도 있겠네요.
여기에서 재미있는 말을 만났습니다. 가시손이에요. 자신이 손 대면 물건이 부서지거나 고장 난다고 하는 사람 있잖아요. 전자기계일 때가 많기는 한데. 그건 그 사람 손 때문이 아니고 다른 것 때문일 텐데. 전자기계와 체질이 안 맞아서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보통 사람보다 몸에 뭔가 많아서(물?). 뭔가는 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가시손은 북한 말인가요. 이건 때렸을 때 아픈 걸 말하는 것 같기도. 저는 평범합니다. 뭘 만졌을 때 부수지 않고 그대로 씁니다. 거기에선 영화 <가위손> 이야기를 했어요. 가위손을 가진 에드워드를 슬프게 보더군요. 저는 조금 거리를 두면 되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좋아하는 사람하고도. 좋아한다고 해서 꼭 붙어 있어야 할까요. 이렇게 생각하는 제가 이상한 건지. 에드워드는 가위손으로 나무를 손질하고 얼음으로 눈을 만들기도 하네요. 안희연은 가위손이 멋지게 되기도 한다고 말했어요. 가시손은.
저도 힘이 들 때 뭔가 잘 안 될 때 떠올릴 말이 있으면 좋겠네요. 안희연은 탕종이라는 말을 떠올려요. 탕종은 빵을 만드는 기법에서 하나로 탕종 기법으로 만든 빵은 식감이 좋고 결대로 부드럽게 찢어지고 손가락으로 꾹 눌러도 천천히 본래대로 돌아온답니다. 삶도 유연하고 회복력이 있으면 좋겠다고. 안희연은 독일에 사는 친구와 편지를 쓴대요. 한나라에 사는 사람한테 쓰는 편지도 잘 갈지 안 갈지 걱정되는데 다른 나라는 더 걱정될 것 같아요. 그건 그것대로 멋지겠습니다. 안희연 친구 이름은 한여름이었어요. 지금도 편지 쓰겠지요.
살면서 이기는 때는 얼마나 될까요. 안희연이 친구한테 ‘오늘도 질 것 같아.’ (150쪽)하고 메시지를 보냈더니, 친구는 ‘비긴 걸로 해라. 슬프니까.’ (154쪽) 했답니다. 삶에 이기면 좋겠지만 졌다고 늘 아쉬워하기보다 비겼다고 생각해도 괜찮겠습니다. 사람이 산다고 하지만, 사람은 다 죽음으로 갑니다. 죽는 날까지 즐겁게 살아야죠. 그게 잘 되지 않지만. 글쓰는 사람만 세상을 잘 바라보고 비밀을 알아야 하는 건 아닐 거예요. 누구든 세상을 잘 보고 보이지 않는 것도 보려 하면 좀 더 나은 세상이 되겠지요. 그게 작다 해도 그냥 생각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겠습니다.
희선
독서가 일상이라고 하면 독서생활자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하루의 시작과 끝이 독서라는 얘기다. 어디 그뿐인가? 독서는 나의 현재인 동시에 미래를 비추는 얼굴이다. 미래가 불투명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없지 않는 게 문제의 실마리다. 현재를 조금이라도 낭비해서는 안 되며 무기력해서도 안 된다는 다짐. 미래의 가능성이라는 빛은 독서의 작은 불꽃에서 시작된다. 만약에 가슴 속에 작은 불꽃이 없었다면 일상은 얼마나 허무할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얼마나 답답한 일인지 싶다.
잠시, 독서에 대한 단상을 하게 된 까닭은 시인 안희연의 산문집『단어의 집』때문이었다. 시인은 시를 쓰는 사람이다. 당연히 시생활자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그럼에도 시인은 ‘단어 생활자’라는 말을 꾹꾹 눌러 쓴다. 돌이켜보니 문학을 하는 사람들에게 단어는 목숨을 요구할 만큼 치명적이다. 단어는 영혼이다. 단어에는 그 사람의 살아온 인생이 스며들어 있다. 그러니 단어를 찾는 일은 운명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일상에 마주치는 단어 하나하나를 놓고 보면 비문학적이다. 단어의 정체성을 따져보면 비문학적인 생각을 자주하게 된다. 단어는 정확해야 하니까. 일찍이 마크 트웨인은 “정확한 단어와 거의 정확한 단어의 차이는 번갯불과 반딧불의 차이다.”라고 말했다. 번갯불에는 번갯불이라는 관념에 딱 맞는 정확한 표현이다. 번갯불을 나두고 굳이 반딧불이라고 하는 것은 정확하게 틀린 단어다.
단어의 집』에는 다음과 같은 단어들이 산다.
어떤 단어는 시간의 역할 대신했고 어떤 단어는 공간의 역할을 대신했어요. 어떤 단어는 기울기가 상당해 미끄러지기 좋았고 어떤 단어는 시소와 같이 혼자서는 탈 수가 없었죠, 어떤 단어는 저를 소옹돌이처럼 휘감았고 어떤 단어는 정수리에 번개처럼 내리꽂혔고요.
시를 쓰는 시인에게 단어는 성냥갑 속의 성냥 같다. 피와 살이 되는 감정의 불꽃이 타오르며 어두운 세상을 좀 더 밝고 따뜻하게 헤아린다. 단어의 모양은 성냥처럼 단순하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한 생각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시인의 감수성은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한다. 그럴 때 단어의 낡은 단순한 관념은 사라지고 삶의 온도를 느끼게 된다.
삶의 온도는 적산온도와 같다. 해마다 봄이 되면 꽃이 저절로 피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때가 되면 꽃이 피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말한 ‘때’는 꽃의 입장에서 보면 ‘적산온도’이다. 봄에 꽃이 피는 것은 꽃이 몸에 온도를 저금했기 때문이며 그렇게 저금한 온도가 가득차면 꽃망울이 터져 비로소 꽃이 피는 것이다.
과연, 나는 어떤가? 살아가면서 얼마큼 시간을 저금했을까? 그렇게 해서 언제쯤 꽃망울을 터뜨릴 수 있을까? 사는 것은 기본적으로 쉽지 않다. 더구나 날씨만큼이나 변화무쌍하다. 그럼에도 몸 안에 온도를 묵묵히 저금하는 사람들이 있다. 돌이켜보면 그들 또한 실패와 좌절을 겪었을 텐데 어려운 과정을 참아낸 것을 보면 그들에게는 분명 삶의 지혜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들의 몸 안에 꽃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꽃은 우리가 피어야 할 최선의 꽃이다. 삶의 온도는 올라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