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는 어떤 섬인가? 제주는 어떤 역사의 공간인가? 제주의 역사적 변화와 사회문화적 가치를 공간단면空間斷面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중심이 원도심原都心이다. 원도심原都心은 말 그대로 원래 도시가 형성되었던 중심 지역을 의미한다면 제주읍성과 그 주변을 원도심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원도심의 공간적 범위에 대해서는 행정구역이나 도시 공간의 형성에 따라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원래부터 존재했던 도심’이라는 의미에서 볼 때 제주읍성을 경계로 읍성 안과 읍성 밖 지역 일대를 포함하는 공간으로 인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가 원도심原都心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근성을 비롯해 제주 도시의 형성 과정, 곧 ‘공간의 확장성’과 ‘시간의 확장성’ 속에 새겨진 삶의 많은 이야기, 역사·문화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제주의 대표 생활 공간이자 제주만의 정체성이 담겨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시간의 확장성’이라는 개념에서 볼 때 원도심은 오래된 장소가 내포하고 있는 수많은 역사 흔적과 옛 탐라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전통적인 생활 공간 그리고 근현대에 생성된 서민들의 애환이 녹아 스며든 생활 공간이 어우러진 장소다. 또한 ‘공간의 확장성’이라는 개념에서 본다면, 원도심은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들여다볼 수 있는, 다시 말해 제주인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 p.17
장두는 민란이 끝나면 그에 대한 책임으로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아야 하는 자리다. 관노와 화전민인 낮은 신분임에도 민중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내어놓는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다. 60년이 지난 신축년辛丑年인 1961년에야 세 장두 이재수, 강우백, 오대현을 기리기 위해 대정지역 단체에 의해 대정현성 인근에 삼의사비三義士碑가 세워졌다. 그래서 관덕정과 광장에 담겨진 공간의 가치와 의미가 더욱 새롭게 느껴지는 것이며, 우리가 도시 건축의 공간을 어떠한 태도와 시각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 p.79
11∼13세기에 유럽 서북부와 북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성곽 도시, 교회와 수도원 중심의 도시를 근간으로 발달했던 중세도시의 광장은 정치적 혹은 종교적 측면에서 또다른 성격을 갖는다. 도시 형성의 주체가 누구였는지에 따라 민중이 주체가 되기도 하고, 권력자가 주인이 되기도 하면서 광장의 성격과 기능은 제각기 달랐다. 제주에도 그런 공간이 있다. 민중항쟁의 대표 공간인 관덕정 광장이 그렇다.
--- p.89
1970년대에는 남북으로 관통하는 길이 개설되면서 교차로가 확장되고 부분적으로 탑동이 매립되기 시작했고 산지천이 복개되었으며, 1980년대에는 탑동 매립 같은 자연환경을 훼손시키는 개발이 집중되면서 장기적으로 원도심의 주거환경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특히 1990년 이후 노형과 연동지역을 중심으로 대규모 집합주거단지가 조성되면서 원도심의 공동화가 심화되기 시작했고, 시간의 흐름 속에 원도심 공간의 물리적 쇠퇴까지 겹쳐 원도심 재생이 새로운 도시계획의 화두로 자리잡게 되었다.
--- p.113
여관과 근대건물을 활용한 산지천 갤러리, 제주사랑방, 케왓과 같은 사례로 서울의 돈의문 박물관 마을이 있다. 돈의문 박물관 마을은 옛길의 보존과 아울러 여관, 사진관, 이발소 등 일상적인 우리들의 삶의 공간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고 있는 살아 있는 근대공간이라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장소다.
돈의문 박물관 마을에 비해 제주의 산지천 갤러리, 제주 사랑방, 케왓과 주변 일대는 작은 규모이지만 산지천에서의 삶과 소박한 역사를 담아내는 근대 역사공간임에는 틀림없다. 시민 참여가 가능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작은 문화공간으로서 주변 문화자원과 잘 연계된다면 크게 성장할 잠재력을 지닌 공간이다.
--- p.130
제주에 근대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도립도서관은 기업가 박종실의 삶의 철학이 녹아 스며든 건물이고 최초의 도립도서관이라는 점에서 근대건축의 상징성과 역사성이 매우 높은 건물이다. 아쉽게도 잘 보존되지 못하고 철거되어 기억으로만 존재하게 된 것은 매우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 p.146
좋은 건축물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역시 건축에 대한 이해가 깊은 건축주, 건축주의 의도를 잘 파악하는 건축가의 만남이 필연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관계가 한국건축사에 남는 건축 작품을 탄생시킨 또 하나의 배경이 되었다.
