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힘든 일이었지만 흥이 났지요. 소중한 아이들이 읽을 책이라는 생각을 하니 사명감이 생기고, 조금이라도 더 아이들의 마음에 남을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어요. 돈을 많이 벌지 못해도, 책이 많이 팔리지 않아도 아쉬운 맘은 잠깐이고 다시금 글을 쓰게 되었지요.
--- p.5, 「프롤로그」 중에서
월급쟁이처럼 꾸준히 일해야 돈을 번다는 이야기는 내가 생각했던 작가의 모습과 많이 달랐다. 살면서 내가 글을 쓸 거라는 생각도 못 했지만, 작가가 월급쟁이처럼 매일 일을 하고, 월급처럼 돈을 번다는 생각 역시 해본 적이 없었다. 작가로 일한다는 것, 글쓰기라는 일은 내게 여전히 막연한 거였다.
--- p.26, 「늘어나는 밤샘과 비장의 무기」 중에서
우리 모두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지 않은가. 나의 연봉이 나의 가치처럼 보일 텐데, 인심 써서 당시 물가를 계산에 넣어본다고 해도, 연봉 200만 원은 적어도 너무 적은 금액이었다. 나는 그런 말을 한 남편을 원망했다. 남편은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으니 걱정 말라고 했다. 하지만 누군가의 연봉이 200만 원이란 사실이 아무렇지도 않은 평범한 내용이었다면 남편은 거기서 그 말을 하지 않았을 거다.
--- p.39, 「연봉 200입니다만」 중에서
엄마들은 아이에게 크고 작은 일이 생길 때마다 모두 자기 탓인 듯 괴로워하고 자책한다. 매 순간 엄마 노릇을 잘 하기 위해 애쓰지만, 아이에게 일어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이 완전히 사라질 리 없다. 그래서 엄마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건 기도뿐일 수 있다. 종교가 있건 없건,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건 마음을 다하는 것이 엄마의 일일 것이다. 모든 일이 잘 풀릴 때만 좋은 엄마가 되고, 잘 풀리지 않으면 나쁜 엄마가 되는 건 아닌 거 같다.
--- p.56, 「우리 동네 어벤저스」 중에서
여자가 온전히 일을 하려면 다른 여자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말들을 한다. 그날은 나와 시누이 모두에게 시어머니의 희생이 필요했던 날이었다. (중략) 그럴 때마다 난 고민스러웠다. 다른 사람의 희생으로 내가 원하는 일을 한다면, 그게 과연 괜찮은 건지.
--- p.65, 「엄마라는 사람들 2」 중에서
모두 잠든 밤에 물을 마시러 나왔다가 식탁에 놓인 내 책을 보면 기분이 좋았다. 가슴에 책을 품으면 키득키득 웃음이 났다. 그거면 족했다.
--- p.91, 「첫 자식 같은 첫 책」 중에서
기껏 글을 써서 원고를 보냈는데 출간하지 않게 되었다는 거다. 책이 나올 수 없다니. 내가 쓴 수많은 원고가 휴지 조각이 되는 순간이었다. 허탈감이 밀려왔지만 대놓고 따지지 못했다.
--- p.94, 「쌉쌀달콤한 인생과 글쓰기」 중에서
글쓰기 실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나는 어떤 분야의 글이든 가리지 않고 썼다. 맡겨진 것을 그저 열심히 잘 해내려고 노력했다. 그러면서 나름대로 나만의 글쓰기 방법이 만들어졌다.
--- p.97, 「 내가 만든 글쓰기 루틴」 중에서
마감 전까지는 쉬어도 쉬는 것이 아니었다. 책에 대한 걱정으로 불안이 늘 쫓아다닌다. 그러다 마감을 하고 글쓰기에서 벗어나면 날아갈 거 같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정도로 짜릿하다. 그동안 뜨지 않던 해가 떠올라 세상이 환해지는 것도 같다. 군대에서 제대를 하거나, 감방에서 나오면 이런 기분일까? 이런 해방감일까? 마약을 하면 이렇게 황홀할까? 나는 글을 쓰면서 힘이 들 때면 마감을 떠올리곤 했다. 누구든 그 맛을 한번 보길 권하고 싶다.
--- p.110, 「불안과 강박이 만들어준 좋은 습관」 중에서
그 당시 나는 솔직히 김 과장이 무서웠다. 다 큰 어른이 되어서 만난 누군가를 무서워하는 감정이라니. 이건 중학교에 막 입학했을 때 입도 크게 벌리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말하던 생물 선생님 이후 처음이었다. 어른이 되면서 누군가를 불편해하거나, 어려워한 적은 있어도 무섭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었다. 나는 모든 답이 자기 안에 있다는 듯이 자신의 의견을 밀어붙이는 출판사 김 과장을 대하는 일이 참 힘들었다.
