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서 마주하는 오래된 건축은 그곳의 다른 풍경들과는 구별되는 특별한 감흥이 있다. 낯선 풍경이 주는 감각 자극만으로도 여행은 신나지만, 건축에 담긴 문화와 풍습, 역사정보가 더해지면, 평면적이던 자극에 입체감이 생기고 풍성해진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이집트 나일강 옆 주택가와 피라미드의 경이로운 감동이 그랬고, 인도 타지마할 궁전도 강렬했다. 오래된 건축은 마치 여행지의 증강현실 장치같이 매력적이다.
이 책은 남해안 문화재 이야기다. 바닷가 시골 마을에 흩어진 오래된 건축을 돌아보며, 여러 궁금증을 풀어본다. 그 건축물이 왜 거기에 있고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만들고 사용했는지 설명한다. 집을 짓는 한옥 목수의 시각으로 한국건축 구조이론과 문화재 보수 실무이론에 기대서 한 발 들어가 설명한다.
여기 20곳의 건축물들은 남해안 왼쪽 7개 시군에 집중되어 있다. 고택, 정자, 사찰, 석탑, 돌다리, 원림(지금의 전원주택이나 별장), 향교, 객사, 읍성 같은 다양한 문화유산을 골고루 다루고 있다. 일부 명승과 동백꽃 군락지 같은 자연유산도 포함했다. 대부분 내가 사는 곳에서 한 시간 남짓이면 다닐 수 있는 거리로, 시골 마을 체류 여행 취향에 맞췄다.
--- 저자의 머리글 중에서
한국 전통 건축에는 무지개 모양에 이름도 무지개다리인 구조물이 있다. 무지개 ‘홍’, 무지개 ‘예’, 홍예교. 돌을 가공해 무지개 모양으로 쌓아 만든 것이 홍예교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앞의 무지개 사진은 홍예교 구조를 설명하기 쉽게 나왔다.
도로가 냇물이라면, 왼쪽 야산에서 오른쪽 천관산 정상까지 강물을 건너는 무지개가 뻗쳐 있다. 강물 양옆의 언덕배기를 무지개 모양으로 연결해 돌을 쌓고, 그 위로 걸어 다니는 평평한 길을 내면 홍예교가 된다.
돌로 만든 무지개 형태의 구조물은 다리 말고도 많다.
쉽게 볼 수 있는 예로 성곽의 출입문이 홍예 구조다. 광화문, 숭례문, 흥인지문 같은 궁성과 도성의 성문을 비롯해 지방 읍성 출입문에도 무지개 형상이 많다. 겉만 봐서는 알 수 없지만, 내부 구조가 홍예 형태인 것도 있다. 조선시대에 전국의 관청이 얼음을 채취해 보관했던 석빙고도 돌을 홍예 구조로 쌓아 땅속에 공간을 만든 것이다.
또, 수원 화성에 가면 특별한 홍예 구조물을 볼 수 있다. 수원 화성을 남북으로 가로질러 흐르는 개천의 수문이 무지개 형태다. 화홍문으로 불린 이 수문은 보기 드물게도 홍예를 무려 7간짜리로 만들어 설치했다.
--- 1장 「무지개다리를 찾아서」 중에서
글짓기와 집짓기는 같은 ‘짓다’를 쓴다. 사전에는 “재료를 들여 밥, 옷, 집 따위를 만들다”와 “여러 가지 재료를 섞어 약을 만들다”는 설명이 나온다. 또, “시, 소설, 편지, 노래 가사 따위와 같은 글을 쓰다”는 뜻도 있다.
그러니 ‘짓다’가 보통 글자는 아닌 거다.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의식주에 더해 약에 쓰이고, 소통 수단인 글에도 썼으니까. 왠지 ‘짓다’를 잘하면 인간다워질 거 같고, 막 지으면 안 될 것도 같다.