--- p.167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문종철 학장이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던 김중업 선생께 본관 설계를 의뢰하게 되어 제주대학 옛 본관으로 잘 알려진 대표적인 건축작품이 탄생하게 되었다.
--- p.166
도시 공간은 우리의 삶의 공간이며 오랜 기간 사람들의 흔적이 쌓이고 쌓여 표출되면서 공간의 역사와 문화를 형성한다. 무근성, 칠성골, 산지천 일대가 바로 그렇다. 그곳은 제주만의 사회적, 경제적, 역사적 의미를 품고 있다. 원도심에는 탐라의 흔적만이 아니라 근대와 현대의 흔적들이 혼재되어 있는데, 때로는 건축으로, 때로는 장소로 마치 타임캡슐처럼 제주 역사의 단면을 보여준다.
--- p.176
이 무렵 한짓골에 남양문화방송국이 들어서면서 서점, 다방과 함께 원도심 내에 새로운 문화중심지를 형성했다. 대학생과 문인들은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서로 모여 토론했는데, 제주 문화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950~1960년대에는 칠성골이 문화의 중심지였지만, 1970년대에는 한짓골을 중심으로 그 축이 이동한 것이다. 알한짓골에는 남양문화방송국과 그 건너편에 소라다방이 자리하면서 한짓골이 제주의 대표적인 문화의 거리로 부상했다.
--- p.193
알한짓골의 남양방송국 길 건너에 자리잡은 소라다방 건물의 정면은 가로로 긴 연속 창과 벽면을 약간 안쪽으로 들어가게 해서 건물 입면은 단순하면서도 입체적인 느낌을 주는 디자인으로 측면의 일반적인 창과는 전혀 다른 표정이다. 2층 소라다방은 언제나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북적거리는 70년대 한짓골을 대표하는 다방이었다. 80년대에는 소라다방 3층에 제주도 최초의 사회과학 전문 서점이었던 사인자 서점이 들어서고, 중앙로의 에덴서점과 함께 대동서점이 웃한짓골에 들어서면서 소위 제주의 사회과학 서점의 시대를 열기도 했다.
--- p.196
상당히 제주스러운 건축, 제주스러움 이면裏面 속에 담겨있는 제주 최초의 복음을 전파했던 출발점, 유배인과의 인연, 장로의 교회신축 배경, 이런 제주의 역사, 원도심의 이야기들이 함축적으로 응어리져있는 근대종교건축이다. 지금도 성내교회는 이기풍 목사 내외가 파송되어 믿음, 복음을 전파했던 제주도 최초의 기독교 전파의 터로서 성지순례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곳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 p.216
이런 풍경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배경에는 개발에 대한 강박관념과 정치집단의 개발 논리가 있다. 도로가 좁거나 고층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지 않으면 사람들은 낙후되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개발논리가 등장한다. 높고 큰 건축물을 짓고 넓은 도로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한다. 정치집단 역시 개발을 요구하는 주민들의 표를 의식해 끊임없이 공약을 남발한다. 새만금과 탑동은 ‘개발=발전’이라는 강박관념에 빠져든 주민과 정치집단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만들어낸 개발의 슬픈 풍경이 남아 있는 지역이다.
--- p.243
풍경이라는 것은 공존하는 아름다움이다. 인간의 몸과 마음이 자연과 일체가 되었을 때 아름다운 표현이 가능한 것이다. 이제는 인간을 위한 풍경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위한 풍경을 만들어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 p.245
재생에 초점을 둔 활성화의 핵심은 주거환경개선을 통한 삶의 질 개선, 역사문화적 장소의 가치 극대화,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참여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개발을 적용하더라도 블록별 건축물의 노후화 정도와 입지적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물리적 환경개선의 적절한 정비 방안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 p.248
원도심의 역사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지형과 옛길의 흔적을 가능한 한 원형 그대로 유지하도록 해 역사적 문화적 흔적을 존중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아울러 대규모 개발로 인한 경관 훼손을 예방하기 위해 필지의 합필을 규제하고, 부득히 합필이 불가피한 경우 보행통로를 중심으로 건축물을 여러 개의 매스로 분할하는 등 최대한 원래 땅의 조건을 유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마련도 필요하다.
--- p.253
그러나 도시의 공간을 풍부하게 만들 수 있는 귀중한 자원임에도 불구하고 좁고 불편하고 주차공간이 없다는 이유로 근대건축물과 함께 철거되기 시작하면서 원도심의 풍경이 크게 훼손되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문화도시의 전제조건은 오래된 것, 낡은 것, 때묻은 것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전통, 근대건축물과 옛길의 풍경 속에 현대적인 건축물이 함께 묻어가는 것이다.
--- p.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