--- p.132, 「무서운 사람」 중에서
솔직히 고백하건대, 당시 내게 확신을 준 것은 남편의 긍정적인 응원이 아니라 갚아야 하는 빚이었다. 나는 다시 B와 D 사이의 인생에서 새로운 C를 잡았다. 그건 용기(courage)였다. 빚이 끄집어낸 용기!
--- p.156, 「갚아야 할 빚, 그 무게가 끄집어낸 용기」 중에서
아이는 아이의 속도로 잘 크고 있는 거라는 남편의 말을 믿고 싶었고, 그래서 믿었다. 그리고 남편 말대로 더 크면 나아지리라 기대하며 그 시간을 견뎌야 했다. 그래도 실컷 뛰어놀다 들어온 아들의 웃는 얼굴을 보면 공부 근심이 잊힐 때가 더 많긴 했다.
--- p.165, 「 천재이길 바라진 않지만」 중에서
며칠 후 선생님께서 채점이 끝난 시험지를 나눠주셨다. 시험지 한 장에 사선으로 길게 줄이 그어져 있고, 그 위에 숫자 ‘0’이 딱 쓰여 있었다. 아무도 엎드리지 않는 것이 이상하더니, 모두 다섯 과목의 시험을 볼 때 나는 네 과목만 본 거다. 시험을 치르지 못한 한 과목은 빵점이었다. 내가 빵점을 맞은 거다. 어린 나이였지만 기가 막혔다. 난 그 시험지를 아빠에게만 보여주었다. 아빠는 웃지 않았다. 그리고 조금 후에 내게 동전을 주시며 말했다. “이걸로 빵 사 먹어라.”
--- p.170, 「 빵점이니까 빵 하나 사 먹을까?」 중에서
불안해보이던 다른 아이들도 하나둘 우리 아들처럼 스케이트를 타고, 이제는 즐기는 모습이 보였다. 아이들이 빨리 배운다더니 정말 그렇구나 하고 있는데 다시 아저씨와 아저씨의 손을 잡은 아이가 보였다. 아저씨는 넘어지려는 딸아이를 다시 번쩍 들어 올려주었다. 넘어지려 할 때마다 들어 올려주니 아이의 발은 얼음판에 닿지 않고 살짝 떠 있는 순간이 많았다. 그 모습을 보는데 나는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저건 아이를 진짜로 돕는 것이 아니구나!’
--- p.178, 「넘어질 기회」 중에서
“아이는 부모의 사랑으로 자라고, 부모만 자식에게 사랑을 주는 것 같지요? 나도 그럴 줄 알았는데 아기를 낳아보니 아니에요. 아기를 낳으면 아기가 나에게 엄청난 사랑을 줘요. 아기는 언제나 나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봐줘요. 나를 보고 웃어주고, 내가 하는 행동이나 말 하나하나를 보고 듣고 잊지 않아요. 나랑 있는 걸 늘 행복해하지요. 생각해 봐요. 누가 나한테 그렇게 하겠어요?”
--- p.186, 「출산 예찬」 중에서
난 아기들을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우리 옆집에 살던 아저씨가 결혼을 해서 아기를 낳았는데 난 그 아기가 너무 예뻐서 자주 그 집에 놀러 갔다. 새댁 아줌마는 자주 찾아오는 나를 늘 반겼다. (중략) 그런데 나는 아기를 살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굳이 등에 업으려고 했다. 지금도 아기가 싼 오줌에 등이 축축하고 따뜻해졌던 느낌이 기억난다.
--- p.194, 「아이들이 뽑은 인기 최고 어른」 중에서
캐릭터가 흥미로우면 글도 흥미로워지곤 한다. 언젠가 ‘마더’라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는데 드라마 속 캐릭터가 너무 멋있어서 감탄했다. (중략) 그러면서 작가는 스스로 정말 좋은 사람, 멋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좋은 사람으로 살아야 내 글에서 저런 캐릭터가 나올 수 있을 테니까.
--- p.215, 「 캐릭터로 다시 태어나는 아이들 1」 중에서
생일 파티를 연 아이는 그날의 주인공이 될 자격이 충분했다. 난 그 아이가 너무 멋있어 보였다. 그리고 아이들이 가진 현명함에 놀랐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좋은 사람은 아이 때부터 가진 좋은 품성이 있다. 그래서 나이를 먹었다고 다 어른이고, 모든 어른이 아이보다 낫다고 할 수가 없다. --- p.218, 「캐릭터로 다시 태어나는 아이들 2」 중에서
나의 글쓰기도 시간이 지날수록 짬밥이 쌓여갔다. 그건 경중을 따지지 않고 다양한 글을 많이 썼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실력과 경력이 부족해서 겸손할 수밖에 없었지만, 겸손한 자세로 일에 임했더니 ‘뭐 나더러 이런 일을 하라고?’ 같은 불만을 가질 일도 적었다. 나는 내게 맡겨진 일을 그저 열심히 했다.