집짓기와 글짓기가 닮았다는 생각은 나만 하는 게 아닐 것이다. 구상, 설계, 재료 선택 후 하나하나 이뤄가는 과정은 둘 다 다를 것이 없는 막노동이다. 건축이 손발을 많이 쓰는 반면 글은 엉덩이를 오래 쓰는 차이가 있을까.
--- 5장 「돌담 에피소드」 중에서
집도 사람처럼 스펙 보다는 내실이 중요하다. 건축적 가치가 높아 국보나 보물로 지정됐다고 다 멋지고 볼 게 많은 건 아니다.
9년쯤 전에 나는 봉정사 극락전을 보려고 안동 깊은 산골짜기까지 갔다가 좀 허탈했던 기억이 있다.
봉정사 극락전은 국보로 지정된 고려 말기 건물 중 건축 시기가 제일 앞서고, 현존 국내 목조건물 가운데?가장?오래됐다. 이 건물은 특히 후대와 구별되는 이른 시기의 건축양식을 보여 학술적으로도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당시?나도 통일신라 기법이라는 집의 짜임이 지금의 한옥과는 전혀 달라?신기했다. 그런데 딱 그거뿐이었다. 다른 재미는 별로?없었다. 정면 3칸 측면 1칸 맞배지붕의 작은 건물 자체는?더 볼 게 없었다. 내가 만약 한국 건축에 반쯤 눈먼 한옥 목수가 아닌 ‘정상인’의 눈으로 봉정사 극락전을 봤다면 아무 감흥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반면, 지정 등급은 낮아도 알맹이 꽉 차고 볼거리 풍성한 문화재들이 우리 주변에는 많다. 이 문화재들의 상당수는 단지 비슷한 사례가 많거나, 아직은 건축 시기가 그리 오래되지 않아 덜 주목받고 있을 뿐이다. 그중 어떤 것은 새로운 가치가 재조명되면, 높은 등급의 문화재로 다시 지정되기도 한다.
--- 7장 「안방_집의 컨트롤 타워」 중에서
“고택을 다녀보면 같은 집이 없다. 시대마다 유행이 다르고 양식이 같아도 목수 솜씨가 다르고, 한 목수가 지어도 주인 취향이나 입지 조건이 제각각이니 당연하다.
그러니 집마다 특징과 개성이 있고, 고유한 멋도 있다. 집의 내력과 스펙을 알면 고택 감상이 더 재미 날 순 있지만, 모른다고 문제 될 건 없다.
원산지나 학명 같은 거 몰라도 꽃은 이쁘고 향기롭다. 그런데도 굳이 답사기를 쓰느냐고? 매뉴얼 안 읽으면 불안한 사람도 있는 거니까. 나처럼. 또 좀 알고 보면 없던 호기심도 생기고. 뇌세포는 새로운 자극을 좋아한다고도 하고.”
--- 9장 「100년 전 신식 별장」 중에서
보길도 윤선도 원림은 다른 곳에 없는 독특한 휴양지 건축이다. 조선시대 일반적인 원림과 전혀 다른 이곳만의 이색적인 배치 형태와 드넓은 조망이 비할 데 없이 아름답다. 원림 전체가 명승으로 지정되어 보존 중이다.
보길도 원림의 조성과정에는 특별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조선 중기 문신 윤선도는 병자호란 당시 왕의 굴욕적 항복 선언에 낙심한 나머지 가산을 정리해 세상을 등지고 제주도로 향했다. 그런데 항해 도중 잠시 쉬려고 작은 섬에 배를 세운 윤선도는 보길도의 경관을 보고 그만 한눈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윤선도는 제주살이 계획을 접고, 이곳에 정착해 원림을 만들었다.
--- 16장 「조선 휴양섬 건축」 중에서
“결국, 향교를 평지에 지을 때 적용한 유교 예법이 경사지라는 지형 특성을 만나 변형된 것이다. 이처럼 건축을 볼 때 구조 기술만이 아니라 그 시대 관습, 종교, 사상 같은 인문학적 배경을
함께 알면 보는 재미가 배가된다.”
--- 20장 「조선 국립 지방학교와 호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