--- p.227, 「짬밥 1: 글쓰기 실력 레벨 업 하는 비법」 중에서
생활이란 언제나 고비의 연속이다. 그 고비의 언덕이 야트막하냐 높냐의 차이가 있을 뿐 고비는 이어지게 마련이다. 글을 쓸 때도 그랬다.
--- p.229, 「짬밥 2: 마음 다스리기 비법」 중에서
밤이 되어도 가족은 내 옆에서 떠나지 않아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어려웠다. 하지만 새벽은 달랐다. 새벽이면 그들은 누가 업어가도 모르게 잠에 빠져 있었다. 웬만해선 나를 찾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과 거꾸로 했다. 그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늦은 저녁 시간에 나는 잠을 자고 그들이 잠에 빠진 새벽에 돌아다녔다.
--- p.241, 「글 쓰는 시간 확보 작전」 중에서
새벽에 홀로 깨어 있어 본 사람은 알 거다. 새벽이란 시간은 이렇게 평화로우면서 동시에 무척 외롭다는걸. 모두 깊은 잠에 빠져 있고, 공기마저 바닥에 내려앉은 듯한 고요함은 세상에 나 혼자 있는 듯한 고독을 선명하게 한다.
--- p.245, 「 새벽, 고요한 나만의 시간」 중에서
아이에게 부모란 절대적인 존재다. 어릴 적 나는 시험을 못 봐도, 심지어 대학에 떨어져서도 부모님의 괜찮다는 한 마디에 큰 위로를 받았다. 부모가 되어 잠든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볼 때면, 나는 내 부모님만큼 절대적으로 믿고 따를 만한 부모가 되지 못한 것 같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 p.253, 「엄마라는 자격, 작가라는 자격」 중에서
나도 순전히 내가 원하는 글을 써서 책을 내고 싶어 공모전에 도전한 일이 있다. 공모전을 준비하는 일은 힘들지만 짜릿하다. 우선 내가 원하는 것을 어떤 간섭 없이 마음대로 써 내려간다는 것이 좋고, 그 글이 당선되어 세상에 나올 것을 기대하고, 당선되어 상금을 받아서 주변 사람들에게 한턱 크게 쏘는 상상에 신이 난다.
--- p.268, 「작가 되는 방법 2: 정말 많다, 그러니 입맛대로 골라 도전하자」 중에서
작가와 기획자로서 경험이 쌓이면서 일면식도 없던 출판사에서 연락이 오는 경우가 늘었다. 하지만 출판사에서 먼저 연락을 했다고 해서 일이 바로 성사되는 건 아니다. 회의 과정에서 구체적인 논의를 하고, 나의 가치를 충분히 보여주지 못하면 결론적으로 일은 성사되지 않는다. 출판사 입구에 선 나는 ‘나’를 팔아야 하는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던 거다.
--- p.280, 「글을 팝니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기 마음 하나 어쩌지 못해 괴롭고, 고통스러워하는 것 아닌가. 그러니 다른 이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은 더욱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예술은 사람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예술로 위로받고 생각지 못한 것을 깨달아 생각을 바꾸기도 한다. 예술이 그 어려운 걸 해내는 거다. 그러니 예술가들은 얼마나 대단한가.
--- p.285, 「 예술, 마음을 움직이는 위대함」 중에서
인생 고고하게 살고 싶지만 복잡한 세상은 때때로 내 입을 험하게 만든다. 무심결에 욕이 튀어나올 만큼 말이다. 그래서 결국 어느 해에는 한 해 목표를 ‘욕하지 말자’로 정했다. 목표를 다이어리 첫 장에 쓰고 나니 뭔가 어릴 적 일기장에 쓴 제목 같았다. 누가 어린이 책 작가 아니랄까 봐 이러냐고 할 것 같았는데, 나의 목표를 본 언니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어른이 지키기 참 어려운 목표를 잡았구나.”
--- p.300, 「 욕 좀 할 줄 알게 된 나이」 중에서
쉰 즈음에 나를 돌아보며 가장 두려워한 것은 ‘내가 아는 것이 다인 줄 알고 산 거 아닐까?’였다. 적지 않은 나이에 짧지 않은 시간을 살았지만 살면 살수록, 생각하면 할수록 부족함이 느껴진다. 그때마다 나는 이런저런 글을 썼다. 그런데 돌아보니 그 글들은 모두 나를 위한 것이었다. 글을 통해 나는 나를 위로하고 달랬으며 부족하다 못났다 탓했던 나 자신을 허용했다.
--- p.311, 「에필로그」 중에서